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소방 감리도 속이는 유량측정기 실체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8.06 09:54:11
  • 호수 15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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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클러 오작동···눈치만 보는 소방청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화재가 발생한 고층 아파트에 수압 부족으로 인해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사례가 있다. 2020년 2월 인천 서구 모 아파트 25층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아파트 소화 설비 안전관리 담당자들이 배관 누수 문제로 펌프 압력을 낮게 설정해 스프링클러와 옥내 소화전이 모두 작동하지 않았다.

그만큼 소화 펌프의 적정 압력과 방수량은 화재 예방에 중요한 수치이자, 준공 허가의 기준이다. 소화 펌프의 압력과 방수량은 ‘유량측정장치(이하, 유량계)’를 통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유량계가 나타내는 ‘LPM(분당 리터)’ 수치를 분석해 화재 예방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대부분 건물에서 사용하는 ‘오리피스형 유량계’를 시공사가 인위적으로 조작해 소방 감리의 눈을 속이고 있다는 점이다.

시공사가
조작 설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입주 예정인 경기도 수원에 신축 아파트 A 시공사가 준공 허가를 받기 위해 지하 방재실에 설치된 오리피스 유량계를 조작했다.

도급 순위 10위권에 드는 A사는 유량계가 나타내는 소화 펌프의 정격 유량이 부족하게 나오자, 제조사를 불러 유량 설정값을 조작하고 준공검사에 합격할 수 있도록 했다. 조작은 드릴만 있으면 충분했다. 유량계 상부에 구멍을 뚫어 물의 유입량을 조절하면 LPM 숫자가 적힌 실린더에 부표가 올라가는 방식이다.

앞서 소방청은 정확한 측정이 가능한 디지털 방식의 유량계를 개발할 수 있도록 연구비 수천만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기존 오리피스 유량계의 오차를 인정한 셈이다. 소방청의 지원을 통해 사물 인터넷 기술까지 접목한 디지털 방식 유량계가 지난 2019년 개발됐다.


다만, 소방청이 2023년 3월28일 발표한 ‘성능 인증의 대상이 되는 소방용품의 품목에 관한 고시’에서 유량계는 화재안전기술인증(NFTC)의 강제 적용 대상이 아니다. 다시 말해 화재안전기술인증 강제 대상이 아닌 유량계는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의 인증을 받지 않아도 유통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연구비를 지원받아 개발된 디지털 유량계는 의무가 아닌 선택 품목으로 전락했다.

화재안전기준 강제 적용 ‘사각지대’
드릴 조작 준공 받은 건물 200채 넘어

<일요시사>와 만난 소방청 측은 ‘오리피스 유량계 조작을 통해 준공 허가를 받고 있는 실태를 알고 있는지’ 묻자 “실제로 처음 봤고, 조작한 당사자를 색출해 엄벌하면 예방할 수 있다”며 “소문은 들었지만, 요즘은 압력 수치 조작이 어려운 디지털 유량계도 있다”고 답했다.

이어 ‘유량계가 NFTC 강제 적용 대상이 아닌 이유를 설명해달라’는 질문에는 “NFTC 인증 대상에 유량계가 포함되면 기존 오리피스 유량계는 쓸 수 없다는 것인데, 사실 어떤 제품이 나와도 언젠가는 조작이 가능한 것 아닌가”라며 “새로 개발된 디지털 유량계는 10만원대로 비싸기에 무조건 쓰도록 규제하면 우리가 욕을 먹는다”고 말했다.

소방청이 시공사의 건설비를 걱정하면서도 화재 예방은 뒷전인 꼴이다.

그는 “통상적으로 펌프 수압이 스프링클러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성능 인증 받은 유량계를 의무화한다고 조작을 예방할 수는 없다”고 일축했다. 소방청의 입장대로라면 값싸고 조작이 얼마든 가능한 유량계를 못 쓰게 한다면 업계에서 반발이 심하기에 규제를 도입하기가 눈치 보인다는 뜻이다.


시공사로부터 조작을 의뢰받은 유량계 제조사 측은 “건축주에게 소화 펌프를 교체하라고 해도 비싸고 번거롭다고 유량계만 조작해달라고 요청한다”며 “그동안 우리가 유량계를 조작해 준공을 완료한 건물이 200곳은 넘는다”고 말했다. 사실상 오리피스 유량계가 설치된 모든 건물은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압력만
높이면?

‘소방청에서 조작이 불가능한 유량계를 개발할 수 있도록 철저한 인증 기준을 만들 수는 없는지’ 묻자 “마음만 먹으면 조작은 얼마든지 가능한데, 인위적으로 조작한 것을 우리가 규제한다고 예방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건물의 배관공사 초기부터 안정적인 유량을 측정하기 위해 ‘성능시험 배관’을 설치하고, 여기에 펌프가 올바르게 작동하는지 확인을 위해 유량계가 설치된다. 이를 통해 소화전의 성능 곡선과 방사압, 토출량 등의 적정 유무를 확인할 수 있다.

소방청 측은 “압력이 강한 소화 펌프를 설치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이는 스프링클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는 반증이다. 소화 펌프의 압력이 약하면 고층까지 물이 전달되지 못하고, 반대로 필요 이상으로 강하면 물의 곡선이 우산처럼 펼쳐져 화재를 예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리피스 유량계는 소화 펌프에 따라 LPM 눈금 위치도 다르다. 문제는 배관 크기에 따라 사전에 소화 펌프와 유량계를 시험 및 설치하지 않고, 배관에 맞지 않는 소화 펌프, 유량계를 설치하고 시험을 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지름 32A의 작은 배관에 65A의 성능시험 배관과 65A 유량계를 설치해 성능시험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32A 배관의 LPM도 얼마든 측정할 수 있다는 착각 때문이다. 이는 유량계의 원리를 무시하는 방식이다.

