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 동행’ 청소년에 담배 판 편의점 적발? 함정수사 논란

“무혐의 나올 것”이라던 파출소 “행정 처분 예정”
일각에선 실적 올리기 꼼수 VS 법대로 ‘갑론을박’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여경과 함께 편의점으로 들어온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판매한 업주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이 갑론을박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 13일, 온라인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편의점 9년차 황당한 미성년자 담배 판매건’이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자신을 9년차 편의점 업주라고 밝힌 글 작성자 A씨는 이날 오전 2시 정각에 “아르바이트생이 근무 중이었는데, 밖에서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 경찰이 출동했다”며 “(미성년자)여성 두 명과 여경 한 명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와 셋이 나란히 서서 여성 한 명이 담배를 달라고 했다”고 운을 뗐다.

A씨 주장에 따르면 아르바이트생은 여경과 미성년 여성이 이야기를 하면서 편의점으로 들어왔던 데다 ‘어떤 미성년자가 경찰과 같이 와서 담배를 사겠어’ 라는 생각에 신분증 확인 절차 없이 미성년 여성 중의 한 명인 B에게 담배를 판매했다.

CCTV 영상을 확인하던 A씨는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담배를 받아든 B가 편의점 밖으로 나간 뒤 경찰과 함께 흡연을 하며 여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A씨는 글에 “밖에 나가서 경찰이 보는 앞에서 담배를 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기술했다.

그는 “그로부터 10분 후 같이 있던 여경이 들어와 (아르바이트생에게)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마치 본인은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물어봐서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며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진술서를 받아야 한다며 진술서를 쓰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A씨는 관할 파출소로부터 연락을 받고 ‘어느 파출소인지’ ‘여경의 관등성명이 어떻게 되는지’ 물었으나 알려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A씨는 수소문 끝에 여경이 근무하고 있는 해당 파출소를 찾아갈 수 있었다.

A씨는 “해당 파출소에 당사자(여경)는 없었지만 근무 중인 경찰분들 말로는 ‘상황이 애매하고 신원 조회를 늦게 해서 벌어진 일로, 이미 진술서가 접수돼있는 상태고 경찰 조사를 받으면 충분히 무혐의가 나올 것’이라는 안내를 받아 화를 가라앉히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며칠 뒤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경찰 조사가 이뤄졌으며, 담당 수사관도 호의적으로 조사가 이뤄졌다고 아르바이트생에게 얘기를 들었다.

며칠 후 A씨는 수사관으로부터 ‘(업주는)제3자라서 점주는 조사를 받을 필요가 없고 구청 위생과에 행정처분으로 넘길 예정이다. 이의신청은 위생과에 하라’면서 생년월일을 알려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A씨는 “이때부터 피해가 올 것이라는 판단에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아르바이트생에게 기소유예가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A씨가)감경을 받을 수 있으며 어쨌든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억울해했다.

그러면서 “그 어떤 누가 CCTV를 봐도 경찰이 같이 있는데 미성년자가 담배를 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심지어 같이 이야기하면서 들어왔다고 하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울러 “앞으로 어떻게 준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이런 비슷한 사건을 겪었던 분이 있다면 조언 부탁드린다”면서도 “물론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은 아르바이트생의 책임도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해당 글에는 ‘업주의 잘못’ VS ‘함정수사’라는 두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편의점 업주를 두둔하는 회원들은 “여경과 이야기하다가 들어와서 사간 거라면 누가 미성년자인 줄 알겠냐?” “이건 함정수사다. 말 그대로 제대로 낚인 것 같다. 건수 하나 올린 것” “편의점 CCTV 돌려서 그 여경이 함께 있었다는 거 확인시켜주면 될 것” “여경은 미성년자 담배 구매 방조죄인데 미성년자인 거 알면서도 구매하는 거 지켜만 본 것”이라고 동조했다.

반면, 업주 측의 잘못이라는 회원들의 의견도 다수 있었다.

회원 ‘쫄O’는 “억울하겠지만 일단 경찰이 있건 없건 신분증 검사는 하는 게 맞다. 경찰은 판매자의 범죄 여부를 따지는 사람들”이라며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찰도 잘못이 있어 보이지만 그대로 판매자가 확인하지 않은 게 제일 큰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회원 ‘태어나OOOO’는 “신분증을 얼굴 보고 하느냐? 경찰이든 누구든 무슨 상관이냐? 자기 할 일 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자조했다.

