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마약 투약’ 모델 엄상미가 말하지 못한 그날의 고백

“텔레그램 마약왕 ‘바티칸’ 한 명 더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강남 바닥을 떠들썩하게 했던 ‘황하나·바티칸 마약 사건’의 핵심 인물이 최근 출소했다. <맥심> 모델 출신인 엄상미씨다. 엄씨는 2021년 2월 <일요시사>와 처음 만났다. 당시 마약 투약 의혹을 부인하면서 기자를 속였다. 지난 4일, 그는 과거의 일을 후회한다며 강남의 한 카페서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제보자의 극단적 선택과 바티칸 킹덤 이모씨, 조선족 의혹 등 3년 전 사건의 내막에 대해 들어봤다.

엄상미씨는 ‘황하나·바티칸 킹덤 마약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마약 투약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지난달 출소했다. 사건은 3년 전인 2020년 12월 발생했다.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씨의 남편인 오모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처음 부인하다…
억울한 감옥살이?

엄씨는 이들과 같이 마약을 투약한 또 다른 <맥심> 모델 박모씨와 수도권 마약 공급 총책 바티칸 킹덤 이모씨(이하 바티칸), 현재는 중태에 빠진 남모씨와 친분을 이어왔다. 엄씨가 처음부터 마약의 늪에 빠진 건 아니었다. 지인인 남씨를 통해 바티칸을 알게 되면서 마약 투약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바티칸과 연인 관계로 발전했고 투약하는 횟수도 자연스럽게 늘었다.

엄씨는 “남씨는 나에게 바티칸이 자신의 사업 투자자이면서 돈이 상당히 많은 형님이라고 소개했다. 남씨와 바티칸이 먼저 권유한 적도 있고 호기심에 내가 먼저 마약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엄씨는 2020년 10월23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R 호텔에서 박씨와 남씨, 바티칸과 같이 있었다. 바티칸은 이날 필로폰을 투약했고, 엄씨는 케타민을, 남씨는 허브(대마의 일종)를 흡입했다.

같은 달 27일 이들은 S 호텔에 있었다. 엄씨는 바티칸에게 “케타민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날은 바티칸이 경찰에 체포된 날이기도 하다. 바티칸은 이날 케타민 1g을 14만원, MDMA 1정을 5만원에 구매했다. 대금은 추후 마약류를 판매한 후 지급하기로 하고, 동업자로부터 마약류가 보관된 장소(일명 ‘좌표’)를 텔레그램으로 전송받았다.

바티칸은 이날 오전 3시28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상호불상의 세탁소 1층에서 A씨가 숨겨둔 케타민 970g 및 MDMA 970정을 수거했다. 총 1억8430만원 상당하는 마약류를 매수한 것이다. 또 그는 같은 날 새벽 5시경 필로폰 불상량을 투약하기도 했다.

해당 장소에는 필로폰 0.2㎖이 들어 있는 1회용 주사기, 필로폰 5.02g이 들어있는 유리병, 케타민 0.3g이 들어 있는 비닐팩, 향정신성의약품인 합성대마(JWH-018 및 그 유사체) 1㎖이 들어 있는 카트리지 등이 있었다.

케타민은 환각 증상을 유발하는 해리성 마취제다. 정맥 또는 근육으로 투여되는 진통 효과가 있는 전신마취제의 일종으로 단독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국내서 케타민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나목 및 다목에 해당하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돼있다.

따라서 케타민을 개인이 불법적으로 투약했을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남씨는 2020년 12월 중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중태에 빠졌다가 2021년 2월 깨어났으나 현재까지도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달 엄씨는 기자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한 카페서 만났다. 엄씨는 당시 “마약 투약 혐의를 인정하느냐” “같이 투약한 인물이 여럿이고 어느 장소에서 투약한 이후 경찰 조사를 받았던 사실도 확인했다”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마약을 투약한 적도, 본 적도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엄씨의 마약 투약이 사실이라고 판단하고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양경승 부장판사)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엄씨에게 원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8월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약물중독 재활교육 프로그램 이수와 30만원 추징을 명령했다.

