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필리핀 현지 취재 ‘마약왕’ 군림한 악질 3인방 추적

사람 죽이고 감옥서 VIP 대접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내 마약은 대부분 동남아서 유통된다. 최악의 마약 생산지대를 ‘골든 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른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 접경지역으로 한정됐던 영역은 캄보디아와 필리핀, 베트남 등지로까지 넓혀졌다. 1년에 발견되는 마약의 양만 최소 2t에 육박한다. 옥중 거래가 상당해 규제조차 쉽지 않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말부터 필리핀 현지 마약 사건과 범죄인 인도조약 문제, 유명 한국인 범죄자들의 최근 상황을 들여다봤다.

필리핀에는 여러 교도소가 있다. 그중 추방을 목적으로 하는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와 뉴빌리비드(NBP)가 악명 높다. 이곳에는 한 번쯤 들어봤을만한 유명인도 있다. 보이스피싱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전직 경찰 ‘김미영(가명) 팀장’ 박모씨와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이다. 이들은 한국에 송환되지 않으려 잇단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외로 튄
그들 근황은?

마약왕 전세계로 알려진 박왕열은 2016년 10월 필리핀 한 사탕수수밭서 한국인 3명을 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의 범인이다. 이 사건은 드라마 <카지노>를 통해 유명해졌다. 그는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에 구금됐다가 2017년 3월 탈옥해 두 달 만에 잡혔다. 2019년 10월에는 재판을 받고 구치소로 돌아가던 중 재차 도주해 2020년 10월 다시 검거됐다.

박왕열은 이 기간에 마약왕 전세계로 거듭났다. 국내 마약 유통·판매 총책이었던 ‘바티칸 킹덤’ 이모씨에게 수억원대의 마약을 공급하고, 이는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 등 유명인에게까지 이어졌다. 박왕열은 필리핀 대법원서 ‘다량 살인’ 혐의로 단기 57년4개월, 장기 6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앞서 <일요시사>는 지난해 8월 박왕열이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 외곽인 문틴루파에 위치한 NBP 교도소에 수감된 사실을 확인하고 인터뷰를 시도한 바 있다. 최근 다시 접촉을 시도했으나 직접 대면하는 데는 실패했다. 다만 복수의 재소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한 끝에 그가 여전히 마약을 유통하면서 VIP 대접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박왕열이 외부로 마약을 유통하는 과정에는 조력자가 여럿 있었다.


그의 옥중 마약 유통 의혹은 이미 경찰 수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4월12일, 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A씨 등 3명을 국내 중간판매책에게 마약류를 판매한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유통책 중 한 명은 지난해 12월 NBP에서 박왕열을 만나 국내로 밀반입해 보관 중인 마약류를 판매키로 공모하고, 지난 1월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이용해 특정한 장소에 마약을 놓고 사라지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엑스터시 100정, 필로폰 10g을 국내 중간판매책들에게 600만원(도매가)을 받고 공급했다.

박왕열은 이들과 교도소 접견, 휴대폰 영상통화 등을 통해 범행을 공모했다. 이들은 현재 창원지법서 구속 상태로 1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전세계’ 박왕열 뉴빌리비드 수감 중 마약 거래
내부 조력자 10여명 “교도관도 관리 포기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왕열의 옥중 마약 유통을 암묵적으로 돕고 있는 조력자들은 교도관을 포함해 약 10명이다. 소규모로 움직이는 이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는 필로폰과 코카인을 한국을 포함해 타국으로 밀수출한다.

NBP 한 재소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컨테이너가 있다. 그 컨테이너에 적게는 수십kg 많게는 수백kg의 필로폰과 코카인이 들어 있다. 박왕열은 주로 필로폰을 유통하지만 가리지 않고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왕열의 조력자들에 관해서는 한국 경찰도 수사 중이다. A씨 등 3명을 제외하더라도 아직 잡히지 않은 국내 공급·유통책이 있다는 설명이다. NBP 내 조력자들에 관해서는 손쓸 방법이 없다. 한국 경찰은 필리핀서 수사권이 없을뿐더러 현지 경찰이 박왕열의 옥중 마약 유통에 큰 관심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한 현지 경찰 관계자는 “박왕열이 감옥 내에서 마약을 여전히 유통 중인 건 사실로 드러났다. 어디서 그런 마약들을 구하는지 미스터리”라며 “NBP 내부에 있는 타 검은 조직과 연결됐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박왕열을 송환시키지 않는 이상 국내 마약 유통 고리를 끊어도 계속 자라날 것”이라고 토로했다.

