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떠난 남양유업 흑역사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1.11 09:14:22
  • 호수 14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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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로 막 내린 홍씨 일가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남양유업의 주인이 바뀌었다. 외조카 황하나 마약 사건 등 논란에 휩싸인 홍원식 회장은 2021년 초 사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해 5월 본인이 보유한 남양유업 지분 절반 이상을 한앤컴퍼니(한앤코)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홍 회장 측은 주식매매계약 해제를 통보하면서 긴 싸움을 택했지만, 결과는 참패로 끝났다.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코가 지난 4일,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과 아내 이운경 고문, 손자 홍승의군을 상대로 낸 주식양도 소송 상고심서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이날 오전 10시30분경 “남양유업은 대금을 지급받음과 동시에 한앤코에 주식을 넘기라”며 2심 판결을 유지했다. 대법원의 상고 기각으로 원심이 유지되면서 한앤코는 남양유업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됐다.

60년 종지부

남양유업 매각을 둘러싼 법적 다툼은 이른바 ‘불가리스 사태’를 계기로 시작됐다. 코로나19가 확산 중이던 지난 2021년 4월 남양유업은 “자사 제품인 불가리스가 코로나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발표해 허위·과장광고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식약처는 이광범 전 남양유업 대표이사와 남양유업 항바이러스면역연구소장 등을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29일 불구속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홍 회장은 불가리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고 전격 사퇴를 발표했다. 회장직서 물러남과 동시에 자신과 가족이 보유한 주식 지분 전량(53%)을 한앤코에 넘기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여론 악화는 물론, 실적도 저조한 상황이었다. 


이후 2021년 5월 자신이 보유한 남양유업 지분 53.08%를 매각하는 계약을 한앤코와 체결했다. 한앤코는 홍 회장 측 보유 지분 37만8938주를 주당 82만원으로, 총 3107억원에 매수하기로 했다. 하지만 남양유업은 그해 7월30일로 예정된 경영권 매각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를 9월14일로 돌연 연기했다.

사퇴를 약속한 홍 회장도 물러나지 않았다. 급기야 경영권 매각 업무와 관련한 법률대리인을 LKB앤파트너스로 바꿨다. 

홍 회장 측은 한앤코가 홍 회장 부부의 ‘임원진 예우’ 등의 계약 내용을 지키지 않았다며 계약해지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또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양측을 쌍방대리한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홍 회장 측은 재판 과정서 “한앤컴퍼니 측이 홍 회장 등에 대한 임원진 예우와 백미당 사업권 보장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양측을 쌍방대리한 것도 불법”이라며 “이 사건 주식 매매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한앤코는 8월23일 홍 회장 등을 상대로 이 사건 소송을 제기했다. 홍 회장 측도 9월1일 한앤코에 주식매매계약 해제를 통지했다. 이후 한앤코는 홍 회장이 보유한 남양유업 주식을 처분할 수 없도록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본격적인 분쟁이 시작됐다.

“불가리스, 코로나 억제”
허위·과장광고 논란도

2022년과 지난해 각각 진행된 1심과 2심은 모두 한앤코의 손을 들어줬다. 양측의 주식매매계약 효력이 인정되는데도 홍 회장 측이 주식을 양도하지 않았으므로 주식을 넘기라고 판단했다.


2심 판결 이후 남양유업 측은 “이 사건 계약에 있어 원고 측의 합의 불이행에 따른 계약의 효력, 쌍방대리 및 배임적 대리 행위에 대한 사실관계나 법리에 관한 다툼이 충분히 심리되지 못한 것 같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상고 의사를 밝혔다.

홍 회장 일가와 한앤코 간 주식양도 소송은 약 2년 만에 막을 내렸다. 대법원은 지난 4일, 최종 판결을 내리면서 “‘홍 회장 측이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들의 쌍방자문에 대해 사전 또는 사후에 동의했다’는 이유로 민법 제124조 및 변호사법 제31조 제1항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한 결론을 수긍할 수 있어 이 사건 주식매매계약은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홍 회장 일가는 남양유업 주식 37만8938주(합계 지분율 52.63%)를 한앤코에 넘기게 됐다.

이번 판결로 경영권 분쟁은 마무리됐지만, 남양유업의 정상화로 가는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아직 홍 회장과 한앤코 간 손해배상청구소송 등 법정 분쟁과 지분 정리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앞서 홍 회장은 한앤코를 상대로 회사 매각 계약이 무산된 책임을 지라며 310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으나 지난 2022년 1심서 패했다.

