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찰 출신 ‘김미영 팀장’ 국내 송환 물거품 내막

비쿠탄 마약왕과 손잡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보이스피싱계 거물 ‘김미영 팀장’ 박모씨가 필리핀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다. 사실상 국내 송환이 더 어려워졌다. 박씨는 총 4명과 같은 곳으로 옮겨졌다. 이 중 1명은 한 달에 약 5kg 이상의 필로폰을 국내로 유통해온 인물로 확인됐다. 박씨가 마약 사업에도 손대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이유로 해석된다.

‘김미영(가명) 팀장’ 박모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이다. 경찰 출신이기에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한다.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물인 송모씨와 타 교도소로 이감됐다.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이 가능한 만큼 경찰 안팎에서는 이들이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마약+피싱
새로운 조직

박씨는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돼 경찰 조직을 떠났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온 그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기를 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박씨의 ‘꼼수 전략’은 성공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필리핀 이민국 수용소에 투옥됐던 박씨는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국내서 유명 작가로 행세하며 수천만원의 사기를 저지른 뒤 필리핀으로 도피했던 윤모씨에게 해당 전력을 배웠다. 윤씨는 지난 8월 강제 송환됐다.

박씨를 포함해 함께 이감된 인물은 박씨와 새로운 마약왕으로 알려진 송씨, 박씨 밑에서 일하던 보이스피싱 관리책 2명으로 총 4명이다. 이들은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서 텔레그램을 통해 보이스피싱 및 마약 공급·유통책을 모집했다.

이 조직은 송씨 주도하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박씨를 영입한 이유로는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마약범죄조직의 고질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이스피싱·마약 연계 ‘피싱&마약’ 결성
필리핀 비콜 교도소로 이감…빼기 어려워

비쿠탄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는 “송씨와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송씨는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서도 깊게 들여다보는 인물이다. 그는 박씨에게 보이스피싱 범죄 노하우를 전수받아 비트코인 사기도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른 비쿠탄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타 국가로 밀항에 성공하면 냉정하게 말해 국내 송환은 불가능하다”며 “박씨와 송씨뿐만 아니라 다른 범죄자들도 언제나 비슷한 계획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실제 비쿠탄 수용소서 타 감옥으로 이감된 건 사실상 국내 송환이 불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한국과 필리핀은 형사사법공조조약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했다. 필리핀서 장기간 수용 생활을 하는 한국인을 한국으로 이송하면 좋으나 현재 수용자 이송조약은 체결돼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는 “송환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인물에 한해 이송 요청을 지속하고 있다”며 “필리핀 이민국과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라고 밝혔다. 법무부의 이 같은 입장은 2년 전과 다르지 않다. 시간이 가는 동안 이송조약조차 체결하지 못한 점은 한국 정부의 소극 행정이라는 지적이다.

이송조약
체결 못해

실제 법무부는 일부 한국인 범죄자들에 관해 송환신청서도 보내지 않은 바 있다.

범죄인 인도는 국제형사사법 공조 활동 가운데 가장 고전적 수단이다. 이는 관할권으로부터 도주한 범죄인은 범죄인 소재지국보다는 범죄 행위지국서 유효·적절하게 재판 또는 처벌할 수 있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다만 범죄인 인도는 국제법상 확립된 제도가 아니다.

국제법상 의무가 아니므로 조약상 의무가 없는 한 타국의 인도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도 국제법 위반은 아니기에 각국은 인도 여부를 재량으로 결정할 수 있다.

한국 범죄인 인도법은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와도 상호주의를 적용해 인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도 대상이 되는 범죄는 원칙적으로 청구국 영역서 발생한 범죄다. 영해나 영공서 저지른 범죄는 물론 공해상 청구국의 선박이나 항공기서 벌인 범죄도 포함한다.

범죄인은 수사 또는 재판을 받고 있거나 유죄 판결을 받고 피청구국으로 도주한 자를 말한다. 인도 대상 범죄인은 주로 청구국 국민과 제3국인이다. 인도가 허용되는 범죄는 청구국과 피청구국의 법률로 모두 처벌 가능한 범죄여야 한다.

