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부리나케 떠난 이종섭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3.18 12:19:10
  • 호수 14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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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리 두려워 ‘줄행랑’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호주로 떠났다. ‘호주대사’란 명함을 들고서다. 이 전 장관의 줄행랑으로 한국과 호주가 발칵 뒤집혔다. 호주 언론은 두 나라의 관계가 바뀔 거란 전망까지 내놨다. 지난해 있었던 독립운동가 흉상 철거부터 시작해서 논란이 끝나지 않지만,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여전히 그를 감싸는 형국이다.

지난 10일 오후 국제 인천공항.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수사를 받아온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내정자 신분이었던 이 대사는 이날 오후 7시51분 호주 브리즈번행 대한항공 KE407편을 타고 출국했다.

아무도 모르게 
브리즈번으로

프리미엄 체크인 구역엔 이 대사의 출국 저지를 위해 모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들과 취재진이 대기 중이었으나 이 대사의 출국 모습이 포착되진 않았다. 앞서 이 대사의 출국에 관해 공수처는 출국금지 해제와 관련해 추가 대면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2일 <뉴스1>에 따르면 공수처 관계자는 이날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서 “이 대사 측에서 출국금지 이의신청을 제기한 후 법무부서 공수처 의견을 요청해 원칙적 입장을 전했으며 처음부터 이 대사가 출국하도록 방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 1월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조사에 외압을 가한 혐의로 이 대사를 수사한 후 출국금지하자, 이 대사가 임명 이튿 날인 지난 5일 출국금지를 풀어 달라며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법무부는 지난 8일, 출국금지심의위원회를 열어 그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한 것이다.

법무부는 별다른 조사 없이 출국금지가 여러 차례 연장돼온 점, 최근 출석 조사가 이뤄졌고 본인이 수사 절차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지만, 핵심 피의자를 출국시킴으로써 수사 차질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같은 논란 속에 주호주 대사관 홈페이지에는 이 대사의 인사말을 올리고 공식 부임을 알렸다. 이 대사는 인사말에서 “우리 대사관은 양국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포함한 역내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고, 국방·방산 협력 동력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사는 “호주는 한국전쟁 당시 1만7000여명을 파병한 혈맹이자 자유, 민주주의, 법치 등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인도-태평양 역내의 핵심 우방국이다. 우리 대사관은 공급망 안정과 핵심광물을 포함한 자원·에너지 등 경제안보 제고를 위해 호주와의 공조를 강화하고, 호주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이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호주 현지 교민들의 반응은 좋지 않다. 현지 교민들 중 진보 성향 교민단체인 시드니촛불행동 등 교민 약 20명은 지난 13일 오후 호주 캔버라 주호주대한민국대사관 앞에 모여,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의 핵심인 이 대사가 호주대사로 부임한 데 대해 항의 시위를 진행했다.

장관서 피의자로…그리고 대사 임명
각종 논란 뒤로 하고 도망치듯 출국

집회에 참석한 해병대 황모 예비역 중사는 “주요 핵심 피의자 신분인 이 대사가 개구멍으로 도망가듯 호주로 부임한 것이 상식과 정의에 부합하는지 개탄스럽다. 해병의 명예, 국군 장병의 명예는 누가 지켜 주는 것인지 윤석열정부에 묻고 싶다”고 말했다.

시위에 참석한 한 교민은 “보편적인 양심과 상식이 있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지금 호주에 전 국방부 장관을 이런 식으로 보내는 건 아닌 거 같다. 호주 교민들의 자존심 문제로 상당한 상처를 받았다”고 전했다.

호주서 가장 신뢰 받는 공영언론 <ABC>는 이 대사의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호주 국방부 담당 기자가 쓴 기사의 제목은 ‘한국대사 이종섭, 자국 비리 수사에도 호주 입국’이다. 이 매체는 “한국의 공수처는 해병대의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를 이 대사가 조작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며 “군인 사망 사건과 관련한 부패 수사에 연루된 전직 국방부 장관이 논란이 되는 대사 임명을 지속하기 위해 호주에 도착했다”고 일련의 과정을 소개했다. 


