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는’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한계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6.23 11:01:59
  • 호수 15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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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도로 친윤당으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송언석 신임 원내대표는 스스로 친윤(친 윤석열)계임을 부정하고 있지만, 당 밖에선 그의 당선을 계기로 국민의힘의 변화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과연 그는 당의 존립을 위협할 수도 있는 산적한 과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을까?

국민의힘이 지난 16일 3선 송언석 의원을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송 원내대표는 총 투표수 106표 중 과반인 60표를 얻어 30표를 얻은 김성원 의원과 16표를 얻은 이현승 의원을 결선투표를 거치지 않고 물리쳤다.

송 원내대표는 색깔이 옅은 친윤계(친 윤석열)로 평가받고 있고, 김성원 의원은 색깔이 옅은 친한계(친 한동훈)로 평가받았다. 일각에선 이번 원내대표 선거를 놓고 “계파의 대리전”이라고 평가했다. 송 원내대표 선출을 일컬어, 한나라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18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은 변하기 힘들겠다”며 “사라지기 직전의 공룡과 같은 행태”라고 비판했다.

그 밥에
그 나물

송 원내대표는 이 평가를 강하게 부정했다. 그는 선거 직전인 지난 15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친윤도 친한도 아니고, 계파가 없다”며 “제가 ‘친윤’으로 분류되는 걸 보고 의아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송 원내대표 선출로써, 국민의힘은 ‘도로 친윤당’이 됐다”는 평가는 다수를 이루고 있다. 송 원내대표 개인의 성향 파악 이전에, 송 원내대표가 얻은 60표의 성격을 일컬어 “친윤의 지지를 업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 것이다.


일각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한 의원 수와 한덕수 전 총리의 대선 출마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려다가 취소한 의원 수가 60여명”이라고 보고 있다.

또 당의 방향에 대한 송 원내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도 “친윤 색깔이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송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기자들에게 “부친이 돌아가시면 자산뿐만 아니라 부채도 상속받는다”면서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제시한 5대 개혁안을 비판했다. 지난 13일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김 비대위원장의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 방안을 비판했다.

송 원내대표는 방송에서 “탄핵 반대 당론에 따른 국민의힘 의원·당원·지지자들의 6개월 동안의 활동은 어떻게 되는 거냐”며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삼국통일하는 게 낫다고 해서, 그 역사를 지울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송 원내대표는 지역구(경북 김천)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직접 주최했고, 지난 1월6일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를 저지하기 위해 한남동 관저 앞을 지키던 국민의힘 의원 44명 중 1명이었다. 이런 전력은 송 원내대표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친윤’이란 딱지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됐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조기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 현 상황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국민의힘의 잘못을 심판했다”고 평가할 소지가 다분하다. 따라서 송 원내대표의 주장은 “국민의힘이 국민으로부터 심판당했다”는 명제를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또 그는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에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로 바꾸려고 했던 지난달 10일 촌극에 대한 당무감사도 반대했다. 당원투표로 부결된 충격적인 사안에 대한 당무감사를 반대한 것이다. 이 점도 송 원내대표가 ‘친윤’이란 딱지를 쉽게 떼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됐다.

김 비대위원장의 임기는 오는 30일 끝난다. 이후엔 새로운 비대위가 설치되거나 차기 전당대회가 개최될 때까지 송 원내대표가 당 대표 권한대행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송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신속하고 파격적인 혁신을 위해 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를 조속히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친윤?” 부인했지만…
눈에 밟히는 ‘찐윤’ 행적

송 원내대표에 따르면, 혁신위는 김 비대위원장이 제시한 5대 개혁안 등 구조개혁을 논의하면서 당내 의견을 두루 수렴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혁신위가 뭘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혁신위는 의결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 대표 격인 비대위원장의 개혁안조차 무시되는 상황에서 의결기구가 아닌 혁신위의 개혁안이 과연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김 비대위원장도 지난 17일 혁신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면서 “현 비대위는 개혁안에 대한 당원의 전체 뜻을 모아, 다음 지도부가 개혁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혁신위를 구성하더라도 다음 지도부가 구성해야 한다”는 취지를 강조했다.