케타민 투약 혐의로 징역 8월 출소
“범죄 감추기 급급…반성하며 살 것”

앞서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거지서 발견된 케타민 및 투약 도구와 케타민 가루들이 묻어 있는 비닐봉지들을 보면 피고인이 상습적으로 케타민을 투약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있음에도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부터 이 법정에서까지 범행을 부인했다”며 “범행 후의 정황도 매우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엄씨를 법정 구속했다. 엄씨는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엄씨는 “범죄를 감추기에 급급했었다. 지금은 너무나도 부끄럽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반성할 것”이라면서도 “일부 혐의는 인정할 수 없다. 정말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엄씨는 마약 투약 혐의로 같이 검찰에 송치됐던 박씨는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 박씨는 마약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음에도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검찰이 마약범의 진술에만 의존해 국내 형사법에 도입되지 않은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을 적용했다는 게 엄씨의 주장이다.

검찰은 마약 수사 과정에서 ‘축소 기소’나 ‘불기소’라는 조건을 걸고 마약범에게서 타 마약범을 불도록 하기도 한다.

한 마약 전문 변호사는 “플리바게닝은 검찰의 오랜 관행이다. 마약범을 더 많이 잡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허위 진술이 내재돼있을 가능성이 있어 간혹 마약범에게 억울한 혐의가 추가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과거 기자와의 연락에서 마약 혐의를 부인한 것과는 다르게 엄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엄씨와는 달리 박씨는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등 활발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권하고 요구
끊지 못한 악연

‘황하나·바티칸 킹덤 마약 사건’에는 석연치 않은 일이 많았다. 바티칸이 남씨를 살해하려 한 일과 황씨 남편인 오모씨와 핵심 제보자의 극단적 선택 등이다. 바티칸이 남씨를 협박한 이유는 마약 때문이라고 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바티칸의 한 편지에도 해당 내용이 나와 있다. 바티칸은 A씨에게 “텔레그램에서 마약은 필로폰 1g에 76만원에 팔린다. 마약을 팔면서 현금 1억원과 사놓은 케타민 2kg 엑스터시 2000정을 남씨가 전부 훔쳐 갔다”고 했다.

엄씨는 “경기도에 위치한 한 주차장에서 바티칸이 화를 내면서 남씨를 죽여버리겠다고 한 적이 있다”며 “실제로 칼을 들고 찌르려 하자 지인이 말렸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위기감을 느낀 남씨는 당시 황씨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했다.

남씨의 요청을 받아들인 황씨는 지인 B씨를 통해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연변 말투를 쓰던 인물로 정체가 드러난 적 없는 신원미상의 인물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조선족 의혹’을 제기했지만 제대로 사실관계가 확인된 바 없다.

지난해에는 핵심 제보자 유모씨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남씨의 친구이자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노력한 인물이기도 하다. 유씨는 과거 기자에게 “나도 올바르게 살진 않았지만 내 친구들이라도 돕고 싶다”며 “황하나 사건 해결 좀 해달라. 내 친구들 꼭 좀 살려달라”고 청했었다.

“내가 죽으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하고 숨진 채 발견된 오씨에 이은 두 번째 죽음이었다.

오씨를 떠나보낸 유씨는 술에 빠져 살았었다. 그는 여러 차례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서둘러 언론에 제보했어야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우울증으로 인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유씨의 극단적 선택 이후 사건을 취재하던 일부 기자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려야 했다.

시간이 지나 유씨의 실수와 잘못도 드러나게 됐다. 그 또한 마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고 투약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유씨의 집에 가본 지인은 “그 친구 집에 가면 가끔 테이블에 흰색 가루가 있었다”며 “마약 투약을 하지 말라고 말려도 몰래 투약하니 알 수가 없었다”며 “유씨가 소유하던 마약이 남씨가 바티칸으로부터 훔친 마약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마약을 통해 돈을 벌려 했던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 바티칸에
“죽인다” 협박

경찰은 2021년 1월 텔레그램으로 마약류 판매 광고를 올려 전국적으로 마약류를 판매한 바티칸을 구속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바티칸을 포함해 유통·판매 관계자 28명이 검거됐고 일부는 구속됐다.

이들은 2020년 4월12일부터 12월10일까지 필로폰 640g, 엑스터시 6364정, 케타민 3560g, LSD 39장, 합성 대마 280㎖, 대마 90g 등 49억원 상당의 마약류를 유통했다. 바티칸은 ‘텔레그램 마약왕’으로 불린 박왕열의 국내 총책이었다.

‘전세계’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 박왕열은 2016년 필리핀서 3명의 한국인을 살해했던 범죄자이기도 하다. 범죄 직후 필리핀 현지 경찰에 체포됐지만 두 번이나 탈옥에 성공했고, 2019년 말 자취를 감췄었다. 1년 뒤인 2020년 10월28일 필리핀 경찰에 검거돼 지난해 5월 필리핀 대법원에서 ‘다량 살인’ 혐의로 단기 57년4개월, 장기 60년의 징역형이 확정됐다.

