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서 도촬에 조롱까지 당했는데…” 20대 여대생의 한숨

현장 출동 경찰 “할 수 있는 게 없다”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최근 지하철서 도촬에 조롱까지 당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여대생의 하소연이 눈길을 끌고 있다. 글 작성자 A씨는 7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지하철서 도촬당하고 조롱당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자신을 20대 중반의 대학생이라고 밝힌 여성 A씨는 “너무 억울해서 글을 쓴다. 투잡 중이라 과제할 시간이 많지 않고, 오늘은 학교 행사가 늦게 끝나 집에서 밤샘 과제를 할 생각으로 지하철서 자료를 읽고 있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지하철 좌석에 앉아 아이패드로 과제를 하고 있었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커플 중 여성 B씨가 옆자리의 승객이 하차하면서 앉았다”며 “앉자마자 저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핸드폰으로 촬영했고 앞에 서 있는 남성에게 동영상을 보여주며 웃었다”고 주장했다.

몰카(불법 촬영)를 당한 것 같다는 생각에 A씨는 B씨에게 다가가 ‘촬영했느냐?’고 묻자 ‘친구와 카톡했다’며 발뺌을 했다. A씨는 추궁 과정서 B씨 휴대폰의 사용 앱 목록 중 SNS 업로드용 카메라를 발견했고 도촬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A씨에 따르면, 휴대폰에 촬영된 동영상에는 A씨의 옆모습이 담겼으며 인스타그램 스토리 카메라의 우스꽝스러운 필터가 적용돼있었다. 그는 즉시 커플에게 하차를 요구하면서 경찰에 신고했다.

촬영물 삭제가 염려됐던 A씨가 경찰이 도착하기 전까지 B씨의 휴대폰을 소지하려 하자 이들은 “핸드폰을 주지 않으면 점유물이탈죄로 신고하겠다”고 오히려 A씨를 신고했다고 한다.


A씨는 “이들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이패드를 촬영했다’며 거짓말을 했다. 왜 아이패드를 촬영했냐고 물으니 ‘장난으로 촬영했다’ ‘조롱하려고 촬영했다’고 했다”며 “제가 녹음기를 켜고 다시 한 번 말하라고 했더니 이번엔 ‘조롱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A씨 주장에 따르면 그들은 ‘서로 피곤하니 일을 키우지 마라’ ‘경찰서 가서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여기서 그만하자’ 등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A씨는 절대로 봐줄 생각이 없었고 경찰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현장 도착한 4~6명의 경찰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촬영된 동영상까지 보여줬지만 A씨는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어야 했다.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신체 부위의 촬영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었다.

A씨는 “경찰이 보는 앞에서 영상을 지우고, 그들이 나눴던 ‘저 헤드셋 낀 X, 왜 안 일어나냐’ ‘개X끼’ ‘저 X끼 소설 본다 ㅋㅋㅋ’ ‘이렇게 촬영해도 되냐’ ‘괜찮다, 어차피 저 X은 모른다’ 등 모욕적인 말로 조롱하는 카톡 내용을 확인했다”고 억울해했다.

이어 “남성은 카톡 내용을 읽고 있는 와중에도 사과 한 마디 없이 오히려 ‘우리끼리 한 얘기니 네가 알바 아니다’라는 식으로 얘기하면서 경찰이 옆에 있는데도 낄낄거리며 비아냥을 멈추지 않았다”며 “여성은 계속 ‘죄송한데~’ 라며 사과 같지 않은 사과로 상황을 끝낼 생각만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형사처벌은 어려우니 민사소송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제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다. 부모님도 X 밟았다고 생각하고 저보고 참으라고 했다”며 “그저 지하철 타고 가면서 조용히 과제하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도촬당하고 온갖 모욕까지 듣고도 정신적 피해와 스트레스를 받는 건 저”라고 억울해했다.

아울러 “도대체 왜 피해자가 참아야 하고 가해자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걸까요? 정말 너무 속상하다”고 덧붙였다.


해당 글에는 “성적 수치심은 내가 느끼는 거지, 경찰이 판단하는 게 아니잖아요? 발가락만 찍혀 있어도 성적 수치심 느낀다고 얘기하면 되는 거 아니냐?” “이런 사건이 사회적으로 크게 공론화됐으면 좋겠다. (그냥 아무 일 없이 묻히면)이런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날지…법적으로 처벌받았으면 좋겠다” “정식으로 고소하면 경찰도 어쩔 수 없이 수사 진행해야 한다. 죄가 없다면 그냥 끝날 것이고 있다면 처벌받을 것” 등의 응원 댓글이 달렸다.

