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학 마약 동아리 사건 수사 막힌 진짜 이유

신도림 아지트 압색도 안 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마약 동아리 사건이 잠잠해졌다. 검찰이 추가 수사를 통해 발본색원하겠다고 강조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텔레그램 마약 딜러’ 추적 역시 감감무소식이다. 마약만 문제가 아니다. 2년간 성폭력과 불법 촬영이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수사기관에 신고하려 했으나 동아리 회장 염모씨의 보복이 두려워 쉽게 나서는 이가 없었다. 피해자들은 사건 장소로 지목된 아지트에 대해 압수수색이 진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도림 T 아파트가 아지트다. 밤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회장단과 친한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른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전 마약 동아리 운영진 출신 관계자의 말이다. 해당 아파트에는 방마다 CCTV가 설치됐다고 한다. 술 또는 마약에 취해 정신을 잃은 사람이 성폭력을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보인다.

간부들 성착취
영상 유포 의혹

마약 동아리라는 오명을 쓴 ‘깐부’는 지난 2021년 동아리 회장 염모씨가 창설했다. 대학생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고가 외제차나 고급 호텔 및 식당 등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앞세워 세를 불려 나갔다. 이런 방식으로 이 마약 동아리는 300명에 달하는 회원을 모집했다.

다만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전국서 두 번째로 큰 규모라는 건 사실이 아니다.

이 동아리에 합격하려면 외모와 학벌이 좋아야 한다는 것도 과장된 말이다.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명문대 학생들이 회원으로 활동했고, 그중에는 의대나 약대 재입학 준비생, 로스쿨 진학 준비생 등도 포함됐으나 대다수가 그렇지는 않았다.


회장인 염씨는 연세대를 졸업한 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학원에 진학한 인물이었다.

염씨의 범죄는 지난 2022년 초부터 시작됐다. 그해 11월부터 범죄가 시작됐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일부 운영진이 그전부터 마약을 투약했다는 것이다. 염씨와 임원진은 참여율이 높은 회원들을 선별해 따로 클럽 등에 초대해 술을 마신 뒤 참석자들의 경계심이 흐트러진 틈을 이용해 액상대마를 권했고, 이후 필로폰이나 LSD같은 더 다양한 마약을 투약하게 했다.

남성 회원들과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을 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초대해 집단으로 마약을 투약한 정황도 확인됐다. 이 과정서 염씨와 일부 운영진은 여성들에게 몰래 마약을 투약한 후 협박을 일삼기도 했다.

염씨와 운영진이 가장 많이 투약한 마약은 LSD다. 이들은 ‘유명인들도 즐겨 투약하고 우울증 등에 효과가 있다’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퍼트리면서 마약 투약 공범으로 끌어들였다. 염씨는 마약 유통으로 수익을 거두기도 했는데, 지난해 1200만원 이상을 마약 대금으로 투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모·학벌 중심?…“일부 와전된 얘기”
성범죄 장소 T 아파트 출입자 수십명

이 사건은 염씨가 다른 마약 투약 건으로 수사를 받으면서 덜미가 잡혔다. 이 사건의 재판을 진행하던 공판검사가 수상한 거래 내역을 포착, 염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하면서 마약 동아리의 실체가 드러났다. 결국 염씨를 포함해 동아리서 마약을 유통 및 투약한 14명이 적발됐고, 3명은 구속, 2명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염씨는 지난해 4월, 전 연인이 다른 남성 회원과 어울렸다는 이유로 폭행하고 성관계 장면을 촬영해 협박한 사실로 입건됐다. 같은 해 12월에는 서울 시내 호텔서 여자친구와 마약을 투약하고 난동을 부리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고 강남의 한 고급 호텔 창고서 와인과 샴페인 등을 훔치다 발각되기도 했다.


염씨는 3개월에 한 번씩 새로운 동아리원 수십명을 받고 마음에 드는 인원을 T 아파트로 불렀다. 나이까지 속이며 2년간 회장직을 유지해 온 염씨는 자신의 과장된 재력과 언변으로 회장단(운영진)을 관리해 왔다. 마약과 성폭력이라는 범죄 행위가 바깥으로 새 나가지 않도록 단속했다.

폭로 낌새가 보이는 동아리원에게는 ‘법적 조치’나 ‘불법 촬영물을 유포하겠다’는 식의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깐부 운영진이던 A씨는 “안에서 벌어진 범죄 행위를 모든 사람이 아는 건 아니다. 회장단과 깊은 친분을 유지한 사람만 안다. 솔직히 지금 재판에 넘겨진 사람들만 잘못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운영진 B씨도 “서로 입을 맞춰 ‘조용히 하기만 하면 된다’ ‘누가 언론에 제보했냐’는 식으로 지금도 입막음이 진행 중”이라고 털어놨다.

