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강남 마약 음료 사건 내막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4.30 12:52:47
  • 호수 14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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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학원가 ‘발칵’ 우두머리 검거됐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사실상 테러 사건으로 해석됐던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 총책이 해외서 검거됐다. 지난해 4월 범죄조직 일당은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서 청소년을 상대로 마약이 섞인 음료수를 건넸다. 해당 음료에 섞은 메스암페타민(필로폰)과 엑스터시의 출처가 중국 마약 총책이라는 사실이 최근 드러난 것이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은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의 필로폰 등 마약 공급 총책이 지난 16일 캄보디아서 검거됐다고 밝혔다. 국정원 주도의 아시아 태평양지역 마약 퇴치를 위한 공조 협력체, INTAC의 역할이 컸다. 국제적 범죄인 만큼, 다국적 수사망을 펼친 것으로 보인다. 

학생 상대 
마약 테러

중국인 총책 A씨는 중국에서 캄보디아로 밀입국해 은신하다 덜미가 잡혔다. 사정당국은 A씨의 국내 송환을 시도했으나, 캄보디아법에 의거, 현지서 처벌받게 됐다.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의 배후가 뚜렷해지면서 국내 마약 유통경로도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해 4월3일 오후 6시경 범죄조직원들은 ‘메가 ADHD’라고 적힌 음료를 ‘기억력과 집중력 강화에 좋은 음료’라고 소개하며 청소년들에게 무상으로 건넸다. 간 큰 조직원들은 마약 섞인 음료수를 마신 학생들에게 재구매 의사가 있는지, 부모의 연락처 등을 조사했다.

이렇게 알아낸 학부모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자식이 마약을 했으며 이를 경찰에 신고하겠다. 싫다면 돈을 내놔라”고 협박 전화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 학생의 부모들은 협박에 응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했고, 음료를 마신 학생들은 구토, 어지러움 등 이상 증세를 보였다.


1병을 모두 마신 한 학생은 일주일 동안 등교가 어려울 정도로 심한 고통에 시달렸던 걸로 조사됐다.

경찰에 따르면 1병에 필로폰 3회 분량(통상 1회 투약분 약 0.03g)이 들어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 학생의 몸에서도 마약 성분이 검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피해자는 약 9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찰이 입수한 마약 음료는 약 100병이었으며, 미개봉 상태로 수거한 36병과 범죄에 연루된 아르바이트생들이 폐기 처분한 게 44병 정도로 알려졌다. 시음 행사 아르바이트생들이 마약 성분이 든 사실을 모른 채 마신 2병과 시중에 유포된 것은 18병 정도다.

사건 초기에 피해자들이 마신 것으로 파악된 것은 7병이다. 음료를 건네받은 사람 기준으로 최소 11명의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가 더 존재하는 셈이다.

마약사범으로 몰릴까 두려워 나서지 못했던 피해자들은 용기를 내서 신고했지만, 일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테면 “마약사건에 연루됐다”는 부정적 인식을 우려해 피해 진술을 꺼린 이들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보이스피싱+마약에 학부모 협박
국제적 범죄조직 일망타진 조준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미성년자인 경우, 마약인 줄 모르고 마셨으므로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최종 확정된 피해자 수는 19명이며 이 중 미성년자는 13명, 학부모는 6명이다. 사건을 기획한 이들은 중국에 근거지를 둔 보이스피싱 조직으로 반년 전부터 범행을 구상해 역할을 나누는 등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이번에 체포된 중국 마약 총책을 검거하는 데 1년 이상 걸렸다.

앞서 사고를 접수한 경찰은 곧바로 용의자들 추적에 나섰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CCTV 분석 등을 통해 당시 여성 1명을 검거했고, 나머지 남성 1명은 자수했다고 밝혔다. 먼저 잡힌 이들을 통해 나머지 공범 2명이 더 있다고 알게 된 경찰은 “이들 4명은 2명씩 두 개의 조로 나뉘어 움직였다”고 밝혔다.

