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으로 튄 흉악범 6인 추적> <단독> ‘김미영 팀장’ 동반 탈옥 비쿠탄 마약왕 풀스토리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5.24 16:03:31
  • 호수 14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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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잡으면 큰일 나는 ‘박왕열 동생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김미영 팀장’으로 불린 보이스피싱 총책 박모씨와 함께 필리핀 구치소서 탈옥한 조직원들의 실체가 드러났다.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서 처음 만난 이들은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조직을 꾸렸다. ‘비쿠탄 마약왕’으로 알려진 송모씨는 2022년 수원서 필로폰을 소지한 채 붙잡힌 김모씨의 상선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 8일 본지가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를 최초 보도한 이후, 외교부 측은 루카스 베르사민 필리핀 대통령비서실장에게 “탈옥한 이들에 대한 조속한 검거와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달라”는 공적 서한을 전달했다. 현재 박씨에 대한 검거 작전은 필리핀 이민청 도피사범추적팀과 필리핀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 경찰 부서)가 협력하고 있다.

새벽 탈출
어디로 갔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약 2년 전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된 이들은 지난해 11월 필리핀 나가시(市) 카마린스 수르 주 구치소로 이감됐다. 3명 모두 불법 고용과 인신매매 혐의 등으로 기소되면서다. 복수의 제보자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일에서 2일 새벽 사이 미리 준비한 오토바이와 차량을 이용해 탈옥했다.

필리핀 교정 당국은 지난 2일, 인원 점검 때 박씨 일당이 탈옥한 것을 뒤늦게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교도소에 CCTV가 설치돼있지 않아 탈옥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일부 훼손된 철조망을 찾아냈다고 한국 정부에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카마린스 수르 구치소에 대해 현지 제보자는 “담장이 낮고, 보초도 허술해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기에 탈옥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라며 “그들은 비쿠탄 교도소보다 허술하다는 점을 노리고 변호사를 통해 가짜 범죄를 만들어 이감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탈옥한 일당이 도피하는 동안에도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2012년부터 필리핀 현지에 콜센터를 차린 보이스피싱 1세대다. ‘김미영 팀장’이라고 소개하며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금융기관을 사칭해 개인정보를 빼냈다. 박씨가 보이스피싱으로 가로챈 금액만 4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8년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서 근무하다가 수뢰 혐의로 해임된 경찰 출신으로 드러나면서 더욱 충격을 안겼다. 경찰 근무 당시 접했던 범죄 수법을 토대로 ‘김미영 팀장’ 사기 수법을 고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10년간 보이스피싱 조직을 운영해 온 박씨는 2021년 10월6일 마닐라 인근서 붙잡혔다. 당시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이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붙잡힌 박씨는 “필리핀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국내 송환을 피하고 상대적으로 보안이 취약한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되기 위한 노림수였다.

비쿠탄 교도소 출신 제보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박씨는)비쿠탄 내에서 식사를 판매하는 아저씨로 통했다”며 “박씨가 송씨, 신씨와 어울리면서부터 교도소 내에 마트를 인수해 장사할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증언했다.

보이스피싱과 결합한 마약 유통
대포폰으로 텔레그램 마약방 개설 


비쿠탄 교도소는 식사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죄수들이 직접 돈을 벌거나 영치금을 통해 생계를 이어간다. 죄수들은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조직을 꾸려 보이스피싱, 대포폰, 마약 유통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 최근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 신씨가 비쿠탄 교도소 내에서 동업을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와 신씨에 대한 새로운 증언들도 쏟아졌다. 제보자에 따르면, 신씨는 타인 명의로 개통한 유심칩을 판매하는 역할을 맡았다. 신씨는 불법 유심칩 1개당 한국 돈 약 25만원을 받고 팔았다. 신씨에게 산 대포 유심칩으로 신분을 철저히 숨길 수 있게 된 송씨는 텔레그램으로 마약 전달책을 모집하고 유통하는 이른바 ‘마약방’을 개설했다. 

