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특집> 해병대 사태로 본 군 수사의 한계 ③국회 국방위원 배진교의 직언

“1심부터 민간법원으로 이전해야”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대한민국 국민 중 최소한 가족이거나 친척, 주변 사람 중에 한두 사람은 다 군과 관련돼있습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정의당 배진교 의원의 말이다. 군은 우리 삶에 깊숙하게 관여돼있는 존재다. 그럼에도 군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기는 어렵다. 뒤늦게 세상에 밝혀지고 나서야 무언가 고친다. 군을 신뢰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동안 군의 은폐·조작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는 다각도서 개선책을 내놨다. 군대 내에서 지휘권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군사법원법이 개정됐다. 사망사건, 성폭력 범죄, 입대 전 범죄에 한해서는 민간이 진행하는 것으로 법이 바뀌었다. 

굳건한
우선주의

그러나 이번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의혹이 발생한 해병대 사단장을 수사 대상서 뺄 것을 지시한 정황이 드러났다. <일요시사>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정의당 배진교 의원을 만나 군 수사 시스템의 문제점, 국회 차원서 마련 중인 개선책 등에 관해 물었다. 

군 사법개혁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시기는 2005년부터다. 당시 노무현정부는 대통령 자문기구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를 통해 지휘관의 확인조치권 제한(형이 과중하다고 판단될 때 선고된 형량의 3분의 1 미만 범위서 형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심판관 제도의 폐지, 군 검찰부와 군사법원의 독립이라는 내용을 담은 개혁안을 내놨다.

그러나 여야 간 이견 차로 결국 2008년 17대 국회의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된 바 있다. 이후 10년간 군사법개혁은 딱히 이뤄지지 못했다. 2014년이 돼서야 비로소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혁신 특별위원회가 출범했다. 


배 의원은 “군은 조직 우선주의가 있다. 사건이 터졌을 때 우리의 단체 안에서 일어난 일인데 굳이 이걸 공개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가진 게 군이다. 이런 문화들이 아직 사라지고 있지 않다. 위계질서가 분명하니까 어느 사회보다 폐쇄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 군대 역시 위계질서가 있지만 업무 영역에 한해서만 적용한다. 업무가 끝난 사적 영역에서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공적 영역부터 시작해 사적 영역까지 모두 위계가 존재해 실질적으로 인권문제가 상당히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람이 아닌 존중은 부하로서만 존재하고 인격체로서 존중하지 않아 인권문제가 계속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윤승주 일병 사건이 발생한 뒤부터야 개선책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윤 일병은 선임병의 집단폭행으로 숨졌다. 당시 군은 윤 일병의 사인으로 냉동식품을 나눠 먹던 중 우발적 폭행을 당해 질식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가혹 행위가 일어난 사실이 드러나며 논란이 커지자, 뒤늦게 죄목이 살인으로 변경됐다. 군이 스스로 초동수사가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인정한 셈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군검찰과 군사법경찰 제도 운영의 개선 필요성이 인식됐고, 군사법원을 폐지해야 한다며 국회와 정부도 줄곧 추진해온 상황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군의 은폐와 조작은 계속 벌어졌다. 2021년 5월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을 통해 군의 조작과 은폐 정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채수근 상병 사건 윗선 개입 의심”
“군 직접 조사·재판 굉장히 모순적”

이 중사는 상급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신고했지만 상급자는 처벌 없이 사건이 은폐돼 오히려 이 중사와 남자친구까지 압박을 받았다. 사건이 유포되면서는 2차 가해까지 당했다. 또 공군본부 공보 담당 장교는 이 중사가 강제추행이 아닌 부부 사이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허위 내용을 기자에게 제공했다.


진실을 감출 순 없었다. 법무실장의 군 수사 개입 정황과 조직적 은폐, 외압 정황이 있었음이 세상에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배 의원은 “윤 일병 사태와 이 중사 사태로 군 내부의 조작과 은폐에 관한 정황이 드러났고, 국회 차원서 대응책을 마련했다. 군의 지휘체계 안에서 벌어지는 조작과 은폐가 드러나자 민간에 맡기라는 취지의 법안을 마련했다. 여기에는 군 지휘부의 간섭을 배제하겠다는 뜻이 담겼다”고 전했다. 

