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벼락 때문에? 사라진 군 기록부 미스터리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10.24 11:31:34
  • 호수 13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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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 맞아 서류 다 없어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모두 군대를 간다. 군사력 증진을 위한 의도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로 포장된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의 입장은 다르다. 군대에서 훈련 중 생긴 부상을 군대가 외면하고 있다. 그것이 평생 남아 한 사람의 삶을 괴롭혀도 방법은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39조에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나와 있다. 대한민국 병역법 제3조에는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여성은 지원에 의해 현역 및 예비역으로만 복무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은 국방의 의무 중 하나인 병역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항상 귀마개
불면·불안증

대한민국 만 18세 이상 남성 국민 중 심신과 건강 수준을 충족한 국민은 현역 대상이 된다. 이들은 1년6개월 간 대한민국 육군에 현역병으로 입대해 군인으로 복무해야 한다.

국방의 의무는 공법상 의무 중 하나다. 공법이란 개인과 국가 간 또는 국가기관 간의 공적인 생활 관계를 규율하는 법이다. 세금, 선거 등이 이에 해당된다. 

군 입대를 위해서는 과별로 전신을 검사한다. 성인 남성 기준으로 ▲145㎝ 이하의 왜소증 ▲간 이식 ▲중풍 ▲중증 심장판막증 ▲폐인급 정신질환 등의 중증 질환이나 중증장애 등이 있으면 면제 사유가 된다.

현역병으로 입대하면 ‘육군훈련소’에 가게 된다. 이곳에서 신병은 신병교육인 정신전력 교육과 제식훈련 등을 받게 된다. 군인이 되는 첫 시작이다.  

육군훈련소 홈페이지에서 육군훈련소 훈련소장은 “훈련병들이 오직 교육훈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인권과 복지 여건을 증진시켜,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국가는 군인의 인권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군대에서 훈련 중 당한 부상으로 힘든 사람이 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국가가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2009년 3월24일에 강원도 A 사단에 입대해 2011년 1월25일에 병장으로 제대한 이재준(33)씨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이씨는 군대에서 생긴 이명 때문에 전신불안장애를 겪어 치료를 받고 있다. 

이명은 군대 사격훈련으로 발생했다. 이씨는 특급중대로 사격을 위주로 훈련했는데, 주특기가 ‘81㎜ 박격포’였다. 간단하게 소총 총성과 비교하면 일반 소총 총성은 약 150㏈로 뱃고동 소리를 바로 옆에서 듣는 것 같은 큰 소리다. 81㎜ 박격포는 포격 위력과 총성도 크지만, 빠른 탄환 속도로 총성이 더 크게 느껴진다.

당연히 사격 훈련에서 귀마개를 사용하지 않으면 이명이 생긴다. 그러나 이씨가 근무하던 시기에 A 사단은 훈련병에게 귀마개를 지급하지 않았다. 귀마개 지급이 100% 안 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지급되지 않았다. 

애당초 훈련 중 의사소통을 계속해야 해서 개인 귀마개가 있어도 낄 수 없는 실정이었다. 이런 환경으로 당시 함께 군 복무하던 동료는 모두 이명 증상을 겪었다. 

박격포 주특기 훈련 반복…평생 이명으로 고생
국가유공자 신청 위해 진단서 요청했더니 “없다”

다만 개인 차는 있었다. 이씨의 경우는 훈련이 끝나면 바로 귀에서 ‘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적막한 밤에는 삐 소리가 고음으로 들렸고, 가끔은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은 적도 있었다. 

이명이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사격 훈련을 한 뒤 대화를 할 때는 이명 소리로 대화 자체가 불가능할 때도 있었다. 이들 중에서 이명을 장기간 겪은 사람은 이씨와 이씨의 후임 정도다.

사격 훈련이 계속되니 당연한 일이지만, 이명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이명으로 인한 수면장애도 발생했다. 일상생활에서는 소음으로 이명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잠을 잘 때는 달랐다. 평소 6~7시간 잤던 수면 시간은 평균 1시간에서 1시간30분으로 줄었다.

이씨는 이명을 해결하기 위해 2009년 9월경 국군 B 병원에 방문했다. 함께 갔던 동료들도 주로 이명 증상 때문에 병원을 방문했다. 이씨는 B 병원 군의관에게 증상을 말했다. 군의관은 튜닝 포크(U자형 발굽)로 이씨의 양쪽 귀 뒤에서 두드리며 간단한 청력 테스트를 했다.

군의관은 “이명은 낫는 병”이라는 말과 일주일 치 약을 줬다. 