필리핀 현지를 취재했던 <일요시사>는 박왕열이 마닐라 문틴루파에 있는 뉴빌리비드 교도소(NBP)에 수감된 사실을 확인했다. 그가 수감되기 직전까지 국내로 밀반입하거나 유통한 마약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매달 최대 100억원이 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복수의 NBP 관계자와 교민은 그가 옥중 마약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박왕열에 대한 국내 송환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사정기관 관계자는 “형기를 다 마치지 않으면 보내줄 수 없다는 필리핀 당국의 입장이 확고해 국내 송환이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내다봤다.

바티칸과 박왕열이 알고 지낸 세월은 길지 않다. 엄씨도 “바티칸이 마약을 유통하기 시작한 건 오래되지 않았다. 1년이 채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체육계 일을 준비하던 바티칸은 인터넷에 ‘스테로이드’를 검색하고 한 텔레그램 방에 접속해 박왕열을 알게 됐다”고 했다.

황하나 남편·핵심 제보자 극단 선택 이유는 ‘마약’
검사서 양성 모델 박씨 기소유예 ‘플리바게닝’ 논란

엄씨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 바티칸은 박왕열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려 했다. 그러나 자신이 맡은 마약 유통업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에 있는 ‘지게꾼’이나 인맥을 통해 널 간단하게 담그면 된다”는 박왕열의 협박을 이기지 못했다.

엄씨는 “박왕열이 실제 살인 전과가 있고 한국 유통책이 많은 만큼 주변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져 살았던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엄씨는 “텔레그램 닉네임인 ‘바티칸’을 쓰던 사람은 2명이다. 언론에 여러 번 언급된 인물 외 다른 사람도 지금은 감옥에 있다”고 주장했다.

황씨와 바티칸의 관계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바 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황씨는 바티칸을 사석에서 단 한 차례도 접촉한 바 없다. 경찰 관계자도 “사건을 수사하면서 둘이 마약 유통을 논의하거나 특정인에게 공급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눈 정황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로가 누군지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 마약 유통 ‘공동체’가 되진 않았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황씨가 바티칸을 통해 마약을 공급받은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황씨를 잘 아는 인사들은 그가 지금은 사라진 강남 클럽 버닝썬·아레나 출신 인물들에게 마약을 공급받아왔다고 전했다. 앞서 버닝썬·아레나 출신 인물 대부분은 마약 투약 및 탈세로 구속 기소됐다.

출소한 일부 인사는 과거처럼 강남권에서 클럽과 라운지 바를 운영하고 있다. 클럽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내부는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엄씨도 “클럽을 많이 가보지는 않았지만 강남에는 지금도 많이 간다. 지인들을 통해 여전히 클럽과 라운지 바에서 마약 투약과 공급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는 듣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마약파티