음료를 나눠준 이들 중 1명은 경찰 진술서 “마약이 들어있는 줄 몰랐다”며 자신은 아르바이트를 했을 뿐이고, 학부모를 협박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또 “마약을 유포한 적이 전혀 없고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는데 왜 나를 잡았느냐”며 범행을 부인했다.

지난해 4월6일 오전 또 다른 마약사범 중 한 명은 경찰서에 찾아와서 자수했다. 또 다른 자수자는 “마약인 줄 몰랐으며 인터넷의 구인공고를 보고 지원한 것 뿐”이라고 진술했으며, 시음 음료는 택배로 받았다고 밝혔다. 

같은 날 자정 가까운 시간에 마지막 용의자가 검거됐다.

그러나 현장서 마약 음료를 나눠준 용의자 4명은 모두 말단에 불과했다. 대부분 인터넷 구인광고를 통해 고용된 비핵심 조직원이었던 것이다. 마약을 제조하고 이들에게 보내고, 협박하는 등의 범죄를 기획한 총책은 모두 따로 있었다.

결국 과거 현금 수거책으로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전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1명을 제외한 3명은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치동서···
간 큰 조직

다음 날인 7일, 서서히 몸통이 드러났다. 총책의 지시를 받고 강원도 원주서 마약 음료를 제조한 혐의로 길모씨가 검거됐다. 길씨는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음료를 제조한 뒤 중국서 건너온 빈 병에 담아 서울의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전달했다.

원주서 제조된 마약 음료는 고속버스와 퀵서비스를 통해 서울로 운반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학부모 등에게 걸려온 협박 전화를 누가 걸었는지 역추적했다. 이 과정서 중국서 걸려 온 인터넷 전화를 발신번호 변조 및 중계기를 이용해 한국 번호로 바꿔준 김모씨도 붙잡혔다.


피해 학부모의 진술에 의하면 협박범의 전화 속 말투는 조선족의 말투였다. 빈 병의 공급처와 협박 전화 발신지 모두 중국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중국에 근거지를 둔 보이스피싱 조직 등이 이 범행을 꾸민 것으로 봤다.

이들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체포영장을 신청하는 한편 출입국당국에 입국 시 통보를, 중국 공안에 공조 수사를 요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중계기를 설치·운영한 김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전화번호를 변작해 주는 전문가였다. 김씨를 검거하는 과정서 노트북 6대, USB 모뎀 96개, 휴대전화 유심 368개를 압수했다. 모뎀 사용 기록 등을 분석한 결과, 김씨는 전체 피해 금액 1억원가량의 보이스피싱 14건에 연루돼있었다. 

김씨는 전화번호 1개를 변작해 주는 대가로 1만원씩 받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김씨가 여러 보이스피싱 조직으로부터 약 2000만원을 받아 절반가량을 장비 구입에 쓴 것으로 봤다. 지난해 4월10일에는 마약 음료를 제조하고 전달한 2명의 20대, 30대 한국 남성이 구속됐다. 경찰은 두 사람의 진술을 통해 총책을 추적했다. 

추적 끝에 길씨에게 마약 음료 제조를 지시한 20대 이모씨와 현지서 범행에 가담한 중국 국적 30대 박모씨가 윗선으로 특정됐다. 특히, 이씨는 한국서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전력이 있으며 2022년 10월부터 중국에 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이 2022년 말부터 범행을 구상해 역할을 나누고 계획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이씨가 중국으로 건너간 2022년 10월부터 이 사건과 관련한 계획이 시작됐으며, 중국 내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책’으로 지목됐다.


동창 가담
중형 집행

앞서 이씨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기 위해 중국으로 출국한다고 주변에 알리고 2022년 10월17일 출국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씨는 이씨의 중학교 동창으로 드러났다. 판촉물 등을 한국으로 배송하는 데 가담한 박씨, 중계기 업자 김씨도 이씨가 고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씨 등이 범행을 꾸민 장소를 특정해 추적하기 시작했다. 중국에 있는 이씨와 박씨를 한국으로 송환하기 위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수사 발달로 수입이 줄자 새로운 유형의 범죄를 기획한 것으로 경찰은 봤다.

