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필리핀 현지 취재 ‘마약왕’ 군림한 악질 3인방 추적

사람 죽이고 감옥서 VIP 대접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내 마약은 대부분 동남아서 유통된다. 최악의 마약 생산지대를 ‘골든 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른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 접경지역으로 한정됐던 영역은 캄보디아와 필리핀, 베트남 등지로까지 넓혀졌다. 1년에 발견되는 마약의 양만 최소 2t에 육박한다. 옥중 거래가 상당해 규제조차 쉽지 않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말부터 필리핀 현지 마약 사건과 범죄인 인도조약 문제, 유명 한국인 범죄자들의 최근 상황을 들여다봤다.

필리핀에는 여러 교도소가 있다. 그중 추방을 목적으로 하는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와 뉴빌리비드(NBP)가 악명 높다. 이곳에는 한 번쯤 들어봤을만한 유명인도 있다. 보이스피싱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전직 경찰 ‘김미영(가명) 팀장’ 박모씨와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이다. 이들은 한국에 송환되지 않으려 잇단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외로 튄
그들 근황은?

마약왕 전세계로 알려진 박왕열은 2016년 10월 필리핀 한 사탕수수밭서 한국인 3명을 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의 범인이다. 이 사건은 드라마 <카지노>를 통해 유명해졌다. 그는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에 구금됐다가 2017년 3월 탈옥해 두 달 만에 잡혔다. 2019년 10월에는 재판을 받고 구치소로 돌아가던 중 재차 도주해 2020년 10월 다시 검거됐다.

박왕열은 이 기간에 마약왕 전세계로 거듭났다. 국내 마약 유통·판매 총책이었던 ‘바티칸 킹덤’ 이모씨에게 수억원대의 마약을 공급하고, 이는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 등 유명인에게까지 이어졌다. 박왕열은 필리핀 대법원서 ‘다량 살인’ 혐의로 단기 57년4개월, 장기 6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앞서 <일요시사>는 지난해 8월 박왕열이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 외곽인 문틴루파에 위치한 NBP 교도소에 수감된 사실을 확인하고 인터뷰를 시도한 바 있다. 최근 다시 접촉을 시도했으나 직접 대면하는 데는 실패했다. 다만 복수의 재소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한 끝에 그가 여전히 마약을 유통하면서 VIP 대접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박왕열이 외부로 마약을 유통하는 과정에는 조력자가 여럿 있었다.

그의 옥중 마약 유통 의혹은 이미 경찰 수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4월12일, 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A씨 등 3명을 국내 중간판매책에게 마약류를 판매한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유통책 중 한 명은 지난해 12월 NBP에서 박왕열을 만나 국내로 밀반입해 보관 중인 마약류를 판매키로 공모하고, 지난 1월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이용해 특정한 장소에 마약을 놓고 사라지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엑스터시 100정, 필로폰 10g을 국내 중간판매책들에게 600만원(도매가)을 받고 공급했다.

박왕열은 이들과 교도소 접견, 휴대폰 영상통화 등을 통해 범행을 공모했다. 이들은 현재 창원지법서 구속 상태로 1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전세계’ 박왕열 뉴빌리비드 수감 중 마약 거래
내부 조력자 10여명 “교도관도 관리 포기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왕열의 옥중 마약 유통을 암묵적으로 돕고 있는 조력자들은 교도관을 포함해 약 10명이다. 소규모로 움직이는 이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는 필로폰과 코카인을 한국을 포함해 타국으로 밀수출한다.

NBP 한 재소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컨테이너가 있다. 그 컨테이너에 적게는 수십kg 많게는 수백kg의 필로폰과 코카인이 들어 있다. 박왕열은 주로 필로폰을 유통하지만 가리지 않고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왕열의 조력자들에 관해서는 한국 경찰도 수사 중이다. A씨 등 3명을 제외하더라도 아직 잡히지 않은 국내 공급·유통책이 있다는 설명이다. NBP 내 조력자들에 관해서는 손쓸 방법이 없다. 한국 경찰은 필리핀서 수사권이 없을뿐더러 현지 경찰이 박왕열의 옥중 마약 유통에 큰 관심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한 현지 경찰 관계자는 “박왕열이 감옥 내에서 마약을 여전히 유통 중인 건 사실로 드러났다. 어디서 그런 마약들을 구하는지 미스터리”라며 “NBP 내부에 있는 타 검은 조직과 연결됐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박왕열을 송환시키지 않는 이상 국내 마약 유통 고리를 끊어도 계속 자라날 것”이라고 토로했다.

박왕열은 NBP 수감 초기까지만 해도 거물급이 아니었다. 조직폭력배 출신이 아니었으나 두 차례 탈옥으로 이름이 알려졌고, 뛰어난 언변으로 마피아들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진다. NBP는 수감자의 절반가량이 살인 및 신체적 상해 관련 범죄로 수감돼있다. 특히 연쇄살인범과 마약계 거물 등도 포함돼있다. 이들 대부분이 20년형 이상을 선고받은 재범 범죄자들이다.

어느새
거물급

2021년 11월 기준 수용된 인원은 약 3만명이다. 이상적 수용 인원이 7000명인 것을 감안하면 인구과밀화가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인은 약 20명이 수감돼있다. 그러나 300명도 되지 않는 필리핀 법무부 산하 수정국 간수들이 낮 동안 출입문을 통제하는 것 외에 별다른 조처에 나서지 않는다.