이 중사 사건을 계기로 군의 고등군사법원이 폐지됐고, 수사권이 일부 민간에 이관됐지만, 여전히 한계점이 있다. 성범죄, 사망 사건, 군인 신분 취득 전 범죄에 한해서 민간법원에 이전됐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머지 사안은 피해자가 사망해야만 민간서 수사하고 재판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는 “군의 사법체계는 특수한 영역,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다. 군 지휘체계 안에 존재하는 군사재판과 군검찰부는 군이라는 계급사회의 영향 아래서 공정한 법 집행이 이뤄질 수 없는 구조다. 군이 스스로 조사하고 재판하는 것은 굉장히 모순적이며 삼권 분립이라는 원칙서 벗어난다”고 지적했다.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군사법원은 제 식구 감싸기, 사건 은폐에 한몫하면서 국민적 분노를 일으켜왔다. 물론 군도 수사체계, 방식 등 여러 사안을 고려해 개혁에 힘써왔다.

과거에는 사망 사건에 관한 자료가 없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말 한마디, 단어 하나로 사망 원인은 제각각이었다. 지금은 과거보다 나아졌다. 국회, 정부서 추진해오는 법도 점차 지휘권에 힘을 빼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군 역시 지속적으로 개선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같은 케이스의 사건이 반복되는 실정이다.

감싸고
숨기고

배 의원은 “두루미는 아무리 기를 써도 긴 물통이 없으면 뾰족한 부리로 물을 마실 수 없다. 군도 마찬가지다. 사법개혁 제도, 군인권보호관, 성고충상담제도 등 여러 개선책을 내놓은 노력은 인정하나 결국 그릇의 모양과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비판했다. 

결국 군인을 대하는 군의 태도를 바꾸는 정서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태도를 바꾸는 노력이 필요함과 동시에 수사의 독립성과 평시군사법원을 폐지함으로써 집중돼있는 권력을 분산시키고, 견제할 장치가 필요하다. 긍정적인 부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부당한 명령을 따르지 않는 인물도 하나둘 나타났다는 점이다. 

바로 해병대 전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 7월 해병대서 근무하던 채 상병이 수중 수색을 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안타깝게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과정서 윗선의 지시가 화두로 떠올랐다. 해병대의 수중 수색을 지시하면서 구명조끼를 입히지 않았고, 5명이 급류에 휩쓸렸다가 끝내 채 상병이 사망했다. 

박 대령은 수사하면서 임성근 사단장을 비롯해 고위급 간부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해 경북경찰청으로 사건을 이첩했다. 국방부 장관의 결재까지 받았으나 국방부 검찰단은 다시 경찰청에 이첩한 서류를 회수해 사건을 재검토했다.


최종 책임자로 분류된 임성근 사단장은 포함되지 않고, 대대장급 2명만 혐의가 인정돼 보고서가 다시 경찰로 넘어갔다. 위에서 원하는 대로 입맛대로 빼고, 넣고 싶은 것만 추가한 것과 다름없다.

배 의원은 “어떤 조직 시스템도 완벽한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이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감시 견제가 필요하다. 군은 단일한 사법체계를 갖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밖에서 감시할 수 있는 견제 기능 자체가 없어 벌어질 수밖에 없는 문제”라며 “이런 체계에서는 개선이 어렵다. 군 개혁의 시작은 바로 이 지점이다. 현재 2심부터 민간법원서 진행하고 있는데, 1심부터 가능했다면 현재와 같은 외압 의혹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군 출신 관계자도 1심부터 민간법원으로 이관하는 것에 동의를 표한 바 있다. 군은 여전히 일원화된 사법 체계로 지휘권을 휘두른다. 박 대령의 증언에 따르면 사단장까지 처벌범위에 포함돼있어 국민이 엄정하게 수사가 잘됐다고 생각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국정조사
이뤄져야”

그러나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하루 만에 마음을 바꿨다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결국 이해관계가 작동하면서 수사 결과까지 바뀌는 상황이 발생한 것. 수사의 독립성이 온전히 보장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국방부가 경찰에 이첩된 조사 자료를 다시 가져간 부분에 대한 해명도 시원치 않다. 앞서 국방부는 자료를 경찰이 줬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배 의원은 이 부분에 관해서는 대통령실을 의심한다. 


