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하고 다신 오지 마” 베이커리 업주 반말 ‘입길’

발목 깁스 손님과 의자 문제로 옥신각신
“가족 앞에서 가장으로서 창피하고 억울”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가족들 앞에서 너무나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해 자문을 받고자 글을 남깁니다.” 지난 20일, 경기도 소재의 A 베이커리 카페를 찾았다가 을질을 당했다는 한 누리꾼의 하소연 글이 화제다.

이날 자신을 자영업자라고 밝힌 40대 남성 B씨는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지난 19일, 너무나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일을 가족들 앞에서 당했다”고 토로했다.

B씨에 따르면 그는 약 1개월 전, 실족으로 인해 좌측 발목삼과골절 사고를 당해 병원 퇴원 후 집에서 요양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상쾌한 마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A 카페를 방문했다.

그는 “예전부터 눈요기하다가 첫 방문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4식구가 입장했는데 꽉 차 있는 주차장에 비해 안에 손님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며 “목발 신세인 관계로 딸들에게 빵과 음료 주문을 부탁하고 테이블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B씨는 테이블로 온 직원에게 ‘보조기 하고 있는 발을 다른 의자에 얹고 싶다’고 했고 흔쾌히 ‘아무 의자나 갖다 쓰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빵을 고르고 있던 딸을 불러 옆 테이블의 의자 중 1개를 옮겨달라고 했고 의자에 다리를 올려놓고서 휴식을 취했다.

C씨가 나타나 B씨에게 다짜고짜 “몇 분이세요?”라고 따지듯 물었고 그는 “4명인데 보다시피 제가 다리가 불편해서 얹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B씨 주장에 따르면 C씨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후 자리를 떠났다.

B씨는 “솔직히 좀 당황스럽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옆 테이블에 앉으려다가 의자가 모자라 요구했나 보다’라는 생각에 크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며 “잠시 후 식구들이 빵과 음료 주문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앉는 순간 업주가 다시 다른 의자를 갖고 오셔서 (의자를)교체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C씨의 난데없는 행동에 화가 난 B씨가 “지금 뭐하시는 거냐?”며 따졌고 그는 “아니, 다른 손님들이 짝이 안 맞는 의자가 있으면 앉지 않아서 그러는데 의자 바꾸는 게 그렇게 힘들어요?”라고 반문했다.

C씨는 다름 아닌 A 카페의 사장이었다.

B씨는 “다른 분도 아니고 사장님이라는 분이 손님에게 이렇게 무례하고 불친절할 수가 있느냐? 사과하시라”고 요구했지만 C씨는 “내가 왜 당신에게 사과해? 다른 손님들 때문에 의자 바꾸는 게 그렇게 힘들어?”라고 반말로 대응했다.

B씨는 가족들과 함께 있는 데다 C씨가 큰형, 삼촌뻘은 돼 보였지만 상황 자체가 너무 황당하고 어이없어서 재차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자 C씨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귓속말로 ‘야, 나도 집에 너만한 아들 있으니 적당히 하고 가라. 음식값 아까우면 환불해주라고 할 테니까 가. 그리고 두 번 다시는 오지 마. 자식아’라고 속삭였다.

B씨는 “살짝 눈물이 핑 돌았다. 중요한 사실은 귓속말이지만 우리 4식구가 들리는 귓속말이었기에 가장으로서 너무 창피하고 억울하고 화가 나 순간적으로 수만가지 생각을 했다. 오랜만의 가족 나들이에 목발 신세로 아빠가 아이들 앞에서 경찰차 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C씨를 불러 사진 한 장을 찍었다”며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남성의 사진 한 장도 함께 게재했다.


사진 속 해당 남성은 B씨가 아닌 A 카페 사장 C씨로 추정된다.

B씨 주장에 따르면 C씨는 당시에도 “마음대로 해라”고 말했다. C씨의 연이은 언짢은 언행에 B씨는 주문한 빵과 음료를 뒤로 하고 황급히 A 카페를 나섰다.

그는 “가장으로서 창피했고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고 싶었을 정도로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그냥 ‘군소리 하지 말고 아픈 다리를 강제로 만져서 옮기더라도 웃으면서 의자를 바꿀 걸, 왜 따져서 가족들에게 미안한 상황을 만들었나’ 등 기타 여러 생각들을 하며 집으로 왔다”고 토로했다.

이어 “처음부터 직원에게 추가로 사용 여부를 확인하고 가져다 쓴 게 잘못인지…추후에 사장님이 가져온 다른 의자는 양 옆으로 돌출 부위(팔걸이)가 높아서 다리를 얹을 수 없는 구조였다”며 “못난 아빠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생각에 글을 남겨본다”고 억울해했다.

아울러 “다른 건 없다. 저는 이 사장님이라는 분께 사과받고 싶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라며 자문을 구했다.