이씨의 실수가 있다면 군의관의 말을 믿은 것일까. 군대를 제대한 후에도 이씨는 병원을 가지 않았다. 증상이 심해질 때면, 이씨는 군의관이 말했듯 약국에서 약을 사 먹는 정도로 대처했다.

2년6개월이 지날 때 쯤, 이씨는 직장 관련 행사를 참석했다. 강사가 입장하면서 70명가량 관객의 큰 박수갈채가 나왔다. 그때 강하게 삐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일상생활에서 큰 소음에 노출되면 무조건 이명 소리가 들렸고 통증까지 동반됐다.

이씨는 병원에 방문했다. 정확한 병명은 ‘이명 및 돌발성 난청’으로 나을 수 없는 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2013년 7월1일이었다.

부실한 관리 
낙뢰 탓으로?

이씨의 일상은 귀마개와 함께였다. 외국에서 사무직으로 일할 때도 항상 귀마개를 하고 지냈다. 불면, 불안증은 계속됐다. 한국에 귀국해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병원을 내원해야 했다. 정신과에서 정신불안장애 진단도 추가로 받았다. 일상이 무너졌다.

이명으로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다. 이씨는 국가유공자 신청을 하기 위해 군인이었을 당시 내원했던 국군 B 병원과 A 사단에 ‘이명 진단서’와 ‘개인생활기록부’를 요청했다. 하지만 A 사단은 이 자료가 모두 없다는 답을 줬다.

우선 국군 B 병원은 이씨의 이명 진단서 자체가 없다고 대답했다. 반면 ▲손가락 염좌 ▲감기 ▲요통 ▲비골 골절에 관한 진단서는 있었다. 

B 병원은 “의무 기록이 없는 것은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거나, 진료를 하지 않았을 경우다. 현재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예비 전산 구축은 현재 주 서버와 각 부대에서 수시로 저장해 기록을 유지하나, 그 당시 주 서버와 예비로 저장하고 있는 컴퓨터 모두 피해를 봐 자료가 없는 상태다. 당시 함께 근무한 간부의 자료 또한 컴퓨터 피해로 자료가 없다”고 답했다.

이씨는 이 일에 대해서 “지금 생각해 보면 농구하다가 다쳐서 병원을 갔을 때는 군의관이 내가 하는 말을 컴퓨터에 기록했다. 그런데 이명으로 치료를 받을 때는 컴퓨터로 기록하지 않아 당시에도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기록이 없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군대 개인 생활기록부의 법적 보관 기간은 5년이다. 이씨가 국민신문고를 통해 군대에 문의를 했을 때는 4년이 지난 시점인 2015년이다. 

국민신문고는 “전자화한 개인생활기록부는 2014년 9월5일 오전에 발생한 낙뢰로 본체 하드디스크가 손상돼 연대 및 대대에 정비를 의뢰했다. 하지만 하드디스크가 복원되지 않아 컴퓨터를 교체해 자료 확인이 불가능하다”며 “수기로 작성한 개인 생활기록부는 해당 부대에서 분실했으며, 그 분실 사유에 대해 A 사단 감찰부는 ‘알 수 없음’이라고 답변을 받았다”고 회신을 보내왔다.

과실 인정
“방법 없어”

기상청의 ‘2014 낙뢰 연보’에는 낙뢰 정보가 있다. 2014년 낙뢰 연보에 따르면 A 사단의 강원도 ○○군은 2014년 9월에 낙뢰가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낙뢰는 5월, 6월, 7월에 떨어졌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씨에게 남은 자료는 10대 시절 청력에 문제가 없었다는 학생기록부와 군 제대 후 병원에서 받은 의료기록뿐이다. A 사단은 이씨에 관한 어떤 자료도 제공하지 않았다. 결국 이씨는 국가유공자 신청에서 떨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군대에서 이씨의 자료를 누락시켰기 때문이다.

자료가 누락되기만 한 게 아니다. 다르게 기록된 자료도 있었다. 바로 군대 사격 일자다. 이씨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2009년 8월13일부터 12월까지 사격(81㎜ 박격포 및 개인화기)을 다수 실시했다. 그런데 사격 내역이 없는 것으로 나온다. 이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국민신문고는 “민원인이 근무한 부대의 사격훈련 기록 확인을 위해 부대일지, 전자기록을 확인한 결과 2009년 8월부터 12월까지 사격훈련에 대한 기록은 없다. 또한 육군 규정에 따라 탄약 보급 및 소모 거래 문서, 불출증 등은 5년간 유지, 의거 탄약고 출입일지는 3년간 보관 후 폐기해 민원인이 요구한 자료는 현재 부대 내 부존재한다”고 답했다.

