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수사기관의 마약 수사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9월까지 잡힌 마약사범만 2만명을 넘었다. 검경은 ‘특진’을 내걸면서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승진에 몰입하다 보니 사달이 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적’에 목숨 건 일부 경찰과 검사들로 인해 희생자가 생기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경찰의 특진 비율은 전년보다 2배로 늘어났다. 지난해 윤석열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수사기관의 움직임이 분주해진 것과 무관치 않다. 검경 모두 마약사범 잡기에 사활을 걸면서 영전하는 이들도 덩달아 많아졌다. 실적에 매몰돼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는 건 침묵한 채 말이다.
“유공자 특진”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4월 경기남부경찰청을 방문해 “마약범죄 수사 유공자를 특진 임용하고 인원을 6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같은 달 전국 시·도경찰청장 화상회의서 ‘마약범죄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것의 연장선이다. 당시 윤 청장은 마약범죄 수사 유공자 2명을 특진 임용했다.
윤 청장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테러와도 같은 마약범죄 근절을 위해 계속 노력해줄 것을 당부드린다”며 “올해 마약 특진 규모를 작년의 6배인 50명 이상으로 늘리고, 공적이 뛰어나다면 수사팀 전체도 특진시키는 등 대대적으로 포상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윤 청장의 발언 이후 경찰의 모든 기능이 마약 수사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각 시도경찰청장(본청은 국가수사본부장)이 총괄하는 합동단속추진단 설치 구상을 내놨다. 예컨대 사이버팀은 마약 유통에 활용되는 다크웹(비밀 웹사이트)을 단속하고, 여성·청소년 관련 부서는 클럽·유흥업소를 중심으로 사전 점검하는 등 유기적인 수사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마약에 초점을 둔 실적주의 수사는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선균 마약 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경찰청의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다. 물적 증거 없이 내사에서 정식 수사로 전환한 경찰은 사건 조사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사건에 연루된 권지용과 이선균에 관한 마약 정밀검사에서 음성이 나온 것도 경찰 수사에 제동을 걸었다. 특히 인천청이 강남 라인 관할지역 사건을 수사 중인 부분만 봐도 일선 경찰서 간 마약 수사 경쟁이 치열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확실한 증거 없이 진술만으로 압박
피의자서 피해자로…여론도 돌아서
한 마약수사계 팀장은 “본래 강남서에서 수사하려 인천청에 이관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인천청이 첩보를 먼저 입수한 건 맞다. 절차대로라면 강남서가 수사를 하는 게 맞지만 인천청도 ‘성과 욕심’이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서도 인천청의 수사가 성급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내사 단계서부터 언론에 알려져 부담감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물증을 확보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마약법 위반 혐의 중 가장 처벌이 약한 대마이기에 양성이 나왔다고 해도 검찰의 역할이 중요하게 됐다”며 “현재까지의 수사 상황을 놓고 보면 재판에 넘기기엔 어렵다”고 내다봤다.
경기도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50대 A씨는 검찰에 의해 억울하게 구속되기까지 했다. 지난 5월, A씨는 자신의 커피숍서 한 택배 상자를 받았다. 발신한 곳은 처음 보는 필리핀 주소지. 택배를 받은 지 30분 뒤, 사복 경찰이 들이닥쳤다.
택배 상자 안에는 필로폰 약 90g이 들어있었다. 사건을 넘겨받은 인천지검은 A씨를 필로폰 밀매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필리핀서 보낸 “부탁하신 것 보낸다”는 문자메시지가 정황 증거로 인정된 것이다.
<일요시사>의 취재를 종합하면 국정원 직원 B씨는 친분이 깊던 손씨에게 실적을 요청했다. 손씨는 국정원서 활동비를 받고 정보원으로 일해온 마약 전과자다. 손씨는 B씨의 요청에 ‘마약사범 근황 파일’을 입수한 후, 여기에서 A씨의 개인 정보를 얻었다.
검찰에 따르면 손씨는 필리핀 마약상에게 A씨의 커피숍 주소지로 필로폰을 보내달라고 연락했다. 필리핀 마약상은 피규어 2개에 필로폰을 나눠 담아 국제우편을 보낸 뒤, 손씨에게 송장번호를 보냈다. 손씨는 필리핀 마약상이 찍어 보낸 송장 사진을 국정원에 전달했다.
국정원은 해당 첩보를 인천세관에 넘겼고 손씨는 휴대전화 압수수색에 대비해 A씨 앞으로 “부탁하신 것 잘 처리했다”는 문자메시지까지 보내두게 했다.
인천지검, 국정원 첩보 검증 뛰고 구속
떠는 제보자…스토킹·성범죄 노출 지속
사건을 들여다본 용산경찰서가 서부지검에 사건을 송치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서부지검은 마약 배달 전 피해자 주소를 제3자와 주고받은 거짓 제보 증거를 찾아내 손씨를 무고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세 달 뒤인 8월 인천지검은 A씨를 석방했다. 인천지검 관계자는 “사건을 제보했던 사람이 무고 혐의로 구속된 사실을 확인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허위 제보자이자 국가정보원 마약 정보원이던 손모씨가 서울서부지검의 수사 과정서 체포된 것이다.
그러나 A씨는 손씨가 잡힌 뒤에도 6일 더 구속돼있다가 석방됐고, 석방된 후에도 공소유지는 두 달간 지속됐다. 서부지검 보고를 받은 대검찰청이 공소를 취소하란 의견을 냈지만, 인천지검 수사팀이 거부하면서 벌어진 상황이었다. 인천지검 관계자는 “제보자의 무고 혐의 재판 결과를 보고 공소 취소 여부를 결정하려 했다”고 말했다.
김포 마약 파티룸 사건의 제보자가 경찰 요구대로 행동하다 성범죄에 노출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경찰이 수사감찰에 착수했다.
경기북부경찰청서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대마 공급책 검거 사건의 내막도 심각하다. 사건 핵심 제보자인 20대 여성 C씨는 경찰의 마약 수사 관련 요청에 따르다가 성범죄에 노출돼야 했다. C씨는 전 연인 황모씨에게 당한 성폭력 피해 때문에 경찰을 찾았다.
황씨의 마약 취급 정보를 들은 경찰은 역으로 C씨에게 마약 정보 제공을 요구했다. 경찰이 황씨의 마약 정보를 구체적으로 말해주면 성폭력 범죄까지 적극적으로 수사하겠다고 강조했다는 게 C씨의 주장이다.
성과주의 강요
그는 억지로 황씨와의 관계를 유지하며 얻은 정보를 경찰에 넘겼고, 이 과정서 황씨에 의한 스토킹과 강제추행 등에 추가로 노출됐다. 그러나 경찰은 황씨를 마약 혐의로 송치하고, 성범죄 혐의에 대해선 혐의 없음으로 판단해 사건을 종결했다. 이후 C씨가 황씨를 따로 고소했지만, 정보를 얻기 위해 황씨에게 접촉했던 기록이 ‘원만한 관계’의 증거로 사용돼 검찰서 불기소 처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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