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특집> 해병대 사태로 본 군 수사의 한계 ④군판사가 경험한 군사법원 무용론

“누가 뭐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지휘계통이 있어 하지 말라면 못했다. 아예 사건을 들여다볼 수 없고 이미 그 사건은 끝났다.” 박지훈 변호사가 군판사로 복무하던 중 겪었던 경험이다. 의욕을 갖고 있어도 결국 윗선서 결재해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팔이 안으로 굽듯이 군대서의 재판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희생되고 나서야 군대는 뒤늦게 개선책을 내놨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제도가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계급사회라는 특성상 개입 여지는 남아있다. <일요시사>는 전직 군판사 출신인 박지훈 변호사와 전직 군법무관 출신 변호사를 만나 군사법원과 민간법원의 차이, 개선할 점 등을 물었다. 

국방부 장관이 
군판사 임명

박 변호사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군법무관으로 의무복무 했다. 2001년 15회 군법무관 임용시험에 합격했고, 33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육군중앙수사단 검찰관, 법무참모, 육군군사법원서 군판사를 지냈다. 2004년부터 군법무관으로 복무했고, 당시 신설된 국방부 인권담당 대책 법무관으로 복무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군 인권개선을 위한 법 개정 초안에 관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군판사는 법조인이 의무복무 하기 위해 군에 복무하는 방식 중 하나다. 보통 군법무관 임용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의 정해진 과정을 마친 사람이다. 판사, 검사, 변호사 자격이 있는 이에게 군법무관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임명된 군법무관은 역할에 따라 군검사, 군판사, 군변호사(국선변호장교), 징계 장교, 법무참모 등의 역할을 맡는다. 법무참모는 군대 내에서 법무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장교다. 주요 업무는 국가소송과 행정소송의 수행, 군형사 사건의 사법적 업무, 법률적인 자문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군판사는 군인과 관련된 재판에서 판결하는 역할을 맡은 군인 신분의 판사다. 주로 군인, 군무원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일반 범죄라도 군인, 군무원 신분이면 군판사가 보통군사법원, 고등군사법원서 판결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군사제도는 미국의 군사법원 제도서 착안했다.

과거 우리나라도 전쟁을 겪었기 때문이다. 헌법에도 한국은 군사법원을 설치하도록 규정돼있다. 군사법원법은 지난해 6월 재차 개정됐다. 개정 전에는 군사법원이 각군 사단급에 설치돼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군단급으로 이상 부대서 통합 운영됐다.

그렇다 보니 일부 사무실과 업무시설을 공유할 수밖에 없었고, 이해관계에 관한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개정 후엔 이 같은 오해를 줄이기 위해 아예 국방부 직할로 통합해 모두 국방부 소속으로 뒀다. 군사법원 시설 역시 건물과 지역을 분리해 업무를 맡고 있다.

군판사의 경우 군법무관으로 임명된 사람 중 일정 경력 이상을 가진 사람만 심사를 통해 선발하고, 선발된 인원은 5년 임기가 보장돼 5년마다 심의를 통해 임기를 연장하도록 한다. 보통 민간법원서 10년 주기로 재임용 여부를 심사받는 부분을 군사법원은 5년으로 정하고 있다. 

“손 떼라” 하면 그 즉시 멈춤
과거 관할관, 심판관 폐해 커

박모 군법무관 출신 변호사는 “개정법률에 따라 군판사는 국방부 소속으로 독립된 직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일정 기간 군법무관은 다른 순환보직인 군검사·징계장교·법무참모 등을 거친 후 군판사로 임용된다”며 “과거 알고 지냈던 관계 등으로 이해관계를 따진다면 문제가 될 여지는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지난해 법이 개정되면서 이제는 단순히 외형적으로 이해관계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법률안이 조금 더 정착된 후에야 이해관계 등에 관한 문제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와 비슷한 제도를 갖고 있는 미국은 군인이 해외서 작전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미사일 한 발을 발사할 때도, 포로와 관련된 사안서도 법무참모의 법리적 검토가 이뤄진다. 심지어 어느 정도 규모의 작전이 가능한지, 현지 주민하고는 어떤 대화를 할수 있는지까지 검토한다. 