엄씨는 이달 초까지 바티칸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바티칸은 ‘옥중편지’를 통해 엄씨에게 “황하나 그 주변인, 감옥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는 정리하라. 내 마지막 부탁”이라며 “잘됐으면 좋겠고 하루하루가 매일매일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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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만 아는 보수대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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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방선거를 53일 앞두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자 일각에선 “장 대표가 지방선거 패배 후 부정선거론을 제기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장 대표가 취임 직후 구상했던 보수 대연합은 이미 무너졌다. 그의 구상은 왜 무너졌을까? 그리고 누가 그다음을 노리고 있을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11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장 대표는 미국 국제공화연구소의 초청을 받았다. 원래는 지난 14일부터 2박4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초청 측의 요청으로 3일 앞당겨 출국했다. 누가 뭐래도 앞당긴 출국 장 대표는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는 세계의 자유를 지키는 최전선 워싱턴 DC로 출발했다”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코 외면할 수 없기에 나아간다”고 주장했다. 6·3 지방선거를 53일 앞둔 시점에서, 그것도 일정을 더 늘린 출국이었다. 그 스스로는 “6·3 지방선거는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는 거대한 전선이 될 것”이라며 “지방선거를 앞둔 현재의 분열과 고통의 시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고, 위기의 대한민국 앞에서 우리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내 일각에선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지난 14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너무 갑작스럽게 비밀스럽게 가셔서 명분을 모르겠다”며 “선거를 코앞에 앞둔 상황에서 공천도 마무리가 안 됐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도 같은 날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지금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것은 선거가 어려운 상황에서 뛰어야 하는 후보들이 단 하루라도 낭비하지 않도록 후보를 빨리 결정지어 주는 일”이라며 “그걸 포기하고 미국에 간 것은 이번 선거가 이미 어렵게 된 마당에 포기하는 심정으로 차라리 다음에 어떤 정치적 행보를 위해서 지지층 결집을 목적하려고 간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도 지난 11일 경기 수원 방문 도중 기자들을 만나 “미국에 지방선거 표를 찍어줄 유권자가 있느냐”며 “리더가 이번 지방선거를 포기한 거 아니냐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런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이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9일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국제공화연구소의 중요한 목적·역할 중 하나는 각국 부정선거 감시”라며 “장 대표가 그에 대한 기법을 배우고 와서 지방선거 패배 후 부정선거 때문에 졌다고 얘기하려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윤희석 전 대변인도 같은 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비슷한 주장을 했다. 보다 못한 <조선일보>는 지난 10일 국제공화연구소 근무 경력이 있다는 익명의 워싱턴 DC 외교·안보 싱크탱크 연구원의 발언을 인용해 “개발도상국·후진국의 선거 도중 발생할 수 있는 부정을 감시하는 국제공화연구소를 단순히 부정선거론 연구기관으로 매도하는 것은 상당히 모욕적인 수사”라면서 장 대표를 두둔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8월 당 대표 당선 과정에서 대여 투쟁과 단일 대오를 강조했다. 선출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도 “단일 대오로 뭉쳐 제대로 싸우는 야당의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지금부터 단일 대오에서 이탈해 내부 총질하는 분들과 당론을 계속 어기는 분에 대해서는 결단하겠다”고 주장했다. 선거 앞두고 미국행…일각선 “부정선거론 배우러?” 극복 못 한 모순…당내 한 제외하고 당외 이와 연대? 이후 진행된 것은 한 전 대표·김 전 최고위원 제명과 배 의원 당원권 1년 정지 등 친한계 일원들에 대한 징계였다. 이들 중 배 의원은 법원에 징계 효력 정치 가처분을 신청했고, 지난달 인용돼 징계 효력에서 벗어났다. 친한계 구성원들은 다수의 방송 시사 프로그램에 활발하게 출연하면서 이익과 불이익을 동시에 전달하고 있다. 원외 인사들도 방송 출연을 통해 존재감을 유지하면서 이들의 의견을 왕성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장 대표 등 친한계가 아닌 국민의힘 인사들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의견을 밝히기 때문에 비판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장 대표는 지난해 9월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면서 “방송에서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를 시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그가 한 전 대표 대신 선택한 연대 시도 대상은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였다. 