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특집> 해병대 사태로 본 군 수사의 한계 ①헛발질의 전환점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9.25 12:53:06
  • 호수 14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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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부터 달라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한국이 들끓고 있다. 군 사망사고 수사에 대한 불신이 뜨거운 감자가 됐기 때문이다. 군 수사는 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과정서 수사에 오류가 발생하는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을 듣기 위해 <일요시사>는 천안함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윤종성 전 국방부조사본부장을 만나, 군 수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변모했는지 그의 목소리를 청취했다.

매주, 매달, 매년 군대서 사람이 죽는다. 그 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없어질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망한 군인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한 수사도 끊이지 않는다.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군대 수사는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까? 언론 매체서 수없이 보도되는 것처럼 군대서 발생한 사망사고는 수사 과정서 모두 은폐되고 조작된 것일까? 

전 조사본부장
윤종성의 특단

지난 7일 오후 1시30분, <일요시사>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헌병전우회를 찾아 회장을 맡고 있는 윤종성 전 국방부조사본부장을 만났다. 윤 전 본부장은 2006년 군대에 과학수사 시스템을 접목한 장본인으로, 이 시스템을 접목해 천안함 사건 수사를 진행했다. 

군대에 과학수사 시스템을 만들고 도입한 것은 2006년으로, 윤 전 본부장이 육군범죄수사단에 있었을 때다. 육군 범죄수사단, 수사과장, 정보과장, 대통령 경호실 등에서 근무했던 윤 전 본부장은 현역에 몸담으면서 군 수사의 한계를 느꼈다. 

기존 군 수사는 수사관의 개인 역량에 따라 좌지우지됐다. 훌륭한 수사관이어도 개인 역량 차이는 크다 보니, 수사 결과가 좌지우지되는 게 문제였다. 2006년 이전 군 과학 수사는 지문과 족적을 검출하는 게 전부였다. 이런 식의 수사 시스템은 증거 확보가 어려워 정확한 수사 결과라고 말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유가족은 군 수사를 신뢰할 수가 없었다.

군 수사 시스템을 바꾸는 데 가장 부족한 것이 인력과 장비였다. 그나마 인력은 1인 다역화를 해서 해결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장비였다. 사는 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비가 있어야 군사경찰이 과학수사를 학습할 수 있고,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윤 전 본부장은 당시 김장수 육군참모총장을 찾아갔다. 범죄수사단은 특수부대고, 총장 직속부대여서 과학수사 장비를 사기 위해선 업무보고를 해야 했다.

“총장님이 육군 지휘를 하는데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꼭 과학 수사 장비가 필요합니다. 예산 조치를 해 주십시오.”

김 참모총장은 윤 전 본부장에게 “얼마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당시 3억원이 필요했다. 물론 이 돈도 충분하진 않았지만, 시스템을 갖출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이렇게 군사경찰은 장비를 갖추게 됐고, 과학수사의 전환기를 맞았다.

2006년 전 수사관 개인 역량으로만 수사
과학수사 도입…수사 시스템 체계 구축

윤 전 본부장은 “유능한 수사관은 선천적인 수사감각이 있거나, 스스로 노력한다. 그런데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수사 범위는 너무 광범위하고 범죄 수법은 다양하다. 그러니 과거 노하우 중심으로 수사했던 것을 증거 중심 수사로 바꾸는 시도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 수사의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군 수사가 정보 지식기술을 활용하게 됐다. 여기에 더해 수사 시스템을 체계화했다. 이 시스템은 크게 5가지 수사 순환을 이루는데, 첫 번째로 ▲기초 수사(초동조치를 포함한 10가지 수사 방법)를 거쳐 ▲분석 수사(뇌파 검사, CCTV 분석 등 10가지 수사 방법) ▲상황 분석의 단계를 거친다.

상황 분석에서는 사건을 파악‧추정하고, 수사 방향 판단, 수사본부 편성, 유관기관 협조까지 이뤄진다. 이후 ▲종결 수사(피의자 신문, 현장검증, 언론 브리핑, 수사 종결) ▲추적수사(국제공조 수사, 금융수사, 통신수사, 사이버수사, 출입국 수사, 차량 수사)를 하게 된다.

