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사망사건’ 사단장 구명 진실공방

대통령 움직인 보이지 않는 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사람의 죽음이 정쟁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산 자만 시끄럽게 떠드는 중이다. 진상규명을 하겠다는 의도는 빛이 바랜 지 오래다. 최근에는 또 다른 외부인이 등장했다. 정치권은 또다시 공방전에 돌입했다. 어느 덧 죽은 자는 뒷전이 된 모양새다.

지난해 7월19일 채수근 해병대 상병이 경북 예천의 수해 현장서 실종됐다. 실종자 수색을 하던 채 상병은 급류에 휘말린 지 14시간 만에 내성천 인근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채 상병 사건’은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채 표류 중이다.

상병 죽음
1년 됐다

채 상병 사건은 진상 규명 과정서 제기된 수사외압 의혹으로 논란의 중심에 놓여 있다. 채 상병이 사망한 이후 박정훈 대령을 수사단장으로 하는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를 진행했다. 박 대령은 지난해 7월30일, 채 상병이 소속된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 등 관계자 8명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고 알려졌다.

이후 해방대 수사단의 보고를 받은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사건 이첩을 보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수사단이 이 지시를 따르지 않고 사건을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하면서 항명 논란이 불거졌다. 국방부 검찰단은 수사 서류를 경찰로부터 회수하고 박 대령을 항명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그러면서 임 전 사단장을 제외한 해병대 대대장 2명에 대해서만 범죄 혐의를 물어 해당 사건을 경찰에 재이첩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 과정서 수사외압 의혹이 불거졌다. 임 전 사단장 등 고위 간부의 책임을 축소, 은폐하기 위해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내용이다. 


채 상병 사건을 둘러싼 수사외압 의혹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야권은 사건에 대한 특검이 필요하다면서 ‘채 상병 특검법’으로 불을 지폈고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사건에 대한 두 번째 거부권이다. 또 경찰은 업무상과실치사,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된 임 전 사단장을 불송치 결정했다.

경찰의 판단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수사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일단 공수처는 경찰 결론과는 무관하게 수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경찰이 채 상병 사망에 대해 임 전 사단장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사건이 복잡해졌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컨트롤타워’
통화 녹음에서 “내가 얘기하겠다”

여기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관련 인물이 임 전 사단장의 구명을 시도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됐다. 이른바 ‘구명 로비’ 의혹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 수사 4부는 이모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지난해 8월께 지인과 나눈 통화 녹음을 확보했다. 해당 파일은 채 상병 사건 이후 임 전 사단장의 책임론이 불거질 당시 통화를 녹음한 것이다. 통화 녹음은 공익신고자이자 이 전 대표의 통화 상대방인 A 변호사가 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통화에서 A 변호사가 먼저 “해병대 사단장 난리가 났다”고 운을 떼자 이 전 대표는 “임성근이? 그러니까 말이야. 임 사단장이 사표를 낸다고 B가 전화가 왔다. 그래서 ‘내가 절대 사표 내지 마라, 내가 VIP한테 얘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또 “아마 내년쯤 (임 전 사단장을)해병대 별 4개(로) 만들 것”이라고 말한 내용도 파악됐다. B씨는 청와대 경호처 출신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A 변호사가 “지금 떠오르는 게 위에서 그럼 (임 전 사단장을)지켜주려고 했다는 건가”라고 묻자 이 전 대표가 “그렇지”라며 호응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 전 대표가 통화 중에 VIP를 언급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특히 이 전 대표는 김건희 여사가 연루돼있다는 의혹을 받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서 ‘컨트롤타워’로 지목된 인물이다.

임 전 사단장은 지난 10일, 인터넷 카페를 통해 공개한 입장문서 “(청와대 경호처 출신인)B씨든 이씨(이 전 대표) 등 임성근을 위해 누군가를 상대로 로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구명 로비는 시기상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경찰 불송치 
끝났나 했는데

자신은 지난해 7월28일 오전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사의를 표명했는데 이 전 대표나 B씨는 이종섭 전 장관이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에 대한 결재를 번복한 7월31일까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으므로 구명 로비를 할 수 없었다는 취지다.

임 전 사단장이 사의를 표명한 사실이 언론 보도로 알려진 것은 지난해 8월2일이다. 

