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비만치료제 열풍이 불고 있다. 살이 찌면 운동부터 해야 한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운동 대신 약으로 살을 빼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여기에 기존 치료제보다 체중 감소 효과를 더 높인 신제품들이 출시를 앞두면서, 비만치료제 인기는 앞으로도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GLP-1 계열 비만치료제는 처음부터 비만을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진 약은 아니다. 이 계열 약물은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다. 식사를 하면 우리 몸에서는 혈당을 조절하는 여러 호르몬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GLP-1이다.
고공 행진
비만 시장
이 호르몬은 인슐린 분비를 돕고, 위에서 음식이 내려가는 속도를 늦춰 포만감을 오래 느끼게 한다. 제약사들은 이 작용에 주목해 GLP-1의 기능을 흉내 낸 약물을 만들었고, 이것이 GLP-1 계열 치료제의 시작이었다. 이 계열 약물이 처음 시장에 나온 것은 2000년대 중반이다.
당시에는 비만과는 관련이 없었고, 혈당 조절이 목적이었다. 주사로 맞는 당뇨병 치료제였고, 하루에 한번 또는 그 이상 투여해야 했다.
그런데 치료를 받던 환자들 사이에서 공통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혈당이 조절되는 것과 함께 체중도 함께 줄어드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점이 의료진과 제약사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GLP-1 계열 약물은 점차 발전했다. 주사를 맞는 횟수를 줄이기 위한 연구가 이어졌고, 약효가 오래 지속되는 방식으로 개발됐다. 하루 한번이던 주사 투약이 주 1회로 줄어들면서 사용 편의성도 높아졌다.
이 과정에서 체중 감소 효과는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당뇨병이 없는 사람에게서도 체중이 줄어드는 결과가 확인되면서, GLP-1 계열 약물을 비만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후 GLP-1 계열 약물은 처음으로 ‘비만 치료’를 목적으로 허가를 받게 된다. 기존 당뇨병 치료 성분을 바탕으로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진행됐고, 일정 기간 약을 사용했을 때 체중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결과가 나왔다.
체중 감소 폭이 수치로 확인되자, GLP-1 계열 약물은 기존 비만치료제와는 다른 약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GLP-1 계열 비만치료제가 주목받은 가장 큰 이유는 체중 감소 효과였다. 이전에도 비만을 치료하기 위한 약물은 있었지만, 체중이 크게 줄어드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반면 GLP-1 계열 주사형 치료제는 일정 기간 사용했을 때 평균 체중이 두 자릿수 비율로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 같은 수치가 의료계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알려지면서 기대가 커졌다.
이 계열 비만치료제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제품이 위고비다. 위고비를 처음 내놓은 곳은 덴마크의 다국적 제약사 노보노디스크다. 노보노디스크는 당뇨병 치료제를 만들던 기술을 바탕으로 위고비를 개발해 비만 치료용으로 허가를 받았다.
BMI 지수 확인도 안 하고…
5분 이내 짧은 진료 후 처방
위고비는 GLP-1 계열 성분을 기반으로 한 주사형 비만치료제로, 당뇨병 치료에 쓰이던 성분을 비만 치료에 맞게 조정했다. 주 1회 주사 방식으로 맞는 것이 특징이다. 식욕을 줄이고 포만감을 오래 유지해 음식 섭취량을 자연스럽게 줄이도록 돕는다.
위고비는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체중 감소 효과를 확인받은 뒤 비만 치료제로 허가됐다.
위고비는 해외에서 먼저 출시됐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비만 치료제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체중 감소 효과가 알려지면서 빠르게 확산됐다. 비만 인구가 많은 국가를 중심으로 처방이 늘었고, 위고비는 자연스럽게 GLP-1 계열 비만치료제를 대표하는 이름이 됐다.
