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돼야…” 택시요금 폭탄 맞은 여성 승객의 호소

남양주시청 “비상식적이긴 하지만…”
기사 “손님 동의로 길 변경했다” 주장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이런 사건들은 언론를 통해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2·3의 피해자가 계속 발생할 테니까요…”

지난 5일, <일요시사>는 지난달 14일에 택시요금을 과다하게 청구받았다는 40대 여성 A씨의 제보를 한 통 받았다. 당시 기자는 온라인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A씨가 게시한 글을 토대로 피해 내용을 보도했다. 취재를 위해 연락했으나 끝내 닿지 않았던 그가 최근 우연치 않게 ‘“덕소→부천 과다요금 아닌가요?” 택시 승객의 하소연’ 기사를 접한 뒤 보낸 것이다.

A씨는 “보배드림에 사연을 올리고 120에 신고했는데 이튿날, 남양주시청으로부터 당시 이동 기록을 달라고 해서 제출했다”며 “3~4주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오늘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운행했던 택시기사는 시청 조사에서 ‘손님이 동의해서 길을 변경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가 작성한 진술서엔 ‘A씨가 외곽으로 가 달라고 했다’고 쓰여 있었다.

A씨는 “녹취도 없는데, 남양주시청 관계자분이 택시 블랙박스도 하루면 지워진다는 말을 들었다”며 “택시기사를 통해 한번 더 확인해보겠다고 하긴 했는데, 이대로 묻히는 게 너무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외곽(순환도로)을 타고 갔을 때 제게 좋은 점이 어떤 게 있느냐”는 A씨 물음에 이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새벽이라 차가 막히는 시간도 아니라…이해되지 않는 경로지만 심증만으론 조사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이날 A씨는 <일요시사>에 “환불을 받지 못하더라도 택시기사에 대한 벌금이나 운행 정지 등의 불이익이 가게 했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사건은 지난달 1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A씨는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인근서 카카오 플랫폼으로 택시를 호출했다.

화요일 자정이 막 넘은 오전 12시2분 탑승한 그는 택시기사로부터 ‘가는 길을 직접 선택한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또 ‘왜 길이 강변북로로 나오지? 이 길로 가면 꼬불꼬불해서 위험한데 안전한 길로 갈까요?’라고 묻기도 했다.

당시 A씨가 “오늘 차를 가져오지 않아서 택시를 탄 것이고 평소엔 직진해서 70km 구간단속카메라가 있는 도로로 다녔다”고 답하자 택시기사는 ‘지금 변경하려는 길이 그 (구간단속 있는)길이 맞다’고 대꾸했다.

얼마 후 택시기사로부터 ‘안전한 길로 가면 거리가 2km 정도 늘어난다’는 설명을 들은 A씨가 “시간은 단축되느냐”고 묻자 아무런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이때 찍혔던 도착 예정시각은 12시55분이었다.

A씨는 경로 변경 후 톨게이트(TG)를 통과한 후 도착 예정시각이 오전 1시18분으로 13분이 늘어나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미 TG 요금도 지불했고 많이 나와 봐야 7만원이겠지’ 하는 생각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택시기사의 ‘이제 내비게이션 찍었으니 자도 되지 않겠냐’는 물음엔 대꾸를 피했다.


그런데 얼마 후 TG 요금 1100원이, 이후 도착 전까지 두 번이나 더 결제됐다. A씨는 부천 중동을 지나면서 “과거에도 여러 번 동일 시간대에 택시를 이용해 봤을 뿐만 아니라 TG 요금을 낸 적도 없었는데 네 번이나 결제되는 건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택시기사는 ‘고객님이 이 길로 다녔다고 하지 않으셨느냐? 저는 잘못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고객님이 도로명을 몰라서 잘못 길을 든 것이고 저는 잘못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미 도착지에 당도해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A씨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한 택시기사는 ‘길을 좀 돌아와서 요금이 많이 나왔다’며 A씨에게 9만1400원이 찍힌 종이 영수증을 건넸다. 택시 승차 직전에 앱에 찍혔던 예상 택시비는 6만200원이었으나 무려 51%가 초과됐다.