“글쓴이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충분히 특정성, 공연성이 성립되는 상황서 욕설했으니 충분히 모욕죄 및 명예훼손으로 고소 가능할 것 같다. 당시 카톡방서 글쓴이의 얼굴이 나오는 영상 및 사진이 올라간 이후 그런 대화가 나왔다면 더더욱 가능하다”는 댓글이 베스트 1위에 올랐다.

해당 조언에 대해 A씨는 “영상은 업로드 전에 발견해서 업로드 되지 않았다. 경찰은 그 자리서 서로 사과하고 끝내라고 했다”면서도 “왜 제가 사과해야 되는지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카톡 내용까지 확인한 경찰에게 ‘모욕죄가 성립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민사소송하면 유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고 답했다.

지난 9일,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A씨는 “이번 도촬 사건으로 심한 충격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두통에 시달리고 있고, 제대로 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여전히 그 사건을 생각하면 억울하고 화가 치밀어 올라 일상에 집중하지 못한다. 사건 발생 다음 날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내내 울기만 했다”고 호소했다.

어이없는 부분은 상대방도 A씨에 대해 점유이탈물횡령죄로 경찰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이날 A씨는 평범하게 긴팔 상의에 바지 차림이었다고 했다.

A씨가 억울한 부분은 또 있다. 상대방이 조롱하고 욕했던 대화 내용을 촬영하려고 했으나 출동했던 경찰이 제지하는 바람에 촬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는 “경찰은 증거를 수집하려는 저를 막았고 그 때문에 아무런 증거도 얻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도촬 영상을 확인한 뒤 제 핸드폰으로 저를 촬영한 영상을 녹화했는데, 경찰은 사건을 대충 마무리 지으려고 가해자 여성에게 ‘영상을 삭제하고 서로 사과하고 끝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지하철 좌석에 앉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도촬당하고 온갖 조롱과 험담을 당했는데 이보다 가해자를 감싸주는 경찰 태도에 더 큰 상처를 받아 나라에 버림받은 기분”이라며 “대한민국 사람을 도촬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모든 일은 피해자가 다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원통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B씨가 켜져 있던 인스타그램 앱을 종료시키면서 촬영된 동영상은 바로 삭제됐다. 인스타그램 스토리 카메라는 저장이나 업로드를 하지 않을 경우는 저장되지 않고 자동으로 삭제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한 재경 소재 변호사는 “과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법)은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반포했을 경우’에만 처벌됐으나 지난 2018년 12월18일 개정된 현행법에 따르면 촬영 대상에 ’사람의 신체‘로만 돼있어 본인 의사에 반해 촬영됐다면 죄가 성립된다”고 제언했다.

다른 변호사는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이라는 부분은 유발 정도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가 많은데 법관의 해석에 맡겨져 왔던 게 사실”이라며 “판례상 판단 기준을 ‘피해자’가 아닌 객관적 시선에 따라 판단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성적 수치심이라는 기준도 일관성이 없다 보니 재판 결과가 들쭉날쭉하게 나오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성폭법 제14조1항에 따르면 카메라나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2항에는 불법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 또는, 제1항의 촬영이 촬영 당시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 경우에도 사후에 그 촬영물이나 복제물을 대상자 의사에 반해 반포 등을 한 자에 대해서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있다.

즉, 유무죄의 기준은 촬영 시 당사자의 허락 여부이며, 반포는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주의해야 할 부분은 불법 촬영죄는 친고죄나 반의사 불벌죄가 성립하지 않아 도촬 피해자나 제3자가 고발하거나 현행범 체포로 입건된 경우,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 의사와 관계없이 형사 절차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본인 동의 없이 영상을 촬영했을 경우 ‘초상권 침해’ 위반의 소지도 존재한다. 통상 초상권이란 타인에 의해 자신의 외모를 포함한 얼굴 부분이 동의 없이 촬영되거나 공표되는 등 알려지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법적으로 타인의 촬영에 찍히는 것은 물론, 유포까지도 용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SNS의 발달로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흔해졌고 개인방송이 늘어나는 만큼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얼굴뿐만이 아니라 신체 전체를 포함하므로 모자이크 처리가 됐더라도 누구인지 식별이 가능할 경우 초상권 침해에 해당된다. 또 공익적인 목적이나 보도 활동을 위한 예외적인 경우 외엔 타인을 함부로 촬영해선 안 된다.