지난 1월엔 이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공천 헌금 의혹·통일교 게이트 특검법 공동 추진을 합의했다. 지난달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여 투쟁 방안을 논의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이 대표와의 연대를 통해 보수 대연합을 시도한 것이라는 해석이 다수 나왔다. 하지만 이 대표는 “공조와 연대는 다르다”면서 선거 연대에 대해선 선을 긋고 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도 이 대표가 국민의힘에서 징계를 받고 대표직에서 물러나 개혁신당을 창당하기까지의 과정을 토대로 국민의힘에 대한 강한 반감을 유지하고 있다. 당내 경쟁자와의 투쟁을 위해 불미스럽게 당을 나간 외부 인사와의 연대를 추구하는 그림에 대해선 한동안 “모순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보수 대연합은 당내 갈등을 봉합한 후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인 순서”라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당선 과정에서 구 친윤(친 윤석열)계와 강경 보수 성향 윤 어게인 세력의 지원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장 대표의 구상을 확인할 수 있다. 장 대표는 친한계를 국민의힘에서 내보낸 후 구 친윤계·윤 어게인을 묶어 강경한 선명 보수 야당을 만들어 그 위에 군림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구 친윤계 중 상당수는 대구·경북·강원 등 국민의힘의 텃밭으로 통하는 지역 내 유지들과 밀착해 정치활동을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어게인 세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를 두둔하면서,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반대했다. 두 세력에 대해선 “같은 ‘보수’라는 테두리 안에 있을 뿐, 성향이 전혀 다르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구 친윤계는 언론 노출을 가급적 피하면서 지역구 관리에 공을 들이는 토착 보수 성향을 보인다. 반대로 윤 어게인 세력은 대규모 집회 개최·유튜브 활동 등 강경한 의견을 왕성하게 표현하는 것에 주력한다. 실패한 연대 이대로 포기? 아울러 구 친윤계는 윤 어게인 세력과 밀착하는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지난달 국민의힘 의원 전원 명의로 발표된 절윤(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 선언에도 참여하는 등 윤 전 대통령을 이미 지웠다. 반대로 전한길씨 등 윤 어게인 세력은 절윤 선언을 격렬하게 비판하면서 장 대표에 대해서도 독한 비난을 이어갔다. 장 대표로선 지난해 당 대표 선거 출마 이후부터 구상했던 “구 친윤계·윤 어게인을 묶는다”는 목표가 어긋난 것으로 보여질 여지가 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 지방선거 패배와 장 대표 체제 붕괴에 대비해 ‘포스트 장동혁’을 거론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거친 후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할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포스트 장동혁에 도전할 수 있는 인사로는 ▲오세훈 서울시장 ▲한 전 대표 ▲신동욱 수석최고위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달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공천 1차 마감 시한까지 신청하지 않았다. 이어 당의 인적 쇄신·절윤 선언 실천·혁신 선대위 설치 등을 요구하면서 장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다. 오 시장은 추가 공모 기간 내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이때까지도 “서울시장 출마가 아니라 장 대표 체제 붕괴 후 당권에 도전하려는 게 아니냐”는 말이 돌아다녔다. 따라서 오 시장의 선거 당락을 떠나 그가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되지 않는다. 서울시장 5선에 성공하더라도 당 대표 출마 및 당선 후 겸직을 막을 법적 제한은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4일 전입신고를 하는 등 부산 북갑에서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유력해졌다.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확정된 전재수 의원은 이곳에서 3선을 했고, 현재 부산 내 유일한 민주당 의원이다. 한 전 대표가 이곳에서 당선돼 민주당의 부산 내 근거지를 소멸하면 국민의힘에 복귀해 다시 당권·대권에 도전할 명분이 붙는다. 신 최고위원에 대해선 지난해 12월부터 “포스트 장동혁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장 소장은 지난해 12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민의힘 내 대구·경북에 지역구를 둔 몇몇 의원이 장 대표로는 안 되겠다면서 신 최고위원이 비대위원장을 맡으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고 주장했다. “구 친윤계로서는 오 시장도 구 친윤계와 성향이 다른 수도권 내 보수 성향 엘리트에 속해 부담스러워할 것이고, 오랫동안 갈등했던 한 전 대표는 말할 것도 없다”는 분석도 돌아다녔다. 신 최고위원에 대해선 한동안 서울시장 출마설도 돌았지만, 실제로 출마하지는 않았다. 3인방 행보는? 