택시 미터기엔 8만6500원이 찍혀 있었고, 총 4회의 TG 요금 4900원이 합산된 금액이었다.

평소 동일 시간대에 이용했던 것보다 시간도, 택시요금도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건 다름 아닌 바뀐 운행 경로 때문이었다. A씨가 해당 플랫폼 고객센터에 확인한 결과, 당시 호출 경로는 올림픽대로를 타는 길이었던 반면, 택시기사가 운행했던 길은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였다.

실제로 추천 경로로 제시되는 강변북로~올림픽대로~신월여의지하도로 경로는 이동거리가 51km며 신월여의지하도로TG 이용 시 요금은 5만1980원가량 나오는 데 반해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이용 시 거리(70.5km)도, 요금도 TG 비용까지 합산되면서 동반 상승한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택시 주행 경로는 구리남양주TG(800원), 불암산TG(1400원), 양주TG(1800원), 김포TG(900원)일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경로의 TG 합산 요금이 정확히 4900원인 데다 이동 거리도 70여km로 확인됐다.

A씨 의지와는 달리 택시기사는 납득하기 힘들 만큼 먼 길로 우회한 셈이다. 산술적으로 50km에서 70km의 이동 거리 차이는 그렇게 크게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도상 시각적으로 나타나는 이동 경로를 확인해본 결과 그 차이는 극명했다.

기자는 A씨로부터 받은 비슷한 시간대의 과거 택시 이용 영수증을 확인했다. 또 공정한 취재를 위해 비슷한 시간대인 자정을 막 지난 시각에 네이버 길찾기 및 카카오 플랫폼 앱을 이용해 해당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력해 추천 경로와 이동 시간, 예상 요금까지 확인했다.

확인 결과는 A씨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앱을 통해 추천된 경로는 북부간선도로~내부순환로~국회대로로 제시됐으며, TG를 통과하지 않을 경우 6만3100원의 예상 비용이 발생했다. 소요 시간은 1시간1분으로 측정됐다. 

A씨가 택시를 이용했던 당시의 날씨나 도로 상황도 운행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하지만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13일부터 14일까지 서울 및 남양주 지역엔 구름이 많았을 뿐, 적설량은 ‘0~1’mm였고 최저기온도 영하 0.8도에 불과했다.


다만 같은 날에 블랙아이스가 원인으로 밝혀진 자유로 연쇄추돌 사고가 발생하긴 했다. 그러나 A씨의 택시 운행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5시간 후인 오전 5시15분께였다. 결국 가깝게 갈 수 있는 경로를 놔두고 비용이 더 발생하는 구간으로 우회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게다가 강변북로가 택시기사들이 위험을 느낄 만큼 꼬불꼬불한지도 의문이다. 한강 이남(올림픽도로)과 이북(강변북로)을 가로지르는 두 도로를 두고, ‘꼬불꼬불해서 위험하다’는 말은 ‘이 도로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택시기사의 ‘손님이 길 변경에 동의해서 난 잘못이 없다’는 주장 역시 신빙성이 낮아 보인다. A씨가 동의했던 것은 ‘원래 70km 구간단속카메라가 있는 길로 다녔던 길’이었고, 택시기사도 ‘변경한 경로가 그길인데 2km 정도 거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대화가 오갔다.

하지만 이날 실제 이용 경로는 70km 구간단속카메라가 있는 올림픽대로도 아니었고, 늘어난 거리 역시 2km가 아닌 20km에 달했다. 요금 또한 3만원가량이나 더 나왔다. 상식적으로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승객이 TG 요금까지 드는 길로 가자고 했을 리도 만무하다.

물론 A씨와 택시기사와의 대화가 일방적인 주장일 수도 있다. 남양주시청 관계자의 말처럼 대화 내용 녹취 등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라는 의문부호는 거두기 힘든 게 사실이다. 택시기사 입장에선 ‘바퀴가 구르면’ 그만큼 수익이 발생하는 것이고 달리면 달릴수록 수익도 함께 늘어나는 구조기 때문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해당 택시는 남양주 소재의 B 업체인 것으로 확인됐다.


