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드림 인피니티 사이드미러’ 사건 후폭풍 일파만파

파손으로 400만원 수리·렌트비 요구 논란
해명글 올렸지만 번호판 훼손 등 점입가경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지난 29일, 인피니티 차량 차주가 사이드미러 수리비로 400만원 이상을 요구했다는 한 누리꾼의 호소글은 사건의 서막에 불과했다. 이미 해당 관련 글들은 추천 수 3000명, 300~500개 이상의 댓글들이 쇄도하며 전운을 예고하고 있다. 

이날 국내 최대 자동차 온라인 커뮤니티인 ‘보배드림’에는 ‘사이드미러 수리비 등 400 이상 요구급’이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 작성자 A씨는 “너무 속상해서 올린다. 집 앞에 앞 빌라 사람이 자기 집도 아니고 늘 저희 빌라 난간에 늘 주차한다”며 “아이가 학원 차량을 기다리다가 차 옆을 지나면서 실수로 차량 사이드미러를 건드린 것 같다”고 운을 뗐다.

A씨에 따르면 업무 중이라 10분 후에 전화를 받고 내려가보니 아이는 울고 있고 경황이 없어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 인피니티 차주 B씨는 아이 보험 가입 여부를 묻고 사이드미러 작동이 되지 않아 수비리 견적을 확인한 후 연락을 주겠다며 A씨의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A씨 아이는 병원을 가겠다고 했고 우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올라가 업무를 이어갔다. 업무 도중 B씨로부터 현금을 요구하는 문자메시지 연락이 왔는데 수리비, 도장비 등 100만원 이상을, 렌트비용 300만원 이상을 원했다고 한다.

두 아이의 엄마라는 A씨는 “면허도 없는 제가 처음 겪는 상황이라 너무 당황스럽다”며 “잘 모르는 부분이라 자꾸 현금 요구하고 연락오는 게 너무 당황스럽다”며 “겁이 나서 인근 지구대에 가서 말씀드리니 딱히 도움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구대 갔다가 나오는데 차주에게 전화가 왔다. 108만원은 부담될 테고 아이도 본 적 있으니 65만원으로 현금처리하자고 해서 보험사 담당자가 연락 기다린다고 양해를 구하겠다고 하니 렌트를 해야 한다고 했다”고 억울해했다.

그러면서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에 1억원 들어가 있는 건 본인 부담 20만원이라는데 보험 1억원이면 자부담 20만원 내고 나버지 수비리, 렌트비 다 부담해주는 건가요?”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A씨는 “차주는 현재 일을 쉬고 있고 사정이 좋지 않다면서 현금으로 빨리 처리해달라고 한다. 아이 실수는 제가 책임질 건데 처음 겪는 상황이라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고 답답해서 여쭙는다”고 호소했다.

수백개의 댓글이 달리고 인피니티 차주 B씨를 성토하는 댓글이 달리자 당사자는 이튿날인 지난 30일, ‘인피 차주입니다’라는 제목의 장문의 글을 올렸다.

B씨는 “어머님과 통화했고 수리비 400만원이라는 금액은 수리기간이 한달 정도라는 이야기를 듣고 수리비 108만원에 렌트비 계산해서 나온 금액을 말씀드렸던 것”이라며 “사이드미러 안 접혀도 되고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 되니 신경 안 쓰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고 해명에 나섰다.

이어 “저도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일상보험이 들어 있는데 저희 아이는 한도가 적어 현금처리가 낫겠다 싶어 말씀드렸던 것”이라며 “소통에 조금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수리비 받지 않기로 했고 놀라신 마음 위로한다고 되진 않겠지만 사과드렸다”고 고개를 숙였다.

아울러 “내용에 두서없지만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앞으론 더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겠다. 거듭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렇게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른바 ‘보배 성님’들로 불리는 회원들의 레이더망은 집요하다 못해 날카로웠다. 한 회원이 포털 사이트서 제공하는 지난해 7월 촬영된 로드뷰서 해당 차주의 주차돼있는 사진을 발견해 사이트에 올리면서 사건은 다른 국면을 맞기 시작했다.

해당 로드뷰 사진에 해당 차량의 사이드미러 중 운전석 쪽이 제대로 펴지지 않고 있은 채 주차돼있는 모습이 담겨있었던 것이다.

즉, 아이가 사이드미러를 쳐서 사이드미러가 파손된 게 아니라 원래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태인데 괜한 트집으로 아이를 울렸을 뿐만 아니라 수리비, 렌트비 등으로 아이 모친에게까지 정신적 스트레스를 안긴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B씨는 해당 글 하단에 “사이드미러가 고장 나서 수출단지에 있는 외국인에게 구매했는데 운전석 쪽 전동기어 상태가 좋지 못했다”며 “언제 고장 날지 모르는 상태였던 것 같다. 정말 죄송하다. 다신 이런 일 없게끔 정신 차리고 살겠다”고 내용을 추가했다.