한국의 야당이 이 문제에 관해 어떻게 반발했는지도 자세히 다뤘다. <ABC>는 “한국 법무부는 이 대사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해,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떠날 수 있도록 했다”면서 해당 논란이 ‘한-호주 관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매체는 “이런 일련의 이야기가 호주와 한국의 외교관계에 어려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지만, (호주의)외교통상부는 이 대사의 호주 도착을 환영했다”며 “호주는 한국과의 중요한 관계를 높이 평가하며, 이 대사 지명자와 함께 일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호주 외교통상부 대변인의 코멘트도 함께 전했다.

나라 안팎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대통령실은 초지일관 “이 대사의 임명 철회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반복 답변을 내고 있다. YTN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이 대사가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러 호주에 갔고, 당장 내일이라도 공수처가 부르면 귀국해 조사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음 달 공관장 회의 때 귀국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출국금지
수사 기밀?

대통령실은 이번 사태를 공수처와 더불어민주당, 친야 성향의 일부 언론이 결탁한 ‘정치공작’으로 의심하고 있다.

대통령실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이던 지난해 9월, 공수처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됐다. 석 달 뒤인 12월, 그는 국방부 장관을 지내며 호주와 안보 협력, 방산 수출에 역할을 한 공로로 호주 대사로 내정돼 주재국 동의를 받아 ‘아그레망(타국서 파견한 외교사절의 장을 주재국이 승인하는 것)’ 등 임명 절차를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점, 이 대사를 한 번도 소환 요청하지 않은 공수처가 출국금지 조치를 했고, 이후 한 달씩, 두 차례 더 연장했다. 출국금지한 피고발인을 소환 시도도 안 하고 계속 조치를 연장하는 건 명백한 인권침해이자 불법적인 수사권 남용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인식이다.

또 출국금지는 수사기밀이라 정부 당국자도 전혀 알 수 없는 내용인데, 총선을 앞둔 야당은 정부가 이 대사를 호주로 도주시킨 것으로 여론몰이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 당국자도 알지 못한 출국금지 사실을 친야 성향의 일부 언론이 확인해 먼저 보도한 것도 세 축이 결탁했다는 걸 보여 주는 방증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여권 일부에서는 이 대사를 총선 이후에 임명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12월 말 기존 대사가 정년퇴직한 상황서 안보협력이 중요한 대사직을 장기간 비워둘 수 없고, 또 호주 정부의 아그레망이 나온 대사를 바로 임명하지 않고 부임을 늦추는 건 중대한 외교적 결례라고 반박했다.

여권에서는 “공수처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나아가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제기됐다. 당시 이 장관과 대통령실의 통화 시간 같은, 수사기관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을 야당과 특정 언론에 흘렸다는 주장이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YTN에 “민주당이 검찰개혁을 주장하면서 늘 내세웠던 논리가 아니었냐며, 이것이 바로 공언 유착”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이 대사 임명 논란에 대해 “민주당은 선거에 악용하려고 도피했다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도주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당이 도피 프레임으로 자꾸 이야기하는데, 이 대사는 언제든 출석 요구를 하면 출석해서 조사받겠다는 입장”이라고 반박했다.