6일, A씨의 택시요금 과다청구 주장에 대해 해당 업체 관계자는 “운행했던 택시기사가 남양주시청에 출석해 진술·소명했으며 결과는 조만간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당시 도로 상황 등을 잘 알지 못해 조심스럽긴 하지만 의도적으로 길을 우회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체 관계자는 “시청서 나온 조사 결과에 따라 회사는 승객분에게 차액 환급이나 행정처분 등의 조치를 내리게 된다”며 “회사 입장서도 과다 요금 청구 같은 불미스런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내 게시판에 공고문을 붙여놓고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택시요금 과다청구 민원을 조사하고 있는 남양주시청 대중교통과 관계자는 전화 통화에서 “조사는 마무리 단계에 있어서 섣불리 결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어렵다”면서도 “결국 우회 부분에 대한 고의성이나 대화 내용 녹취 등의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입증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 제16조(택시운수종사자의 준수사항 등)에 따르면 승객의 동의 없이 임의로 장거리 우회 운행 후 요금을 징수하는 행위 등은 금지하고 있다. 위반 시 과태료 부과, 면허정지 또는 취소까지 가능하다.

택시 관련 민원 중 가장 많은 사례는 우회 운전인 것으로 집계돼있다. 서울시 택시 불편신고 안내 게시판엔 부당요금 징수 안내를 통해 ‘승객이 원하는 길로 가지 않고 원거리(우회)로 돌아갈 때’를 위반 사례 중 하나로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2016년 9월12일 승객(신고인)은 내부순환로 이용을 요청했으나 택시기사는 ‘강변북로를 타야 한다’고 권했다. 승객이 강변북로는 돌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고지하고 거부했지만 기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강변북로를 탔다. 결국 평소 결제했던 2만원~2만1000원보다 8000~9000원이 더 결제됐다.

승객은 “여자기 때문에 더 이상 이의제기를 하지 못하고 미터기 요금 모두 부당하게 결제하고 하차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글엔 전국적으로 택시 승차 피해를 입었다는 승객들 20여명의 사례들이 댓글로 소개돼있다. 그만큼 전국적으로 택시 우회 운행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당시 택시기사와 나눴던 대화 녹취록이나 블랙박스 기록 등의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한 ‘고의성 여부’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번 A씨의 사례처럼 승객의 주장과 택시기사의 진술이 서로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탓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택시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업계에선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익명을 요구한 전 운수업계 관계자는 “시민의 발이라는 택시가 되레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서야 되겠느냐”면서도 “현실적으로 녹취가 쉽지 않는 점, 블랙박스도 하루만 지나면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점 등의 법 테두리에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심증만으로 승객의 과다요금 청구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안도 고민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라며 “택시기사들도 순간의 경제적 이익에 양심을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haewoong@ilyosisa.co.kr>

 