박왕열은 NBP 수감 초기까지만 해도 거물급이 아니었다. 조직폭력배 출신이 아니었으나 두 차례 탈옥으로 이름이 알려졌고, 뛰어난 언변으로 마피아들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진다. NBP는 수감자의 절반가량이 살인 및 신체적 상해 관련 범죄로 수감돼있다. 특히 연쇄살인범과 마약계 거물 등도 포함돼있다. 이들 대부분이 20년형 이상을 선고받은 재범 범죄자들이다.

어느새
거물급

2021년 11월 기준 수용된 인원은 약 3만명이다. 이상적 수용 인원이 7000명인 것을 감안하면 인구과밀화가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인은 약 20명이 수감돼있다. 그러나 300명도 되지 않는 필리핀 법무부 산하 수정국 간수들이 낮 동안 출입문을 통제하는 것 외에 별다른 조처에 나서지 않는다.

NBP는 일반적인 감옥과는 다르게 재소자들이 교도소 내에서 물건을 사고팔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고립된 범죄자 마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독특한 구조로 NBP는 교도관들이 ‘컨트롤’하기 어려운 교도소로 전락해버린 지 오래다. 재소자들은 오히려 교도관들이 아닌 거대 조직들이 NBP를 관리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언급한 조직은 중국 흑사회, 필리핀 마피아 등이다. 흑사회는 말 그대로 중국 내에 존재하는 뒷세계를 총칭하는 말로서 특정 범죄조직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흑사회에는 폭력조직뿐만이 아니라 도둑, 매춘, 강도 등의 범죄도 포함된다. 중국에서는 단순하게 조폭이란 의미로 쓰인다.

삼합회는 중국과 홍콩, 마카오, 대만 인근서 활동하는 흑사회 부류의 특정 조직이고, 조폭이란 의미는 전체적으로 흑사회라고 불린다.

보이스피싱 ‘김미영 팀장’ 박모씨
비쿠탄 수용소서 수상한 동향 포착

필리핀 마피아는 타 마피아와는 달리 독특한 문화가 있다. 정치 가문 단위로 파벌이 갈리듯 범죄조직임과 동시에 각 가문의 사병부대이기도 하다. 바할라 나 갱(Bahala Na Gang)과 아카얏 바하이(Akyat Bahay)가 필리핀 내에서도 정치권과의 관계가 깊은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서 제대로 된 승리를 거머쥐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 필리핀 마피아는 마약 유통뿐만 아니라 청부살인도 겸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직 필리핀 마피아였던 한 인물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필리핀 정치인들이 마피아를 사병화하거나 고용해 살해한 인물들은 사업가, 언론인 등이었다”고 주장했다.

박왕열이 위 세력들과 친분을 쌓았는지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NBP 내에서 마약 유통을 통해 많은 돈을 벌면서 부족함 없이 살고 있었다. 한 재소자는 “박왕열의 앞니가 은으로 바뀌었다. 수백 수천만원을 벌지 못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NBP의 여러 가건물에서는 마약과 흉기는 물론 TV, 전기 프라이팬, 아이스크림 제조기 등 가전제품과 현금 뭉치, 자위 도구, 건설장비 등이 발견된다. 재소자들은 밀반입한 물품 사용을 숨기려 불법 구조물들을 지었고 영향력 있는 재소자들이 교도소 직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기도 한다.

상선이 마피아?
흑사회 언급도

이 때문에 2019년에는 NBP 직원 353명이 직위 해제됐다. 최근에도 NBP 교도관들이 대거 직위가 해제되면서 여성 교도관 수십명이 채용됐다. 부족함 없이 살던 박왕열은 최근 새로운 건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코리안 데스크와 한국 법무부 관계자들이 NBP 측에 항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옥중 마약 유통을 막을 현실적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박왕열만큼 유명한 인물은 또 있다. 보이스피싱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김미영 팀장’ 박씨다. 그는 현재 박왕열이 탈옥했던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에 수감돼있다. 박씨는 전직 경찰로 사이버 수사 담당자로도 근무했다. 그러나 수뢰 혐의로 2008년에 해임됐다.

