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GOP 사망’ 이병 부친 “사고 내용 그대로 밝혀라”

유족 제기 익명 제보 “신빙성 없다”더니…
현장검증 후 브리핑서 돌연 ‘총기오발사고’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극단적 선택’으로 언론에 보도됐던 강원도 인제 소재의 육군 12사단 GOP(일반전초) 이병 총상 사망사고가 ‘은폐 의혹’의 새 국면을 맞고 있다.

A 이병의 부친은 지난 12일, 부대 현장검증 후 브리핑에서 귀를 의심할만한 말을 들었다. 그는 23일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사고 초기에는 원인 불상이라고 했는데 부대 수사대장이 랜턴을 줍다가 발생한 총기오발사고라며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군은 사고 당시 현장을 찾았던 하사관으로부 랜턴을 줍다가 총기오발사고가 났다는 최초 보고를 받고서도 언론에는 극단적 선택이라고 했다가 이후 언론 취재가 들어가자 슬쩍 말을 바꿨다.

이날 부친은 “최초 상황보고 때 ‘우의를 착용한 상태서 랜턴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가 총기오발사고가 발생했다’고 하사관에게 보고한 것으로 돼있다“며 ”왜 갑자기 군에서 원인 불상으로 발표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대 브리핑에 따르면 지역 특성상 기온이 낮은 데다 비까지 내려 쌀쌀했던 사고 당일, 선임이었던 일병은 초소 안에서, A 이병은 판쵸 우의 차림으로 초소 밖에서 근무를 섰다. 추웠던 탓에 문을 닫고 북쪽을 응시하며 경계근무 중이던 일병은 밖에서 쇠 마찰음 소리가 들려 문을 열었는데 A 이병이 난간에 서서 총구를 가슴 쪽으로 겨누고 있었다.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격발을 제지하지 못했고 총상으로 쓰러진 A 이병에게 다가가 심폐소생술을 5회 실시했다. 이때 소요된 시간이 15초가량이었으며 이는 일병이 CCTV에서 잠시 사라졌던 시간과 일치한다. 당시 A 이병의 K2 소총은 오른쪽에 놓여 있었다.


그는 심폐소생술 후 맥을 짚어봤지만 맥박이 뛰지 않자 초소 전화로 바로 상황보고를 했다.

이후 부대 하사관이 해당 초소를 찾아 현장 파악 후 총기오발사고가 발생했다고 최초 보고했다. 그는 일병의 증언과는 다르게 총기가 고인의 몸 위에 올려져 있었다고 했다.

보고를 받고 현장을 찾은 부대 선임하사는 당시 K2 총기는 탄창이 분리된 상황이었고 탄창에는 13발이 남아있었다고 증언했다. 총 15발을 지급하는데 한 발만 발사됐으니 나머지 한 발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는 일병과 함께 주변을 수색한 끝에 실탄 1발을 찾아냈다.

문제는 해당 실탄을 현장 그대로 보관하지 않고 탄창에 집어넣었다는 부분이다. 당시 선임하사가 왜 주변에 떨어져 있던 실탄을 탄창에 넣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사건사고 현장은 보존이 원칙인 만큼 훼손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부친은 “왜 임의로 사건현장의 증거들을 마음대로 조치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군이 자꾸 이번 사고를 숨기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K2 소총에 유탄발사기까지 장착돼있는 총기에서 발사됐는데 (총기가)아들 옆이나 가슴 위에 놓여 있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아마 격발 반동으로 인해 총기는 초소 밖으로 튕겨져 나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총기 위치에 대해서도 “(A 이병의)오른쪽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는 일병 증언과 “(A 이병의)가슴 위에 놓여있었다”는 하사관의 증언이 엇갈리고 있다. 접고 펼 수 있게 돼있는 총기 개머리판에 대한 부분도 병사마다 “접혀 있었다” “펴져 있었다” 등 다른 증언이 나왔다.

그는 “아무래도 부대서 사건을 조작하거나 은폐하려고 하는 것 같다”며 “있는 그대로 밝혀달라. 억지로 만들려 하지 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함께 경계근무를 섰던 일병이나 하사관 최초 보고 내용 등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지적이었다.