위반 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했을 경우 명예훼손죄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

A씨는 “성폭법이나 명예훼손 성립이 가능하다면 고소를 고려하겠으나, 그 시간 동안 제가 겪는 정신적 고통과 비용을 쏟아부으며 그들을 개과천선하게 하고 싶지 않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지만 고소 과정서 또 다른 상처를 입고 싶지 않다”며 법적 대응은 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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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주기’ 유병언 일가 졸속 재판 막전막후

‘세월호 참사 10주기’ 유병언 일가 졸속 재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4·16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특별조사위원회와 특별검사까지 투입됐으나 명확한 윗선의 책임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정부는 참사 보상금 지출 비용 회수를 위한 ‘유병언 일가’ 재판을 진행 중이다. 결과는 잇단 패소다. 법원 법리 설득도 실패하면서 졸속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부가 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 건 7년 전이다. 세월호 참사 보상금 지출 비용 회수가 주된 이유다. 이른바 ‘유병언 일가’의 차명주식 120억원을 받아내려 했으나 법원은 정황 증거와 신빙성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미지근한 부처 대응 정부가 지출한 세월호 참사 관련 비용은 2015년 8월 기준 1878억원, 지출이 예정된 금액을 합치면 4390억원에 달한다. 2015년 정부가 유 전 회장 자녀들과 청해진 해운 주주사 등을 상대로 제기한 4213억원 구상권 청구 소송은 서울고법서 2심이 진행 중이다. 2020년 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는 “유 전 회장의 자녀인 유섬나·상나·혁기씨 남매가 총 1700억여원을 국가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세월호 참사의 수습 과정서 국가가 지출한 비용으로 인정된 금액(3723억원) 중 70%를 유 전 회장 일가가 부담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은 사고에 원인을 제공한 자에게 국가가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구상권은 누군가가 부담해야 할 채무를 대신 졌을 때 원래의 채무자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정부는 수천억원을 유병언 일가로부터 받아내야 하지만 추가 회수를 위해 여러 재판을 진행 중이다. 이 중 김혜경 전 한국제약 대표를 상대로 120억원 규모 주식인도청구가 최근 기각된 것으로 확인됐다. 세월호 참사 뒤 수사 대상에 올랐던 김 전 대표는 지난 2014년 10월 미국서 체포돼 송환됐다. 또 유 전 회장이 촬영한 사진을 회삿돈 1억여원으로 사들여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구속된 뒤 지난 2018년 징역 1년6개월이 확정된 바 있다. 김 전 대표는 세월호 운항을 맡았던 청해진해운 주식 2000주와 세모그룹 계열사인 정석케미칼 주식 2만주, 세모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한 아이원아이홀딩스 주식 5만5000주 등 관계사 6곳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데 주식가격을 합치면 모두 120억원 상당이다. 지난 2017년 소송을 시작한 정부는 “김 전 대표가 세모그룹 계열사 대주주이자 유 전 회장 최측근으로서 유 전 회장의 부동산과 주식 등 재산을 차명으로 관리해 왔다”고 주장했다. 실제 세모그룹 계열사 임직원들이 수사와 재판 과정서 “김 전 대표는 유 전 회장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면서 재산을 차명으로 관리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전 대표는 “근로소득과 상속재산 등 본인 자금으로 직접 주식을 취득했다"며 본인이 실소유주”라고 반박했다. ‘수백억대 차명 주식’ 패소…법원 설득도 실패 “유 회장 가족 국가에 1700억원 지급” 2심으로 재판부는 “정부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유 전 회장과 김 전 대표 사이에 차명 보유를 위한 약속이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유 전 회장과 김 전 대표 사이 관계에 대한 임직원들 진술이 상당 부분 추측에 불과하거나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고 봤다. 이어 “김 전 대표가 직접 대금을 납부해 주식을 취득한 정황은 확인되지만 유 전 회장이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하기 위한 대금을 지급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세월호 참사 관련 지출 비용 회수에 실패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월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이승원 부장판사)는 정부가 유 전 회장 차명 의혹 주식으로 보고 관련자 5명을 상대로 청구한 약 4억원의 정석케미칼 주식인도청구도 기각했다. 