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GOP 사망’ 이병 부친 “사고 내용 그대로 밝혀라”

유족 제기 익명 제보 “신빙성 없다”더니…
현장검증 후 브리핑서 돌연 ‘총기오발사고’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극단적 선택’으로 언론에 보도됐던 강원도 인제 소재의 육군 12사단 GOP(일반전초) 이병 총상 사망사고가 ‘은폐 의혹’의 새 국면을 맞고 있다.

A 이병의 부친은 지난 12일, 부대 현장검증 후 브리핑에서 귀를 의심할만한 말을 들었다. 그는 23일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사고 초기에는 원인 불상이라고 했는데 부대 수사대장이 랜턴을 줍다가 발생한 총기오발사고라며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군은 사고 당시 현장을 찾았던 하사관으로부 랜턴을 줍다가 총기오발사고가 났다는 최초 보고를 받고서도 언론에는 극단적 선택이라고 했다가 이후 언론 취재가 들어가자 슬쩍 말을 바꿨다.

이날 부친은 “최초 상황보고 때 ‘우의를 착용한 상태서 랜턴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가 총기오발사고가 발생했다’고 하사관에게 보고한 것으로 돼있다“며 ”왜 갑자기 군에서 원인 불상으로 발표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대 브리핑에 따르면 지역 특성상 기온이 낮은 데다 비까지 내려 쌀쌀했던 사고 당일, 선임이었던 일병은 초소 안에서, A 이병은 판쵸 우의 차림으로 초소 밖에서 근무를 섰다. 추웠던 탓에 문을 닫고 북쪽을 응시하며 경계근무 중이던 일병은 밖에서 쇠 마찰음 소리가 들려 문을 열었는데 A 이병이 난간에 서서 총구를 가슴 쪽으로 겨누고 있었다.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격발을 제지하지 못했고 총상으로 쓰러진 A 이병에게 다가가 심폐소생술을 5회 실시했다. 이때 소요된 시간이 15초가량이었으며 이는 일병이 CCTV에서 잠시 사라졌던 시간과 일치한다. 당시 A 이병의 K2 소총은 오른쪽에 놓여 있었다.


그는 심폐소생술 후 맥을 짚어봤지만 맥박이 뛰지 않자 초소 전화로 바로 상황보고를 했다.

이후 부대 하사관이 해당 초소를 찾아 현장 파악 후 총기오발사고가 발생했다고 최초 보고했다. 그는 일병의 증언과는 다르게 총기가 고인의 몸 위에 올려져 있었다고 했다.

보고를 받고 현장을 찾은 부대 선임하사는 당시 K2 총기는 탄창이 분리된 상황이었고 탄창에는 13발이 남아있었다고 증언했다. 총 15발을 지급하는데 한 발만 발사됐으니 나머지 한 발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는 일병과 함께 주변을 수색한 끝에 실탄 1발을 찾아냈다.

문제는 해당 실탄을 현장 그대로 보관하지 않고 탄창에 집어넣었다는 부분이다. 당시 선임하사가 왜 주변에 떨어져 있던 실탄을 탄창에 넣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사건사고 현장은 보존이 원칙인 만큼 훼손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부친은 “왜 임의로 사건현장의 증거들을 마음대로 조치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군이 자꾸 이번 사고를 숨기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K2 소총에 유탄발사기까지 장착돼있는 총기에서 발사됐는데 (총기가)아들 옆이나 가슴 위에 놓여 있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아마 격발 반동으로 인해 총기는 초소 밖으로 튕겨져 나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총기 위치에 대해서도 “(A 이병의)오른쪽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는 일병 증언과 “(A 이병의)가슴 위에 놓여있었다”는 하사관의 증언이 엇갈리고 있다. 접고 펼 수 있게 돼있는 총기 개머리판에 대한 부분도 병사마다 “접혀 있었다” “펴져 있었다” 등 다른 증언이 나왔다.

그는 “아무래도 부대서 사건을 조작하거나 은폐하려고 하는 것 같다”며 “있는 그대로 밝혀달라. 억지로 만들려 하지 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함께 경계근무를 섰던 일병이나 하사관 최초 보고 내용 등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지적이었다.