인도 요청을 거절하는 사유는 의무적 거절 사유와 재량적 거절 사유로 나눌 수 있다. 피청구국서 청구 범죄에 대해 이미 확정 판결을 받은 경우도 의무적 거절 사유다. 박씨와 송씨의 경우 현지서 재판을 받고 있어 의무적 거절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법무부가 보이스피싱 혐의가 아닌 마약 유통 혐의로 송환을 적극적으로 요청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필리핀 정부가 ‘재량’을 근거로 거절할 가능성도 있으나 법무부는 이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박씨처럼 국내에 송환되지 않으려는 인물은 또 있다. 2023년 1월23일, 충남 서산서 아내를 살해하고 저수지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강주천이다. 그는 한국 경찰의 공조 요청으로 필리핀서 검거됐으나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필리핀서
국내 유통

강씨는 비쿠탄 수용소서 탈옥했다가 8일 만에 체포됐다. 그는 현재까지 산 후안 그린힐스 교도소에 투옥된 상태다.

강씨는 체포 당시 1kg의 필로폰을 소지하고 있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강씨는 송씨의 지시로 해당 필로폰을 국내로 유통하려 했다. 유통에 성공한 이후 독일제 총기인 Heckler & Koch HK416도 전달받으려 한 정황도 포착됐다.

비쿠탄 수용소에 수용된 또 다른 관계자는 “송씨가 파사이에 있는 공급책을 통해 강씨에게 필로폰 유통을 지시한 건 비쿠탄에 있는 한국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송씨가 비쿠탄에 있는 한국 마약업자들 중 가장 많은 양의 마약을 유통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씨는 박씨처럼 필리핀 현지 교도소에 더 머무르기 위해 송씨의 지시를 이행하려 했다. 필리핀법상 외국인이 마약을 거래하면, 종신형에 처해져 국내법상 처벌이 어렵다.

강씨가 마약범으로 종신형을 받게 되면 박왕열이 있는 뉴빌리비드 교도소(NBP)로 가게 된다. 그가 NBP에 가게 된다면 박왕열처럼 마약 사업을 영위할 가능성은 불 보듯 뻔하다. 재소자들은 NBP서 마약을 유통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구조라고 주장한다.

한 재소자는 “하루에 1끼의 식사가 제공된다. 살아있는 생쥐를 슬라이스로 잘게 썰어서 던져준다”며 “이걸 먹지 않으면 굶어 죽어야 한다.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NBP서 유일하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내부 조직들의 말을 듣고 마약을 유통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손 놓은 법무부 시기 놓쳐
“외교적 노력 최선” 원론적 대응만

이 재소자는 “박왕열이 마약 유통을 꽤 잘하다 보니 돈도 그만큼 많이 번 것이다. 실제 박왕열 주변인들은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부유해졌다”고 설명했다.

NBP 내에 있는 국제 범죄조직들은 한국 마약 시장을 고수익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국정원은 일본 야쿠자와 중국 범죄조직이 한국 마약 밀반입·유통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21년 국내서 적발한 마약류는 1295kg으로, 2020년 321kg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다. 154kg의 마약을 적발했던 2017년과 비교하면 8배 이상 폭증했다. 통상 필로폰의 1회 투약량은 0.03g이다. 쉽게 말해 4300만명이 투약할 수 있는 마약이 국내서 유통되고 있다는 뜻이다.

동남아 3대 마약왕 중 1명인 ‘탈북민 마약왕’ 최정옥도 검거되기 전 해외서 대규모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인들로 구성된 동남아 마약밀수 조직의 총책으로 알려진 최씨는 캄보디아서 붙잡혀 2022년 4월 국내로 송환됐다.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최씨가 같은 탈북민과 조선족 등이 가담한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을 동원해 우리 국민을 상대로 범행을 주도한 것으로 판단했다.

아직은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의 정도가 확인되지 않았으나 당국에 따르면 최씨가 보이스피싱으로 한 달 만에 5억원 정도의 범죄수익을 거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범죄 활동 규모에 따라선 피해금액이 10억원대 이상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수의 마약 전과 이력을 가진 최씨는 2018년부터 활동무대를 국내서 중국, 러시아, 동남아로 옮겼다. 그는 태국, 라오스, 미얀마가 맞닿아 있는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 ‘골든트라이앵글’서 현지인들과 손잡고 마약을 생산, 한국에 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씨는 2021년 7월 마약 소지 및 밀입국 혐의로 태국 수사망에 걸려 파타야서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하지만 한 달 뒤 500만바트(한화 약 1억8000만원)를 보석금으로 내고 풀려났다. 국내는 물론 태국서도 이례적인 일이다. 최씨는 이후 캄보디아로 도주한 끝에 국정원, 인터폴, 현지 경찰의 공조로 체포됐다.