결국 이씨가 군대에서 받을 수 있었던 자료는 ‘중대장 확인서’ 뿐이다. 이 자료는 특급중대에서 사격을 많이 했다는 확인서다. 하지만 이 기록조차도 국민신문고 답변과 어긋난다.

이씨가 군 복무 시기에 작성했던 일기에는 사격 일자가 기록돼있다. 이를 제출해 당시 사격한 사격 발수·훈련 기록·불교 군종병으로 활동한 병사 상담 내용을 제출한 것도 증거로 사용되지 않았다.

이명이 심했던 이씨의 후임은 이씨를 위해 사실확인서를 써줬다. 그러나 이 역시 심사 내용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사단 “낙뢰로 자료 소실됐다”
‘낙뢰 연보’엔 낙뢰 기록 0건”

사실확인서에는 “본인 역시 이씨와 마찬가지로 군 복무 시 이명으로 고통받았고, 제대 후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했으나 등급 미달 판정을 받았다. 본인은 군 복무 시 이명과 관련해 병원에 여러 차례 내원했는데, 당시 이씨 역시 함께 내원한 사실이 있다. 이씨가 이명으로 고통받았다는 것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지만, 당시 이명으로 병원을 간 것이라는 정확한 기억은 없다”고 명기됐다.

이어 “당시 우리 중대는 연대에서 ‘특급전사’ 대회를 나가는 중대로 타 부대보다 사격 훈련이 훨씬 많았다. 또 박격포 중대로 그 소음 또한 어마어마 해서 큰 소음에 자주 노출돼 이명 증상을 보였던 전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돼있다.

이씨 후임의 증언은 있었지만 ‘이명으로 병원을 간 것이라는 정확한 기억은 없다’는 말로, 증언은 효력이 없었다. 이후 이씨는 국가유공자 심사를 한 번 더 실시하고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행정소송에는 “이 사건은 군 상이와 군 직무수행 등과의 상당 인과관계가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자료로 입증돼야 한다. 그러나 군 병원 진료기록지상 이 사건과 관련해 진단 및 진료받은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객관적인 수상 경위 및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제출된 소속 중대장의 확인서, 해당 부대의 훈련 일지 및 실탄 소모 출입일지 기록 등을 통해 이씨가 군 복무 중 사격훈련을 실시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이씨가 주장하는 수상 당시의 진료기록 및 구체적인 진단명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씨는 의무기록지 등의 작성 및 보관에 관한 책임이 군 병원에 있어 이 사건 처분이 위법·부당하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군 병원 또는 행정청에서 그 등록 요건과 관련된 자료를 의도적으로 폐기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다”고 덧붙였다.

즉 이씨 후임의 증언이 있었지만 ‘이명으로 병원을 간 것이라는 정확한 기억은 없다’는 말로, 증언은 효력이 없었다. 사라진 이명 진단서와 A 사단의 개인 생활기록지 소실은 ‘의도적인 것’이라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책임 소재를 논할 수조차 없다.

현재 이씨에게 남은 건 이명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이씨는 귀마개 없이 사격 훈련을 해서 이명이 생겼다고 말하지만, A 사단은 모든 자료가 없다고 답할 뿐이다. <일요시사>는 A 사단과 B 병원에 연락해 사라진 자료에 대해 문의했다. B 병원은 “개인 정보라 답할 수 없다”고 답했다. 

A 사단에는 ▲개인 생활기록부가 낙뢰로 소실됐다는데, 해당 날짜에는 기상청 낙뢰 정보가 없다. 어떻게 된 일인지 ▲수기 자료는 어떤 사유로 분실됐는지 ▲정보 분실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지 ▲A 사단의 잘못으로 서류가 유실됐다. 이에 대한 어떤 대책이 있는지 ▲개인 자료 분실 관련 책임 소재는 어떻게 되는지에 관해 질문했다.

A 사단 관계자는 “자료는 낙뢰를 맞아서 사라졌다. 세부적인 원인은 제한된 상황이다. 너무 오래됐고, 웬만한 건 기한이 지나서 상세 원인이 제한됐다”며 “최대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확인했다. 책임 소재는 당시 문제 제기가 됐더라면 확인해서 조사했을 텐데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군병원·부대
서로 나몰라라

이씨는 “A 사단 감찰부로부터 같은 중대 다른 소대 인원에서도 의료기록이 없어져 중대장 확인서를 받아 간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이런 피해자가 되고 있는 것”이라며 “가장 화가 나는 것은 군의관이다. 이게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명이 낫는다면 제일 좋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냥 군대에서 인정하고 보상을 해줬으면 좋겠다.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내팽개쳐진 것이다. 지금 군 생활하는 사람들은 나 같은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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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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