그에 따르면 이날 ‘왜 갑자기 부대 입장이 바뀌었느냐’고 물음에 수사대장은 ‘하사관이 잘못 보고했다’ ‘잘못 들었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 14일, 부친은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11월28일 총상 사망한 이병 아빠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같이 근무했던 병사의 재현도 의혹투성이에 모든 재현 상황이 모순덩어리였다”며 “재현으로 일말의 의혹이라도 풀릴까 기대했지만 분노만 더 커진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이걸 제게 믿으라고 말할 게 아니라 군부대나 수사 관계자분 자신의 일이라면 수긍할지 궁금하다”며 “조금의 차이로 모든 게 바뀌는데 K2 개머리판 접힌 것과 펴진 것의 차이를 모르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모든 검증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고 부대 측의 병사 관리도 엉망인 체 뭘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이번 검증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군대는 안 변한다. 감추고 숨기기 급급한 집단으로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떻게 그리 똑같은지…”라며 “오늘은 제가 울고 있지만 내일은 여러분 일이 될 수도 있기에 바쁜 시간이지만 관심을 바란다”고 맺었다.

지난 5일, <일요시사>는 강원도 인제 육군 12사단 GOP서 발생했던 A 이병의 총상사고에서 극단적 선택의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부친은 인터뷰서 “수사기관이 고인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한 결과 극단적 선택이 의심되는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사고 후 사흘 째인 지난 1일, 경계근무 중 랜턴을 떨어뜨려 주우려다가 총상 사고가 났을지도 모른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제보는 총기사고가 발생했던 해당 초소의 정확한 명칭과 층수까지 명시했던 만큼 신빙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고도 설명했다.

총기오발사고일 것이라는 익명의 제보가 정확히 맞았던 셈이다.

이날 부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총상으로 사망했다는 것 외에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밝힐 수 있는 게 없다”고 강조했다.

해당 사건이 최초로 언론에 보도된 것은 사고 발생 당일이었던 지난달 28일, <강원일보>의 ‘강원 인제 부대서 이병, 총상 입은 채 사망…극단적 선택 추정’ 제목의 기사였다. 당시 매체는 강원지역 육군 전방부대서 병사 1명이 총상을 입은 채 숨져 군 당국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후 다수의 매체들은 ‘극단 선택’을 암시하는 제목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군은 지난 12일, 수사관과 함께 부친을 대동해 해당 GOP 초소서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통상 현장검증은 사고 당일에 인근에 있었던 병사 등 최소한의 인력으로 진행하기 마련이지만 이날 20명이 넘는 대인원이 투입됐다. 필요 이상의 인력들이 좁디좁은 초소에 밀집되다 보니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는 “담당 변호사를 통해 부대 측에 사건 현장검증을 다시 하자고 요청해둔 상태”라며 “한 번 하더라도 제대로 정확하게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부대 입장이 돌연 바뀐 부분에 대해선 “군대가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수학공식처럼 복잡한 내용을 보고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원인 불상과 총기오발사고는 전혀 다른 사안이고 사람이 죽었다. 단순히 ‘잘못 들었다’는 해명을 어느 부모가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단순 총기오발사고를 부대서 최대한 책임지려고 하지 않기 위해 처음엔 원인 불상으로 입을 맞췄다가 관계자들의 증언이 나오면서 스텝이 꼬이면서 입장을 바꾼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병사들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고 있고 민간 경찰도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긴 싸움이 될 것 같지만 끝까지 가보겠다”고 덧붙였다.

검찰 부검 결과 총탄은 고인의 왼쪽 가슴 쪽으로 수평 발사돼 심장과 대동맥을 관통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각에선 부대에 투입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이병을 일병과 함께 투입시켰던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일병이 아닌 최소한 선임급인 상병이 투입됐어야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민간인통제구역이고 북한과 인접해있는 경계근무지 특성상 반드시 ‘투입 전 평가’ 및 총기 확인을 실시하게 돼있는데 이조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해당 GOP서 복무했다고 밝힌 한 인사는 “실탄을 장전해 투입되는 경계근무 특성상 투입 전에 반드시 총기 안전검사를 수행한다”며 “이 과정에서 ‘조정간 안전’, 격발 방지를 위한 ‘안전목’, 탄알 분실 방지를 위한 탄알집 분실방지 캡 착용 상태를 상황간부가 반드시 직접 확인하도록 돼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이처럼 정상적으로 투입됐다면 절대로 실수로 총을 떨어뜨리거나 조정간이 단발로 돌려져 오발사고가 날 수 없다”며 “근무자가 임의로 총기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거나 총을 난간에 걸치는 행위 등도 엄연히 못하게 돼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고인이 재학 중이었던 한국외대 학생들은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유가족과 함께 이번 인제 GOP 사망사고에 대해 사건 경위 및 원인을 소상히 밝혀 달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 사건은 단순히 A 이병만의 일이 아닌 한국외대생의 일, 나아가 우리 모두의 일이기에 국방부는 유가족에게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소명하고 청춘을 깎다 사망한 국가의 아들을 제대로 대우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haewoong@ilyosisa.co.kr>

 



배너

관련기사

78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