조직원과
탈옥 계획

그는 보이스피싱으로 번 돈을 태국으로 갖고 오는 데 한국 내 차명계좌를 사용했다. 당국에 꼬리가 잡힐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최씨의 차명거래에는 태국 한인교포 여러 명의 계좌가 활용됐다. 이 때문에 다수 한인교포 한국 계좌의 거래는 현재 정지된 상태다.

최씨는 범죄수익 5억원 중 2억원가량만 태국 현지 브로커에게 알선료 명목으로 준 것으로 알려졌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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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국힘 TK 쟁탈전

혼란의 국힘 TK 쟁탈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최근 국민의힘에선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출마자들만 넘쳐난다. 언론은 ‘영남 자민련’이나 ‘영남 소수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더 큰 몰락 가능성을 경고한다. 반대로 다른 지역에선 구인난을 겪고 있다. 국민의힘은 영남 자민련을 피할 수 있을까? 6·3 지방선거를 4개월 앞두고 있지만, 정가 안팎에선 국민의힘의 패배 가능성을 심각하게 거론하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달 15일 쌍특검(통일교 금품수수·더불어민주당 공천 헌금 비리 의혹 특검)을 촉구하면서 단식을 시작했다가 대통령실·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무시를 당했다. 이어지는 패배 경고 그러다 지난달 22일 초라하게 단식을 중단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제명에 대해선 강한 의욕을 드러내 친한(친 한동훈)계와 소장파의 반발을 사고 있다. 장 대표는 “일부 극우 유튜버들과 밀착하는 등 강경 보수와의 밀착을 자신의 정치적 공간 조성 전술로 삼는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해선 “자신을 지지하는 ‘목소리 큰 집단’과 공명하면서 장 대표의 정치적 의사 청취 폭이 좁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는 사이 지방선거는 코앞으로 다가왔다. 5선을 노리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서울시 부동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한 후 기자들을 만나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오 시장은 “장동혁 디스카운트가 선거를 덮치지 않을까 싶은 염려가 매우 크다”며 “국민의힘 소속 자치단체장들이 말을 안 해도 속은 숯검댕이”라고 주장했다. 오 시장은 한 전 대표가 제명됐던 지난달 29일에도 “장 대표가 당을 자멸로 몰아넣었다”면서 장 대표 사퇴를 촉구했다. 여론조사 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지난달 24일부터 2일 동안 서울시 거주 18세 이상 남녀 804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지난달 27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 시장은 서울시장 가상 대결에서 40.3%의 지지를 얻어 50.5%의 지지를 얻은 정원오 성동구청장보다 10.2% 뒤처지는 결과를 얻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대구·경북(이하 TK) 외 지역에선 지방선거 전패를 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분석한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를 보면, 국민의힘의 TK 지지율은 19%로 확인돼 정가에 큰 충격을 줬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지도력의 공백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불안한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당한 이후에도 홍준표 전 대구시장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대표를 맡아 수습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들은 새로운 미래 구상을 제시하지 못한 채 선거 패배 후 물러났다. 국민의힘은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에도 지난해 5월10일 새벽 3시에 김문수 당시 대선후보를 한덕수 전 총리로 기습 교체하려다가 국민적 비판을 받았다. 갈등을 매끄럽게 수습·조율할 지도력 공백의 여파였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두 전직 대통령이 구사했던 정치술이 만든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2인자·미래 권력·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1인 지배 체제를 선호했고, 다른 의견을 제시한 정치인은 퇴출하려고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장 디스카운트…현 시도지사 속은 숯검댕이” ‘북적북적’ 넘치는데 다른 지역은 구인난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5년 국회법 개정안 관련 갈등을 빚었던 당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 심판’을 언급하면서 국무회의 도중 강하게 비판했다. 유 원내대표는 박 전 대통령의 발언 13일 후 원내대표직에서 사임했다. 윤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이준석·김기현 전 대표와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 3명의 여당 수장에게 ‘격노’ 카드를 부여한 후 퇴출하는 정치술을 구사했다. 두 전직 대통령 모두 과도한 당내 권위·권력을 행사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권력 승계에 있어 큰 위기에 봉착했다. 정치학에선 과도한 권위·권력이 갑자기 무너진 후 진행되는 혼란상을 권력 공백이라고 한다. 두 전직 대통령이 추구했던 권력 형태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정의했던 가산관료제와 맞닿는다. 