일부 국가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위고비가 비교적 늦게 출시 됐지만, 인기는 뜨거웠다. 해외 사용 사례와 체중 감소 효과가 이미 알려진 상태였기 때문에, 소비자들 사이에선 출시 전부터 관심이 빗발쳤다. 위고비가 국내에 도입된 이후에는 주사형 비만치료제에 대한 인식도 빠르게 바뀌었다.
기존의 비만 치료 방식과 달리, 주 1회 주사로 체중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물론 위고비 이전에도 GLP-1 계열 치료제는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삭센다가 있었다. 삭센다는 위고비보다 훨씬 앞서 세계적으로 출시된 주사형 비만치료제다. 처음에는 비만 치료 목적으로 허가됐고, 일주일이 아니라 매일 주사하는 방식으로 사용됐다.
삭센다는 상대적으로 체중 감소 폭이 적은 편이었지만,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로는 최초로 널리 쓰인 약이었다. 이 약을 개발한 회사 역시 노보노디스크로, 위고비의 등장 이전까지는 국내·외에서 인지도 있는 비만치료제였다.
하지만 위고비가 출시된 이후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시장은 빠르게 커졌다. 위고비와 같은 방식의 약물뿐 아니라, 다른 호르몬 작용을 함께 결합한 새로운 주사형 치료제도 등장했다. 이들 약물은 기존 GLP-1 단독 약물보다 체중 감소 효과가 더 크다는 점을 내세웠다.
체중 감소 폭이 크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주목을 받으면서, 비만치료제 시장은 한층 더 확대됐다.
다이어트
목적으로
최근에는 기존 GLP-1 약물의 효과를 한 단계 끌어올린 제품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게 ‘마운자로(Mounjaro)’다. 마운자로는 미국의 일라이 릴리가 개발한 주사형 치료제로, GLP-1뿐 아니라 또 다른 호르몬 수용체를 동시에 활성화하는 방식이다.
체중 감소 효과를 보다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로, 국내에서도 지난 8월부터 처방이 가능해지면서 위고비와 경쟁하게 됐다.
문제는 이 같은 비만치료제의 인기로 인해 무분별한 처방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만치료제는 전문의약품으로, 누구에게나 처방될 수 있는 약은 아니다. 위고비를 비롯한 GLP-1 계열 주사형 비만치료제는 일정한 처방 기준을 전제로 허가된다.
체중과 건강 상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용 여부를 판단하도록 돼있다. 비만치료제의 기본적인 처방 기준은 체질량지수(BMI)를 중심으로 설정돼있다. 일반적으로 BMI가 30 이상인 경우, 즉 고도비만에 해당하는 환자가 주요 처방 대상이다.
BMI가 27 이상이면서 고혈압이나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등 비만과 관련된 동반 질환이 있는 경우에도 처방 대상에 포함된다. 단순히 체중을 줄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는 처방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 비만치료제는 체중 감소 자체보다는, 비만으로 인한 건강 위험을 낮추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또 비만치료제는 단기간 체중 감량을 위한 약물이 아니라, 장기적인 체중 관리와 건강 개선을 염두에 두고 사용하도록 설계됐다. 치료 과정에서는 환자의 체중 변화뿐 아니라 기존 질환 여부, 복용 중인 약물, 부작용 가능성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특히 주사형 비만치료제는 식욕을 강하게 억제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사용 중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나 이상 반응에 대한 설명과 관리가 필요하다.
이 같은 이유로 비만치료제 처방은 원칙적으로 충분한 문진과 진료를 거쳐 이뤄지도록 돼있다. 환자의 키와 몸무게를 정확히 확인하고, 체질량지수를 계산한 뒤 비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주사 찾아
병원 전전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동반 질환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하며, 과거 병력이나 현재 복용 중인 약물도 함께 살펴야 한다. 임신 가능성이 있거나 특정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처방이 제한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병원 현장에서는 무분별한 처방이 이뤄지고 있었다.
