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마약 투약’ 모델 엄상미가 말하지 못한 그날의 고백

“텔레그램 마약왕 ‘바티칸’ 한 명 더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강남 바닥을 떠들썩하게 했던 ‘황하나·바티칸 마약 사건’의 핵심 인물이 최근 출소했다. <맥심> 모델 출신인 엄상미씨다. 엄씨는 2021년 2월 <일요시사>와 처음 만났다. 당시 마약 투약 의혹을 부인하면서 기자를 속였다. 지난 4일, 그는 과거의 일을 후회한다며 강남의 한 카페서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제보자의 극단적 선택과 바티칸 킹덤 이모씨, 조선족 의혹 등 3년 전 사건의 내막에 대해 들어봤다.

엄상미씨는 ‘황하나·바티칸 킹덤 마약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마약 투약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지난달 출소했다. 사건은 3년 전인 2020년 12월 발생했다.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씨의 남편인 오모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처음 부인하다…
억울한 감옥살이?

엄씨는 이들과 같이 마약을 투약한 또 다른 <맥심> 모델 박모씨와 수도권 마약 공급 총책 바티칸 킹덤 이모씨(이하 바티칸), 현재는 중태에 빠진 남모씨와 친분을 이어왔다. 엄씨가 처음부터 마약의 늪에 빠진 건 아니었다. 지인인 남씨를 통해 바티칸을 알게 되면서 마약 투약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바티칸과 연인 관계로 발전했고 투약하는 횟수도 자연스럽게 늘었다.

엄씨는 “남씨는 나에게 바티칸이 자신의 사업 투자자이면서 돈이 상당히 많은 형님이라고 소개했다. 남씨와 바티칸이 먼저 권유한 적도 있고 호기심에 내가 먼저 마약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엄씨는 2020년 10월23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R 호텔에서 박씨와 남씨, 바티칸과 같이 있었다. 바티칸은 이날 필로폰을 투약했고, 엄씨는 케타민을, 남씨는 허브(대마의 일종)를 흡입했다.

같은 달 27일 이들은 S 호텔에 있었다. 엄씨는 바티칸에게 “케타민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날은 바티칸이 경찰에 체포된 날이기도 하다. 바티칸은 이날 케타민 1g을 14만원, MDMA 1정을 5만원에 구매했다. 대금은 추후 마약류를 판매한 후 지급하기로 하고, 동업자로부터 마약류가 보관된 장소(일명 ‘좌표’)를 텔레그램으로 전송받았다.

바티칸은 이날 오전 3시28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상호불상의 세탁소 1층에서 A씨가 숨겨둔 케타민 970g 및 MDMA 970정을 수거했다. 총 1억8430만원 상당하는 마약류를 매수한 것이다. 또 그는 같은 날 새벽 5시경 필로폰 불상량을 투약하기도 했다.

해당 장소에는 필로폰 0.2㎖이 들어 있는 1회용 주사기, 필로폰 5.02g이 들어있는 유리병, 케타민 0.3g이 들어 있는 비닐팩, 향정신성의약품인 합성대마(JWH-018 및 그 유사체) 1㎖이 들어 있는 카트리지 등이 있었다.

케타민은 환각 증상을 유발하는 해리성 마취제다. 정맥 또는 근육으로 투여되는 진통 효과가 있는 전신마취제의 일종으로 단독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국내서 케타민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나목 및 다목에 해당하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돼있다.

따라서 케타민을 개인이 불법적으로 투약했을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남씨는 2020년 12월 중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중태에 빠졌다가 2021년 2월 깨어났으나 현재까지도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달 엄씨는 기자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한 카페서 만났다. 엄씨는 당시 “마약 투약 혐의를 인정하느냐” “같이 투약한 인물이 여럿이고 어느 장소에서 투약한 이후 경찰 조사를 받았던 사실도 확인했다”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마약을 투약한 적도, 본 적도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엄씨의 마약 투약이 사실이라고 판단하고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양경승 부장판사)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엄씨에게 원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8월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약물중독 재활교육 프로그램 이수와 30만원 추징을 명령했다.