NBP는 일반적인 감옥과는 다르게 재소자들이 교도소 내에서 물건을 사고팔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고립된 범죄자 마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독특한 구조로 NBP는 교도관들이 ‘컨트롤’하기 어려운 교도소로 전락해버린 지 오래다. 재소자들은 오히려 교도관들이 아닌 거대 조직들이 NBP를 관리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언급한 조직은 중국 흑사회, 필리핀 마피아 등이다. 흑사회는 말 그대로 중국 내에 존재하는 뒷세계를 총칭하는 말로서 특정 범죄조직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흑사회에는 폭력조직뿐만이 아니라 도둑, 매춘, 강도 등의 범죄도 포함된다. 중국에서는 단순하게 조폭이란 의미로 쓰인다.

삼합회는 중국과 홍콩, 마카오, 대만 인근서 활동하는 흑사회 부류의 특정 조직이고, 조폭이란 의미는 전체적으로 흑사회라고 불린다.

보이스피싱 ‘김미영 팀장’ 박모씨
비쿠탄 수용소서 수상한 동향 포착

필리핀 마피아는 타 마피아와는 달리 독특한 문화가 있다. 정치 가문 단위로 파벌이 갈리듯 범죄조직임과 동시에 각 가문의 사병부대이기도 하다. 바할라 나 갱(Bahala Na Gang)과 아카얏 바하이(Akyat Bahay)가 필리핀 내에서도 정치권과의 관계가 깊은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서 제대로 된 승리를 거머쥐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 필리핀 마피아는 마약 유통뿐만 아니라 청부살인도 겸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직 필리핀 마피아였던 한 인물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필리핀 정치인들이 마피아를 사병화하거나 고용해 살해한 인물들은 사업가, 언론인 등이었다”고 주장했다.

박왕열이 위 세력들과 친분을 쌓았는지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NBP 내에서 마약 유통을 통해 많은 돈을 벌면서 부족함 없이 살고 있었다. 한 재소자는 “박왕열의 앞니가 은으로 바뀌었다. 수백 수천만원을 벌지 못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NBP의 여러 가건물에서는 마약과 흉기는 물론 TV, 전기 프라이팬, 아이스크림 제조기 등 가전제품과 현금 뭉치, 자위 도구, 건설장비 등이 발견된다. 재소자들은 밀반입한 물품 사용을 숨기려 불법 구조물들을 지었고 영향력 있는 재소자들이 교도소 직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기도 한다.

상선이 마피아?
흑사회 언급도

이 때문에 2019년에는 NBP 직원 353명이 직위 해제됐다. 최근에도 NBP 교도관들이 대거 직위가 해제되면서 여성 교도관 수십명이 채용됐다. 부족함 없이 살던 박왕열은 최근 새로운 건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코리안 데스크와 한국 법무부 관계자들이 NBP 측에 항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옥중 마약 유통을 막을 현실적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박왕열만큼 유명한 인물은 또 있다. 보이스피싱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김미영 팀장’ 박씨다. 그는 현재 박왕열이 탈옥했던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에 수감돼있다. 박씨는 전직 경찰로 사이버 수사 담당자로도 근무했다. 그러나 수뢰 혐의로 2008년에 해임됐다.

백수가 된 그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하는 괴물이 됐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정보를 넘겨 그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당시 위치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기를 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박씨처럼 국내에 송환되지 않으려는 인물은 또 있다.

아내 살해·유기 후 도주 강주천
탈옥해 마약 유통하다 다시 체포

지난 1월23일, 충남 서산서 아내를 살해하고 저수지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강주천이다. 그는 한국 경찰의 공조 요청으로 필리핀서 검거됐으나 아직까지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강씨는 지난달 비쿠탄 수용소서 탈옥했다가 8일 만에 다시 체포됐다.

체포 당시 1kg의 마약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 역시 박씨처럼 일부러 필리핀 현지 교도소에 더 머무르기 위해 추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에 무게가 실린다. 필리핀법상 외국인이 마약을 거래하면, 종신형에 처해져 국내법상 처벌이 어렵다.

강씨가 마약범으로 종신형을 받게 되면 박왕열이 있는 NBP로 가게 된다. 그가 NBP에 가게 된다면 제2의 박왕열이 될 가능성은 불 보듯 뻔하다. 재소자들은 NBP서 마약을 유통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구조라고 주장한다.

한 재소자는 “하루에 1끼의 식사가 제공된다. 살아있는 생쥐를 슬라이스로 잘게 썰어서 던져준다”며 “이걸 먹지 않으면 굶어 죽어야 한다.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NBP서 유일하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내부 조직들의 말을 듣고 마약을 유통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재소자는 “박왕열이 마약 유통을 꽤 잘하다 보니 돈도 그만큼 많이 번 것이다. 실제 박왕열 주변인들은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부유해졌다”고 설명했다.

NBP 내에 있는 국제 범죄조직들은 한국 마약 시장을 고수익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국정원은 일본 야쿠자와 중국 범죄조직이 한국 마약 밀반입·유통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손 놓은
한국 경찰

2021년 국내서 적발한 마약류는 1295kg으로, 2020년 321kg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다. 154kg의 마약을 적발했던 2017년과 비교하면 8배 이상 폭증했다. 통상 필로폰의 1회 투약량은 0.03g이다. 쉽게 말해 4300만명이 투약할 수 있는 마약이 국내서 유통되고 있다는 뜻이다.

박왕열이 판매했던 필로폰은 당시 시가로 1g에 60만원 가까이 됐다. 한 달에 유통한 마약이 최소 30kg이라고 가정한다면 약 200억에 가까운 수익을 올린 것이다. 수수료를 뗀 마약 판매 수익률이 절반이라고 해도 박왕열의 손에 들어가는 자금은 한 달에 최소 50억원이 넘는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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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