배너

관련기사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죽도 밥도 아닌 트럼프 따라하기

죽도 밥도 아닌 트럼프 따라하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을 밑바탕 삼아 용꿈을 현실화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장 대표에게 영감을 준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화당 장악·대권 도전 과정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30년 넘게 이어진 미국의 문제점과 유권자의 불만을 꿰뚫었다. 장 대표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빙글빙글 정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난 6일 광주를 방문해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려고 했다. 그러자 광주전남촛불행동 등 광주 시민단체 회원들과 일부 시민들은 장 대표 일행의 참배를 막았다. 결국 장 대표 일행은 추념탑 앞에서 5초 동안 묵념한 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같은 콘셉트 다른 행보 장 대표의 참배 시도엔 ▲국민 통합 ▲호남 구애 및 지역 현안 해결 ▲강경 보수 이미지 희석 등 이유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장 대표의 이후 행보는 참배를 시도했던 이유에 대한 의문을 자아낼 가능성이 있다. 광주북부경찰서는 장 대표 등의 참배를 막은 시민들에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재물손괴 등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의힘 광주시당은 지난 18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일 집회는 신고되지 않은 불법 시위였고, 각종 욕설과 모욕으로 일관된 폭언·폭력이 난무한 아수라장이었다”며 “시민을 가장한 과격 단체와 특정 인사들이 국민의힘 당 대표의 참배를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난 12일 내란 특검에 체포됐다가 이틀 후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돼 석방된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두둔했다. 황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라. 대통령 조치를 정면으로 방해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체포하라”는 내용의 비상계엄 동조 게시글을 올리는 등 행동으로 말미암은 내란 선전·선동 혐의를 받고 있다. 장 대표는 국회에서 대장동 항소 포기 규탄대회를 진행하던 중 황 전 총리 체포에 대해 “전쟁이다. 우리가 황교안이다. 뭉쳐 싸우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황 전 총리가 활발하게 부정선거론을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비판이 이어지자, 장 대표는 지난 13일 의원총회에서 부정선거론에 선을 그으면서 “전략적으로 한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장 대표·황 전 총리의 행적을 되새겨보면,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구호는 미국 정치 드라마 <웨스트윙>에서 크게 화제가 됐던 대사 “나는 민주당원이다”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웨스트윙>에선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매튜 산토스가 상대 후보 에릭 베이커의 약점을 감싸는 연설을 한다. 에릭 베이커는 부인의 만성 우울증을 숨겼다. 이 때문에 논란이 발생하자, 매튜 산토스는 “어차피 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는데, 아닌 척 위선을 할 뿐”이라며 “지도자에게 완벽하다는 환상을 요구하면, 이는 단지 거짓을 종용하는 것”이라고 연설했다. 이어 “완벽한 후보·특혜를 줄 후보가 아니라 이상·희망·꿈을 공유하는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면 우린 자랑스럽게 ‘나는 민주당원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광주 방문 시도 이어“우리가 황교안이다” 트럼프 당선엔 30년 밑밥…어설픈 표절? “나는 민주당원이다”는 상대의 약점을 감싸면서 정치의 본질을 호소하는 이상적인 정치인의 상징으로 통한다. 하지만 황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의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를 두둔하면서 폭력적인 정적 숙청을 요구했다. “우리가 황교안이다”는 “나는 민주당원이다”와 극단적으로 대비될 수밖에 없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9월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장동혁 대표에 대해선 충청도에서 몇 안 되는 용꿈을 꾸는 분이란 평이 있었다”며 “그 용꿈을 망상에 가깝다고 보기엔 유연하게 정치를 한 분”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대표 취임 후 김도읍 정책위의장 임명 등 중도 보수 성향 유권자를 의식한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그에게서 ▲장외 집회 집착 ▲황 전 총리 두둔 ▲한 전 대표 퇴출 시도 등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좋아할 만한 행보가 더욱 두드러졌다. 이 때문에 그는 빙글빙글 회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광주 5·18 민주묘지 참배와 황 전 총리 두둔이란 극단적인 행보를 불과 며칠 사이에 보인 것도 장 대표 특유의 빙글빙글 정치를 상징한다. 강경 보수에 더욱 치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 대표의 행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과정과 비교할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과정엔 미국 민주당에 모여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리버럴 엘리트들에 대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반발이 큰 역할을 했다. 