<일요시사>가 직접 방문한 일부 병원에서는 별다른 조건 없이 환자의 요청만으로 약물 처방이 이뤄졌다. 서울 강남구와 도봉구에 위치한 A 병원과 B 병원에서는 진료 과정에서 체중과 키를 확인한 뒤 체질량지수를 계산했지만, C 병원과 D 병원에서는 이 같은 절차 없이 의사와의 짧은 대면 이후 곧바로 처방전이 발행됐다.
진료실에 들어가자 의사는 체중을 물었고, 대략적인 수치를 말하자 곧바로 처방 이야기로 넘어갔다. 체중계에 올라 실제 몸무게를 재거나 키를 재는 과정은 없었다. 의사는 “예전에 맞아본 적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 뒤, 문제없으면 다시 맞아도 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또 다른 병원에서는 진료가 1~2분 안에 끝났다. 진료실에서는 체중 감량 목적에 대한 질문만 오갔을 뿐, 처방 기준에 대한 설명이나 비만 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 과정은 없었다.
병원별로 처방 과정에 차이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진료는 5분 이내로 짧게 이뤄졌다. 일부 병원에서는 “다이어트 주사를 맞고 싶다”고 말하자 의사가 별다른 추가 질문 없이 약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체중 감량 목표를 확인한 뒤 처방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체질량지수 기준이나 동반 질환 여부에 대한 설명은 생략되는 경우도 있었다. 체중이나 키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기보다는 “몇 킬로그램 정도 감량을 원하느냐”는 질문이 먼저 나왔다.
이후 의료진은 주 1회 주사 방식의 비만치료제를 설명했고, 사용 기간과 횟수를 간단히 안내한 뒤 처방전을 발행했다. 역시나 체질량지수가 처방 기준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대상자 외 안정성 확보 안 돼”
무분별한 처방에 오남용 우려
대기실에서도 비만치료제 처방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각 병원에서 약 1시간가량 대기하는 동안, 적게는 1명에서 많게는 3명까지 다이어트 약 처방을 문의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이들은 진료과와 무관하게 “마운자로 있나요”라며 먼저 물었고, 접수 과정에서도 별다른 제약은 없어 보였다.
병원을 찾은 이들의 체형 역시 눈에 띄었다. 얼핏 보기에도 마른 체형의 여성들이 대다수였다. 이 같은 모습은 비만치료제가 특정 환자군에 제한적으로 처방되기보다는, 비교적 쉽게 접근 가능한 다이어트 수단처럼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일부 병원에서는 비만 여부보다는 환자의 요청에 따라 처방 여부를 결정지었고, 의료진이 체질량지수를 확인한 경우에도 그 수치가 처방 기준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따로 이뤄지지 않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병원 관계자들은 “요즘 비만치료제를 문의하는 환자가 정말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처방 문턱이 낮아지면서 비만치료제의 오남용 문제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 주사형 비만치료제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일부 환자들은 비만치료제를 단기간 체중 감량 수단으로 인식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일정한 목표 체중에 도달하면 곧바로 투약을 중단하거나, 의료진과 상의 없이 사용 간격을 조절하는 경우도 있다. 주 1회 투여하도록 돼있는 약물을 임의로 더 자주 맞거나, 반대로 용량을 조절해 사용하는 사례도 확인되고 있다. 이런 방식은 약물의 정상적인 사용 범위를 벗어난다.
처방 이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도 오남용으로 이어지는 요인이다. 비만치료제는 사용 중 체중 변화와 부작용 여부를 정기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지만, 일부 환자들은 처방 이후 병원을 다시 찾지 않은 채 투약을 이어간다. 이상 반응이 나타나도 참고 넘기거나, 온라인 정보를 통해 스스로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심각한
오남용
실제 한 내과 전문의는 “현재 BMI 기준의 대상자 외에는 약제에 대한 안정성과 유효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가장 큰 문제는 질환 여부에 대한 확인도 없이 처방을 하는 것”이라며 우려했다.
<imsharp@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