임 전 사단장은 “사의 표명 전후로 어떤 민간인에게도 그 사실을 말한 바 없다”며 “B씨가 사직 의사 표명을 알았다면 아마도 언론을 통해 알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씨와는 한 번도 통화하거나 만난 사실이 없다”며 “의혹을 보도하기 전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객관적 사실관계의 확인과 검증, 비판적 검토를 거쳐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대표 역시 임 전 사단장을 위해 구명 로비를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 전 대표는 언론과의 통화에서 “나는 임성근을 모르고 (언론에 보도된 통화 녹취는)후배들이 하는 얘기를 인용한 것”이라며 “녹취를 제보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야지 편한 부분만 잘라서 하는 건 잘못됐다”고 말했다.

통화 녹음이 편집됐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종섭 전 장관 역시 구명 로비는 금시초문이라는 입장이다. 이 전 장관을 대리하는 김재훈 변호사는 “장관은 사건 이첩 보류 지시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대통령실을 포함한 그 누구로부터도 해병대 1사단장을 구명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은 사실이 없고 그렇게 지시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새로운 국면
민주당 공세

대통령실도 입장을 내고 구명 로비 의혹에 대해 반박했다. 대통령실은 공지를 통해 “대통령실은 물론 대통령 부부도 전혀 관련이 없다”며 “근거 없는 주장과 무분별한 의혹 보도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한다.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선 강력히 대응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임 전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에 대해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미 채 상병 사건 특검으로 대통령실과 각을 세운 상태서 구명 로비 의혹이 기름을 부은 모양새가 됐다. 민주당은 임 전 사단장을 불송치한 경찰 조사 결과와 구명 로비 의혹을 묶어 대통령실을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구명 로비 의혹과 관련해 “(당사자가)해명할수록 의혹만 더 커지고 있다”며 “특검으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가 통화 중에 언급한 ‘VIP’를 “대통령이 아니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라고 해명한 이후에 나온 발언이다.

박 직무대행은 “언제부터 해병대 사령관을 VIP라고 불렀나”라며 “차라리 천공이라고 둘러댔으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비꼬았다.

박 직무대행은 전날(10일)에도 “사건의 몸통이 대통령 부부라는 자백이자 스모킹건”이라며 채 상병 특검법을 관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윤 대통령 부부의 방탄용 거부권 남발과 경찰의 꼬리자르기식 면죄부 수사로 채 상병 특검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며 “법 앞의 평등에 윤 대통령 부부만 예외일 순 없다. 죄를 지었으면 똑같이 수사받고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사자·대통령실 모두 부인
공수처 진위 여부 수사 중

반면 국민의힘은 구명 로비 의혹을 ‘제2의 생태탕’ 사건으로 규정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생태탕집 모자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내곡동 처가 땅 측량 현장을 방문했다고 민주당 측이 공세를 퍼부었던 사건을 언급한 것이다.


국민의힘 정점식 당 정책위의장은 “일방적 주장이 담긴 녹취록을 마치 객관적 사실처럼 기정사실로 하고 상대를 공격하는 전형적인 정치공세”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성일종 사무총장도 “괴담과 공작의 본거지가 민주당이었던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김대업 병풍 사건, 광우병, 사드(THAD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수 괴담, 생태탕, 채널A 검언유착 사건, 청담동 술자리 사건 등을 언급하며 구명 로비 의혹을 ‘가짜 뉴스’로 규정했다. 

이어 “공당의 원내대표가 인터넷 커뮤니티서나 볼 법한 가짜뉴스를 생산·유포하는 데 앞장선다”며 “범죄 수괴를 아버지로 모시는 것으로 모자라 이제 ‘지라시 생산 공장장’이 되고자 해서야 되겠느냐”고 비판했다. 민주당 박 직무대행의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표는 언론에 거듭 입장을 밝히면서 김건희 여사와 선을 긋고 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서 오랜 기간 김 여사와 접촉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VIP를 언급한 것은 허풍이었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러면서 B씨와 임 전 사단장의 구명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고 오히려 A 변호사가 이를 집요하게 물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서 허풍, 허세, 과시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한 신빙성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수사 결과
정국 요동

구명 로비 의혹에 대해 당사자는 부인하고 정치권은 정쟁을 벌이는 등 사건이 확산되면서 공수처 수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통화 녹음 파일을 확보한 공수처는 진위 여부를 가리겠다는 입장이다. 통화 녹음의 신빙성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채 생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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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