케타민 투약 혐의로 징역 8월 출소
“범죄 감추기 급급…반성하며 살 것”

앞서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거지서 발견된 케타민 및 투약 도구와 케타민 가루들이 묻어 있는 비닐봉지들을 보면 피고인이 상습적으로 케타민을 투약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있음에도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부터 이 법정에서까지 범행을 부인했다”며 “범행 후의 정황도 매우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엄씨를 법정 구속했다. 엄씨는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엄씨는 “범죄를 감추기에 급급했었다. 지금은 너무나도 부끄럽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반성할 것”이라면서도 “일부 혐의는 인정할 수 없다. 정말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엄씨는 마약 투약 혐의로 같이 검찰에 송치됐던 박씨는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 박씨는 마약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음에도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검찰이 마약범의 진술에만 의존해 국내 형사법에 도입되지 않은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을 적용했다는 게 엄씨의 주장이다.

검찰은 마약 수사 과정에서 ‘축소 기소’나 ‘불기소’라는 조건을 걸고 마약범에게서 타 마약범을 불도록 하기도 한다.

한 마약 전문 변호사는 “플리바게닝은 검찰의 오랜 관행이다. 마약범을 더 많이 잡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허위 진술이 내재돼있을 가능성이 있어 간혹 마약범에게 억울한 혐의가 추가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과거 기자와의 연락에서 마약 혐의를 부인한 것과는 다르게 엄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엄씨와는 달리 박씨는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등 활발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권하고 요구
끊지 못한 악연

‘황하나·바티칸 킹덤 마약 사건’에는 석연치 않은 일이 많았다. 바티칸이 남씨를 살해하려 한 일과 황씨 남편인 오모씨와 핵심 제보자의 극단적 선택 등이다. 바티칸이 남씨를 협박한 이유는 마약 때문이라고 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바티칸의 한 편지에도 해당 내용이 나와 있다. 바티칸은 A씨에게 “텔레그램에서 마약은 필로폰 1g에 76만원에 팔린다. 마약을 팔면서 현금 1억원과 사놓은 케타민 2kg 엑스터시 2000정을 남씨가 전부 훔쳐 갔다”고 했다.

엄씨는 “경기도에 위치한 한 주차장에서 바티칸이 화를 내면서 남씨를 죽여버리겠다고 한 적이 있다”며 “실제로 칼을 들고 찌르려 하자 지인이 말렸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위기감을 느낀 남씨는 당시 황씨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했다.

남씨의 요청을 받아들인 황씨는 지인 B씨를 통해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연변 말투를 쓰던 인물로 정체가 드러난 적 없는 신원미상의 인물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조선족 의혹’을 제기했지만 제대로 사실관계가 확인된 바 없다.

지난해에는 핵심 제보자 유모씨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남씨의 친구이자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노력한 인물이기도 하다. 유씨는 과거 기자에게 “나도 올바르게 살진 않았지만 내 친구들이라도 돕고 싶다”며 “황하나 사건 해결 좀 해달라. 내 친구들 꼭 좀 살려달라”고 청했었다.

“내가 죽으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하고 숨진 채 발견된 오씨에 이은 두 번째 죽음이었다.

오씨를 떠나보낸 유씨는 술에 빠져 살았었다. 그는 여러 차례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서둘러 언론에 제보했어야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우울증으로 인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유씨의 극단적 선택 이후 사건을 취재하던 일부 기자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려야 했다.

시간이 지나 유씨의 실수와 잘못도 드러나게 됐다. 그 또한 마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고 투약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유씨의 집에 가본 지인은 “그 친구 집에 가면 가끔 테이블에 흰색 가루가 있었다”며 “마약 투약을 하지 말라고 말려도 몰래 투약하니 알 수가 없었다”며 “유씨가 소유하던 마약이 남씨가 바티칸으로부터 훔친 마약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마약을 통해 돈을 벌려 했던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 바티칸에
“죽인다” 협박

경찰은 2021년 1월 텔레그램으로 마약류 판매 광고를 올려 전국적으로 마약류를 판매한 바티칸을 구속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바티칸을 포함해 유통·판매 관계자 28명이 검거됐고 일부는 구속됐다.