당권은 오는 30일까지 김 비대위원장이 쥐고 있다. 혁신위는 비대위원장의 동의를 거쳐 구성된다. 김 비대위원장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송 원내대표는 오는 7월 혁신위를 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023년 10월 인요한 의원을 위원장으로 선임하면서 혁신위원회를 설치했다. 인 의원은 당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국민의힘의 큰 변화를 예고했다.

당시 혁신위는 ▲원내 지도부·중진·친윤 인사의 제22대 총선 불출마 및 수도권 출마 요구 ▲국회의원 숫자 10% 감축 요구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전면 포기 요구 ▲국회의원 무노동 무임금 원칙 관철 요구 ▲국회의원 평가 후 하위 20% 공천 배제 요구 등 공천 관련 5대 혁신안을 필두로 다양한 혁신안을 권고 형태로 밝혔다.

이 중 ‘험지 출마’ 요구는 공식 의결안으로 격상됐다.

당시 인 의원은 국민의힘 김기현 당시 대표도 수도권 출마 요구 대상에 넣었다. 하지만 김 의원은 “내 지역구는 울산”이라고 반발했고, 고 장제원 전 의원도 “알량한 정치 인생 연장을 위해 서울로 가진 않겠다”면서 부산 출마 의사를 고수했다.

이미 대실패
혁신위 실험

이후 혁신위는 ▲비례대표 당선 가능권에 청년 50% 할당 의무화 ▲당선 우세 지역을 청년 전략 지역구로 선정 ▲상향식 공천 ▲엄격한 공천 배제 ▲과학기술 전문가 우대 등 혁신안을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 실행된 혁신안은 ▲당내 통합과 화합을 위한 징계 취소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보좌관 신설 권고밖에 없었다.

그나마 징계 취소도 ‘대사면’이란 이름으로 발표했다가, 이준석 전 대표 등 당사자들의 반발로 인해 ‘징계 취소’라는 표현으로 바꿨다. 당시 혁신안은 현재 국민의힘의 주요 문제점으로 거론되는 부분과 많이 맞물린다. 송 원내대표가 혁신위원회를 설치한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혁신안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 의원은 당시엔 파격적인 인사로 평가받았지만, 현재는 친윤계 의원 중 1명으로 평가받는다. 인 의원은 윤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이 진행되던 지난 2월엔 BBS 라디오 <신인규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옛날 영국에선 불공정한 재판을 한 재판장을 사형시켜 그 가죽을 자리에 깔았다”면서 헌법재판관들을 위협해 물의를 일으켰다.

송 원내대표에게 앞으로 주어진 길은 첩첩산중이다. 국민의힘 체질 개선만 해도 힘에 겨울 것으로 보이지만, 당 밖엔 더 어려운 숙제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숙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5일 본회의서 통과시킨 3대 특검법(내란·김건희·채상병)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2일 조은석 전 감사위원을 내란 특검으로 임명했고, 민중기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을 김건희 특검으로 임명했다. 이명현 전 국방부 감찰단 고등검찰부장은 채상병 특검으로 임명했다.

내란 특검과 관련해선 지난해 12월3일 밤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중앙당사로 모이라고 지시한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수사 대상으로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추 전 원내대표는 이미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또 공조수사본부가 지난 1월, 2회에 걸쳐 윤 전 대통령 체포를 시도할 때마다 체포를 저지하기 위해 한남동 관저에 집결했던 국민의힘 의원 44명도 수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송 원내대표는 해당 집회에 모두 참석했다.

이는 당시에도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성립될 수도 있어 비판받았다. 내란 특검의 수사 범위엔 ▲재판 및 수사를 방해하거나 지연 등을 하였다는 범죄 혐의 사건 ▲사건 수사 과정서 인지된 관련 사건 등도 포함된다.


