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차주 “민사소송 걸겠다” 불법주차 적반하장‧갑질 논란

수서동 모 아파트 경비원 호소글
차주 “경비원 퇴사시켜라” 요구도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서울 강남구 수서동 소재의 한 아파트 입주민이 경비원을 상대로 갑질을 일삼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파트 출입구를 막아선 포르쉐에 ‘주차위반 스티커’를 붙이자 경찰 신고도 모자라민사소송 등 법적 대응까지 시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 12일, 온라인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포르쉐 아파트 불법 주청자! 경비원 상대 입주민 갑질 폭로’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글 작성자 A씨는 “지난 6일 오전 8시10분경, 강남구 수서동 모 아파트 주차장서 일어난 사건”이라며 “제발 이 사건이 널리 알려져 해당 차주가 응당한 법의 심판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A씨 주장에 따르면 이날 아파트 경비원이 출근했던 5시50분경, 포르쉐 차량은 아파트 OOO동 입구를 막고 있었다. 출근시간대였던 7시부터 8시까지 입주민들의 출차 민원이 20건 접수돼 경비원은 포르쉐 차주 B씨에게 2회 전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계속되는 민원 폭주로 인해 해당 경비원이 이동 주차를 요구하기 위해 집으로 찾아갔으나 B씨는 “새벽에 들어왔는데 아침부터 차 빼라고 한다”며 화를 내고 들어가 버렸다.

이날 오후 1시30분경, B씨는 경비원에게 “새벽에 주차하기 위해서 3번을 돌았는데 주차 공간이 없어 우리집 입구에 주차했는데 뭐가 문제냐? 새벽 2시에 일이 끝나서 3시에 잠들었는데 이른 아침부터 자는 사람 깨워서 차 빼라고 한 거 사과하지 않으면 한 달이건 1년이건 차를 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아들보다 젊은 B씨에게 삿대질과 반말을 들었던 경비원도 화가 나서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렇게 이틀째 불법주차로 인해 통행에 불편을 호소하는 입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경비원은 어쩔 수 없이 B씨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통화로 연결되지 않았다.

지난 10일(제가 모든 면에서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시고 간곡히 이해 부탁드립니다), 11일(어제 오후 OOO동 근무자와 2회 집을 방문했는데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유모차 어르신용 밀차, 택배차 등 통행을 할 수 없어 주민들 불만이 아주 많습니다.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차량 이동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모든 것을 용서하세요) 등 양일간에 걸쳐 사과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다.

이후 차주 집에 3회 방문했지만 가족만 볼 수 있었고 다른 경비원도 10회가량 찾아갔으나 역시 B씨를 만날 수 없었다.

A씨에 따르면 B씨는 경비원이 무릎 꿇고 사과하지 않으면 차를 이동할 생각이 없으며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입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직접 사과문을 차량에 붙이고 자신이 반성의 기미가 보이면 일주일 후에 차량을 빼주겠다고 했다.

참다못한 입주민들이 11일, 관리실에 민원을 접수하자 다른 경비원이 불법 주정차 스티커를, 같은 동 입주민이 불편을 호소하는 글을 차량 전면 유리에 붙였다.

그러자 B씨는 “제 차에 저렇게 손상 입힌 부분은 앞 유리 전면 교체랑 A필러 교체 후 민사소송 걸겠다”고 대응했다.

해당 경비원이 “상황이 어찌됐던 을의 입장에서 OO 경비원과 OOO 모두 분명히 사과드렸음에도 끝까지 안하무인으로 나오신다면 저희도 법적 대응하겠다”고 하자 그는 “사과문 붙이라고 했지, 경고문 붙이라고 했느냐? 안하무인 같은 소리 하시네. 이젠 사과할 마음도 없어 보이니 차량 손상 건에 대해선 손배소 처리할게요”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경비원이 주민 민원 받고 차량 이동 조치 요구한 게 왜 사과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본인 출퇴근 시간, 일어나는 시간까지 체크해가면서 댁에 방문해야 하느냐? 처음부터 차량을 입구에 주차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 아니냐?”고 지적하자 “저도 신경 안 쓸테니 그렇게 하시라. 서로 연락하는 일 없도록 합시다”라고 대꾸했다.

A씨는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현재 B씨는 그대로 불법주차 해놓고 부모 차량으로 출퇴근한다고 한다”며 “그로 인해 택배 차량, 유모차, 고령으로 인해 휠체어로만 움직일 수 있는 분들에게 불편함을 주면서 비상식적인 주차에 항의하자 안하무인으로 나온 이 사연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자문을 구했다.