해당 사건을 경찰로부터 송치받아 수사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전담수사팀(팀장 신준호 강력범죄수사부장)은 길씨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 영리 목적 미성년자 필로폰 투약, 미성년자 필로폰 투약에 의한 특수상해, 보이스피싱 범죄단체가입 활동, 공갈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김씨, 박씨, 이씨 모두 공범으로 함께 기소했다. 길씨는 지난해 10월 1심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함께 기소된 공범 3명에게도 징역 7~10년이 선고됐다. 이어 지난해 5월22일 중국에 체류 중이던 이씨는 현지 공안에 의해 지린성 내 은신처서 검거돼 지난해 12월2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서울중앙지검 마약범죄특별수사팀(팀장 김연실 강력범죄수사부장)은 지난 1월24일 이씨를 마약류관리법 위반(영리목적 미성년자 마약투약) 혐의로 구속 기소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이후 국정원은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 핵심 주범인 공급책 A씨의 행방을 추적했으나 수개월째 결정적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1월 여행 가방에 필로폰 4㎏을 숨겨 캄보디아서 인천공항으로 들어오던 중국인 E씨를 적발해 배후 추적에 나섰다. 포착된 공급책이 주범인 A씨였다. 그는 사건 이후에도 법망을 피해 캄보디아서 한국으로 필로폰을 여전히 공급해오고 있었다.

국정원 주도···다국적 수사망 발동
‘미드’ 보고 흉내, 중국 총책 특정

국정원은 검찰(대검 마약과)·경찰(국가수사본부 마약조직범죄수사과)·캄보디아 경찰과 A씨 검거를 위한 공조에 착수했다. 이 과정서 아태 지역 5개국과 마약범죄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국정원 주도로 지난 2월 출범한 ‘아시아 마약정보협력체(INTAC)’의 역할이 컸다.

국정원은 INTAC을 통해 캄보디아 경찰에 A씨 전담 추적팀 편성을 이끌어냈다. 해외 정보망을 본격적으로 가동해 A씨의 은신처, 주변 탐색 등을 통해 포위망을 좁혀나갔다. 그러던 중 지난 달, 국정원은 현지 정보망을 통해 A씨 소재 관련 결정적 단서를 입수·분석하고 캄보디아 경찰에 지원을 요청했다.

현지 경찰은 제공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잠복수사에 들어갔고, 결국 지난 16일 프놈펜 중심가 빌라에 은신해 있던 A씨를 체포할 수 있었다. A씨 은신처에서는 2만3000여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필로폰 700여g이 발견됐다. 푸른색으로 인공착색된 신종 필로폰도 대량 포함됐다.

조사 결과, A씨는 ▲남미 조직이 코카인에 고유 문양을 새기는 점 ▲청색 필로폰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 등에서 영감을 얻어, 본인만의 푸른색 필로폰을 제조하기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중국과 한국에 해당 견본품을 공급해 시장 반응을 타진했으며, 중국보다 반응이 좋은 한국에 대량 공급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정원 관계자는 “A씨를 검거하지 못했다면 대량의 마약이 밀반입돼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과 같은 신종 범죄에 쓰였을 것”이라며 “국민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국제범죄조직에 대해서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끝까지 추적, 검거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 송환 여부 가능성에 대해선 “캄보디아 현지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캄보디아에서는 마약 범죄자에게 사형을 집행하지는 않지만, 80g이 넘는 불법 마약류를 취급하다 적발될 시 혐의가 인정되면 무기징역을 선고받을 수 있다. 

한편, 최근 동남아를 통해 한국으로 마약을 밀반입하려다 적발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 1월 태국과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서 필로폰 1.75㎏을 국내로 밀반입한 일당이 검거됐다. 이들은 지난해 6~8월 생리대에 필로폰을 은닉해 국내에 들여온 것으로 확인됐으며, 검찰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향정 등 혐의를 적용해 총책을 비롯한 9명을 구속했다.

신종 수법
억울한 알바

마약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동남아 일부 국가서도 과거와 달리 엄격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 헤로인 600g 이상 또는 필로폰 2.5㎏ 이상을 소지하거나 밀반입하다가 적발되면 사형에 처한다.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마약범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최소 189명에 이른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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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