윤석열은
아버지?

내란 특검은 이재명정부 출범 직후 국민의힘 강성 지지층을 벗어난 국민 다수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사건을 수사한다. 따라서 정권과 여론의 지원을 업고 ▲특검보 6명 ▲60명 이내 파견검사 ▲100명 이내 특별수사관 등 대규모 인력을 동원해 최장 120일 동안 수사할 수 있다.

물론 국민의힘이 이를 막을 묘책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당장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의원들이 수사에 불응하거나 장외 규탄 집회를 개최하는 정도의 방법 외엔 생각하기 어렵다.

아울러 김건희 특검법의 수사 범위엔 명태균 게이트가 포함된다. 따라서 김건희 특검법이야말로 국민의힘의 목줄을 쥐고 있다. 명태균씨 변호를 맡은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 2월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명씨의 황금폰을 포렌식하니, 전·현직 국민의힘 의원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140개 넘게 저장돼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수사 대상이 될 국민의힘 의원의 규모는 수백명을 넘을 수도 있다. 명씨는 국민의힘의 공직자 공천 관련 의혹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 전체가 뒤흔들릴 위험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은 전신 새누리당 시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무너질 뻔했던 경험이 있다. 이후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등 간판을 거쳤던 국민의힘은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손길과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을 타고 지난 2022년 대선 승리를 통해 기사회생했다.

만약 추 전 원내대표의 내란 가담 의혹과 당원의 명태균 게이트 대규모 연루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고,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의 위법성까지 확인되면 정당 해산 심판이란 엄청난 허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해 12월 “내란의 주요 역할을 분담하고 책임진 추 전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지도부는 내란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당 해산 사유가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난 4일부터 대통령이다. 정당 해산 심판은 법무부 장관이 청구하지만,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다.

인요한 혁신위 실패… 또 혁신위?
당직자 폭행 등 전력도 발목 잡나

국민의힘은 지난 2월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도 사실상 두둔했다. 권영세 당시 비대위원장은 “폭동 가담자들이 민주노총 조합원이었다면, 경찰이 훈방했을 것”이라거나 “경찰이 시민의 폭동을 유도했다”는 등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시위 참여자들에게 “곧 훈방될 것”이라고 격려하거나 연락했다.

대선후보 교체 시도도 “민주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근거로 연결될 수 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탈락 이후 꾸준히 정당 해산 가능성을 거론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미국 하와이에서 귀국한 지난 17일에도 같은 경고를 이어갔다.

최근 홍 시장과 관련해선 신당 창당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홍 시장이 신당을 창당하면, 국민의힘 해산을 대비한 노아의 방주가 될 가능성이 있다. 홍 시장의 향후 행보와 관련해선 평소 친분이 있는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의 연대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런 뒤숭숭한 분위기 때문인지, 국민의힘에선 상법 등 민주당이 다수의 의석을 앞세워 밀어붙이는 법안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김민석 총리 후보자에게 불거진 쪼개기 후원금 의혹과 각종 채무 논란도 언론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국민의힘에선 주진우 의원 정도만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부여당 견제를 위해 갖추고 있어야 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직 반환 요구도 전혀 먹히지 않는다.

한편 송 원내대표의 국민의힘 혁신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는 이유 중엔 그의 과거 논란도 있다. 송 원내대표는 비대위원장 비서실장이었던 지난 2021년 4월 재보궐선거 당시 “자신이 앉을 의자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장 이식 수술 전력이 있는 당직자를 폭행해 큰 물의를 빚었다.

국민의힘 사무처 직원들은 송 원내대표에게 사과를 요구했고, 그는 당직자 노조 사무실을 방문해 사과문을 제출했다. 현재 친한계 좌장으로 알려진 6선 조경태 의원은 송 원내대표 강제 출당을 요구했다. 이후 송 원내대표는 약 4개월 동안 국민의힘을 탈당했다가 복당했다.