그에 따르면 이날 ‘왜 갑자기 부대 입장이 바뀌었느냐’고 물음에 수사대장은 ‘하사관이 잘못 보고했다’ ‘잘못 들었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 14일, 부친은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11월28일 총상 사망한 이병 아빠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같이 근무했던 병사의 재현도 의혹투성이에 모든 재현 상황이 모순덩어리였다”며 “재현으로 일말의 의혹이라도 풀릴까 기대했지만 분노만 더 커진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이걸 제게 믿으라고 말할 게 아니라 군부대나 수사 관계자분 자신의 일이라면 수긍할지 궁금하다”며 “조금의 차이로 모든 게 바뀌는데 K2 개머리판 접힌 것과 펴진 것의 차이를 모르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모든 검증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고 부대 측의 병사 관리도 엉망인 체 뭘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이번 검증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군대는 안 변한다. 감추고 숨기기 급급한 집단으로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떻게 그리 똑같은지…”라며 “오늘은 제가 울고 있지만 내일은 여러분 일이 될 수도 있기에 바쁜 시간이지만 관심을 바란다”고 맺었다.

지난 5일, <일요시사>는 강원도 인제 육군 12사단 GOP서 발생했던 A 이병의 총상사고에서 극단적 선택의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부친은 인터뷰서 “수사기관이 고인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한 결과 극단적 선택이 의심되는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사고 후 사흘 째인 지난 1일, 경계근무 중 랜턴을 떨어뜨려 주우려다가 총상 사고가 났을지도 모른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제보는 총기사고가 발생했던 해당 초소의 정확한 명칭과 층수까지 명시했던 만큼 신빙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고도 설명했다.

총기오발사고일 것이라는 익명의 제보가 정확히 맞았던 셈이다.

이날 부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총상으로 사망했다는 것 외에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밝힐 수 있는 게 없다”고 강조했다.

해당 사건이 최초로 언론에 보도된 것은 사고 발생 당일이었던 지난달 28일, <강원일보>의 ‘강원 인제 부대서 이병, 총상 입은 채 사망…극단적 선택 추정’ 제목의 기사였다. 당시 매체는 강원지역 육군 전방부대서 병사 1명이 총상을 입은 채 숨져 군 당국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후 다수의 매체들은 ‘극단 선택’을 암시하는 제목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군은 지난 12일, 수사관과 함께 부친을 대동해 해당 GOP 초소서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통상 현장검증은 사고 당일에 인근에 있었던 병사 등 최소한의 인력으로 진행하기 마련이지만 이날 20명이 넘는 대인원이 투입됐다. 필요 이상의 인력들이 좁디좁은 초소에 밀집되다 보니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는 “담당 변호사를 통해 부대 측에 사건 현장검증을 다시 하자고 요청해둔 상태”라며 “한 번 하더라도 제대로 정확하게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부대 입장이 돌연 바뀐 부분에 대해선 “군대가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수학공식처럼 복잡한 내용을 보고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원인 불상과 총기오발사고는 전혀 다른 사안이고 사람이 죽었다. 단순히 ‘잘못 들었다’는 해명을 어느 부모가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단순 총기오발사고를 부대서 최대한 책임지려고 하지 않기 위해 처음엔 원인 불상으로 입을 맞췄다가 관계자들의 증언이 나오면서 스텝이 꼬이면서 입장을 바꾼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병사들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고 있고 민간 경찰도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긴 싸움이 될 것 같지만 끝까지 가보겠다”고 덧붙였다.

검찰 부검 결과 총탄은 고인의 왼쪽 가슴 쪽으로 수평 발사돼 심장과 대동맥을 관통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각에선 부대에 투입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이병을 일병과 함께 투입시켰던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일병이 아닌 최소한 선임급인 상병이 투입됐어야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민간인통제구역이고 북한과 인접해있는 경계근무지 특성상 반드시 ‘투입 전 평가’ 및 총기 확인을 실시하게 돼있는데 이조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해당 GOP서 복무했다고 밝힌 한 인사는 “실탄을 장전해 투입되는 경계근무 특성상 투입 전에 반드시 총기 안전검사를 수행한다”며 “이 과정에서 ‘조정간 안전’, 격발 방지를 위한 ‘안전목’, 탄알 분실 방지를 위한 탄알집 분실방지 캡 착용 상태를 상황간부가 반드시 직접 확인하도록 돼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이처럼 정상적으로 투입됐다면 절대로 실수로 총을 떨어뜨리거나 조정간이 단발로 돌려져 오발사고가 날 수 없다”며 “근무자가 임의로 총기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거나 총을 난간에 걸치는 행위 등도 엄연히 못하게 돼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고인이 재학 중이었던 한국외대 학생들은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유가족과 함께 이번 인제 GOP 사망사고에 대해 사건 경위 및 원인을 소상히 밝혀 달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 사건은 단순히 A 이병만의 일이 아닌 한국외대생의 일, 나아가 우리 모두의 일이기에 국방부는 유가족에게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소명하고 청춘을 깎다 사망한 국가의 아들을 제대로 대우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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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