백수가 된 그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하는 괴물이 됐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정보를 넘겨 그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당시 위치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기를 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박씨처럼 국내에 송환되지 않으려는 인물은 또 있다.

아내 살해·유기 후 도주 강주천
탈옥해 마약 유통하다 다시 체포

지난 1월23일, 충남 서산서 아내를 살해하고 저수지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강주천이다. 그는 한국 경찰의 공조 요청으로 필리핀서 검거됐으나 아직까지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강씨는 지난달 비쿠탄 수용소서 탈옥했다가 8일 만에 다시 체포됐다.

체포 당시 1kg의 마약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 역시 박씨처럼 일부러 필리핀 현지 교도소에 더 머무르기 위해 추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에 무게가 실린다. 필리핀법상 외국인이 마약을 거래하면, 종신형에 처해져 국내법상 처벌이 어렵다.

강씨가 마약범으로 종신형을 받게 되면 박왕열이 있는 NBP로 가게 된다. 그가 NBP에 가게 된다면 제2의 박왕열이 될 가능성은 불 보듯 뻔하다. 재소자들은 NBP서 마약을 유통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구조라고 주장한다.

한 재소자는 “하루에 1끼의 식사가 제공된다. 살아있는 생쥐를 슬라이스로 잘게 썰어서 던져준다”며 “이걸 먹지 않으면 굶어 죽어야 한다.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NBP서 유일하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내부 조직들의 말을 듣고 마약을 유통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재소자는 “박왕열이 마약 유통을 꽤 잘하다 보니 돈도 그만큼 많이 번 것이다. 실제 박왕열 주변인들은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부유해졌다”고 설명했다.

NBP 내에 있는 국제 범죄조직들은 한국 마약 시장을 고수익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국정원은 일본 야쿠자와 중국 범죄조직이 한국 마약 밀반입·유통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손 놓은
한국 경찰

2021년 국내서 적발한 마약류는 1295kg으로, 2020년 321kg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다. 154kg의 마약을 적발했던 2017년과 비교하면 8배 이상 폭증했다. 통상 필로폰의 1회 투약량은 0.03g이다. 쉽게 말해 4300만명이 투약할 수 있는 마약이 국내서 유통되고 있다는 뜻이다.

박왕열이 판매했던 필로폰은 당시 시가로 1g에 60만원 가까이 됐다. 한 달에 유통한 마약이 최소 30kg이라고 가정한다면 약 200억에 가까운 수익을 올린 것이다. 수수료를 뗀 마약 판매 수익률이 절반이라고 해도 박왕열의 손에 들어가는 자금은 한 달에 최소 50억원이 넘는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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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소영이 지핀 노태우 비자금 수사 키포인트

