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 민폐녀’ 논란 “뭐 어쩌라고…” 반말에 욕설까지

뒷좌석 승객 불편 따위 상관 없다?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지난 15일, 유튜브 및 인스타그램 등 각종 SNS를 통해 ‘고속버스 민폐녀’라는 동영상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해당 영상의 최초 촬영 및 유포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누리꾼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온라인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1567개(17일 오전 8시 기준)의 댓글과 함께 3685명의 추천을 받으며 이번주 최다 댓글 부문에 ‘압도적 1위’에 랭크돼있다.

지난 16일, 자유게시판에 작성된 [영상] 고속버스 민폐녀‘라는 제목의 글에는 한 고속버스 승객이 직접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영상이 등장한다.

영상에 따르면 고속버스 기사로 보이는 한 남성이 20대로 보이는 한 여성 승객 A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씨가 좌석 등받이를 완전히 뒤로 젖힌 상태로 뒤에 앉아 있는 뒷좌석 승객에게 불편을 주자, 버스기사가 양해를 구하는 장면이 담겼다.

실제 뒷좌석의 남성 승객은 한껏 젖혀진 등받이로 인해 무릎 쪽 공간이 협소한 나머지 발을 통로 쪽으로 두고 있는 모습이었다.

옆 좌석의 중년 여성 B씨가 “(등받이를 너무 젖혀서)뒤가 너무 좁잖아”라고 지적하자 A는 “아뇨, 저 못하겠어요. 뒤에 사람 불편하다고 제가 불편할 수는 없죠”라고 대꾸했다.


버스기사가 “뒤에 손님이 불편해하시고, 누워서 가는 리무진 버스가 아니고 일반 버스니까 조금만 양해를 부탁할게요”라고 다시 정중하게 말하자 A씨는 “이만큼 숙이라고(의자를) 만든 건데 뭐가 문제냐니까요?”라고 거절했다.

버스기사는 “다른 사람한테 피해가 가니까 양해를 구하잖아요, 그쵸? 자유라는 게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게 맞잖아요”라고 되묻자 A씨는 “거절하는 것도 제 의사인 거잖아요. 그걸 제가 들어야 되나요?”라고 반문했다. 인근 좌석에선 “그럴 거면 프리미엄(버스) 타세요”라는 지적도 나왔다.

버스기사가 “불편하세요? 불편하신 것 같은데 자리를 옮겨드릴까요?”라고 제안했지만 A씨는 “아니, 뒷사람이 불편한 거죠”라고 응수했다.

옆 좌석에선 “그러니까(뒷 승객이) 불편하지 않아야지”라는 조언이 이어졌다.

버스기사는 “어르신이 뒤에서…앉아보실래요? 뒤에? 불편하시니까 조금만 올려달라고…완전히 펴라는 게 아니잖아요. 조금만 올려주시면 뒤에 분이 가시잖아요. 같이 더불어 사는 세상 아닙니까?”라고 요청했다.

이 말을 들은 A씨는 마지못해 등받이 레버를 조작해 등받이를 원래대로 올리면서도 “뭘 바꿔서 생각해요? 아니, 캐리어 끌고 와서 그것 때문에 올리라고 한 거였잖아요”라고 B씨와 언쟁을 벌였다.

B씨가 “그게 아니야. 난 조금만 올려달라고 했지. 버스가 침대야? 안방이야?”라고 지적하자 A씨는 “아니, 그렇게 불편하면 차를 끌고 가세요”라고 받아쳤다.


언성이 높아진 B씨가 “너나 그래”라고 하자 A씨도 “너나 그렇게 해”라며 반말로 맞받아쳤고 “나 차 없다”고 하자 A씨는 “그럼 불편해도 참고 가야지”라고 몰아붙였다.

B씨가 “아니, 정도껏 해야지, 정도껏”이라며 어이없어하자 A씨는 “이렇게 만들어졌는데 어쩌라고?”라고 지지 않았다.

결국 이를 지켜보고 있던 B씨 남편으로 보이는 뒷좌석 남성이 “어이 젊은이, 조용히 얘기해”라고 지적하자 A씨는 “아휴”하고 한숨을 내쉬자 “잘한 거 없어”라고 말했다.

A씨도 “사모님 단속이나 잘하세요”라며 지지 않았고 B씨도 “너나 잘해, 너나”라고 응수하자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아, 너나 잘해. 나이 먹는다고 다 그러는 줄 알아”라고 소리쳤다.