다만 사건이 같은 단계를 거치는 것은 아니다. 사건 유형에 따라 바로 종결 수사로 가기도 하고, 추적 수사로 넘어가기도 한다. 각 수사 단계서 모두 지시와 보고가 이뤄지며 판단한다.

윤 전 본부장은 “지금도 이 시스템으로 수사가 이뤄진다고 들었다. 그리고 헌병학교 행정학교서 교육할 때도 이 시스템을 만들었다. 범죄의 성격에 따라서 단계를 다 거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고 말했다. 

숙고와 고민의 과정이었고, 끝없는 회의의 결과였다. 윤 전 본부장은 “시스템은 중요한 요소를 연결하는 것이다. 수사 과정 중에는 다양한 상황이 발생하니 시스템에는 아주 핵심적인 것으로만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다음 순서로 해야 하는 것이 군사경찰 수사를 훈련하는 것이었다. 모든 군인은 훈련을 하지만 수사는 훈련할 수 없다. 기존 군사경찰은 사건이 터지면 수사를 경험하며 몸으로 체득했지만, 이때부터 군사경찰을 모아서 훈련했다.

종합훈련이 시작되고, 파트별로 나눠서 상황별 훈련을 실시했다. 수사관은 경찰청, 출입국 관리소, 김포공항, 항만청을 직접 견학가기도 했다. 

이 밖에도 군사경찰은 사단에 2~3명 배치돼있는데, 이를 군단 단위로 묶었다. 다음에 수사관마다 특기를 나눠서 사건이 터지면 서로 지원받게 했다. 수사본부장은 사단 대장이어도 군단 수사관에게 지원받는 형식이었다. 수사 시스템 체계가 바뀐 것이다.

지휘 걸림돌
제거에 중점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있던 2009년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이 윤 전 본부장에게 “조사본부는 장관의 눈과 귀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윤 전 본부장은 군사경찰과 협조해 범죄 정보 활동을 하며, 국방부 차원의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끝없는 학습과 훈련을 거듭한 시간이었다. 윤 전 본부장과 함께 일했던 군사경찰 관계자는 “훈련하다가 죽을 뻔했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할 정도였다.

2006년부터 시작된 이 일이 체계를 잡아가고 있을 무렵, 한국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천안함 사건이었다. 2010년 3월27일 21시22분 백령도 남서쪽 약 1㎞ 해상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PCC 772 천안함이 북한 해군 잠수함의 어뢰로 격침됐다.


이 사건으로 해군 장병 40명이 사망했고, 6명이 실종됐다. 당시 이명박정부는 천안함의 침몰 원인을 규명할 민간·군인 합동조사단을 구성했다. 그리고 5년간 이뤄졌던 군 과학수사 훈련은 천안함 침몰 사건 원인을 밝혀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윤 전 본부장은 “민간·군인 합동조사단이 구성됐었다. 대부분 선박 전문가, 해양 전문가였다. 소위 말해서 시뮬레이션을 만들어서 분석하는 사람들. 그런데 우리는 수사해서 증거를 잡아야 했다. 사건은 증거가 없으면 해결이 안 되고 기소도 할 수 없다. 전부 시뮬레이션하는 사람만 있으니 수사하는 방향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수사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국방부는 사건 발생 시각을 오후 9시45분이라고 최초 발표했지만, 이는 보고 시각이었다. 여론의 질타가 심하자 오후 9시30분으로 다시 발표했지만, 이는 구조 요청 시각이었다. 국방부는 국민에게 ‘정신 나간 국방부’라고 질타받았다. 

윤 전 본부장은 “국방부도 이런 사건이 처음이니까 감각이 없었다. 언론서 계속 요구하니 수사가 진행 중인데도 그냥 발표했다. 그래서 지진파, 한국해군전술자료체계(KNTDS) 등 사건 수사 데이터를 확보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곧 군사경찰 자체적으로 통신 분석 영장이 발부돼 통신 분석을 시작했다. 마지막 통신 시각은 오후 9시21분47초였다. 그래서 천안함 사건 발생 시각이 오후 9시22분이 된 것이었다. 

끝없는 학습
훈련의 시간


사건 발생 시각보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원인이다. 윤 전 본부장과 군사경찰은 생존 장병 58명에 관해 개별적 진술 청취를 듣기 시작했다. 장병들은 찬안함의 연돌(함선의 보일러 굴뚝)서 함미(군함의 끝)가 보이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건 현장에서는 천안함이 어뢰의 폭격으로 침몰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계속해서 나왔다. 