국민의힘 박민영 대변인은 지난 12일 유튜버 감동란의 개인 방송에 출연해 같은 당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알려진 김 의원은 윤 전 대통령 탄핵 표결 당시 찬성표를 던졌고, 특검법 3개에도 모두 찬성했다. 박 대변인은 “김 의원은 눈 불편한 것 빼고는 기득권인데, 장애인이라서 배려받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장애인에게 너무 많은 할당을 하는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 전 대표가 김 의원을 일종의 에스코트용 액세서리 취급을 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지난 17일 박 대변인을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박 대변인에게 엄중하게 경고할 뿐, 징계는 하지 않았다. 박 대변인의 발언과 장 대표의 미지근한 대응은 김 의원에게 강한 반감을 갖는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를 의식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시각장애인이자 여성이란 김 의원의 정체성과 그에 대한 박 대변인의 공격은 미국에서 만성 구조화된 정치적 올바름 논쟁의 흐름과 정확히 일치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쟁취는, 진보 진영이 신자유주의·정치적 올바름을 추진하면서 민주당이 월스트리트와 강하게 연계하자 국민이 여기에 반감을 갖게 된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딕 체니 전 부통령·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부 장관으로 상징되는 네오콘에 대한 반감도 큰 역할을 했다. 드라마 대사 표절?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강하게 추진된 신자유주의로 인해 산업 패러다임은 제조업에서 금융업으로 바뀌었다. 월스트리트의 힘이 더욱 막강해졌고, 미국 내 제조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로 이전하는 흐름이 가속화됐다. 지난 2008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 내 중산층 몰락에 쐐기를 박았다.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막대한 세금을 대외 전쟁에 쏟아부었던 네오콘도 유권자의 큰 반감을 사서 몰락했다. 고립주의를 선호하는 미국 보수의 전통적인 흐름과 달리, 네오콘은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어 미국의 가치를 퍼트리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그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는다”는 것 때문에 네오콘은 오래 지나지 않아 몰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엔 미국 특유의 고보수주의가 함축됐다. 미국의 역사는 이주·개척의 역사다. 지금과 같은 세계 경찰의 위상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확보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엔 지역 강국 정도의 위상을 가졌고, 현재의 미국 영토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주로 얻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서부 개척 시대를 다룬 영화가 흔하게 제작된다. 미국인이 광적으로 열광하는 시리즈 <스타트렉>과 <스타워즈>도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은유해 제작됐다. 건국 신화가 따로 없는 미국에선 이 양대 시리즈가 신화로 통한다. 미국 고보수주의의 핵심은 다른 나라의 전쟁·정치 개입에 반대하는 외교 정책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인위적으로 고립시켜 대륙 내 미국의 기득권을 지키자는 것이다. 미국의 국력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19세기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미국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 전 대통령은 1823년 “유럽은 아메리카에 새 식민지를 만들지 말고, 미국은 유럽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먼로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어 ‘명백한 운명’이란 구호하에 서부 개척에 몰두했다. 트럼프 대통령·JD 밴스 부통령은 지난 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왜 감사하단 말을 하지 않느냐”고 몰아붙였다. 미국이 지난 2022년 2월 이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지원 규모는 약 820억달러(약 113조4880억원)이고, 전비는 670억달러(약 98조4591억원) 규모로 확인된다. 미국 상원은 지난해 4월 608억달러(약 89조3480억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첨단 무기 등 대규모 군사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지지자들을 달랠 거대한 쇼가 필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상징 중 하나는 제1기 행정부 당시 멕시코 국경에 설치한 거대한 장벽이다. 미국 내 블루칼라들이 갖는 불만 중 하나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미국·멕시코 접경지역에선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를 실질적 효과와 정치적 이벤트를 모두 거둘 수 있는 일거양득 상황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로망의 정치화 트럼프 대통령의 고보수주의 성향은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우리에게 방위비 분담금 100억달러(약 14조6942억원)를 요구했다. 내년에 우리가 부담해야 할 방위비 분담금은 1조5192억원이다. 지난 14일 공개된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엔 주한미군에 대한 330억달러(약 48조4948억원) 규모의 종합적 지원 내용이 담겨있다. 또 우리는 오는 2030년까지 미국산 군사 장비 구매에 250억달러(약 36조7385억원)를 지출해야 한다. 