지난 2023년 10월엔 국회에서 열린 2024년도 예산안 토론회에 참석해 “연구개발 예산이 국가 경쟁력이나 성장을 선도하기 위한 기술 등에 정말 이바지했는지 의문이 든다”며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것도 아니고, 유니콘 기업을 많이 만든 것도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송 원내대표의 이 발언은 윤석열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삭감을 정당화하는 의미를 띄고 있었다. 송 원내대표가 박근혜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을 지냈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됐다.

목줄 잡힌
특검법은?

송 원내대표는 정치적으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 적이 없고, 친윤 색채에 가까워 논란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당 안팎에서 송 원내대표의 당선을 우려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외엔 선거에서 이긴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진행될 당 체질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송 원내대표가 힘 있게 당의 체질을 바꾸고 대정부·대여 투쟁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이 의문은 송 원내대표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있다. 5대 개혁안을 반대하면서 윤 전 대통령을 ‘부친’에 비유한 발언은 스스로 힘이 없음을 실토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묘한 발언이었다. 송 원내대표의 가능성을 부정한 사람은 결국 송 원내대표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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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br> 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에서 프리랜서 아나운서 김나정에게 강제로 마약을 투약한 한국인 사업가 권모씨에게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권씨는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일대에 서버를 두고 투자 사기, 마약 유통 등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6년간 수사망을 피하며 도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24일 경기북부경찰청 마약수사계는 아나운서 김나정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증거를 경찰에 제출했지만, 경찰은 해당 증거로는 강제성을 증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외 도주 대담한 행적 김씨는 지난해 11월12일 마닐라에서 자신의 SNS에 “제가 필리핀에서 마약 투약한 것을 자수한다”며 “죽어서 갈 것 같아서 비행기를 못 타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이후 그는 마닐라에서 여객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해 인천국제공항경찰대의 조사를 받았다. 사건은 주소지 등을 고려해 경기북부경찰청으로 넘어왔다. 이후 김씨 측은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던 법무법인 충정은 “김나정은 뷰티 제품 홍보 및 속옷 브랜드 출시를 위해 필리핀을 찾았다가 젊은 사업가 A씨(권씨)를 소개받았다. 젊은 사업가가 김나정의 사업을 적극 도와주겠다고 해 시간을 할애해 방문했을 뿐이다. 항간에 도는 소위 ‘스폰’의 존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가 필리핀에서 만난 1995년 8월5일생의 사업가 권씨는 SNS에 ‘투자 리딩방’을 개설해 범죄수익을 벌어들인 범죄자다. 업계에서 일명 ‘재림’으로 불리는 그가 리딩방 총책으로 활동하며 발생시킨 투자 사기 피해액만 약 3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2019년 8월4일 필리핀으로 간 권씨는 이후 국내로 입국한 적이 없다. 제보자 등에 따르면 권씨는 드라마 의 주인공 차무식의 실존 인물인 이상태씨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보호받아왔다고 한다. 검찰은 21년간 필리핀에서 도주 행각을 이어가던 이씨를 현지 교민 정보망을 활용해 검거했다. 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됐으나, 광주지검 목포지청(곽영환 지청장)은 해외 도주를 이어가던 이씨를 필리핀 현지에서 검거했다고 지난해 8월23일 밝혔다. 사업가로 변신, 김나정 앞에 나타난 권씨 취재 결과 70억대 사기단 우두머리로 확인 이씨는 2014년 공범과 함께 필리핀에서 불법 도박 사무실을 운영하겠다며 투자금 1억1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20년 2월 징역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구속 기소된 공범은 실형을 살았지만, 해외에 있던 이씨는 공소시효 임박에 따라 궐석재판으로 징역형이 확정돼 ‘자유형 미집행자’ 신분이 됐다. 자유형 미집행자는 징역·금고 등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잠적하거나 도주한 사람을 뜻한다. 