회원 ‘낭만X’은 “여경도 문제지만 파는 사람이 잘못 아닌가? 사는 사람이 잘못인가? 아니면 누가 더 잘못인가?”라고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A씨가 억울해하는 부분은 ▲경찰복을 입은 여경이 신원 조회도 하지 않고 미성년자 담배 구매에 동행한 점 ▲여경의 관등성명을 밝히지 않아 파출소를 찾아다녀야 했던 점 ▲경찰 본인도 미성년자인 줄 인지하지 못한 상태서 함께 동행해 아르바이트생을 헷갈리도록 한 점 ▲경찰 앞에서 담배까지 피는 미성년자를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은 점의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 여경이 미성년자의 담배 구매에 동행한 점은 의견이 충분히 갈릴 수 있다. 핵심은 B와 여경의 관계가 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리 중요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A씨 주장대로라면 최소한 여경과 B는 담배 구매 이전에 밖에서 대화가 오갔는데, 결국 지인 여부와는 관계 없이 이미 어느 정도 말을 맞췄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여경의 관등성명 미고지 부분으로, 통상 민원인들은 경찰 포함 공무원들에게 관등성명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경찰의 관등성명 고지가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데 있다. 실제로 경찰관직무집행법상 불심검문이나 임의동행 요구 시엔 신분을 증명할 증표를 보이고 관등성명을 밝혀야 하지만 이 경우를 제외하면 규정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세 번째, 미성년자와 함께 동행해 아르바이트생을 헷갈리게끔 만든 부분은 해석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다. 핵심은 ‘왜 함께 들어왔는지’ ‘고의성이 있었는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아르바이트생이 여경이 함께 들어온 여성이 담배를 살까?’하는 생각에 신분증을 검사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이는 이번 사건의 본질을 벗어난 부분일 수 있다. 법적으로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판매하기 위해선 무조건 신분증을 검사하도록 법에 명시돼있는 탓이다. 


여경의 미성년자 담배 판매 방조 책임 부분도 논란의 여지는 존재한다. 사회적 통념상 미성년자가 담배를 구매하는 상황을 그냥 보고 있었던 여경도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겠으나 근무수칙 등 규정을 어기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경찰이 미성년자 흡연을 제제하지 않은 점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청소년보호법에 따르면 담배와 술은 유해물질로 규정돼 청소년에게 판매하지 못하도록 돼있다. 미성년자들이 담배나 술을 구매(실제로는 판매 업주만 처벌)하는 게 법적 규정이 없는 데다 이들의 흡연이나 음주 자체 역시 처벌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즉, 해당 여경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사회적 책임까지 묻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주장이다.

현행 청소년보호법 제28조(청소년유해약물 등의 판매, 대여 등의 금지) 1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청소년을 대상으로 청소년유해약물을 판매, 대여, 배포하거나 무상으로 제공해서는 안 된다. 또 청소년에게 담배나 주류를 판매할 경우, 청소년보호법 제54조 및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별표Ⅱ에 따라 ‘판매자는 위반 횟수마다 100만원의 과징금에 처해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담배 판매의 경우는 담배사업법 제17조 제2항 제7호 등 위반으로 1차 위반 시 영업정지 2개월의 행정 처분이 내려진다.

함정수사란 수사기관(형사소송법상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 및 특정 사안의 특별사법경찰관리) 또는 그 하수인이 특정인으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르게 하거나 교사하거나 범죄를 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후 범죄의 실행을 기다렸다가 검거하는 수사기법을 말한다.


다만 이처럼 정상적인 형태가 아닌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증거능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만큼 검사 기소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현직 편의점 업주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미성년자와 경찰이 따로 들어오고, 미성년자가 먼저 계산하고 경찰이 그걸 뒤에서만(미성년자 인상착의는 모르는 상태) 보다가 밖에서 미성년자인 걸 확인하는 거냐? 그게 아니라 같이 얘기하면서 들어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찰이면 미심쩍거나 옳지 못한 일은 미리 방지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일 벌어지는 거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다가 일 벌어지고 나서 처벌하려는 게 진짜 경찰이 할 일 맞느냐”고 답답해했다.

<일요시사>는 이날 A씨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끝내 닿지 않았으며 해당 글은 14일 오후 삭제 처리됐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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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