해당 글은 15만6000회 이상 읽혔으며 713개의 댓글과 2738개의 추천 수를 받아 ‘이번주 최다 댓글 랭킹 2위’에까지 올라 있다(21일 오후 4시 기준).

통상 모욕죄는 사회적 평가를 저해할 수 있는 감정이나 추상적 생각이나 경멸적 표현을 했을 때 성립하는 범죄로 위반 시 최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형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이번 사례의 경우 ‘특정성’은 충족되지만, 같은 학교나 회사, 가족 등 친분이 없는 불특정 다수(제3자)에게 전파될 가능성인 ‘공연성’이 충족되지 않아 모욕죄 성립은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대법원 판례서도 불특정 다수의 기준을 피해자나 가해자와 친분이 없는 7~8명 이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A 카페서 파트타임 직원으로 일했었다는 한 보배 회원은 “저 사장은 답도 없다. 1년 넘게 직원들과 으쌰으쌰 열심히 일했는데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 출근했으니 나오지 말라’고 통보당했다”며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는데 아무튼 최악”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중립 지킬 필요 없다. 저 사장은 손님한테 호통 치는 사람이고 차 두세 대 타고 와서 한 테이블에 앉으면 ‘한 대로 몰아오지 왜 따로 타고 오느냐’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라며 “언젠가 이런 일이 터질 줄 알았다”고 거들었다.

회원들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얼마 못가서 망할 집이다. 그냥 냅두셔라” “다 떠나서 가족 앞에서 망신 주는 게 좋은 행동이냐?” “이야! 이곳 후기가 장난 아니다. 더 이상한 건, 후기가 성지라고 하는데도 사람들이 찾아가서 갑질을 당하고 온다는 것인데…간만에 대단한 성지가 나타났다. 곧 순례길 떠나야겠다” 등 다양한 댓글을 달았다.

양평에 거주 중이며 직장이 하남이라 매일 해당 카페를 지나다닌다는 한 회원은 “하남서 양평 가는 길목에 여러 식당이 있는데 저 베이커리만 불친절하다”며 “4살짜리 아이 데리고 땀 좀 식힐 겸 아이가 좋아하는 빵이 버터스틱을 좋아해서 커피시키면서 질문하고 있는데 뒤에 사람 기다리니 ‘가서 직접 찾아보고 없으면 없는 것이다. 다 맛있으니 아무거나 먹어’라고 반말 하는데 와…순간 잘못 들은 건가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이 때문에 화도 못 내고 그냥 나온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덕소에 거주 중이라는 한 회원도 “여기 팔당 라인 음식점들은 맛도 별로고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 주말에 교외로 나들이겸 이쪽으로 많이들 오시는데 우리 동네 분들은 팔당 쪽으로 거의 가질 않는다”며 “서비스도, 위생 상태도 추천드리고 싶지 않다”고 거들었다.

다만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양쪽 말 다 들어봐야 한다” “처음부터 두 분의 대화를 자세히 들어봐야 알 것 같다. 내용이 여기저기가 잘린 것 같다” “다짜고짜 사장님이 저렇게 반말했다면 지탄받아야 하지만 상식적으로 의자 하나 때문에 저렇게 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중립” “왜, 맘카페 글처럼 보일까?” “서론에 너무 감성적 서술이 중립의 이유가 된다” 등 중립 입장이거나 색안경을 낀 듯한 댓글도 등장했다.

반면, 양측 모두를 지적하는 댓글도 눈에 띈다.

회원 ‘낮엔OO’은 “공공장소서 의자에 다리 올리는 게 혼자 편하자고 주위 사람들에게 눈살 찌푸리게 할 수도 있고 사장 입장에선 의자뿐만 아니라 매장 분위기에 거슬릴 수도 있다”며 “문제를 안 만들려다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둘 다 좀 그렇다”고 지적했다.


B씨는 당일 가입자도 아닌 17년이나 된 회원으로 이른바 ‘당일 가입 논란’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하지만 “사과받고 싶다”며 자문을 구했던 그가 700개에 달하는 댓글에 단 한 줄의 대댓글도 달지 않은 점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B씨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C씨의 언행은 논란의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손님보다 나이가 많더라도 가족들 앞에서 반말로 모욕적인 언사를 했기 때문이다. 물론, B씨의 의자를 교체하는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회원은 “왜 발을 올려놔야 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간다. 팔걸이가 있어 못 올린다는 게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지만 면전에선 못 따지고 이러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며 “무슨 의도로 묻는지 알면서 당연하게 깁스해서 의자 필요하다고 요구하면 내가 사장이라도 열 오를 것 같은데 그 의자는 누가 닦느냐?”고 반문했다.

21일, <일요시사>는 B씨 주장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해당 업체에 연락을 취했지만 업주의 부재로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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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