이번엔 같은 날 A씨가 ‘사이드미러 차주님이 해명글 요구하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A씨는 “우선 보배드림님들께 감사드린다. 여러 말씀도 주시고 걱정도 해주시고 진심으로 정말 감사드린다”며 “불안한 마음에 경찰서 갔다가 짚 앞에서 차주님과 여자분 하고 마주쳤다”고 밝혔다.

그는 “글 내렸냐고 해명글 요구하셨는데 어제 현금처리 요구하셔서 아침에 입금드린다고 계좌번호 보내달라고 했다”며 “전화 받기 힘든 상황인데 전화해서 보배드림에 신상 털려서 연락 많이 와서 힘들다고 해서 차량번호는 지워 올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명글 요구하셨는데 왜곡되게 올리지 않았다. 차주님은 보험처리보다 현금처리가 더 싸니 현금을 요구하셨고 이 부분에 대해 억울해하시는데 저도 최대한 빨리 해드리겠다고 했다”며 “사정이 힘들어 보험 안 되면 죄송하지만 60만원으로 깎아주시면 안되겠느냐고 물으니 60만원을 달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오전에 계좌번호 여쭈니 전화하셔서 글 내려달라고 해명글 말씀하셨다. 곤란하신 상황에 대해 우선 차주님께 죄송하다. 제 입장에선 어제 무섭다고 아이가 너무 많이 울고 처음 겪는 상황이라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글을 올렸다”고 밝혔다.

아울러 “제가 내려가기까지 10분~15분 넘는 시간 동안 그렇게 (아이가)서서 울고 있는 걸... 그래도 아이가 잘못한 부분에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빨리 해결해드리려고 했다”며 “자꾸 전화 주시고 문자로 해명글 요구하시고 글 내리라고 하시는데 연락 그만 주셨으면 좋겠다. 이제 와이프라는 분까지 전화 주셔서 아이 이름 대시며 OO 어머님 글 내리라고 남편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시는데 연락 그만 주세요”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A씨는 그 증거로 전날 B씨와 나눴던 대화 내용을 녹음한 상태라며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그제서야 B씨는 이날 오후 ‘죄송합니다... 인피니티 차주입니다’라는 제목을 통해 “정말 죄송하다. 아이와 아이 어머님 정신적으로 힘들어하셨을 부분을 헤아리지 못하고 제 입장만 말씀드린 것 같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처음 글이 올라왔을 때 제 이야기가 아닌 아이와 아이 어머님께 사과를 드렸어야 하는 부분이었는데 제가 생각이 짧았다”며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리 요청한 점, 정말 죄송하다. 아이 어머니께도 사과드리겠다”고 잘못을 시인했다.

이어 “수리비에 대한 부분은 제가 설명을 잘못 드린 부분이었다. 제 딴엔 조심스럽게 드린다는 말씀이 어머니께 심적으로 많이 걱정되셨을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정말 생각이 짧았다. 양심적이지 못했던 부분들 사죄드린다. 정말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B씨는 “아이와 아이 어머님께는 어떠한 위협도 협박도, 강제도 하지 않았다는 것만 알아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 다시 한번 거듭 죄송하다”고 말했다.

B씨의 사과글이 게재됐지만 보배 회원들은 “아이 어머님의 후기글이 올라오면 그때 인정하겠다” “많이 늦었네” “너무 늦은 것 같다. 횽(형)들이 시동 걸어버린 것 같다. 이미 엑셀 밟아버린 듯싶다”며 부정적인 댓글을 달았다.

그러면서 “아이 어머님과 통화해 만나 뵙고 사죄드리려고 통화 연결했으나 전화가 넘어가는 관계로 우선 문자를 남겨놨다. 꼭 찾아뵙고 사죄드리겠다”며 “일시적인 회피가 아닌 정말 진심어린 사과를 드리고 싶다. 많은 분들게 혼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며 A씨와 나눴던 문자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A씨 아이의 이름이 고스란히 노출돼 다시 논란이 일기도 했다.

B씨의 사과글이 올라왔지만 여전히 비난 댓글이 쏟아지는 가운데 A씨가 ‘인피 사이드미러 글 올린 아이 엄마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차주님, 연락 더 안주셨으면 한다. 분명히 말씀드렸다. 전화, 문자하지 말고 아내분도 연락주지 말라”고 경고했다.

A씨는 B씨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대화 내용을 캡쳐한 이미지와 함께 “차주님 말씀과 제게 하신 말씀과 다소 다른 부분이 있고 억울해하셔서 그중 일부 토씨 하나 안 빼고 몇 자 적는다”며 “내려오라고 했을 때 만난 18분 대화 내용 중 차주님 말씀하신 일부”라고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아래는 지난 29일, B씨의 발언 내용이다.