앞서 정부가 유 전 회장 측근 이강세·이재영 전 아해(정석케미칼로 변경 전 상호) 대표 등 6명을 상대로 낸 10억원 규모 주식 확보 소송도 지난해 7월, 2심서 패소했으며 대법원서 그대로 확정됐다. 위 두 재판에는 기독교복음침례회 일명 구원파도 참여해 “해당 주식은 유 전 회장이 아니라 구원파가 맡긴 주식이므로 구원파에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구원파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 전 회장 일가를 상대로 한 구상권 소송은 여전히 2심서 멈춰 있다. 유병언 일가가 항소해 2심으로 이어졌고, 지난해 변론까지 모두 마쳤지만 재판부는 아직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유병언 일가가 ‘세월호피해지원법이 위헌인지 판단해달라’며 위헌제청을 신청한 게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법조계에서는 정부가 추가적인 비용 회수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구상권 소송이 지지부진한 상황서 차명 의혹 주식은 잇따라 확보에 실패하고 있는 만큼 세월호 참사 관련 비용 회수는 어려울 것”이라며 “법원 설득도 실패했기에 현재 재판이 끝난 이후 실질적으로 금액을 받아내는 데만 수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소송 이겨도 받기 한세월 다른 변호사도 “일반적 민사도 오래 걸리는데 과거 사건을 두고 정부가 소송을 진행하는 건 10년 가까이 걸린다. 차명주식의 경우 의혹을 뒷받침할만한 근거가 중요한데 법원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받아내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유병언 일가 간 소송이 끝난다고 해도 수천억원의 금액을 받아내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유병언 일가 자식들이 시간 끌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혁기씨가 국내로 송환됐을 당시 검찰은 “세월호 선사 계열사들 대표들과 공모해 경영 자문료, 상표 사용료, 사진 대금 등 명목으로 254억6346만원을 반출한 뒤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는 공소사실을 밝혔다. 혁기씨 측은 “상표권·사진 판매 계약 관련해 일방적 지시한 적 없다. 정상적 처분의 계약이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도 모두 이행했다. 횡령 행위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이 증거 인부 여부를 다음 기일로 미루면서 이날 재판은 30분 만에 마무리됐다. 4남매의 막내인 혁기씨는 1989년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미국으로 떠났다. 미시건 대학을 졸업한 뒤 전문직 취업비자를 받았고, 2002년 재미 교포와 결혼해 2007년 영주권을 받았다. 이후 미국서 사진홍보대행사 아해프레스와 경영컨설팅업체인 키솔루션 대표 등을 맡았다. 그는 2014년 3월 사업 차 한국을 찾았다가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해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4일 뒤 인천지검이 세월호 선사 경영 비리 사건에 대해 수사에 착수하면서 더는 한국에 오지 않았다는 게 혁기씨 측의 설명이다. 2014년 5월 한국 법무부는 미국에 있던 혁기씨에 대해 범죄인인도 청구를 했다. 혁기씨가 경영비리에 연루돼있다고 본 것이다. 한동안 행적이 묘연하던 혁기씨는 결국 2020년 뉴욕 남주연방검찰청(SKNY)에 체포됐다. 2021년 7월 뉴욕남부연방법원이 범죄인인도 결정을 내렸지만 혁기씨는 인신보호청원을 제기하면서 버텼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청원이 기각되면서 9년 만에 국내 송환이 이뤄졌다. 혁기씨와 달리 장녀 섬나, 장남 대균씨 등 유 전 회장 일가는 이미 검찰 수사를 거쳐 재판을 받았다. 대균씨는 2002년 5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5개 계열사로부터 상표권 사용료 명목으로 71억원을 받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소송 끝나도 사건들 산적 2014년 1심 재판부(인천지법 형사12부)는 대균씨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했으나 항소심(서울고법 형사1부)는 징역 2년형으로 감형했다. 유 전 회장의 부인 권윤자씨는 2010년 2월 기독교복음침례회 재산을 담보로 신협 등으로부터 297억원을 대출받은 혐의(배임)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이 선고됐다. 유 전 회장의 형 병일씨는 2008년 개인 부동산 구매를 위해 D 주식회사 자금을 한 영농조합을 통해 송금받은 혐의(횡령)로 징역 2년형을 받았다. 이들은 역으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2017년 9월 서초세무서는 세무조사 결과 세모그룹 계열사들이 대균씨에게 지급한 상표권 사용료를 포함해 소득을 다시 산정했다며 총 11억3000여만원의 종합소득세(가산세 포함)를 부과했다. 