성향이 전혀 다른 세력을 조율하면서 그 수장으로 군림하는 데에는 ▲전략적 경계 설정 및 수용 ▲고도화된 소통 ▲정치적 영향력 행사 기술 ▲유연한 지도력 등 고난도 정치술이 필요하다. 이 정치술을 갖추고 세력 조율을 시도했던 대표적인 정치인은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였다. 효종·현종은 어느 한 세력이 일방적인 우위를 점하지 않는 방향으로 서인·남인의 당쟁을 관리했다. 하지만 2대 독자로서 강한 정통성과 고집 센 성격을 가졌던 숙종은 주기적으로 환국을 일으켜 한 세력에 일방적으로 정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왕권을 강화했다. 서인은 학문 방향·남인에 대한 대응 등 논점에서 의견이 엇갈려 노론·소론으로 갈라졌다. 영조가 즉위했을 때는 노론·소론의 당쟁이 극대화됐다. 이 때문에 소론·남인 강경파가 영조를 인정하지 못해 군사 반란을 일으킨 이인좌의 난이 발생했다. 이후 영조가 추진했던 탕평책은 노론·소론의 온건파만 조정에 남겨놔 균형을 유지하는 완론 탕평이었다. 이 때문에 종전엔 없던 탕평파라는 당파가 탄생했다. 이들은 영조의 완론 탕평에 협조해 살아남았다. 하지만 탕평파에는 영조의 사도세자 살해를 끝까지 막지 못했다는 정치적 약점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탕평파의 핵심이었던 사도세자의 처가 풍산 홍씨는 세손 정조의 정치 보복을 우려해야 했다. 정조의 즉위를 도왔던 세력은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처가 경주 김씨 가문이었다. 결국 영조의 완론 탕평은 유교에서 금기시하는 척신 정치로 나아갔다. 정조는 즉위 초엔 홍인한·정후겸 등 자신의 즉위를 방해한 세력의 핵심을 숙청한 후 측근 홍국영에게 전권을 맡겼다. 그러다가 홍국영이 과도한 권력욕을 드러내자 숙청한 후 영조와 정반대로 준론 탕평을 추진했다. 준론 탕평은 각 당파의 강경파를 전면에 내세워 당파마다 선명한 당론을 내세우게 한단 것이다. 이는 곧 “영조 이전의 정치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고, 각 당파에 스스로 생각하는 의리를 명확하게 밝히라고 요구하는 체제였다. 그들의 의리 중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선택하는 심판 겸 절대자는 정조 자신이었다. 정조가 홍국영 숙청 이후 선택한 정국 관리 대리인은 소론 강경파 겸 시파였던 서명선이었다. 이어 그를 견제하기 위해 영조 대에 사실상 조정에서 사라졌던 남인을 조정에 편입시키려고 남인 영수 채제공에게 고위직을 부여했다. 아울러 자신의 스승이었던 김종수와 초강경파인 심환지 등 노론 벽파와 정민시 등 노론 시파도 조정에 공존시켰다. 각 당파의 수장들을 골고루 챙겨 자신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한 경쟁을 시킨 것이었다. 각 당파의 강경파만 엄선해 조정에 공존시켜야 했기 때문에, 정조의 갈등 조정 업무는 매우 많았다. 김종수는 이따금 갈등을 일으켰다. 정조는 매번 적당한 선에서 김종수를 처벌하면서 그 갈등을 무마했다. 정조도 김종수에 대해선 “위험에 직면하면 위험에서 건져주고, 거의 죽게 되면 죽음에서 구원해 줬다”고 말했다. 선거 패배하면 주목받을 ‘포스트 장’ 누구? 정조의 준론 탕평 갖가지 비결…누가 갖췄나? 서명선은 공개적으로 “저는 채제공과 의리상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고, 채제공이 역적이 아니면 저는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명선은 이인좌의 난 이후 남인에 대한 감정이 격렬해진 소론 일각의 정서를 조정에서 공론화했다. 그런데 막상 서명선은 심환지로부터 탄핵당했다. 서명선이 영의정이 된 것에 심환지가 불만을 품은 것이었다. 그러자 정조는 크게 분노해 김종수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 “내가 당신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렵다”면서 벽파를 ‘우리 벽패는’이라고 일컫는 등 심환지에게 수많은 밀지를 보냈던 사람은 정조였다. 심환지는 보는 즉시 태워 없애야 하는 밀지를 보관해 후세까지 전하게 했다. 이 밀지 모음이 ‘정조 어찰첩’이다. 정조는 심환지에게 밀지를 보내 정국 관리 구상을 밝히면서 심환지에게 구체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등 막후에서 ‘정국’이란 거대한 연극의 감독 겸 주연을 맡았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정조는 세자에게 양위한 후 스스로 정예부대로 육성했던 장용영을 데리고 수원 화성으로 물러앉아 조정을 감독하는 원격 통치를 구상했다. 정조가 정했던 시기는 1804년이었지만, 정조는 1800년 훙서했다. 정조가 구상했던 준론 탕평은 정조 말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정조는 할아버지의 극진한 총애를 받을 정도로 공부에 몰두해 즉위 후엔 스스로 성리학의 정통이자 스승을 자처했다. 이는 신하들이 임금을 가르치는 경연을 없애고, 임금이 신하를 가르치는 초계문신제를 채택한 것에서 확인된다. 아울러 서명선·김종수·정민시 등은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가까이 지내면서 사조직 동덕회를 조직할 정도로 측근이었다. 조정 내부엔 정조의 준론 탕평에 동조하는 시파가 있었고, 정조 어찰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벽파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조정 외곽엔 영남 남인 1만명이 연명해 정조의 사도세자 복권을 시도하고 정조의 준론 탕평에 호응하는 등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친위 무력 기반 장용영도 있었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밀지를 주고받으면서 막후에서 정국을 설계하면서 이끄는 부지런함까지 갖췄다. 꿈꾸는 잠룡들 과연 국민의힘은 서로 전혀 다른 구 친윤계·친한계·강경 보수를 모두 조율할 수 있는 수장을 배출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선 모두의 인정을 받는 월등한 실력과 부지런함을 갖춰야 한다. 장 대표가 지금이라도 이를 소화할 수 있을지, 아니면 새로운 누군가가 나타날지, 보수 성향 유권자의 가슴은 타들어 가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