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떨게 한 ‘노란 봉투’ 정체

어느 날 배달된 ‘수상한 소포’

[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울산의 한 장애인 복지시설에 신원미상의 노란 소포가 도착했다. 대만서 발송된 이 소포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설 직원 3명이 소포를 뜯자 안에 가득 차 있던 기체가 뿜어져 나왔다. 기체를 들이마신 직원들은 호흡곤란과 마비 증세를 호소했다. 국립과학수사대는 해당 기체를 정밀 검사했지만, 화학물질에 관련한 특이점은 없었다고 보고했다. 

전국적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해외 우편물이 발송되면서 위험 물질에 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정체불명 소포’는 중국서 대만을 거쳐 국내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대만 우정 당국은 화물 우편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중국 선전발 환적용 우편물의 접수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대만 당국은 의심 우편물들이 중국 선전서 최초 발송돼 대만을 거쳐 한국으로 보내졌다고 밝혔다. 대만 부총리 격인 정원찬 행정원 부원장은 “대만 수사 당국이 한국의 소포 사건과 관련해 전담팀을 구성해 조사하고 있다”며 “해당 소포는 중국 선전서 ‘경유 우편’으로 대만에 보내졌고, 대만을 거쳐 한국으로 발송됐다”고 밝혔다. 이어 “끝까지 추적 조사를 진행해 어떠한 부분을 강화해야 하는지 모든 상황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혹시 마약?
아님 폭탄?

경찰청은 정체불명 소포와 관련한 신고 건수가 지난 26일 오후 5시까지 3428건 접수됐다고 밝혔다. 우편물 개봉 후 가스나 독극물 등이 들어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지만 피해사례는 없었다. 3428건 중 2265건은 정상 소포로 확인됐다. 전체 신고 건수 중 절반 이상은 오인 신고였던 것이다. 전날 오후 5시 기준 3021건보다 407건 늘어난 수치다.

서울 명동 중앙우체국서 유해 물질이 담긴 것으로 의심되는 소포가 발견돼 1700여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서울 서초우체국과 송파우체국에도 수상한 소포가 확인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충남 천안의 한 가정집에 배송된 국제우편물에서는 가스가 검출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 조사 결과 문제가 된 국제우편물은 노란색이나 검은색 우편 봉투에 ‘CHUNGHWA POST(중화우정)’, 발신지로 ‘PO Box 100561-003777, Taipei Taiwan(대만 타이베이)’ 등이 적힌 것들이다. 경찰 조사 결과 해당 우편물 안에는 완충제만 들어있거나 비어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과학연구소와 경찰 등이 정밀 분석한 결과 별다른 유해 물질은 없었으며 지금까지 폭발물이나 유해 물질이 확인된 사례는 아직 없다. 그러나 미확인 국제우편물이 전국 각지서 대거 발견된 만큼 관계 당국은 사실관계 파악에 힘을 쏟고 있다.

소포에는 립밤 같은 물건이 들어 있거나 충전재만 담겨 있는 등 비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경찰청은 “울산서 해외 배송된 노란색 우편물을 개봉한 사람이 어지럼증 등을 호소한 사건 이후 전국서 해외 우편물 배송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며 “이와 유사한 우편물을 수취하신 분은 우편물을 개봉하지 말고, 즉시 가까운 경찰서로 신고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체불명 소포에 관한 우려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제주서 해외 우편물을 받았다는 주민 신고가 접수돼 화학물질 검사를 진행한 결과 신종 마약 성분인 LSD가 검출됐다. LSD는 환각 효과가 필로폰의 수백배에 달하는 합성마약이다.

시키지 않았는데 불쑥 외국서 발송
개봉 전 의심부터…육안 구별 불가

사건 당시 50대 남성은 탄저균 테러 소포를 연상시키는 우편물이 배달됐다며 제주시 조천읍 함덕파출소에 신고했다. 해외서 발송한 우편물에는 은박지에 스티커와 소크라테스 명언이 영어로 적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화학물질 검사 결과 스티커서 LSD가 검출됐다.