평소 신씨가 재테크 사기, 주식 및 코인 리딩방 등을 운영해오면서 모은 수천명의 회원들은 송씨가 운영하는 마약방으로 초대됐다고 한다. 송씨는 채팅방서 ‘두목’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다. 또 박씨는 신씨의 도움을 받아 수억원가량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비쿠탄 교도소 출신 제보자는 “마약과 거리가 멀었던 박씨가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을 함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송씨가 필리핀 파사이 등에 있는 마약 공급책을 통해 한 달에 5kg 정도의 필로폰 유통을 지시했다”며 “송씨는 비쿠탄서 만난 중국 마피아로부터 싸게 구입한 필로폰 등을 드라퍼(전달책)에게 전달해 한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송씨가 드라퍼에게 준 배달료는 한화 약 1000만원가량으로 전해진다. 

“한국 싫어”
가짜 범죄

다수의 전달책이 송씨의 필로폰 배달을 시도한 정황은 곳곳서 드러났다. 송씨가 고용한 운반책은 2022년 1월25일, 수원의 한 모텔서 필로폰을 소지하다가 붙잡힌 김모씨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당시 수원중부경찰서는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30대 남성 김씨를 긴급체포했다. 김씨는 이날 오전 8시7분께 장안구 영화동의 한 모텔서 필로폰을 소지했다. 앞서 ‘한 남성이 모텔서 마약을 소지하고 있다’는 신고를 접수받은 경찰은 현장으로 출동했다.

경찰은 모텔 안에서 필로폰이 포장된 비닐백 30개를 발견하고 이를 압수 조치했다. 또 김씨를 상대로 진행한 마약 간이 검사서 양성반응을 확인했다. 

경찰조사에서 김씨는 투약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텔레그램으로 필로폰 거래를 지시한 ‘orjinal8282’가 상선이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거짓으로 진술했다.

경찰에 따르면, orjinal8282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자가 김씨에게 “수원으로 가서 모텔을 잡고 기다려라”며 “사탕(엑스터시) 50, 어름(필로폰) 50 좀 있다가 드랍해서 갖고 있어”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송씨와 비쿠탄 교도소서 함께 지냈던 제보자는 “orjinal8282는 송씨의 아이디”라며 “김씨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던 마약방 회원들은 송씨가 김씨의 고용주(상선)이었다고 적었다”며 텔레그램 채팅방 사진을 전했다. 


송씨가 넘긴 마약을 유통하려고 한 사람은 또 있었다. 지난해 1월23일, 충남 서산서 아내를 살해하고 저수지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강주천이다. 그는 한국 경찰의 공조 요청으로 필리핀서 검거됐으나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강주천은 지난해 6월 비쿠탄 수용소서 탈옥했다가 8일 만에 체포됐다. 탈옥 후 체포 당시 1kg의 필로폰을 소지하고 있었다. 강주천은 도피 자금을 벌기 위해 송씨의 지시를 받아 필로폰 배달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밥 먹듯…
탈옥 시도

비쿠탄 관계자들은 이른바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이 큰돈을 벌자, 박씨와 송씨 일당도 마약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봤다. 지난해 중순 박왕열은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서 “이젠 나보다 송씨가 마약왕에 가깝다”며 “한국으로 보내는 양이 내가 보낸 것보다 많다”고 말했다.

앞서 박왕열은 2016년 10월 필리핀 한 사탕수수밭서 한국인 3명을 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의 범인이다. 이 사건은 드라마 <카지노>를 통해 유명해졌다. 그는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에 구금됐다가 2017년 3월 탈옥해 두 달 만에 잡혔다. 2019년 10월에는 재판을 받고 구치소로 돌아가던 중 재차 도주해 2020년 10월 다시 검거됐다.

박왕열은 이 기간에 마약왕 전세계로 거듭났다. 국내 마약 유통·판매 총책이었던 ‘바티칸 킹덤’ 이모씨에게 수억 원대의 마약을 공급했다. 이는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 등에게 팔렸다. 