이에 대균씨는 “2015년 형사재판을 받는 동안 청해진해운에 35억여원, 천해지에 13억여원을 반환했는데도 세무당국이 이를 고려하지 않아 부당하다”며 2019년 3월 행정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대균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항소심은 2021년 1월 원심을 깨고 대균씨의 손을 들어줬다. 아직 법적 판단을 확정짓지 못한 사건도 있다. 검찰이 특경법·조세처벌법위반 혐의로 장녀 섬나씨를 추가 기소한 사건은 1월 인천지법 형사15부가 업무상 배임횡령 건에 대해 일부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후 검찰이 항소하면서 서울고법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혁기씨는 추가 기소 가능성도 남아있다. 검찰은 지난달 22일, 혁기씨를 기소하면서 “306억원에 달하는 유씨의 추가 범행, 125억원 조세포탈 범행을 추가로 기소하기 위해 미국의 동의 요청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정부 간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르면 인도의 근거가 된 범죄 이외의 범죄로 처벌하기 위해선 미국의 추가 동의가 필요하다. 피해지원법 위헌 여부 헌재 판단 관건 정부 소송 잇단 패소 법률적 전략 한계? 검찰 관계자는 “법무부가 범죄인인도를 청구할 당시 기재된 혁기씨의 범죄사실에 대해서만 기소했지만, 추가로 입증한 범죄사실을 기재해 추후 미국 정부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혁기씨는 현재 구속 기한 만료로 보석이 허가된 상태다. 인천지법 형사14부(류경진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혁기씨의 구속 기한 만료일이 다가오자 지난달 5일 보석을 허가했다. 재판부는 유씨의 보석을 허가하면서 거주지를 자택으로 제한하고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하도록 했다. 혁기씨 측 변호인은 “여러 조건을 달아 보석을 허가받았고 혁기씨는 자택에 머무르고 있다”며 “여러 증인들을 신청했기 때문에 선고까지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지지부진한 대응은 예고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설 명절 특사를 단행하면서 세월호 유족 사찰 혐의로 형이 확정됐거나 재판이 진행 중인 인사들에게 면죄부를 뿌렸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뿐만 아니라 전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 소속 장군들이 포함됐다. 특사 명단에는 김대열 소장(전 기무사 참모장)과 지영관 소장(전 기무사 참모장)은 잔형 집행정지와 더불어 복권 처분을 받았다. 소강원 소장(전 기무사 참모장)은 지난해 8월 광복절 특사 당시 사면됐는데, 이번에 복권까지 됐다. 앞서 기무사 주요 직위에 있었던 김대열·지영관·소강원 소장, 김병철 준장, 손정수·박태규 대령 등 6명은 ‘세월호 TF’를 조직해 유가족 사찰을 지휘·감독한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우선 이번에 사면·복권된 김대열 소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기무사 참모장 직위에 있으면서 손 대령과 박 대령에게 세월호 유가족 사찰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1심과 2심 모두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2심 재판부는 “세월호 유가족 첩보 수집은 당시 정권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라며 “피고인들은 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한데도 범행을 일체 부인하며 당시 직속상관인 사령관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지 소장은 정보융합실장일 당시 김 소장과 공모해 세월호 유가족의 성향 사찰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등 여론 조성 작업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복권된 소 소장의 경우 세월호 참사 당시 광주·전남 지역 관할 610기무부대장으로서 세월호 유가족의 동향을 파악해 보고한 혐의를 받았다. 1심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항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사실상 면죄부 세월호 TF장이었던 손 대령과 세월호 TF 현장지원팀장이었던 박 대령은 세월호 유가족 사찰 지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서 각각 징역 1년6월과 1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지난해 8월 사면·복권됐다. 세월호 민간인 사찰 사건은 계엄령 문건 작성, 댓글 공작과 함께 기무사라는 부대 자체를 없앤 계기가 된 이른바 ‘3대 불법행위’ 중 하나다. 특히 세월호 민간인 사찰 사건 재판부는 이들 기무사 간부들이 직무 범위를 넘어 국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