탄저균 테러 소포 사건은 2001년 미국서 처음 벌어졌다. 미 상원의원 및 언론 매체 관계자들에게 탄저균이 묻은 우편물이 배달돼 5명이 사망하고 17명이 감염됐다. 일부 소포의 발신지는 2020년 7월 미국서 발생한 정체불명 씨앗 사건 당시 발신지와 같다고 전해진다. 해당 문구는 실제 발신자 주소가 아니라 대만 우체국 사서함 번호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시 미국서 흙이나 씨앗 등이 담긴 중국발 정체불명 우편물이 발견돼 논란이 일었다. 당시 미국과 중국이 크게 갈등을 빚는 시기인 데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던 시기와 겹쳐 생화학 테러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미국 당국은 씨앗을 검사한 결과 겨자 등 일반 씨앗인 것으로 밝혀져 ‘브러싱 스캠’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브러싱 스캠은 온라인 거래 사기 수법 중 하나로 주문하지 않은 물건을 아무에게나 발송하고 수신자로 가장해 상품 리뷰를 올려 온라인서 판매실적을 부풀리는 행위를 말한다.

당시 미 농무부 관계자는 “정체불명 씨앗 소포들이 브러싱 스캠 수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니라는 증거도 없다”며 “그러나 여전히 위험할 수 있어 씨앗을 받으면 즉시 신고하고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브러싱 스캠이 이어지면서 안전불감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화학 테러
위험물 공포

경찰은 이번 대규모 정체불명 소포 사건을 두고 브러싱 스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통상 알리바바나 아마존 같은 전자상거래 사이트에 입점한 중국 업체가 판매실적을 높이려고 가짜 고객을 동원하는 수법이다. 가짜 고객들은 브로커에게 돈을 받고 온라인서 무작위로 이름과 주소를 찾아 주문을 넣는다.

주문 이후 실제 물건보다 값이 저렴한 씨앗이나 가벼운 물건 등을 보낸다. 아울러 배송이 완료되면 가짜 고객이 업체에 후기를 좋게 써주는 방식이다.

알리바바 등 중국 내 유력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브러싱을 막기 위한 자체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고, 중국 당국까지 나서 브러싱 업자들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등 강경정책을 이어가고 있지만 위법 행위는 여전하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는 브러싱 스캠이 금전 피해를 일으키지는 않지만 개인정보가 악용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주문하지 않은 중국발 소포를 받을 경우 전자상거래에 쓰는 비밀번호를 변경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지난해 1월 뉴욕 소비자보호부(DCP)서도 “(사기꾼들이)불법으로 당신의 개인정보를 침해한다”며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번 정체불명 소포는 대만을 단순 경유한 우편물로 발신자 추적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배송 기록이 남지 않는 ‘통상 우편’을 사용해 발신자 추적에 난항을 겪고 있다.

대만의 우정 당국인 중화우정은 중국 등에서 들어오는 화물을 영내에 반입하지 않고 X선 검사 등 간단한 안전 검사만 거쳐 제3국으로 발송하는 화전우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경유 항공편이 많고 항공권 가격도 저렴해 이 중개 서비스를 이용하면 배송비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알리 익스프레스 등 해외 배송이 많은 중국발 물류가 주 고객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만 <연합보> 보도에 따르면 과거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가 한국과 일본 등에 제품을 자체 배송할 경우 평균 7일 정도 소요됐으나 대만의 화전우 시스템을 이용하면서 배송 시간을 3~5일로 단축했다.

우리나라 우정 당국도 대만의 화전우처럼 국가 간 중개 환적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브러싱 스캠에 악용될 소지는 없다. 우리나라를 거쳐 제3국으로 발송되는 우편 환적 서비스는 화전우 시스템과 달리 추적 조회가 가능한 EMS와 ‘K-패킷’ 두 종류로 구성돼있다. 

우편 탐지
전국 6곳뿐

해외 우편물의 검사시스템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세청은 마약 탐지 장비는 보유하고 있지만 화학·방사성 물질 탐지기는 보유하지 않은 실정이다.  

우편물에 든 내용물의 위해성 여부를 배송 전에 확인하는 절차는 관세청이 공항·항구 등에서 통관하면서 1차적으로 담당한다. 이후 배송 단계로 넘어오면 우정사업본부가 국제우편물류센터와 전국 주요 우체국, 우편집중국서 폭발물이나 유해 물질 포함 여부를 탐지한다.

우정사업본부 당국이 대규모의 브러싱 스캠 의심 우편물 접수 사태를 파악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우정사업본부와 관세청이 지난 5월 ‘마약 등 불법 물품 반입 차단과 국제우편 서비스 향상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국제우편을 통한 마약밀수가 급증하는 가운데 마약 반입 차단을 위해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조치다.

이번 대규모 정체불명 소포 신고가 전국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두고 마약 범죄에 대한 불안감이 급증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제우편을 통한 마약밀수 적발 건수는 2020년 292건서 2022년 461건으로 증가했다. 적발된 마약의 양은 38.2㎏서 361.2㎏으로 9.5배 늘었다.