한앤코도 2022년 홍 회장 일가를 상대로 500억원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에다 홍 회장은 한앤코와 계약을 해지한 뒤 대유위니아그룹에 경영권을 매각하면서 대유위니아와도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대유위니아가 남양유업 인수를 위해 협약을 맺고 계약금으로 320억원을 줬지만, 이를 돌려받지 못하자 반환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 소송은 1심에서는 홍 회장이 승소했지만, 지난해 2심에서는 대유위니아의 일부 승소로 결론이 났다.

행동주의 펀드인 차파트너스자산운용도 남양유업 이사회에 홍 회장의 퇴직금과 보수 지급을 정지하라는 유지청구를 한 상태다. 경영권 방어에만 몰두한 홍 회장의 패착이 값비싼 계산서를 만든 셈이다.

‘갑질’ 대명사…불매운동까지
황하나 사건 터질 때마다 진땀

1964년 홍두영 창업주 이후 60년간 이어온 홍씨 일가 경영체제는 2대 만에 막을 내렸다. 홍원식 회장은 고 홍두영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2003년 홍 회장 취임 이후 남양유업은 서울우유에 이어 우유 업계 2위를 지켜왔다. 국내 기술로 만든 ‘남양분유’에 이어 ‘맛있는 우유 GT’ ‘불가리스’ ‘프렌치카페’ 등을 히트시켰다.

그러나 2010년 이후 대리점에 대한 물품 강매와 폭언 등은 불매운동의 트리거로 작용했다. 지난 2013년 남양유업은 지역 대리점에 우유를 강매하고 영업사원에게 폭언을 퍼부은 사실이 알려져 국민적 분노를 불러왔다. 남양유업은 대국민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결국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해 여직원들에게 성차별적 인사를 해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여직원이 결혼하면 계약직으로, 임신하면 퇴사를 종용했다는 시대착오적 횡포가 드러난 것이다. 이 과정서 남양유업은 대중들에게 ‘갑질 기업’으로 각인됐다.


소비자들은 집요하리만큼 남양유업을 혐오했다. 당시 남양F&B가 사명을 ‘건강한 사람들’로 바꿔 ‘남양 찾기’가 어려워지자 ‘남양유없’이라는 앱도 만들었다. 바코드를 찍으면 남양유업 제품인지 아닌지 판별해주는 앱이다.

이후에도 자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경쟁업체 비방 댓글,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의 마약 사건 등은 ‘오너가 리스크’로 이어졌다. 2019년 황하나가 마약 투약 혐의로 기소되자 남양유업의 이미지는 바닥을 쳤다. 홍 회장은 직접 사과문을 통해 “황하나와 전혀 무관하다”고 일축할 뿐, 대리점주들에 대한 피해 보상 지원도 없었다.

집행유예 기간 중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된 황하나는 2022년 2월4일 실형을 확정받았다. 당시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등 혐의로 기소된 황하나의 상고심서 징역 1년8개월에 추징금 50만원을 명령한 원심을 확정했다.

황씨는 2020년 8월 지인과 주거지 및 모텔 등지서 필로폰을 5차례 투약한 혐의를 받았다. 같은 해 11월 마약을 함께 투약한 것으로 조사된 지인의 집에서 500만원 상당의 명품 의류와 신발 등을 훔친 혐의도 드러났다.

당시 황하나는 앞선 마약 투약 등 혐의로 집행유예 기간 중이었다. 그는 2015년 5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서울 강남 등지서 필로폰을 3차례 투약, 1차례 필로폰을 매수해 지인에게 건넨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로 인해 2019년 11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은 바 있다.

남은 리스크


한편, 업계에서는 한앤코 경영 체제가 황하나의 마약 스캔들 등 오너가 리스크를 불식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앤코의 대법 승소 판결 직후 남양유업 주가는 3% 가까이 급등했다. 한앤코는 이날 대법원 판결 직후 입장문을 통해 “인수합병(M&A) 계약이 변심과 거짓 주장들로 휴지처럼 버려지는 행태를 방치할 수 없어 소송에 임해왔다”며 “홍원식 회장이 주식매매계약을 이행하는 절차만 남았다. 남양유업 경영 정상화를 위해 임직원들과 함께 경영 개선 계획을 세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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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