“불길 속 뛰어들어 사람 구했는데 후회막심” 무슨 일?

인천 의인, 화재서 빌라 주민 8명 구조
입원 병원 측 “치료비는 주셔야죠”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치료비는 주고 가셔야죠.”

지난달, 인천 소재의 한 빌라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 뛰어들어 8명 주민들의 대피를 돕는 과정서 실신 후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가 치료 후 들은 A씨가 들은 말이었다. 그는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고 했다.

자신을 인천에 거주 중인 39세의 가장이라고 밝힌 A씨는 지난 18일, 온라인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주취자들도 무료로 치료해주는 한국 실정에 제 경험이 너무 어이없기도 하고 ‘다음부터는 똑같은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나’는 자괴감이 몰려왔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화재 속 인명구조를 )알아 달라는 게 아니다. 지난달, 일하고 있는 장소 인근서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빌라에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화재가 발생했다”며 “119에 긴급 신고한 뒤 무작정 화재 현장으로 달려갔다”고 회상했다.

이어 “주위에 ‘불이야!’라고 외치면서 아무것도 없이 빌라 안으로 직접 뛰어 들어가 1층부터 5층까지 8명의 빌라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3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구조 활동을 펼쳤다”며 “소방관들과 경찰관 등이 와서 화재는 진압됐지만 생전 처음 유독가스를 마신 탓에 극심한 가슴통증과 기침을 하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고 말했다.

A씨 주장에 따르면 이후 소방관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이송된 후 기도확장 등 응급처치를 받고 안정을 취했다. 그는 “바랄 것도 없었고 개인적으로 나름 좋은 일을 했으니 ‘괜찮아’라며 혼자 긴장을 추스르고 있었는데 치료 후 ‘환자분, 돈 내세요’라는 황당한 말을 들었다”고 황망해했다.


그는 “저는 몰랐다. 사람을 구하고 내가 다치면 내가 병원비를 내야 한다는 것을 정말 몰랐다. 당연히 인명을 구하고 병원에 왔으니 치료비를 내지 않을 줄 알았다”며 “약 먹고 한 달 이상 가슴통증 등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아프다”고 호소했다.

또 “제가 뭔가 바라지 않고 ‘혼자 좋은 일 했다’고 생각하지만 유튜브 방송을 보다가 주취자들 머리 깨져서 다쳐도 치료해주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고 환재가 돈을 내지 않고 그냥 가도 어쩔 수 없어 치료비는 세금으로 메꿔진다는 방송을 본 후 현타가 와 버렸다”고 개탄했다.

아울러 “이 글을 쓰면서도 허탈감은 오지만 그래도 저 잘한 거겠죠? 아내는 ‘성격상 당연히 하지 말라고 해도 또 하겠지만 다음엔 수건이나 작은 안전장치라도 하고 뛰어들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19일 오후 2시 현재 해당 글에는 32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으며, 3200여명의 회원이 추천 버튼을 눌렀다. 

안타까운 점은 병원 입원 및 치료로 인한 휴업 손해는 화재 원인 제공자에게 보험 청구가 가능하지만 해당 빌라에 화재보험이 들어져 있지 않은 데다 방화범도 잡지 못했다는 부분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인천시에 주민등록을 두고 있는 시민에 한해 인천시민안전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회원은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있다. 소방이나 경찰이 아닌 남을 구하다가 다치셨으니 해당될 것 같다”고 조언했다. 의상자는 직무 외의 행위로 다른 사람의 신체, 생명, 재산의 급박한 위해를 구하려다 다친 사람을 말한다.

다른 회원은 “왜 치료비 안 주는지 아세요? 치료비 안 줘도 회원님처럼 뛰어들 의인은 또 뛰어들거든요”라며 “어차피 뛰어들 의인이면 나중에 문제 생겨도 항의 안 하고 넘어갈 의인이라서 그렇다”고 씁쓸해했다. 그러면서 “농담이 아니라 그게 현실이다. 당장 회원님도 그러고 계시지 않느냐”고 안타까워했다.


A씨는 해당 댓글에 “감사하다. 아마도 누구나 당연한 행동을 했을 것”이라면서도 “근데 정말 허탈감은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이게 현실인가. 대한민국이 과연 정의로운 사회인가’ 하는 고민을 했었고 정신적으로 ‘불의를 보면 도망가야 하나. 이런 사회인가’ 싶었다. 그래도 용기 내서 몇 자 적었다”고 답했다.

또 다른 회원은 “이게 현실이다. 죽어야 의사자라도 되지만(죽으면 무슨 소용), 다치면 나만 손해”라며 “부디 본인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자조했다.

또 다른 회원은 “진짜 이런 걸 법률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 우선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사례처럼 사망이나 부상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의로운 일에 뛰어 들었다가 다치거나 부상을 입었을 경우 보상이나 혜택은커녕 치료비를 내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경우 망설이지 않겠냐는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행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사상자법) 제11조(의료급여)①에 따르면 의상자 및 의사자유족에 대해 그 신청에 따라 ‘의료급여법’이 정하는 의료급여를 실시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미한 신체상의 부상을 입은 의상자는 제외된다.

②제1항에 따른 의료급여는 의사상자가 구조행위를 한 때부터 실시한다. 이 경우 의료급여를 실시하기 전에 의상자 또는 의사자유족이 지급한 의료비의 반환금액 및 절차 등에 관해 필요한 사상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돼있다.

사망한 사람은 의사자, 부상을 입은 사람은 의상자로 구분된다. 

적용 대상은 ▲강도‧절도‧폭행‧납치 등의 범죄행위를 제지하거나 범인을 체포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는 구조행위 ▲자동차‧열차, 그 밖의 운송수단 사고로 위해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을 구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는 구조행위 ▲천재지변, 수난, 화재, 건물‧축대‧제방의 붕괴 등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불특정 다수인의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 긴급한 조치를 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는 구조행위 등이다.

의상자에 대한 지원은 ▲보상금 ▲의료급여 지원 ▲교육 및 취업 보호로 나뉜다.

보상금 지원 및 대상은 등급(1급~9급)에 따라 의상자 보상금액의 5~100%, 의상자 본인이며 신청은 주소지 관할의 시‧군‧구청장에게 보상금지급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의료급여 지원은 1급~6급의 의상자 본인으로 기간은 의사상 행위를 한 날로부터 소급 적용하며 신청은 주소지 관할의 시‧군‧구청장에게 보상금지급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교육 보호는 의상자 및 자녀로 지급 범위는 초‧중‧고교 입학금‧수업료 및 학용품비 기타 수급품이며 신청은 주소지 관할의 시‧군‧구청장에게 학비지급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취업 보호는 1급~6급까지 본인 및 가족(배우자, 자녀, 부모, 조부모, 형제자매)까지 가능하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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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