미국의 법무참모는 중장까지 진급이 가능하다. 늘 작전 참모가 옆에서 법무적인 검토를 할 필요성이 있어 상당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고, 미국의 법무참모는 할 일이 많은 편이다. 군대 역시 제대로 된 법치가 작용해 법무 업무를 하는 군인이 다수 있다.

박 변호사는 “미국 군대는 계속 이동해 작전을 펼친다. 군인이 법을 위반하면 본국으로 송환해 재판하지 못해 이동하면서 재판하려고 만든 게 군사법이다. 한국도 과거 6·25전쟁을 겪어 미국과 비슷하게 제도가 꾸려졌다. 우리 군의 경우 군단마다 판사가 한 명씩 존재한다. 많은 숫자는 아닌데, 비교적 민간에 비해 사건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국내 군판사는 평균적으로 한 달에 1~2건 판결을 내리고, 1년으로 따지면 10건 정도다. 음주운전의 경우 약식기소하는 경우가 있어 재판 수가 그다지 많지 않다. 중하다고 여겨지는 중대범죄일 경우 재판이 이뤄진다. 한국 법무참모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 소위 말하는 장성급 군인 중에 법조인 자격을 가진 군인이 없는 탓이다.

우리와 다른
해외 사례들

박 변호사는 “딜레마다. 과거 같은 경우는 시험을 쳤다. 법조인 시험을 쳐 시험을 통해 합격했다. 법조인으로 양성된 다음에 해야 하는데 지금은 군인 계급에 맞추는 정도”라고 말했다. 

군단에 소속된 군판사는 통상적으로 3~4개 사단의 재판을 담당한다. 군판사 역시 민간의 양형기준을 대부분 따른다. 재판부의 관점은 법률(형사소송법, 군사법원법)에 기초해 형사사건을 진행하고 판단한다는 소리다. 다만 군대라는 특성상 군사비밀보호법 위반, 항명죄 같은 경우는 군에서 정한 양형이 기준이다.

그는 “통상 자신이 속한 군단서 재판이 열리면 해당 군판사는 주심 판사가 된다. 배석 판사는 소위 말해 옆 군단서 꿔오는 형식으로, 다른 군단서 재판이 열릴 경우 배석 판사로 참여하는 구조다. 내가 근무하던 2008년 당시에는 판사 외에도 해당 부대 장교가 나와 심판관을 맡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전직 군 법무관 출신의 변호사는 “군사법원서 주요하게 보는 내용은 군사법원서 주로 판단하는 군형법에 관한 내용이다. 군형법상 범죄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는 경우 범죄구성요건이 충족됐는지 여부를 세부적으로 살핀다. 예를 들어 상관모욕죄를 판단해야 하는 경우 피고인이 범행 당시 피해자를 상관으로 인식하고 있었는지 여부 등”이라고 언급했다.

심판관 제도는 해당 부대의 참모급 계급이 재판에 참여했던 제도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폐지 목소리가 있었고, 현재는 완전히 사라졌다. 실제로 군판사가 판결내려도 부하라는 이유로, 형을 감형시키거나 죄가 있어도 무죄가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군대의 특성상 윗선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군판사는 군단장, 사단장의 지휘를 받는다. 군단장의 군대 내 서열은 6위다. 최대 8만명까지 지휘할 수 있고, 장군을 제외하고 실질적으로 가장 높은 계급이다. 대외적으로 따졌을 때도 대통령, 총리, 국방부 장관, 대장 7명, 국방부 차관 정도가 윗선이다. 실질적으로 군대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계급인 셈이다.

수사냐
조사냐


박 변호사는 “사실상 심판관이 판사와 다름없었다. 가령 징역 2년 정도 하겠다고 의견을 내면 간혹 같은 부대서 일한다는 이유로 다른 판결이 내려진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관할관 제도의 폐해도 상당했다.

재판이 끝난 뒤 사단장 등 지휘자에게 결재를 받으면서 다시 또 판결이 뒤집혔다. 징역 1년의 판결을 내렸다고 해도 지휘관이 형량을 깎는 게 가능했다. 모든 게 군대 안에서만 이뤄져 사실상 팔이 안으로 굽었다. 결국 심판관이 형량을 반 이상 깎지 못하도록 한 차례 개선됐고, 관할관 역시 이런 병폐가 발생한 탓에 ‘개입’조차 못 하도록 법이 개정됐다. 