박왕열의 옥중 마약 유통 의혹은 이미 경찰 수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4월12일, 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A씨 등 3명을 국내 중간 판매책에게 마약류를 판매한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유통책 중 한 명은 2022년 12월 NBP서 박왕열을 만나 국내로 밀반입해 보관 중인 마약류를 판매키로 공모하고, 지난해 1월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이용해 특정한 장소에 마약을 놓고 사라지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엑스터시 100정, 필로폰 10g을 국내 중간 판매책들에게 600만원(도매가)을 받고 공급했다.

그동안 경찰은 박씨 일당 등 한국인 범죄자의 강제송환을 추진했으나 지지부진한 상태다. 박씨 일당은 필리핀서 죄를 짓고 형을 받으면 국내 송환이 지연된다는 점을 노렸기 때문이다. 경찰은 현재 박씨에게 적용된 혐의 중 인신매매는 허위로 만들어낸 범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수원 모텔서 잡힌 전달책 상선”
박왕열 “이젠 송씨가 마약왕”

박씨가 쓴 꼼수는 이미 필리핀 도피 사범들 사이에 만연하다. 현재 필리핀 도피 사범은 5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송환을 거부하는 범죄자들은 필리핀 현지 변호사를 통해 ‘가짜 범죄’를 만든다. 비용은 한국 돈으로 많게는 3000만원서 적게는 100만원 정도가 든다.

제보자에 따르면 “가짜 케이스를 만드는 건 흔한 일”이라며 “강간, 사기, 폭행 정도의 가짜 범죄를 만들어 재판에 출석하면서 국내 송환을 계속 미루는 것”이라고 전했다.

박씨가 국내로 송환될 경우, 최소 징역 15년서 25년 이상 집행될 수 있다. 지난해 6월 재판부는 2012년 3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중국과 필리핀서 보이스피싱 총책으로 활동하며 피해자 435명에게 26억여원을 가로챈 B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송씨의 경우, 마약을 수출입·제조·매매하거나 매매를 알선 또는 그럴 목적으로 소지·소유한 것에 대한 처벌이 가해진다. 해당 혐의가 인정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며, 영리 목적 또는 상습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될 경우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까지 내려질 수 있다.

필리핀 당국과 한국 정부도 탈옥범들을 추적 중인 가운데, 현지 법 적용을 고려하면 다시 붙잡히더라도 국내 송환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필리핀서 저지른 다른 범죄의 조사와 재판이 끝나지 않아 한국으로 송환되려면 최소 6년이 걸린다.

특히, 탈옥 행위로 현지 법을 중대하게 위반한 만큼 현지서 징역형을 선고받을 가능성도 크다.

송씨와 박씨에 관한 국내 송환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필리핀서 장기간 수용 생활을 하는 한국인을 국내로 이송하면 좋으나, 현재 수용자 이송 조약은 체결돼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는 “송환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인물의 이송 요청을 지속하고 있다”며 “필리핀 이민국과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라고 밝혔다. 법무부의 이 같은 입장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시간이 가는 동안 이송 조약조차 체결하지 못한 점은 한국 정부의 소극 행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부가 보이스피싱 혐의가 아닌 마약 유통 혐의로 송환을 적극적으로 요청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필리핀 정부가 ‘재량’을 근거로 거절할 가능성도 있으나 법무부는 이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머나먼
국내 송환

이상화 주필리핀대사는 지난 14일 오전과 오후에 각각 필리핀 외교부 차관과 법무부 차관을 만나 박씨에 대한 조속한 검거와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요구했다.

한편, 박씨 일당 외에 인질강도 혐의로 수배돼있던 한 남성도 최근 현지 교도소를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필리핀 현지 경찰이 쫓고 있는 한국 국적의 수배범만 박씨 일당을 포함해 6명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수배범들은 대부분 사기 혐의로 수배가 걸려 있었다. 이 중에는 10건 이상 수배가 걸린 수배범들도 있었다. 그만큼 교정시설 보안이 취약하다는 뜻이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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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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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