막스 베버는 “근대 관료제가 군주제 국가의 관료제보다 진보적·합리적”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군주제 국가 관료제에 가산관료제란 명칭을 붙였다. 군주제 국가의 각종 행정 기구는 군주의 사유재산을 관리하면서 군주의 개인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군주는 국가의 가부장이고, 관료는 군주의 가신에 가깝다. 군주의 주관적 의지와 자의적 판단이 법적 절차보다 우위에 있고, 군주와의 친소 관계가 관직 임용의 기준이 된다. 이로 인해 관직은 거래 수단이 되는 등 사유화된다. 두 전직 대통령도 공천권을 사적 충성심의 거래 수단으로 활용했다. 박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 내 친박(친 박근혜) 계열 정치인을 제20대 총선에서 대거 당선시키기 위해 공천에 개입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2018년 징역 2년형을 확정받았다. 윤 전 대통령은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에 개입했단 의심을 받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현대 정당 시스템을 전근대적 가산관료제로 역행시켰다. 권력 공백 상황에서 발생하는 혼란은 민주적 정당성을 토대로 전임자의 권위·권력을 승계받은 후계자가 수습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혼란을 수습할 후계자를 양성할 수 없었다. 국민의힘이 지난해 5월 대선후보였던 김 전 후보를 새벽에 기습 교체하려고 했던 것도 권력 공백 상황에서 발생했던 극단적인 혼란이었다. 한 전 총리가 김 전 후보의 대안으로 선택됐던 이유도 당내 영향력이 미약한 인사·외부인을 옹립해 특정 정치 집단의 이권을 유지하려던 것이었다. 12명 중 5명 출마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을 암시하는 현 상황 중 하나는 당내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출마 선언만 이어지고 있단 것이다. 현재까지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정치인은 ▲주호영 국회부의장(대구 수성갑) ▲추경호 전 원내대표(대구 달성군) ▲윤재옥 전 원내대표(대구 달서을) ▲최은석 의원(대구 동·군위갑) ▲유영하 의원(대구 달서갑) 등이다. 원외 정치인으로는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과 홍석준 전 의원이 출마를 선언했다. TK 지역신문 <영남일보>는 지난 3일 사설을 통해 “대구 전체 의원이 12명이니, 절반 가까이 대구시장 선거에 뛰어든 셈이고, 사상 유례없는 출마 러시”라며 “추상적인 슬로건을 강조할 뿐, 대구의 미래에 대한 독자적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가 없다”고 비판했다.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 전한길씨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지지하고 있다. 전씨는 지난해 8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전한길을 품는 자가 지방자치단체장이 되고, 향후 국회의원 공천을 받을 수 있으며, 대통령도 될 수 있다”며 “저는 공천 같은 건 안 받지만, 만약 대구시장 후보 공천을 받는다면 이 전 위원장에게 무조건 양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대구 북구 칠성시장을 방문했고, 오는 9일 대구에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면서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지난 2022년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했다가 국민의힘 경선에서 탈락했다. 경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정치인은 ▲이철우 현 경북도지사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김재원 최고위원 ▲이강덕 포항시장 등이 있다. 이 지사는 3선에 도전하는 것이고, 이 시장은 포항시장 3기를 채웠기 때문에 더는 포항시장으로 출마할 수 없다. 최 전 부총리는 구 친박계의 핵심으로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에 연루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가 지난 2022년 특별사면을 받은 후 재기를 꿈꾸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경북도지사 출마로 방향을 틀었다. 김 최고위원의 의원 시절 지역구는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이었다. 반대로 다른 지역에선 구인난을 겪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을 시작했다. 서울시장 후보로는 오 시장에 이어 국민의힘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출마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지사 후보로는 새누리당 원유철 전 원내대표·심재철 전 국회부의장 등 원외 인사들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안팎에선 “과열 양상이 빚어지는 TK와는 다르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 친한계는 “서울 강남·부산의 보수 성향 엘리트들이 모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친한계는 십수명 안팎의 국민의힘 의원들로 구성됐기 때문에 탈당해 신당을 창당하더라도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없다. 사라진 2인자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은 지난달 28일 BBS 라디오 <금태섭의 아침 저널>에 출연해 “신당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 창당설에 선을 그었다. 한 전 대표 제명은 수도권 기반 의원들의 위축을 유발해 국민의힘 전체의 폐쇄적 집단 사고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선 “소장파의 성장 가능성을 완전히 거세할 위험으로 연결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당내 견제 장치가 사라져 언더 찐윤의 확증 편향 중심 의사결정 구조가 굳어질 위험으로 이어진다. TK·강원을 주된 기반으로 둔 언더 찐윤이 주도권을 장악한 것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이 지난 2016년 총선부터 연이어 참패해 국민의힘의 수도권 기반이 축소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정치 구도에서 수도권 출마자들은 외연 확장의 선봉장 역할을 한다. 