특히 2021년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이예람 중사의 성범죄 사망사건이 발생해 사회적 파장이 일자, 이를 계기로 군사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급물살을 탔다. 3대 중대 범죄(성범죄·사망사건·입대 전 사건)에 관해 수사권을 민간 경찰에 이관하는 내용의 군사법원법이 다급하게 개정돼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됐다. 

박 변호사는 “독립성을 가진 재판을 해야 하고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한다. 심지어 과거에는 영장을 내러 갈 때도 다 결재를 맡아야 했다. 과거에는 체포영장이 나온다는 걸 미리 다 알고 있어야 대비가 가능했다”며 “이런 문제가 있어 제도가 개선되고 있다. 지금은 그래도 좀 많이 나아진 편이다. 특히 해병대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을 조사한 박정훈 대령의 구속영장 기각을 보면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대표로 발의해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의하면 해병대 대원 사망사건은 처음부터 군사경찰서 사건을 수사해서는 안 됐다. 


개정법률에 따라 수사권이 있는 기관의 수사 지원이나 협조 요청이 있었을 경우 수사가 아닌 조사는 가능하다. 해병대 차원서 수사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것 역시 법률상 허용되지 않는 부분이다. 통상 수사는 범죄 혐의가 있다고 여기는 경우 범죄사실의 조사, 범인의 발견과 확보 및 증거의 발견·수집·보전을 위한 수사기관의 활동이다. 

조직 입맛에 맞게 적절히 ‘만지작’
국민참여 통해 투명하게 공개해야

조사는 주로 관계기관 등에 출석해 진술을 청취, 진술서 제출, 자료 제출, 현장 조사와 검증 등이 이뤄진다. 조사 결과에 따라 행정적 조치와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가 이뤄지는 절차를 거친다. 

박 대령 사태는 이미 수사인지, 조사인지를 두고 견해가 갈리는 상황이다. 이 부분은 향후 박 대령에 관한 수사나 재판 과정서 첨예하게 대립될 부분으로 보인다.

박 변호사는 “사법활동은 지휘권과 분리돼야 한다. 결국 개입에 생긴 문제다. 누가 개입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개입된 상황이다. 박 의원이 발의한 법은 수사기관이 독자적으로 판단하라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전직 군법무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리적으로 따졌을 때 박 대령이 수사한 것으로 판단되면 박 대령 역시 법률을 위반한 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 반면 조사를 한 것으로 판단되면 박 대령은 적법한 직무상 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국방부 장관이 사단장을 빼도록 조치한 부분은 직무상의 권한행사(조사행위)에 개입했다고 해석될 수 있다”고 밝혔다.

과거에 비해 상부로부터의 압박은 줄었다. 다만 여전히 군의 구조상 압력이 가해질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 군판사가 여전히 군단장의 지휘를 받는 위치기 때문이다.

현재 군사법원을 없애는 방안까지 이야기가 나온다. 군 입장에서는 여전히 군사법원과 조직을 자신의 입맛에 맞추고 싶어한다.

박 변호사는 “(군은 군사법원 체계를)지휘권의 하나로 봤다. 군 스스로 재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기 위해 판사를 군 조직 밑에 두고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했다. 그런데 군 조직 내, 굵직한 사건들이 터져 이제 군사법원이 거의 없어지는 단계로 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군사법원이 아예 없어지는 것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바로 전시 상황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직 군법무관 역시 재판 전체를 1심으로 옮기는 게 답은 아닐 수 있다고 봤다. 

외부에선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을 계기로 군사법원의 개혁이 시급하다고 이야기한다. 법을 바꾸는 식으로 군사법원을 개혁하는 게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다.

또 군사법원을 민간법원처럼 최대한 동등한 절차나 방식으로 운영해보는 것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된다. 판사 1명당 맡는 사건 수는 민간법원이 군사법원보다 월등히 많기 때문에 사건 판단 노하우는 민간법원이 더 많이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민간법원은 사건 수가 많은 만큼 재판 기간이 길어지거나 사건당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군사법원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국민에게
개방 필요

다만 전문가들은 군사법원을 민간에 개방하는 방식도 개선안으로 본다. 군사법원은 아직 국민참여재판을 할 수가 없다. 외압, 개입이 우려된다면 재판 자체가 공정하게 진행되는지를 지켜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한 셈이다. 한 전직 군법무관은 “군사보안이나 기밀 등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시도해본다면 국민 입장서도 군사법원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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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