아울러 “형법 314조엔 차량이 주차 공간을 이중삼중으로 차지해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주차 관리업체의 업무를 방해할 경우 고소고발을 규정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기존 법률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자꾸 일어나지 않나 싶다”며 “아파트 입주민의 갑질과 불법주차 차량들이 근절되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마무리했다.

한 보배 회원은 “차종으로 뭐라고 하면 여기 형님들한테 혼나겠지만 저 정신 상태로는 911이었으면 정말로 어마어마했겠다. A필러 교체에서 눈물이 난다. 지금쯤 보배 보면서 각도기 재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른 회원은 “A/S센터에 A필러 교체한다고 가면 전손처리하라는 소리 나올 정도로 예전 모델이구만 무슨 저런 것으로 갑질이냐?”면서도 “저 모델에 신형 번호판 달린 거 보니 중고차 떠온 거 아닌가? 카푸어 인증하세요?”라고 비꼬기도 했다.

다른 회원들도 “입구를 막아 주차했으면 아침에 옮기는 게 상식이거늘 왜 저 짓을 하는 걸까?” “뉴스 타고 신상 공개돼야 정신 차리려나?” “주차 딱지 붙였다고 앞 유리 교체? 과속방지턱이나 요철 밟으면 하부 부품 교체하겠네” “보배 형님들 참교육 부탁드린다. 이래저래 살다 보니 참 답답하고 화나고 보고만 있어도 울화통이 터진다. 이기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제가 못하는 거 하실 수 있는 분들이 대신 해주는 것도 통쾌하고 시원하다. 경비원 분들 얼마나 마음 쓰이고 스트레스 받으실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등 아파트 경비원을 응원하는 댓글을 달고 있다.

“주민들도 웃기네. 왜 경비원한테만 뭐라고 하느냐?”며 경비원에게 민원을 제기하는 아파트 입주민들의 행태에 대한 지적 댓글도 눈에 띈다. 또 “당일 가입이다!” “가족이 다 똑같은 사람들이구만. 아들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면 나무라고 차를 빼라고 해야지. 자기 차 빌려주면서 출퇴근하게 하다니…” 등의 다양한 댓글들이 달리고 있다.

A씨는 글과 함께 포르쉐 차주로 보이는 입주민과의 문자 대화 내용과 차량 주차 사진 여러 장을 함께 첨부했다. 사진에는 포르쉐 차량 전면 유리에 주차 위반 경고 스티커 및 항의문이 붙여져 있는 모습, 아파트 출입구 정면에 주차돼있는 빨간색 포르쉐 차량이 담겨있다. 

심지어 포르쉐 차량 옆에는 주차를 금지하는 주차 금지 표지판까지 버젓이 서 있다. 

A씨는 13일 오후 1시32분에도 ‘포르쉐 불법주정차 빌런…아직도 정신을?’이라는 제목으로 관련 글 하나를 더 게재했다. 그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경, B씨에게 보배에 올린 글 링크를 문자메시지로 전송했다. B씨는 12시경, 주민 민원으로 경찰들이 출동하자 ‘주차 위반 스티커를 떼야 이동하겠다’며 버텼고 결국 관리소서 스티커를 떼어냈다.

A씨는 “도대체 사람이 어쩜 이럴 수가 있는지…저도 더 이상 귀찮고 더 이상 큰일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말하는 게 영…전날 술 먹어서 긴 글 쓰기도 힘들다. 사진 첨부하겠다”며 B씨와의 문자 대화 내역을 공개했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두 번째 글은 물론 첫 번째 글도 모두 삭제 처리됐다. 이날 <일요시사>는 A씨에게 글을 삭제한 이유, 진행 상황에 대해 묻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다만, 기사 댓글을 통해 “많은 관심 덕분에 차주님은 정식으로 경비원분과 관리실에 사과하셨고 차량도 현재 다른 곳으로 이동 주차하셨다”며 “여러 매체서도 연락이 왔지만 보배 등록한 글도 내렸으며 더 이상 공론화로 인해 피해보시는 분이 없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6월 말, 한 40대 남성은 인천시 남동구 소재의 한 상가 건물 지하주차장 출입구에 관리비 납부 문제로 건물 관리단 측과 갈등을 빚는 과정서 일 주일 동안 차량을 세워 다른 차량의 출입을 방해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던 바 있다.

법원은 해당 남성에 대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8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2018년에도 이번 포르쉐 불법주차 사건과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다.

8월27일,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소재의 한 아파트 여성 입주민은 지하주차장 진출입로를 막았다가 결국 자필 사과 편지를 올리면서 일단락되기도 했다.

해당 입주민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서 자신의 차량에 불법주차 경고 스티커를 붙이자 불만을 품고 자신의 승용차로 지하주차장 진출입로를 막은 뒤 사라졌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자신의 차량을 관리사무소에 등록하지 않고 주차장에 주차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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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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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