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고성방가’ 괌에서 나라 망신시킨 동양생명 입길

피해자 “고객 한 명 놓치셨어요”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물 좋은 펜션이나 민박집 가셔서 재밌게 노시지, 왜 멀리 괌까지 오셔서 나라 망신시키십니까? OO생명은 제가 잘 모르지만, 앞으로 잠재 고객 한 명 놓치셨네요.”

지난 16일, 휴양지로 유명한 괌에서 국내 보험회사 직원들의 새벽 고성방가로 인해 피해를 봤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장이 일고 있다. 때는 지난 17일 오전 3, 4시 무렵이었고 장소는 힐튼 호텔 숙소 안이었다.

지난 20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피해담을 게재한 A씨는 “잠결에도 들리는 익숙한 한국말들이었다. 자기들끼리 복도서 하는 말이 너무 커서 방 안에 있는 제게도 그대로 들렸다”고 회상했다.

A씨에 따르면 당시 복도에선 ‘어디로 갈까?’ ‘너 몇 호인데?’ 등 큰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얼마 후엔 맞은편 방 안에서 단체로 떠드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술과 음식을 방에서 다 같이 먹는 소리였다. 물론 놀러 와서 먹을 수 있다. 친한 사람들끼리 얼마나 재밌겠느냐”면서도 “그래도 호텔이라는 곳의 매너는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옆 방에 누가 자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왜 다른 사람들 잠을 방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할까요?”라고 반문했다.

다음날 호텔 로비서도 단체 한국인 관광객들을 만났는데, 유난히 높은 톤의 왁짜지껄한 대화가 귀에 거슬렸다. 새벽에 복도 및 객실서 고성방가했던 보험회사 단체 관광객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는 “정말 에티켓이 아쉽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여럿이 모이면 더 용감해지고 무식해지는 한국인들, 주변 시선이나 매너는 아예 무시해버리는 습성은 꼭 고쳐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2024 OO생명 FC영업본부 하절기 컨벤션’이라고 적혀 있는 플래카드 사진을 한장 첨부했다. 컨벤션 일정은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로 표기돼있다.

해당 글엔 “진짜 중국인들 떠드는 거 한번 당해보시면 아마도 한국 사람들은 양반이라고 느끼실 것이다. 업무상 중국 출장이 많은 편이라 접하는 횟수도 많은데 지금은 ‘그려러니’ 하고 지나가지만, 상상 초월할 때가 많다”고 거들었다.

이 외에도 “솔직히 괌까지 안 가도 국내 단체로 운영되는 골프장만 가도(많다). 어딜 가나 단체만 모이면 다들 엉망진창이 되는 듯싶다” “96년도에 저 회사 괌에서 똑같은 광경 목격했었는데 아직도 저런다고?”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선 안 새겠느냐?” 등의 비판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 회원은 “오랜만에 부담없이 직원들끼리 공짜로 놀러갔는데 이해된다. 저 정도 노티켓은 눈감아줍시다”라며 “괌이야 공항서부터 엄마, 이모, 고모…그냥 한국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반면 A씨를 비토하는 듯한 뉘앙스의 댓글도 눈에 띈다. 한 보배 회원은 “잠재된 고객. 마음 심보가 갑질 꽤 하던 분 같다. 만약 본인이 가입돼있었으면 민원을 얼마나 넣으려고…”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사실 해외여행서 여행객들이 겪는 한국인들의 고성방가 논란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특히 여름 휴가철인 7~8월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동남아시아 베트남이나 태국 등의 휴양지서 겪었다는 피해담은 십수년 전부터 현재까지 끊이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

앞서 여행 전문 커뮤니티엔 ‘지금 이 시각 아미아나에서 고성방가 한국인’이라는 제목으로 “너무 화가 나서 여기저기 카페에 적고 있다. 이글 보게 된다면 제발 다음 여행 때는 지킬 거 지켜주세요”라고 호소했다. 글 작성자는 “신랑도 깨고, 복도 나가봐서 어느 방인가 찾아봤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며 “발코니 열어보니 소리가 들리는 거 보니 윗층 쪽이나 아래쪽 같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누군가가 노래 불러서 못 자겠는데 제가 다 아는 노래 부르고 있는 걸 보니 한국인인 건 분명하다. 중국인이라고 확신했었는데 지금은 ‘아~~아~~’ 소리도 질러주고 있다고 리셉션에 전화했다”고 털어놨다.

중세의 멋진 건물과 맥주로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유럽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선 늦은 시간 취객들의 고성방가로 인해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잇따르자 ‘야간 펍투어’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이 같은 행태는 지난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이후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일부 여행객들의 늦은 시각까지 음주 후 고성방가 등의 몰지각한 행태로 일부 한국인 관광객들에겐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꼬리표마저 붙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일부긴 하지만 여행지서 단체 여행객들이 큰소리로 떠들거나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며 “호텔 등 숙박 장소뿐만이 아니라 식당, 버스 등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공간에선 타인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해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끔 서비스를 받는 입장이라고 직원에게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말로 ‘야’ ‘어이’ 등의 반말투로 막 대하는 분들을 가끔 보곤 한다”며 “특히 동남아시아 여행객에게 자주 볼 수 있는데, 동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좀 더 기분 좋은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21일,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해당 보험사는 동양생명으로, 해당 날짜에 괌 행사를 가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동양생명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사가 업적 우수자분들을 모시고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괌에서 진행했던 컨벤션 중 있었던 일로 인해, 해당 호텔에 투숙 중인 분들께 불편을 드린 점에 대해 먼저 사과를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관계자는 “당시 비행기 연착과 입국심사 지연 등으로 당사 인원들(160여명)의 호텔 입실이 지적하신 시간 대에 진행됐고, 많은 인원이 도착해 이동하는 과정서 같은 층에 투숙하시는 분들께 불편을 끼치게 됐다”고 해명했다.

이어 “회사 측에서는 사전에 이런 상황을 고려해 호텔 측에 미리 타 투숙객 분들께 불편을 드리지 않는 방향으로 방 배정을 요청드렸지만, 호텔 사정상 전 객실을 요청한 대로 배정하는 것이 어려웠던 같다”며 “해당 일 같은 층에 투숙하신 분들께 불편함을 끼쳐드린 부분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당사는 관련 주의사항을 명확히 주지해 향후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매년 이 같은 우수 사원 포상의 일환으로 단체 해외여행 등의 일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동양생명은 홈페이지를 통해 ‘수호천사 동양생명’이라는 슬로건으로 영업활동을 영위하고 있는데 이번 논란과는 거리가 너무 먼 타이틀이 아니냐는 냉소도 나온다. 실제로 동양생명 이문구 대표이사는 홈페이지 인사말을 통해 “여러분들의 신뢰를 받는 ‘건강과 행복을 지키는 수호천사’가 될 수 있도록 변함 없는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며 “고객님의 수호천사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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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