이들은 2020년 4월12일부터 12월10일까지 필로폰 640g, 엑스터시 6364정, 케타민 3560g, LSD 39장, 합성 대마 280㎖, 대마 90g 등 49억원 상당의 마약류를 유통했다. 바티칸은 ‘텔레그램 마약왕’으로 불린 박왕열의 국내 총책이었다.

‘전세계’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 박왕열은 2016년 필리핀서 3명의 한국인을 살해했던 범죄자이기도 하다. 범죄 직후 필리핀 현지 경찰에 체포됐지만 두 번이나 탈옥에 성공했고, 2019년 말 자취를 감췄었다. 1년 뒤인 2020년 10월28일 필리핀 경찰에 검거돼 지난해 5월 필리핀 대법원에서 ‘다량 살인’ 혐의로 단기 57년4개월, 장기 60년의 징역형이 확정됐다.

필리핀 현지를 취재했던 <일요시사>는 박왕열이 마닐라 문틴루파에 있는 뉴빌리비드 교도소(NBP)에 수감된 사실을 확인했다. 그가 수감되기 직전까지 국내로 밀반입하거나 유통한 마약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매달 최대 100억원이 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복수의 NBP 관계자와 교민은 그가 옥중 마약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박왕열에 대한 국내 송환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사정기관 관계자는 “형기를 다 마치지 않으면 보내줄 수 없다는 필리핀 당국의 입장이 확고해 국내 송환이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내다봤다.

바티칸과 박왕열이 알고 지낸 세월은 길지 않다. 엄씨도 “바티칸이 마약을 유통하기 시작한 건 오래되지 않았다. 1년이 채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체육계 일을 준비하던 바티칸은 인터넷에 ‘스테로이드’를 검색하고 한 텔레그램 방에 접속해 박왕열을 알게 됐다”고 했다.

황하나 남편·핵심 제보자 극단 선택 이유는 ‘마약’
검사서 양성 모델 박씨 기소유예 ‘플리바게닝’ 논란

엄씨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 바티칸은 박왕열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려 했다. 그러나 자신이 맡은 마약 유통업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에 있는 ‘지게꾼’이나 인맥을 통해 널 간단하게 담그면 된다”는 박왕열의 협박을 이기지 못했다.

엄씨는 “박왕열이 실제 살인 전과가 있고 한국 유통책이 많은 만큼 주변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져 살았던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엄씨는 “텔레그램 닉네임인 ‘바티칸’을 쓰던 사람은 2명이다. 언론에 여러 번 언급된 인물 외 다른 사람도 지금은 감옥에 있다”고 주장했다.

황씨와 바티칸의 관계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바 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황씨는 바티칸을 사석에서 단 한 차례도 접촉한 바 없다. 경찰 관계자도 “사건을 수사하면서 둘이 마약 유통을 논의하거나 특정인에게 공급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눈 정황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로가 누군지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 마약 유통 ‘공동체’가 되진 않았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황씨가 바티칸을 통해 마약을 공급받은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황씨를 잘 아는 인사들은 그가 지금은 사라진 강남 클럽 버닝썬·아레나 출신 인물들에게 마약을 공급받아왔다고 전했다. 앞서 버닝썬·아레나 출신 인물 대부분은 마약 투약 및 탈세로 구속 기소됐다.

출소한 일부 인사는 과거처럼 강남권에서 클럽과 라운지 바를 운영하고 있다. 클럽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내부는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엄씨도 “클럽을 많이 가보지는 않았지만 강남에는 지금도 많이 간다. 지인들을 통해 여전히 클럽과 라운지 바에서 마약 투약과 공급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는 듣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마약파티

엄씨는 이달 초까지 바티칸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바티칸은 ‘옥중편지’를 통해 엄씨에게 “황하나 그 주변인, 감옥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는 정리하라. 내 마지막 부탁”이라며 “잘됐으면 좋겠고 하루하루가 매일매일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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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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