성폭력을 당했다는 C씨도 “염씨 말고도 성폭력을 일삼은 인물은 더 있다. 폭로하려 할 때마다 ‘고문 변호사’라는 사람을 언급하며 압박해 왔다”며 “염씨와 친분이 있던 다른 운영진들도 ‘동아리 망가지면 안 된다’며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보복 두려워
신고 못 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깐부 출신 관계자들은 검찰이 추가 수사를 통해 T 아파트를 압수수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방마다 설치된 CCTV와 전자기기를 확보해 염씨를 포함한 일부 운영진이 불법 촬영물을 텔레그램 또는 딥웹에 유포했는지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A씨는 “홍모씨는 성착취 영상을 제작해 실형을 선고받았고 구속되기 전까지 비슷한 행위를 해왔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홍씨는 지난 2019년 8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제작·배포 등),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3년간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을 제한받았다.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판사 정종관)에 따르면 그는 2017년 11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서울 시내 모텔, 동대문구 거주지 등에서 17~18세 아동·청소년 피해자 4명과 성관계를 해 음란물 17개를 제작하고, 사귀던 연상의 여성과의 성관계 영상 19개를 제작한 혐의를 받았다. 또 이 동영상을 피해자들 의사에 반해 판매해 460만원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고등학생인 피해자는 주변에 신원이 노출되고, 또 다른 피해자는 피고인과의 성관계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된 것이 이후 결혼한 남편에게 알려져 그 정신적 고통이 매우 극심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홍씨는 1심서 징역 3년 등을 선고받았으나 ‘자수했으므로 형을 감경해야 한다’ ‘원심 선고형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는 취지로 항소, 형량을 깎았다. 이후 대법원에 상고하진 않았다.


조용한
수사기관

검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모든 의혹에 대해 들여다볼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염씨에게 마약을 제공한 딜러는 아직 추적 중”이라며 “불법 촬영물을 유포했는지도 수사 방향에 포함돼있다. 디지털 포렌식 과정을 거쳐 모든 의혹을 규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경지검 한 검사도 “남부지검이 이례적으로 ‘범죄조직 단체죄’ 적용을 검토하겠다는 강도 높은 발언을 했다. 지켜봐야겠지만 수사 의지는 제대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며 “의혹의 장소로 지목된 아파트든 주거지 등 필요하다면 압수수색을 진행하지 않겠냐”고 했다.

불법 촬영물 등 피해 영상물을 추적·삭제 지원 업체 라바웨이브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업체가 집계한 피해 영상물 삭제 문의는 500건이 넘는다. 업체는 올해 최종 삭제 문의 건수가 지난해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6월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2023년도 불법촬영물 등의 처리에 관한 투명성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네이버, 다음 등 인터넷 사업자들은 총 14만4814건의 불법 촬영물과 성적 허위 영상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등을 신고받고 이 중 약 8만건을 삭제하기도 했다.


전체적인 불법 촬영물 업로드 수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으나 유포되는 영상물의 수는 좀처럼 감소하지 않고 있다. 영상물을 삭제하는 속도보다 유포되는 속도가 더욱 빠르기 때문이다.

불법 촬영물은 경찰과 검찰서도 어려움을 겪는 수사다. 온라인 플랫폼에 유통되는 불법 촬영물의 경우 해당 영상물을 업로드한 유포자를 찾기 어렵다. 용의자가 특정되면 영장 청구를 통해 용의자 신상과 업로드 내용 등을 플랫폼 측에 요구하는 등 강제수사가 가능하지만 이마저도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려는 외국계 회사가 상당하다.

한 경찰 관계자는 “국제 공조 과정부터 어렵다. 피의자를 특정한다 해도 외국에 있을 때 국내로 송환하는 과정도 시간이 수개월 소요된다”고 말했다.

회장 협박에 대응 못한 피해자 수두룩
검 “사실 모르는 피해자 존재할 수도”

깐부 동아리 사건 외에도 최근 인하대 특정 동아리 소속 여성들이 대규모 딥페이크 범죄의 피해자가 된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여학생들의 얼굴을 나체 사진에 합성한 뒤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에 공유한 일당을 수사 중이다. 이 대화방의 참가자는 무려 1200명에 달한다.

지난 2020년부터 운영된 이 대화방에선 학내 유명 동아리 소속 여성들의 얼굴에 나체 사진이 합성된 딥페이크물이 공유됐다. 특히 피해자 목소리로 ‘노예’ ‘주인님’ 등 성적인 단어를 말하도록 음성 파일을 입히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합성물 외에 피해자 연락처 등 개인정보까지 공유되면서, 피해자 일부는 하루에도 수십통씩 협박 전화를 받았다. 이런 식으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약 30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염씨와 친분을 유지했던 운영진은 여전히 동아리원들을 압박하는 분위기다. 이들은 대부분 남성 운영진들의 협박과 성폭력을 방관하거나 협조했다. 일부는 몰래 마약을 투약당했다는 이른바 ‘몰래뽕’ 피해를 호소했으나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지금도 카톡으로 서로 조용히 있자고 하고 있다. 검찰 수사 과정서 자수하자고 설득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방관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것 때문인지 나서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추가 검찰 수사로 침묵하는 사람들이 실질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당했던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해야 하지 않나. ‘인간 혐오’가 생긴다”고 했다.

홍씨를 제외하고 염씨와 이모씨는 재판부에 반성문조차 제출하지 않고 있다.

단체 대화방
1200명 달해

한편 검찰은 현금으로 마약을 산 다른 회원들도 있을 것으로 보고 추가 수사 중이다. 이에 따라 적발되는 대학생 마약사범들은 더 늘어날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지금이라도 자수하는 게 맞다. 이미 재판에 넘겨진 이들이 누가 마약을 투약하고 공유했는지 진술 중”이라며 “자수하지 않더라도 경찰서 소환 등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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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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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