노소영이 지핀 노태우 비자금 수사 키포인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군사정권범죄수익국고환수추진위원회(이하 환수위) 등이 노태우 일가 세무조사에 관해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과정서 불거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300억원 메모 사건에 관한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부장검사 유민종)는 지난달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와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아들인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을 고발한 5·18기념재단 관계자를 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세기의 이혼 흑역사 불러 재단이 지난 10월14일 범죄수익은닉규제법·조세범 처벌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한 지 한 달여 만에 본격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노태우 일가를 둘러싼 부정 은닉재산 의혹 등 실체 규명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노 전 대통령이 조성한 비자금 규모는 약 46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 추징된 금액은 2628억원에 그친다. 재단 측은 지난 10월14일 대검찰청에 최 회장과 노 관장 간 이혼소송 항소심 과정서 법원에 증거로 제출된 김 여사의 ‘선경 300억’ 관련 메모에 기재된 전체 금액이 904억원이라면서 노 전 대통령 일가가 은닉한 비자금이 1270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여사와 노 관장, 노 원장을 조세범처벌법·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원순석 5·18재단 이사장은 고발 당시 “올바른 정의와 역사를 정립하기 위해 고발장을 접수하게 됐다. 피의 대가로 권력을 장악해 부정부패를 통한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습해 자식들에게 넘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은 904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을 차명으로 보관하거나 대여금, 투자금 형식의 채권, 금고 등에 은닉해 국가에 환수당하지 않으려 과세 관청에 신고하지 않았고 이를 통해 상속세도 포탈했다”며 “상속세 포탈 금액이 연간 5억원 이상이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처벌 대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단은 이들이 노 전 대통령의 유산이 연희동 자택이 유일하다고 하는 등 추징 이후 부정 축재한 은닉재산이 없는 듯이 가장해 왔으나 재판 과정서 904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을 차명으로 보관하거나 대여금 및 투자금 형식의 채권, 금고 등에 은닉해 왔음이 드러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은닉재산에 대해 최근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 과정서 피고발인인 김 여사가 2000~2001년까지 약 210억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차명으로 불법 보관하다가 다시 한번 보험금으로 납입해 자금을 세탁한 사실도 드러났다고 밝혔다. “비자금 4600억” 정재계 증언 이어져 5·18 관계자 고발로 부인·남매 소환 재단 측은 추징금 완납 이후에도 비자금 관련 뇌물죄 수사 및 추징이 어렵다는 사실을 이용해 그동안 은닉했던 불법 비자금 총 152억원을 피고발인 노 원장 명의로 공익법인에 기부해(동아시아문화센터 147억원, 노태우 재단 5억원) 다시 한번 자금을 세탁하고 자녀에게 불법 증여한 것도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옥숙 여사가 보관한 1991년 메모와 약속어음을 근거로 비자금이 SK 측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봤다. 김 여사의 메모에 ‘선경 300억’이라고 적혀 있었고, 선경건설 명의로 발행된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을 증거로 내세웠다. 이후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300억원이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 쪽으로 흘러 들어가 그룹의 종잣돈이 됐다고 판단했다. 또 이 자금이 당시 태평양증권(현 SK증권) 인수 등에 쓰였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노 관장의 ‘내조 기여’가 2심 재판 과정서 과다하게 부풀려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최 회장 측도 지난 8월 상고이유서를 제출하며 이 부분에 대한 여러 오류를 문제 삼았다. 노태우정부 시절 경제수석, 민주자유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매체를 통해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서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 온 선경건설 명의의 약속어음은 노 전 대통령의 노후 자금’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노태우 자금 문제를 관리하는 이원조씨가 있는데 사돈 기업에 통치 자금 이야기를 해 (선경서 노태우 측에)꾸준히 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태우 전 대통령 측에서 퇴임 이후에도 이게 과연 제대로 줄 것이냐 이런 부분에 대한 의문이 있어 이를 확약하는 증표로서 일단 뭘 좀 주라고 해서 어음 자체를 준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씨는 5·6공 시절 ‘금융계의 황제’로 불렸다. 노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모아 전달한 혐의로 대법원서 징역 2년6개월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준 돈? 받은 돈! 실제 어음 발행일은 노 대통령의 퇴임 이틀 전인 1992년 12월로 알려졌다. 선경건설이 당시 발행한 50억원짜리 약속어음 실물 4장은 1995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자금 수사와 재판에선 드러나지 않았다가 이번 이혼소송 과정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후광’이나 ‘비자금’이 SK의 성장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판결했다. 노 관장 측 역시 같은 맥락의 주장이었다. 재판부는 노 관장 측의 기여도가 크다고 보고, 최 회장이 1조3808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최 회장 측은 항소심 판결에 즉각 반발했고, 최근 상고심 시작에 앞서 500여쪽에 달하는 상고이유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상고이유서에 따르면 다양한 쟁점 가운데 핵심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및 후광 등은 SK그룹의 성장 과정에 오히려 손해가 됐다는 주장이다. 