버스기사가 “어른한테 그러시면 안 되지 않느냐”고 정중히 말하자 “먼저 반말하고 큰소리치잖아요”라고 대꾸했다.

B씨가 “반말하게 만들었잖아”라고 하자 A씨는 “그러니까 나도 반말하잖아”라고 되받아쳤다.

다시 B씨가 “너는 부모도 없니?”라고 되묻자 A씨는 “넌 없어?”라고 따지 듯 소리쳤다.

그동안 가만히 앉아있던 뒷자리 승객은 격분해 자리서 일어나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버스기사가 중재에 나서면서 일단락됐다.

A씨는 “존중받고 싶으면 먼저 그렇게 행동하세요”라고 지적하자 B씨도 “너나 그렇게 해”라고 대답했다.

뒷자리 남성이 등받이를 툭툭 차자 그는 “X발, 진짜”라며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욕설을 들은 B씨는 “내가 살다가 이런 개망나니는 처음 보네. 망나니도 이런 망나니는 처음 봐. 이건 어느 정도지”라고 허탈해했다.

결국 버스기사가 B씨 중년부부를 다른 좌석으로 안내하면서 불편했던 상황은 정리가 됐다.


이번 ‘고속버스 민폐녀’ 논란을 두고 좌석의 설계 문제, 배려 및 도덕의 부재 등 다양한 해석들이 쏟아졌다.

보배 회원들은 “애초에 저렇게까지 눕혀지지 않도록 만들어야 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 저 친구는 야생의 동물 아닌가?” “정말 개망나니다. 내가 뒷자리였다면 가는 동안 계속해서 뒤에서 발로 찼을 것”이라며 “운수회사 블랙리스트로 지정해서 자가용이나 자전거 말고는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게 해야 한다” 등 비판 목소리를 냈다.

또 “어리다고 무시하지도 않지만 요즘 애들은 먼저 반말했으니 반말한다고? 무시한 게 신념이 있으니 이 모양이다” “금쪽이, 많이 컸네. 혼자 버스도 타고…” “버스기사님이 침착하게 대응 잘하셨네. 초등학생에게 똑같이 당해봐야 한다” “‘남친과 싸우고 화나서 그랬어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태반” 등의 다양한 해석과 비판이 공존하기도 했다.

한 회원은 “민폐녀의 기본적인 인성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면서도 “공공 교통, 비행기, 버스, 기차 등 등받이 각도 최대치를 법적으로 설정해야 될 것 같다”고 주문했다. 이어 “남 눈치 안 보고 무조건 뒤로 제끼는 사람들이 많은데 버스는 둘째 치고 비행기 장거리 구간은 앞사람 유무를 떠나 너무 불편하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저런 승객들은 버스기사님이 승차거부하게 만들어야 한다” “저런 경우는 강제로 내리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나?” 등 기사의 강제 하차를 주장했다.

하지만 현행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28조에 따르면, 정당한 이유 없이 여객의 승차를 거부하거나 여객을 중도하차하게 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해당 영상 제보자는 JTBC <사건반장>을 통해 영상 이전의 상황을 공개했다. 제보자에 따르면 A씨가 처음부터 의자를 뒤로 젖혀서 갔는데 뒷좌석 승객이 처음부터 정중하게 요청하지는 않았다. 발로 등받이 부분을 툭툭 차면서 반말로 올려달라고 했고 원위치로 되돌렸다고 한다.

자꾸 신경이 쓰였던 A씨는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말로 하면 되지, 왜 사람을 툭툭 차느냐”며 항의했고 이 과정에서 언쟁이 발생했다.

억하심정이 발동했던 A씨는 다시 좌석 등받이를 완전히 젖혔고 중년부부 사이서 언쟁이 발생하자 버스기사가 나서 중재하는 과정이 촬영됐다는 것이다.

제보자는 “여성이 잘못한 것은 맞지만 앞뒤 상황없이 영상이 일파만파 퍼져서 겁이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앞뒤 사정도 모른 채 A씨의 언행에 대한 십자포화가 이뤄져선 안 되겠지만 그의 막무가내식 대화는 작금의 MZ세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특히 자신의 권리와 편의만 내세우며 남의 불편에는 전혀 공감하려 들지 않고, 그러지도 못하는 현실은 결국 기성세대의 책임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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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