그는 “어느 정도 선에서 사건을 은폐하려면 많은 사람이 관여해야 한다. 위에서도 관여해야 하고, 국방부의 해명한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게 경찰관 출신의 국회의원들 이야기다. 이 정도 사안을 움직일 수 있는 건 대통령실 아니면 불가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후 박 대령은 윗선에 ‘항명’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법원에 입장하기도 쉽지 않았다. 정문 대신 군 검찰 손에 이끌려 거의 끌려오다시피 입장할 수 있었다. 

배 의원은 “군대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법원에 가면 법원 문이 있다. 그 문으로 들어가겠다는 데 왜 검찰 동의를 받아 검찰 쪽으로 들어가게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검찰 쪽으로 들어오라고 한 건 결국 군검찰과 군이 동일체라는 상징적인 의미다. 다행인 점은 기각됐다는 점 하나뿐”이라고 밝혔다. 

채 상병 사건은 개정된 군사법원법의 취지가 전혀 반영되지 못하고 결과가 달라진 꼴이다. 민간으로 맡겨야 하는 사건조차 군 지휘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경이다. 

군은 독특하게 수사 기관과 사법기관이 동시에 존재하고 같은 지휘체계 안에 있다. 기본적으로 상명하복의 권위주의 문화가 강하다. 다시 말해 조작과 은폐가 일어나기 쉬운 곳이다. 유가족 입장서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 이런 문제가 밝혀지는 것을 군이 자초했기 때문이다. 

입맛대로 빼고 넣고 싶으면 추가 
특검 통해 재발 방지하도록 엄벌

군의 지휘체계는 수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이를 이용해 특정 사람 혹은 세력에게 이익 또는 불이익을 주려고 하는 시도들이 있었다. 사전에 어떻게 차단할 것인지가 수사 독립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배 의원은 “박 대령의 사례처럼 원칙적인 행동이 항명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회 차원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국방부 발간의 ‘군인목부기본정책서’가 있다”며 “군인복무기본법에 따라 국방부가 5년마다 수립하는 군인 복무 기본 정책 방향을 다루는 계획서다. 지난 문재인정부 당시 부당 명령에 대한 거부권을 갖게 하는 내용이 있었으나 윤석열정부 들어 삭제됐다”고 말했다. 

박 대령의 사태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날수록 지휘권의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이 점차 뚜렷해진다. 군 입장서 박 대령은 조직을 배신한 인물이다. 내부 고발자가 아닌 배신자다. 이런 조직서 양심선언을 하는 게 힘든 이유다.

사단장, 여단장이라는 직급은 한 부대를 책임지는 위치다. 지휘관 밑에 수사관도 있다.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배 의원은 “군대는 그동안 조작하고 은폐하면서 처벌받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런 사건에 관해 일벌백계해야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 그게 군대의 사법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래야 사건에 관해 은폐나 조작 시도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개정된 법체계는 국방부 장관이 수사에 개입할 여지를 제한해놨다. 국방부 장관이 군의 권력 정점에 있어도 원하는 방향으로 요구하기가 마땅치 않다.

그러나 박 대령 사태와 관련해서는 국방부 장관이 개입한 모습으로 보인다. 개입 여부를 밝혀내고자 최근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을 발의했다. 정의당을 비롯한 야당은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현재 수사할 수 있는 방식은 특검밖에 없다. 

배 의원은 “민주당이 특검을 발의했고, 정의당도 함께 신속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것에 동의했다. 특검은 전반적인 것에 관한 수사 과정이기 때문에 국민이 다 알 수 있다. 왜 이 상황이 발생했는 지에 관해 국민께 소상히 보고하고 국민에게도 알릴 책무가 국회에 있다”며 “이미 대통령실 개입이나 국방부 장관의 불법적 개입이 기정사실로 보이는 상황이다. 핵심 인물인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사임한 상황서 국정감사로만 밝혀내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국회 차원
개선책은?

다만 패스트트랙을 통해 빠르게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인 특별검사의 활동 등을 고려하면 길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특검 지명은 10일까지 소요되고, 준비 기간은 20일, 수사 기간은 최대 100일까지로 총 130일 정도가 소요된다. 이런 점에서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도 함께 이뤄지는 게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군대를 대한민국 국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도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외압이 있다면 처벌이 필요한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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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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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