이에 ‘SK 2인자’ 손길승 명예회장은 반박했다. 그는 진술서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선경건설의 약속어음은 태평양증권 인수와는 무관하고, ‘받았다’는 의미인 차용증은 ‘주겠다’는 의미의 약속어음이라며 노 관장 측 주장에 반박했다. 이는 김 전 위원장의 전언과도 일치된다. 손 명예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심부름을 하던 이원조 경제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지낼 거처와 생활비 등을 요구해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전달했다”며 “정권 말이 되니 퇴임 후에도 지속적으로 제공하겠다는 증표를 달라고 요구해 어음으로 준 것”이라고 밝혔다. 노 관장이 법원에 제출하면서 확인된 김 여사의 비자금 메모, 지난 2007~2008년 적발했지만 덮은 214억원+α, 지난 2016~2021년까지 동생 노재헌이 이사장으로 있는 동아시아문화센터로 기부된 147억, 2023년 노태우센터로 출연된 5억 등 노태우 일가의 불법 비자금 은닉, 돈세탁, 불법증여는 현재진행형이다. 검찰은 고발 내용과 경위 등을 확인하는 한편 조사 내용을 토대로 노 관장 등 노태우 일가에 대한 수사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선 심우정 검찰총장이 국회 국정감사서 노태우 일가의 비자금 은닉 관련 직접 수사 의지를 피력한 만큼 실체 규명에 속도가 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노후 자금 시드머니 정재계는 물론 시민단체서도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된다며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수사가 한 달이 지나도 진척이 없자 환수위는 지난 22일에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검찰 수사 촉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환수위는 노 전 대통령 가족들이 진행 중인 ‘노태우 위인화 사업’에 “적게는 수억원서 많게는 수십억원의 자금이 들어간 것으로 예상된다”며 수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환수위 역시 노 관장 등을 범죄수익은닉 및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한 바 있다. 이어 “노 관장은 노 전 대통령 범죄수익의 은닉과 증식을 도모한 가족공범이기 때문에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인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환수위는 “자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노태우 일가가 해외서 굴리는 자금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추가 고발도 예고했다. 또 환수위는 지난달 25일 열린 <만화로 읽는 인물이야기, 대통령 노태우> 출판기념회에 사용된 비용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계서도 노 관장이 직접 불법 비자금이 있다고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조사를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노 관장을 직접 소환해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노소영 관장은 불법 비자금 관련 논란이 불거진 이후로도 국정감사에 불참하는 등 전혀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행사에는 참석하고 있다”며 “불법 비자금에 대해 떳떳하다면 직접 설명하고, 조사에도 철저하게 임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300억 메모’꺼낸 노 관장 자충수 “네오트라이톤 뒤져야” 의혹 제기 정치권서도 ‘노태우 비자금’과 관련한 의혹을 제기했다. 정청래 국회 법사위원장은 지난달 8일, 노태우 일가의 은닉 자금은 김옥숙 여사의 904억원을 비롯해 차명으로 보관한 210억원 규모의 보험금, 동아시아문화센터 기부금 147억원 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도 지난달 24일 “노재헌 원장 측근의 명의로 설립된 네오트라이톤이 부동산 분양 및 임대사업을 벌이고 있다”며 “이 회사가 운영되는 데 있어 비자금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앞서 김 의원은 지난달 8일 법무부 국정감사서 ‘6공화국 비자금’과 관련해 “(전체 비자금 추정 규모 대비)일부만 환수되고 1400억원이 붕 뜬 상태였는데, 최근 소송서 밝혀진 904억 메모, 152억 기부금 등 비자금 은닉 정황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며 “불법 수익을 끝까지 추적해 환수할 방안을 마련해 종합감사까지 보고할 것”을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주문한 바 있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노태우 일가 관련 자금 흐름을 국세청 홈택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 여러 채널을 통해 살펴보는 과정서 노태우 일가가 최대주주인 회사를 발견했다. 노 원장의 최측근 명의로 설립된 부동산 임대·매매업을 영위하는 ㈜네오트라이톤이라는 회사를 파악하게 됐다. 노 원장은 네오트라이톤의 지분 60%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것으로 확인됐다. 네오트라이톤에는 최초 설립 이사부터 전·현직 임원 등에 노 원장의 측근이 다수 포함돼있었다. 언론을 통해 노재헌 원장과 홍콩서 페이퍼컴퍼니 설립 의혹을 받는 김정환씨, 그리고 비자금 세탁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노 원장의 공익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의 과거 이사장인 채현종씨도 포함돼있다. ‘주식회사등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 개정 전 마지막으로 공시된 ‘네오트라이톤 2017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노 원장을 포함한 총 2~3인의 주주단이 수십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무이자·무담보 형식으로 회사에 대여해 줬다. 네오트라이톤은 현재 자본금이 1660만원에 불과한데 주주와 은행의 차입금으로 토지 구매, 건물 건설, 분양 및 임대 등을 통해 수익을 내는 사업 구조다. 불똥 튄 남동생 김 의원은 “노태우 일가는 비자금 일부만 추징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마저도 납부 여력이 없다며 사돈과 친척을 통해 추징금을 대납시켰다고 하는데, 이후 어머니 김옥숙씨는 아들 공익법인에 147억을 출연했다”며 “노태우 일가의 자금 출처와 흐름이 비정상적”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노재헌 원장은 지난달 16일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 국정감사서 공익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를 통해 비자금을 세탁하고 부동산 투자에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