렌트도 알아보셨어요? 한도가 혹시 얼만지 아세요? 렌트가 금액이 좀 많이 나가요. 하루에 15만원씩인데 30일이면... 그러면 제가 아까 이제 업체에 통화를 했는데 일단 수리비가 108만원에, 렌트가 일단 거의 한 20일 정도 들어가는데 300조금 안되게 나오실 거에요.

그러면 다 해서 거의 408만원 정도. 렌트가 안 되시면 그냥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그냥 차라리 그냥 65만원만 저 주시고… 제가 여유로운 편은 아니어서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저기 깜빡이 불 들어오는데 일반 순정에는 저런 게 없어요.

일단 수동으로는 잡히기는 해요. 덜렁덜렁 하기는 한데 그거는 괜찮은데, 그래서 차라리 렌트다 뭐다, 일단 어차피 할증 금액이 있잖아요.

차라리, 그럴 바에는 그냥 현금처리하시는 게 더 낫지 않나 해서 제가 알맹이만 좀 구해보려고 했는데, 이게 지금 일본 현지에는 부품이…수입차여도 상관이 없기는 한데 이게 한국에 몇 대 안 들어와서 그래서 이제 원산지는 일본인데 미국에 부품이 많은 거 같더라고요.

그 쪽에 좀 차가 많이 나가서 미국서 건너와서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린다고. 6개월 정도 걸리는데 대신에 마음은 좀 편하시겠죠. 금액적으로 아무래도. 아이가 많이 무서워하더라구요.

A씨는 “보배드림 글 올리고 상황 알고 나니까 정말 엄청 화가 난다. 그래서 경찰 부른다는 걸 만류하신 거냐”며 “차주님 식사는 하셨죠? 저는 우는 아니 달래느라 한숨도 못자고 아이 재우고 속상해서 울고 어제 오늘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니고 전화하고... 골이 울리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지금까지 공복”이라고 하소연했다.

아울러 “앞으로 연락하지 마세요. 저희 아이들도 건드리지 마세요. 아는 척도 하지 마세요”라고 글을 맺었다.

해당 사건은 보배드림 ‘교통사고/블박’ 게시판에 31일 오후 3시 현재 ▲전쟁 시작 인피니티 ▲사이드미러 수리비 등 400 이상 요구급 ▲사이드미러 차주님이 해명글 요구하세요 ▲인피니티 사이드미러 ▲성지순례 다녀왔습니다 등 관련글로 베스트 글에 올라 있다.

이번 인피니티 차주 사건의 글마다 댓글이 300~500개 이상 달리면서 점입가경 양상을 띠고 있다.

한 회원은 ‘인피니티야 배틀을 신청한다’는 글을 통해 “15년 된 썩차 인피니티다. 내껀 조수석이 아직 났다. 그래도 운전석은 멀쩡하다”며 “도색하면 쓸만할 거다. 배틀을 신청한다. 이긴 놈이 양쪽 다 갖는 거다. 덤벼라”고 제안했다. 해당 글에는 1327명이 추천으로 응원했고 댓글도 160개 이상이 달려 있다.

이번 논란이 차주의 해명글이 올라오고 있는 상황에서도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는 이유는 이미 고장 나있던 사이드미러로 수리비 및 아이 및 아이 부모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줬다는 점 외에도 해명글이 피해자가 원하는 것과는 달리 변명으로 일관했을 뿐만 아니라 사과의 대상도 피해자인 아이 부모가 아닌 보배 회원들에게로 향했다는 점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차주가 불법으로 번호판 숫자(번호판 불법훼손)를 변경했던 정황마저 드러났다.

한 회원이 해당 차량의 번호판을 조회했는데 인피니티 차량이 아닌 스타렉스 차량으로 조회되면서 또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원래의 번호판 숫자가 ‘1’인데 검은색으로 덧칠해 ‘7’자로 임의로 변경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현행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번호판 훼손 단속 시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보배 네임드로 통한다는 한 회원은 ‘국민신문고 안 통하면 비장의 카드 대기 중...’이라는 글을 통해 “금융감독원 에 보험사기로 민원 신고하겠다. 추정이긴 하지만 어린 아이랑 어머니한테 협박한 거 생각하면 충분히 뒤가 구린 것으로 판명되기 때문에 5년 치 미수선 조사 해달라고 하려 한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는 “물론 인피니티(차주)가 제대로 사과하고 아이도 건드리지 않겠다고 하면 신고할 생각이 없긴 하다”며 “끝까지 해보겠다고 하면 이 카드도 대기 중이라는 거 아셨으면 한다”고 경고했다.

한 보배 회원에 따르면 현재 해당 차량은 11건의 주정차위반 과태료가 물려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B씨는 차량을 처분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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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