외연 확장이 가로막히면서 기존 텃밭을 지역 기반으로 둔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진다. 반대로 외연 확장 실패는 정당의 힘을 약화한다. “언더 찐윤에 해당한다”는 평을 듣는 국민의힘 내 TK 기반 정치인들은 “언론 노출을 꺼리면서 지역구 토호와의 접촉에 열중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외연 확장 실패는 외부와의 경쟁 포기·지역 기반 안주란 결과로 연결된다. “국민의힘에서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출마 열기만 이어진단 것은 ‘영남 자민련’ 축소를 자처하는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 모든 선거에서 패배한 국민의힘 내 중앙 정치의 패장들이 중앙 정치에 뜻을 잃고 내부 기반의 요새로 도피하는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은 현대 정치학에서 거론하는 정치적 부족주의 개념를 뒷받침한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개인이 이성적 정책·이념보다 인종·지역·종교 등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치적 정체성에 자신을 귀속시키면서 동일시하는 현상을 말한다. 에이미 추아 미국 예일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지난 2018년 저서 <정치적 부족주의>를 출간했다. 추아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대해 “특정 집단의 이익만 대변하는 정체성 정치가 활개를 치면서 증오·대립이 극대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씨가 이 전 위원장의 대구 출마를 촉구·지지하는 상황은 정치적 부족주의를 넘어 계파적 부족주의로까지 축소되는 양상으로 이어진다. 연이은 수도권 참패 후유증…부족주의 강화 눈앞 아른거리는 자민련·자유선진당 뒤안길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들에 대해선 “연이은 선거 패배 때문에 이어진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지 못한 채 과거 성공했던 지역 기반 승리에 집착하는 경로의존성에 따라 보신주의를 추구한다”는 평이 나온다. 두 전직 대통령은 1인 지배 체제를 선호해 후계자 양성에 소홀했다. 이는 위기를 타개할 정치적 상상력을 가지고 미래 권력이 돼야 할 2인자가 사라졌다는 후유증으로 연결됐다. 이들은 소속 정당이 중앙 정치에서 힘을 잃더라도 지역 기반만 유지할 수 있다면,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새로운 모험을 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정치적 성공을 안겨준 지역 기반에서의 승리 공식을 토대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경로의존성에 의지한다. 그 결과, 국민의힘의 대구 지역 의원 12명 중 5명이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현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 현상에 대해선 당이 “불확실한 중앙 정치를 감당할 역량마저 고갈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될 수도 있다.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일부 지식인은 거듭되는 난세를 정치적·정신적으로 감당하지 못했다. 이들 사이에선 대나무숲에서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면서 노장사상을 토대로 구성된 청담을 말하는 풍조가 유행했다. 이들 중 특히 유명했던 선비 7명을 묶어 죽림칠현이라고 한다. 죽림칠현은 모친상 도중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연주하거나, 친구의 모친상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 등 기행을 저질렀다. 그런데 이들은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아 말년엔 고위 관직을 지내거나, 위나라 황실 사위가 되는 등 부귀영화를 누렸다. 이들에게 대나무숲은 정치적 실패를 잊기 위한 도피처였다. 사회 전반적로는 5가지 광물을 섞어 제조하는 마약 오석산이 유행했다. 죽림칠현도 술에 오석산을 섞어 마시면서 청담을 논했다. 오석산 복용자들은 환각 상태에서 기행을 저질렀다. 독성 때문에 피부가 약해지기 때문에 새 옷의 반듯함을 감당하지 못해 낡고 헐렁한 옷을 입어야 했다. 그래서 위나라 곳곳엔 낡고 헐렁한 옷을 입고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국민의힘에서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출마만 이어지는 현상은 “텃밭으로 돌아가 연이은 선거 패배와 정권 상실이란 현실을 잊고 자아를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언론이 국민의힘을 일컬어 ‘영남 자민련’이나 ‘영남 소수당’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더 큰 몰락을 경고하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연립 정권의 한 축이었던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은 정치적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연이어 선거에 패배한 후 2006년 한나라당에 흡수됐다. 자유선진당은 충청권에서조차 자민련만큼의 지지세를 확보하지 못해 2012년 총선 참패 후 새누리당과 합당해 소멸했다. 다가오는 몰락의 길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는 등 ‘중도 보수’ 선언을 현실 정치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과연 TK만 북적거리는 국민의힘은 자민련·자유선진당의 뒤안길을 걷지 않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