큰 시험 배관에 설치된 소화 펌프 성능이 그보다 작은 배관에서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시험 배관과 실제 배관을 동일하게 선정한 후 그에 맞는 유량계를 설치해야 정확한 측정이 가능하다.

청 “조작한 당사자 잡으면 끝날 일”
3000만원 들여 개발했는데 “비싸서”

유량은 배관의 면적과 물의 유속을 곱해 나온다. 유량계는 이를 바탕으로 오리피스를 사용해 물의 차압을 이용해 제작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실제 배관의 크기에 맞지 않는 부적합한 실험은 필연적으로 오차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 소화 펌프의 LPM이 높게 나와도 배관의 길이나 굵기에 따라 스프링클러와 소화전에 전달되는 LPM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량계 측정이 정확하지 않다면 어느 곳에서도 소화전과 스프링클러 오작동의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 LPM이 낮으면 고층에 설치된 스프링클러에 물이 전달되지 않아 화재 예방이 어렵다. 따라서 스프링클러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선 펌프에서 발생한 물이 배관으로 전달되는 유량계의 측정 결과를 계산해서 배관 설계를 하는 것이 맞다.

결국 소방 당국은 유량계의 정확성보다 무조건 성능 좋은 소화 펌프만 설치하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소방청은 유량계 불량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지난해 9월 KFI에서 유량계에 대한 성능 인증 기준이 발표됐다. 소방청으로부터 유량계의 기술 기준과 시험 세칙을 만들라는 지시에 따라 KFI가 3년 동안 유량계의 성능 인증 기준을 만들었다.

하지만 유량계는 소방청의 규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공사업체들은 인증받지 않은 제품을 저가로 구매해 사용하는 실정이다. 현재 대부분의 유량계가 부정확하게 측정되는 이유다. 현장에서 유량계를 무작위로 수거해 교정검사 기관에 의뢰하면 밝혀질 일이지만 무시하는 형국이다.

기술 기준과 시험 세칙을 만들라고 지시한 배경에 대해 소방청 측은 “유량계의 정확성을 위해 이제부터라도 기준을 만들고 바꿔가자는 의미”라며 “인증을 받은 제조사는 광고 효과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혈세 낭비
오차 난무

최근에도 준공 전 유량계를 조작해준 아파트 시공사 측에서 유량계 제조사에게 추가적인 A/S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처럼 유량계를 조작할 것이 아니라 펌프의 성능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부적합할 경우, 펌프를 교체해야 하지만 시공사에서는 비용의 부담으로 유량계를 조작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오리피스 유량계를 제조하는 한 업체는 불량 신고가 발생할 것을 대비해 상표를 바꿔가며 납품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고품질보단 저가, 저품질이 우선시 되는 소방업계 상황을 견디지 못한 유량계 납품 업체들이 도산하는 일도 발생했다.


더욱이 지난해에는 배관에 정체 모를 이물질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방수 압력을 조작하는 불법 시공 등이 적발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방수 압력이 0.1MPa 이상이 되면 방수량이 50ℓ/min 이상이 유지된다는 통상적인 데이터를 토대로 검사 시 방수 압력만 체크한다는 점을 시공업체들이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스프링클러의 성능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제품은 얼마든지 있다. 실제로 국내에선 배관 외부에서 초음파를 방사해 물의 속도에 따라 변화를 받는 투과파나 반사파를 읽고 유량을 측정하는 ‘초음파 유량계’가 개발되기도 했다.

소방청의 연구비 지원으로 개발된 디지털 유량계는 몸체 내 구멍으로 소방용수를 순환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유량을 터빈 방식의 디지털 센서로 측정한다. 이를 통해 단순한 눈금으로 확인하는 기존 차압 면적식 유량계보다 월등히 높은 정밀성을 제공한다.

개발 과정에서 전자기식 유량계와의 비교 분석 테스트를 거치면서 정밀도도 최대로 끌어올렸다. 그 결과 측정오차 ±2% 이내의 안정성을 확보했다. 이는 미국 FM(FM1046)에서 요구하는 규정 수준을 만족하는 범위다.

정밀도의 객관성 확보를 위해 공인 교정기관으로부터 교정성적서를 받기도 했다. 현재 시장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제품은 측정오차가 25%에 달할 정도로 정밀성이 낮은 실정이다. 오리피스 조립 시 작업 여건에 따라 균일한 성능이 나오기 어렵고 게이지 문제나 차압 검출부·도입관·출구 노즐의 마모 등 다양한 이유가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게 개발사의 설명이다.

개발하면
뭐하나

한편, 191명이 사망하고 68명이 부상당했던 1971년 대연각 호텔 화재 사고의 원인도 스프링클러와 물 공급의 부재 및 소화전의 작동 불능이 원인이었다.

현재도 소방 안전에 관련된 기술과 제품은 50년 전에 머물러 있다. 최근에는 소방호스의 꼬임 방지에 대한 개선이 논의됐다. 기존 소방호스는 마찰 손실이 클 뿐더러 유량의 적정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화재 예방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화재 조기 진압을 위해 화재안전기술인증을 강제화해 소방시설의 안정성을 높여야 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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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