반면, 청와대 외교안보장관 회의에서는 “사건 원인이 불분명하니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함장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당시 외교안보장관회의에 참석한 사람 중 군생활을 해본 사람은 국방부 장관 단 한 명이었다. 

즉, 현장 의견을 간과한 외교안보장관회의였고, 현장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윤 전 본부장은 “회의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현장에선 어뢰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결론이 이상하게 났다. 당시 국방부 장관은 상황상 말을 하기 어려웠겠으나 이런 상황에서는 군사 지도자를 여러 명 불러놓고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고 당시 상황을 지적했다.

이어 “정치하는 사람들은 군사적 판단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드러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런 판단은 무지의 소치”라고 아쉬워했다.

정치권과 천안함 사건 현장의 의견이 다른 가운데, 수사는 계속됐다. 2006년도부터 구축한 과학수사 시스템이 빛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민간·군인 합동조사단은 천안함 수사에 회의적이었다. 민간 합동조사단 중 메사추세츠 공과대학을 나온 사람이 있었는데, 폭약 성분 검출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윤 전 본부장이 “그러면 금속 성분은 추출할 수 있냐”고 묻자, 민간 합동조사단 관계자는 “어뢰 추진체에 붙어있던 프로펠러 조각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쉽지 않다”고 답했다.

“천안함은 군사경찰 완벽한 수사라는 평가”
“지휘관이 수사 개입하지 않도록 막혀있어”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수사관들이 선체를 거즈로 다 닦았고, 결국 폭약 성분을 검출해내는 데 성공했다. 다음으로 CCTV 분석으로 들어갔다. 천안함에는 11개의 카메라가 있었는데 이 중 6개를 복원했다.

이것도 과학수사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CCTV에 폭발 장면만 확보하면 모든 게 정리될 수 있었으나 CCTV는 외부 압력과 폭발 등이 있으면 1분 뒤 녹화되는 시스템이어서 천안함 폭발은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상적인 항해 중 갑작스럽게 침몰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어뢰 추진체를 수거하는 문제가 남았다. 여러 가지 방법들이 제기됐지만 모두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윤 전 본부장이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과학수사연구소장이 위문 차 방문해 “공군 전투기가 바다에 추락했을 때 뭐로 건져 올리는지 아느냐”며 쌍글이 어선 이용을 제안했다.

제안을 받은 윤 전 본부장은 바로 어선 관계자를 만났고, 관계자들은 천안함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명했다. 그렇다고 쉽게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결국 비용이 문제였지만, 방법이 없었다. 5월3일 작업을 착수했지만, 기상 상태가 좋지 않고 그물이 찢어져서 5월10일 본격 작업이 착수됐다. 건져 올릴 때는 국방과학연구소가 시뮬레이션을 만들어서 어뢰 추진체 위치를 확인했다.

당시 어뢰가 어느 나라 것인지 확인하는 단계만 남았다. 그때 마침 국가정보원이 북한이 무기를 중남미로 수출하기 위해 만든 무기 카탈로그를 입수했는데, 이 카탈로그에 있는 북한 어뢰와 천안함을 폭격한 어뢰가 같다는것을 확인했다.

윤 전 본부장은 “천안함 피격 사건은 군대에 과학수사를 접목해 이뤄낸 완벽한 수사로 평가받았다. 군사경찰이 이뤄낸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눈부신 성과를 이뤄낸 군사경찰이지만, 외부에서는 군의 특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군이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군대의 구조상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점이 있다. 

윤 전 본부장은 “군대 수사는 매뉴얼로 정해져 있어서 오류가 많이 줄었다. 분명 과거에는 수사 중에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줄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군은 지휘관 체계 아래에 있으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건 여전하다”면서도 “하지만 군대는 전쟁이 났을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진 조직이다. 전쟁이 나면 일사불란으로 전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지휘관 결단

이어 “그런 만큼 군대서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물론 지금도 수사에 관해선 주 지휘관이 권한을 하지 않도록 법적으로 막혀 있다. 하지만 규정이 있더라도, 군대라서 가능한 부분이 있다. 이런 것은 지휘관이 딱 끊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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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