배송 전 국제우편물에 대한 화학·방사성 탐지를 맡고 있는 우정사업본부의 부담도 줄어들 전망이다. 인천 영종도 소재 국제우편물류센터 내 세관검사를 위한 별도의 독립된 전용 장소인 ‘국제우편 세관검사장’을 신축하기로 했다.

브러싱 스캠, 바이오 테러 변질 가능성
“해외 우편물 검사시스템 강화” 지적도 

올해 하반기 내로 라만분광기와 이온스캐너 등 고성능 마약 탐지 장비 도입을 확대하고, ‘마약 분석 포렌식센터’를 인천국제공항에 구축한다. 라만분광기는 레이저를 이용해 최대 1만2000종의 물질을 실시간으로 화학반응을 분석·판별할 수 있는 장비다. 

우정당국은 ‘우편물 사전정보’ 등 국제우편물에 대한 정보공유를 확대해 국제우편을 통한 마약 반입을 차단하기 위한 단속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우편물 사전정보란 ‘만국우편협약’에 따라 세관신고 등을 위해 우편물을 보내는 국가가 받는 국가에 해당 우편물이 도착하기 전에 제공하는 우편물 정보를 말한다.

국제우편 세관검사장이 신축되면서 국제우편을 통한 생화학 테러 위험과 마약 밀반입 차단을 위한 단속체계가 더 강화될 전망이다.

손승현 우정사업본부장은 “국제우편을 통한 마약류 반입 등 불법 반입물 차단에 관세청과 함께 노력하겠다”면서 “관세청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국민이 불편함 없이 우편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윤태식 관세청장도 “국제우편물의 국내 반입을 책임지고 있는 기관들이 긴밀하게 협력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마약범죄가 늘면서 일차적으로 공항이나 항구서 고성능 마약 탐지 장비 도입이 확대됨에 따라 유해 물질이나 폭발물 포함 여부도 탐지가 가능하게 된다. 아직 화학 및 방사능 물질 탐지기가 갖춰진 우편시설은 국제우편물류센터 등 전국 6곳에 그치고 있다. 

미국은 2001년 우편물을 이용한 탄저균 테러로 5명이 숨진 후 편지·소포 등에 대한 대응 요령이 정비돼있다. 중국도 2019년 브러싱 스캠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마련했을 정도로 해당 수법이 이미 퍼져 있는 상황이다.

의심 물건
대응 요령

미 우편공사 검사국은 내용물이 의심되는 소포를 받았을 때 접촉했을 경우 온수와 비누로 손을 세척한 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우편물을 즉시 격리하고 대피해야 한다고 전했다. 브러싱 스캠 의심 건이 발생하면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주기적으로 해당 온라인 쇼핑몰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업체에 즉시 연락하라고 권고한다. 미국 주요 전자상거래 플랫폼 업체들은 자사 홈페이지에 브러싱 스캠 대처 방법을 소개하고 피해 사례를 접수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주문하지 않은 택배를 받으면 향후 분쟁 소지를 막기 위해 미개봉 상태로 두거나 버리지 않는 게 좋다”며 “발신자가 명확할 경우 해당 업체에 알리는 등 객관적 증빙자료를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해외 개인정보 유출이 의심될 경우 의심되는 사이트의 정보를 수집해 한국인터넷진흥원 118에 민원을 접수할 수 있다. 

<ojh34522@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떠오르는 ‘탄저균 소포’ 악몽

9·11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 미국에서는 탄저균을 이용한 소포 테러가 발생했다.

이 테러로 모두 5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당시 하얀 가루가 들어 있는 소포는 미국 방송사들과 의회로 발송됐다.

소포를 개봉한 사람들은 탄저병에 걸렸는데, 하얀 가루에는 탄저균이 섞여 있었다. 

당시 미국 정부와 언론들은 9·11 테러 직후 벌어진 사건 배경을 지적했다.

탄저균 테러의 배후로 세계적인 테러조직 알카에다를 이끈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 정부의 생물방어 집단서 일하는 고위 과학자인 세균 전문가 브루스 아이빈스가 저지른 것으로 봤다.

사건을 수사받던 아이빈스는 기소를 앞두고 자살을 택했다.

사건의 진상이 정확히 밝혀지기도 전에 수사는 일단락됐다. 

당시 전 세계는 탄저균 테러에 대한 공포감에 소포를 확인할 때마다 불안에 떨었다.

국내에서는 아직 우편 테러가 발생한 적은 없으나 대규모 정체불명 소포로 불안감은 지속될 전망이다.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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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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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