이씨는 2003년 필리핀으로 출국한 뒤 세부섬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21년간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서 공갈·사기 범행을 11건(피해액 약 8000만원) 저질러 지명수배·지명 통보 조치가 내려진 인물이다. 목포지청은 검거팀을 꾸려 이씨 검거에 나섰는데, 필리핀 현지 교민 사이트에서 이씨 거주지를 특정하는 단서를 확보해 검거에 성공했다. 현지 주민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씨에 대한 제보를 받아 검거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획득했다. 결국 법무부, 필리핀 파견 검찰 수사관, 필리핀 이민청 수배자 검거팀과 국제공조로 세부섬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검찰은 “7000여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본섬인 루손섬이 아닌 곳에서 범인을 검거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현실판 차무식의 비호를 받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온 범죄자가 바로 권씨인 것이다. 권씨의 이름은 다른 사건에서도 언급된다. 2022년 SNS에 ‘투자 리딩방’을 만든 뒤 대체 코인 거래 사이트로 이용자 130명을 유인해 70억원대 투자 사기 행각을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힌 일당도 권씨가 총책이라고 진술했다. 그해 6월30일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전기통신금융사기 등 혐의로 투자 사기 일당 16명을 검거해 총판 관리팀장 20대 A씨 등 8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도주한 조직 총책인 권씨 등 핵심 간부 5명에 대해서는 인터폴 적색수배 조치하고, 국내에 체류 중인 나머지 조직원 1명은 지명수배해 뒤를 쫓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1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SNS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서 전문 투자 상담사를 사칭해 투자자 130명을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게 한 뒤 투자금 약 7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강제 투약 진실은? 총책인 권씨는 필리핀에 본사를 두고, 본사 운영팀과 총판 관리팀, 회원 모집책 등 역할을 나눠 치밀하게 조직을 운영했다. 우선, 인터넷에서 불법 수집한 개인정보를 활용해 국내 휴대전화 사용자에게 무작위로 문자메시지를 전송한 뒤 SNS에 개설한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 초대했다. 이들 일당은 “대체 코인 투자로 300~400%의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라거나 “VIP에게만 제공하는 투자 리딩이 진행된다”며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회원 모집책 20대 C씨 등 13명은 투자 리딩방에서 대체 코인에 투자해 큰 수익을 낸 전문가인 것처럼 1인 다역 행세를 했고, 이에 속은 투자자들이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C씨 등은 가짜 투자 전문가 자격증과 사업자 등록증을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게시하거나 피해자에게 보여주며 안심시켰다. 이들의 속임수에 넘어간 가입자 중에는 노후 자금 1억5000만원을 날린 60대 남성과 최대 2억5000만원의 투자금을 날린 50대 남성도 있었다. 또 가상 자산인 코인 시장에 처음 들어가 재테크를 해보려고 나선 대학생과 주부 피해자들도 포함됐다. 피해자는 모두 130명에 달한다. 1인당 피해 금액은 1000만원에서부터 2억5000만원에 이른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일당은 피해자들에게 처음 한두 차례는 소액으로 투자한 수익금을 그대로 돌려줘 신뢰를 쌓은 뒤, 큰 투자금을 받는 수법으로 범행을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 일당이 범행에 사용한 계좌 28개를 지급 정지하고, 1억2000만원 상당의 범죄 수익에 대해 법원 결정을 받아 추징·보전 조치한 상태다.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는 권씨는 필리핀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된 보니파시오 지역 등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제보자에 따르면, “필리핀, 태국 등지에 권씨의 차명 부동산이 여럿 있고, 일부 한국 영사들이 지내는 집도 사실상 권씨의 소유”라고 한다. 현실판 차무식 돈이 곧 권력이자, 신분인 동남아에서 권씨가 경찰을 매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권씨는 수사망을 피해 사업가로 위장했고 다수의 여성과 향락을 즐겼다. 김씨도 부유한 사업가로 위장한 권씨를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충정 측은 “김나정은 술자리를 가져 다소 취했던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손이 묶이고 안대가 씌워졌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김나정이 연기를 흡입하게 했다. 