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처음으로 와본 서울서 떠돌이 생활을 했었어요. 벽돌로 된 여관 비슷한 곳에서 멀지 않았던 것 같은데 서울역 근처인 것만 떠오릅니다. 걷고 걸었던 만큼 근처가 아닌 곳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노숙자에게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작품을 건넨 분은 전국에 한 분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글을 썼습니다.”
지난 13일, 온라인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21년 전 노숙자 시절, 은혜를 베풀어줬던 은인을 찾고 있다‘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5년 전, 보배에 가입해 활동 중인 회원 A씨는 이날 “20여년 전 노숙하던 시절, 한 서점서 사흘 동안 책을 읽었다. 달리 갈 곳도 없었고 역보다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서점이 유일한 여가 장소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방문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한 서점 직원으로부터 ‘다른 손님들로부터 냄새 난다’는 항의를 며칠째 받고 있다. 나가 달라‘며 문전박대를 당했다.
순간 얼굴이 붉어지며 황급히 서점을 빠져나오려는 순간이었다. 등 뒤에서 누군가 “저기요”하는 여성 목소리가 A씨의 발길을 잡았다. A씨를 부른 주인공은 서점의 다른 직원이었는데 그의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직원은 “이 책만 읽으시더라고요. 다 못 읽으셨죠? 제가 선물로 드릴게요”라며 책을 건넸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책은 다름 아닌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이었다.
당시 멍한 표정으로 여성 직원을 바라봤다는 A씨는 이내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노숙자가 되기 이전부터 가난으로 찌들었던 어린 시절을 보냈던 탓에 선물이라는 것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탓이다. 생일날에도 선물 한번 받아본 적이 없었고, 유년 시절 친구들의 생일빵(생일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친구들이 가하는 폭행) 때문에 한겨울에도 유일한 점퍼 한 벌이 찢겨져 솜뭉치가 다 빠져버린 채로 입고 다녀야만 했다.
낯선 사람으로부터 처음 선물을 받아들었다는 그는 “나중에 제 작품을 직접 선물로 드리겠다”는 말로 고마움을 대신한 채 황망히 서점을 빠져 나왔다.
A씨는 “(여성 직원이)내 약속을 믿고 있었는지, 노숙자의 허언으로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그녀에게 받은 친절을 매번 되새기며 버텨왔고, 어느 새 기성 작가로 살아가고 있음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라며 “이젠 약속을 지키고 싶다. 만나고 싶다. 그녀를 닮아있는 내 작품들을 선물로 드리고 싶다”고 청했다.
이어 “당신으로 하여금 괜찮은 작가가 됐다. 여전히 흔들리거나 힘겨움이 찾아올 때면 그때를 떠올린다. 과연 당신께 선물로 드릴 수 있는 작품을 집필하고 있는지 언제나 생각하고 다짐한다”며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다. 감사한 마음보단 절 증명하고 싶었고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아울러 “20년이 훌쩍 넘은 시간의 고마운 마음을 고백하고 싶다. 당신의 친절로 하여금 사람들은 절 노숙자가 아닌 약자를 대변하는 작가라고 부르고 있다”며 “전 소재원이다. 당신의 이름도 무척이나 궁금하다. 제게 처음으로 친절이라는 감정을 알게 해준 당신이 무척 보고 싶다”고 마무리했다.
실제로 소재원 작가는 영화 <미스티보이즈> <소원> <터널> <균>, 드라마 <이별이 떠났다>의 원작 소설을 집필하는 등 소설가, 드라마 작가로 인기 반열에 올라 있다.
인스타그램 ID가 ‘sojj1210’이라는 점, 실제 그의 생일이 12월10일로 추운 겨울인 점을 미뤄볼 때 생일빵으로 인해 솜뭉치가 빠진 점퍼를 입고 다녀야 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21년 전은 2003년으로 당시 소 작가의 나이는 20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졸업 시 17세가 되는데, 건장한 성인 남성의 경우 군복무도 해야 한다. 고교 졸업 후 바로 군대를 갔다 왔어야 노숙자 생활이 가능했을 거라는 얘기다.
“보배드림의 기적이 일어나길…” “두 분 꼭 만나셨으면 좋겠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사연이다” “영화 같은 스토리” 등 응원 댓글이 쇄도하자, “저도 간절하다. 더 시간이 흐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운 이 하나 찾지 못한다면 제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감히 가져본다”며 과거 사연을 올린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한 회원은 “예전에 한화유통서 운영했던 한화문고였을 것”이라며 “지금은 없어졌지만 꼭 찾으시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실화냐?”라는 댓글엔 “실화다. 아득하고 아련하지만, 지독한 과거가 그분으로 인해 애틋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일부 회원들은 바이럴 마케팅이 의심된다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들은 “광고 아닌가요? 본인의 커리어를 위한 마케팅?” “소설가답게 마케팅도 참 창의적이네요” “제발 광고 아니었으면 좋겠다” 등 진정성에 의구심을 표했다.
앞서 소 작가는 지난 2월26일에 ‘13살 때 헤어진 어머니를 찾는다. 꼭 도움 부탁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보배에 올리기도 했으나 삭제된 상태로 검색이 불가하다.
대신 3월3일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2008년 영화 <비스티보이즈> 원작 소설을 출판하고 과분한 사랑을 받은 덕분에 26세때 방송사에서 모친을 찾아준 적이 있지만, 그의 생일에 10만원의 돈을 부쳐주고는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다시 모친을 찾으려는 이유에 대해선 “어머니를 만나고 함께 밥을 먹는 일상이 당연하지만 나에겐 특별함이라는 것이 억울하다”며 “나에게도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마주 보며 함께 밥을 먹는 일상이 당연하게 찾아오길 바란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이날 소 작가는 <일요시사> 취재진의 게시된 사연이 실화인지, 픽션인지를 묻는 질문에 실화라고 답변했다. 또 당시 여성 직원의 연령대 및 인상착의, 기타 특이사항이 있었는지 묻는 취재진에 “크게 기억이 없다”고 했다. 모친과의 상봉을 묻는 질문엔 “작가 데뷔 후 만나고 아내와 아이들의 부탁으로 찾아뵀지만, 이슈가 되자 모친께서 ‘(만남을)원치 않는다’는 소식을 건너건너 부친께 전해들었다”고 답했다.
지난 2019년 7월24일엔 보배 게시판에 ‘일본의 경제 보복에 분노하며 제 작품을 무료로 배포한다’며 직접 집필한 장편소설 <그날>의 무료 배포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계신가? 일본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는지 모두가 알고 계시겠지만 자세히 알고 계신 분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작품을 집필하기 전까진 그저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알고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필하면 할수록 일본의 만행이 끔찍했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사람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자행한 그들의 과오를 마주하며 치떨리는 증오와 두려움에 직면할 때가 수없이 많았다”며 “많은 분들이 과거의 일본과 지금의 일본이 얼마나 우리를 괴롭히며 고통으로 몰아 넣고 있는지 꼭 아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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