일본도 지난 5월부터 미국으로부터 주일미군 분담금 인상 압박에 시달려 매년 증액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부터 캐나다·그린란드·파나마 등 아메리카 대륙과 그 인근 지역으로 사실상 영토를 확장하려 하고 있다. 미국인에겐 영국·멕시코 등과 전쟁하면서 중·남부로 영토를 확장했던 19세기의 재림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고보수주의 성향은 각국에 안기는 관세 폭탄에서도 잘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그린란드 주민이 투표를 통해 미국 편입·독립을 결정한 상황에서 덴마크가 이를 방해하면 덴마크에 고액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세를 군사·외교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단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에 대해 “포퓰리즘”이란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는 관세 폭탄에서 잘 드러난다. 공화당은 지난 6일 진행된 뉴욕시장·버지니아 주지사·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 참패했다. 선거의 핵심 쟁점은 생활비 부담이었다. 뉴욕시에선 주거비가 급등했고, 뉴저지주에선 전기요금이 연 20% 상승했다. 특히 버지니아주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방정부 인력 감축 방침과 셧다운 여파로 공무원들이 급여를 받지 못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커피·바나나·쇠고기·견과류 등 생활필수품에 대한 상호 관세를 면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방침 이후 생활필수품 물가가 급상승한 여파로 선거에서 패배하자 뒤늦게 상호 관세를 면제한 것이다. 특히 쇠고기는 미국 축산농가의 반발을 무시하면서 관세를 면제했다. 장 대표는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겉’만 빌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990년대 이후 미국 정치권이 주도한 변화의 여파로 서민의 삶이 악화한 흐름을 날카롭게 찌르면서, 이들의 바람을 선동적 언어로 표현해 대권을 거머쥔 것이다. 불만 조직화한 트럼프 지지율↓ 원인 장동혁 30년 넘게 진행된 신자유주의·개입주의에 대한 반감 때문에 강경 보수가 대규모 조직화한 영향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도전에 날개를 달아줬다. 하지만 국내에선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전한길씨 등이 주도하는 강경 보수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매우 크다. 이들의 언행은 강경 보수의 틀을 벗어나면, 조롱 대상이 될 뿐이다. 아울러 미국에선 민주당이 신자유주의 질서를 주도했다. 이 때문에 공화당은 미국 특유의 고보수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시장경제·기업 경영의 자유 등 신자유주의 질서를 지지하는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부터 신자유주의 성향의 경제 정책을 유지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양당의 의견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양당은 특히 젊은 남성들이 민감하게 여기면서 비판하는 각종 검열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셧다운제 도입 ▲확률형 아이템 규제 ▲게임물관리위원회 검열 논란 등 검열 논란은 정당을 불문하고 꾸준히 일어났다. 미국에선 민주당과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정치적 올바름 논쟁이 영화계로 이어져 <백설공주>와 <인어공주> 등 영화에 유색인종 주인공이 발탁돼 큰 논란으로 확산했다. 이런 논란을 주도하면서 서민을 훈계한 대표 세력은 월스트리트·각계 엘리트·언론이었다. 이 논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도전 과정에 큰 영향을 줬다. 국민의힘은 각종 검열 논란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과 별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처럼 젊은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유인하기가 쉽지 않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세력 중엔 불법 이민을 통해 미국에 입국한 멕시코인을 경계하는 기존 유색인종 유권자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흑인 중 8% ▲히스패닉 중 28% ▲아시아계 중 27% 등 득표율을 보였다. 지난해 대선에선 ▲흑인 중 13% ▲히스패닉 중 46% ▲아시아계 중 40%가 그에게 투표했다. 반면 장 대표는 지난 6일, 광주에서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지 못했고 국민의힘은 장 대표를 비난하는 시위를 한 시민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을 완전히 장악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장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더 찐윤(진짜 친윤)’에 의해 옹립된 재선 의원에 불과하다. 국민의힘은 장 대표 취임 이후에도 지지율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이는 전주보다 2% 낮아진 수치며, 지지율 42%를 기록한 민주당보다 18% 낮다. 심지어 전통적인 표밭 대구·경북에서도 지지율 42%를 얻는 데 그쳤다. 표밭도 위험하다 어설픈 표절은 죽도 밥도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여년 동안 누적된 미국의 문제점과 유권자의 불만을 꿰뚫은 후 유권자들이 향수를 느끼는 옛 로망을 자극해 대권을 거머쥐었다.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을 투표로 연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진정한 ‘트럼프 벤치마킹’은 아닐까? 장 대표는 꾸준히 정체되고 있는 국민의힘의 지지율에서 뭘 보고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