김나정이 이를 피하는 모습을 보이자 급기야 어떤 관 같은 것을 이용해 김나정이 강제로 연기를 흡입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며 “김나정의 핸드폰에 손이 묶이고 안대를 가리고 있는 영상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나정에게 문제가 된 마약을 강제 흡입시키기 전, 총을 보여주고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증명할 자료는 따로 없으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권씨는 다수의 범죄를 범해 수배 중인 자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자”라면서, “김나정은 권씨의 정체를 알게 됐고 후술하는 권씨의 협박이 허풍이 아니라는 생각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나정이 귀국 전 소셜미디어에 올린 마약 자수 관련 게시물은 ‘긴급 구조 요청’을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투약은 이번 단 한 번만 있었던 것이고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강제로 행해진 것”이라며 “김나정이 경찰과 본인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영상통화를 했고 이 과정에서 권씨의 관계자로 보이는 자가 권씨와 통화하며 김나정을 추적하는 영상을 녹화했다. 즉 김나정은 긴급히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마약 투약 사실을 자수한 것이지, 자의로 마약을 투약했음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후 자료를 제출받은 경찰은 약 3개월 동안 분석 작업을 했다. 또 경기북부경찰청은 김씨 측이 강제성을 주장하며 언급한 권씨에 대해 경찰청 본청 국제 관련 사건 담당 부서에 수사를 요청했다. 대검찰청은 2016년 필리핀 국가수사청과 초국가적 범죄 대응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22년부터 검찰수사관 2명을 현지에 파견해 국제공조·도피 사범 검거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필리핀 본사···치밀한 조직 운영 추정 범죄 수익만 3000억원 이상 다만, 지난해 경기북부경찰청은 권씨에 대해 “수배 중인 자라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씨가 인천국제공항 경찰단에서 2회 정도 조사를 받았고, (사건은) 주거지 관할인 경기북부경찰청으로 인계됐다”며 “사전 조사 후 1~2회 정도 소환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법에서 마약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투약하는 행위에 대해서 가중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마약 강제 투약도 일반적인 마약 관련 행위와 마찬가지로 마약 관리법 위반으로만 처벌된다. 지난 2019년 국회에서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임시 마약류를 다른 사람 의사에 반해 투약하거나 흡연 또는 섭취하게 한 경우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마약류관리법 개정안 발의가 이어졌지만 모두 폐기됐다. 법무부가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한 이후 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다. 한편,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투자 리딩방 범죄조직들은 대부분 마약 유통에도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김미영 팀장’으로 불린 보이스피싱 총책 박모씨와 함께 필리핀 구치소에서 탈옥한 조직원들도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서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조직을 꾸렸다. 이른바 ‘비쿠탄 마약왕’으로 알려진 송모씨는 2022년 수원에서 필로폰을 소지한 채 붙잡힌 김모씨의 상선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대포폰 판매, 마약 유통 사업으로 수감 생활을 이어갔다.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 등은 비쿠탄 교도소 내에서 대포 유심칩으로 신분을 숨겨 텔레그램 ‘마약방’을 개설했다. 평소 이들은 주식 및 코인 리딩방 등을 운영해오면서 모은 수만명의 회원들을 마약방으로 초대해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했다. 이들은 수억원의 범죄수익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지 제보자는 “리딩방,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권씨도 똑같은 수법으로 마약 유통에 가담하고 있다”며 “그렇기에 김나정에게 마약을 쉽게 투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명 ‘재림’ 그러면서 “지난해 탈옥한 송씨도 필리핀 파사이 등에 있는 마약 공급책을 통해 한 달에 5kg 정도의 필로폰 유통을 지시했다”며 “송씨는 비쿠탄에서 만난 중국 마피아로부터 싸게 구입한 필로폰 등을 드로퍼(전달책)에게 전달해 한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송씨가 드로퍼에게 준 배달료는 한화 약 1000만원가량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