사본 들고…
사실상 도주

그는 “해외공관장이 수사기관 조사를 안 받고 버티거나 도피한 사례가 없지 않느냐”며 “근무지만 해외지, 공직자가 도주·도피가 되는 상황이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대사 수사를 진행해온 공수처에 대해선 “조사하기 위한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며 “출국금지하고, 조사도 안 하고 출국금지 연장을 해왔던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또 당내 일각서 ‘이 대사의 임명 철회’ 요구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두고선 “개인적 의견이지, 공론화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14일 이 대사 임명 경위를 살펴보기 위한 전체회의 소집을 국민의힘이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이날 민주당 외통위원들은 입장문을 통해 “오늘 긴급 외통위 전체회의 소집을 요구했지만, 국민의힘이 선거운동을 이유로 거부해 회의가 열리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해병대원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중대 범죄 피의자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사로 임명하는 것 자체가 매우 부적절하고 외교적 망신이자 국격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며 “우방국인 호주와 외교 문제로 비화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정부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국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즉각 이 대사 관련 특검을 수용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 대사 또한 사퇴하고 즉시 귀국해 수사에 협조하기를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민주당은 출국금지돼있는 이 대사가 호주로 출국한 과정 전반을 밝히는 목적의 특별검사 도입 법안을 당론 발의한 바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외통위 회의 소집 요구에 대해 총선용 정치 공세라고 비판했다.

외통위 여당 간사인 태영호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민주당이 선거를 앞두고 어떻게 해서든 정치 공세의 장을 만들어 악용하겠다는 마음으로 상임위 개최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외교적 망신 초래
한-호 관계 걸림돌

태 의원은 “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기에 공천이 있고 개별 의원들은 지역 활동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상임위 개최가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은 기본 상식”이라며 “민주당은 자당 의원들이 경선 패배로 허탈한 심정을 못 이겨 상임위 참석이 불가능해지자 슬그머니 단독 상임위 개최를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수처 수사가 더뎌서 수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필요한 인사를 하지 못하게 된다면 자칫 민주당의 ‘신종 인사 훼방 수법’이 양산될 우려도 없지 않다. 법에 따라 차분히 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당연한 순리”라고 강조했다.

이 대사는 윤석열정부 1호 국방부 장관이었으며 육군사관학교(육사) 40기 출신이다. 당시 문재인정부 들어 비(菲)육사 출신 장성들이 주요 보직에 두루 기용되면서 일각서 일었던 ‘육사 홀대론’과 거리를 두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육사 40기 출신인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이었던 시기에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설치된 독립군 영웅 김좌진·홍범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 흉상의 철거·이전을 추진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 대사는 지난해 8월25일 “독립운동은 존중받아야 해서 독립기념관에 모시는 것”이라고 해 독립기념관으로 흉상을 옮길 계획임을 밝혔다.

이 대사는 “육사에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의 흉상)이 있어야 되느냐에서 시작됐다”고 말해 일제 독립 전 소련공산당 활동을 한 홍범도 장군을 겨냥했다. 관련 단체들은 “국군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반헌법적 처사”라고 반발했다. 

이 대사는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흉상 있는 자리에)한·미 동맹 공원을 만들어 백선엽·맥아더 장군 동산을 세우는 운동을 하고 있다는데, 독립운동가를 대체할 수 있냐”는 민주당 김병주 의원의 질문에 “그분들도 독립운동에 대한 것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래서 그런 장소가 독립기념관이기 때문에 독립기념관에 그런 분들도 모시고 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 대사는 “이분 중 소련공산당에 가입했던 사람도 있다. 공산 세력과 맞서 싸울 간부를 양성하는 육사에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느냐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련 단체는 격분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지난해 8월27일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5인 흉상 철거 추진에 대해 “반역사적 결정”이라며 당시 이 장관에게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으면 국방부 장관 자리서 퇴진하는 것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한 길”이라고 분노했다.

이 회장은 이날 공개서한을 통해 “민족적 양심을 저버린 귀하는 어느 나라 국방부 장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왜 위인들의 흉상이 당신들에게 귀찮은 존재로 남아서 부담을 주어야만 하느냐”고 비판했다.

총선 악재 
전전긍긍

이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민주당 송옥주 의원은 지난달 29일 국회서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 관계자들을 만나 그동안 육사가 추진해 온 흉상 철거 계획의 추진 경과를 보고받고, 이에 대한 전면 백지화를 촉구했다.

이날 송 의원은 “현재 육사 내에 흉상의 형태로 모셔진 독립 영웅들 모두는 지난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셨던 투사이자 오늘날 우리 국군의 뿌리다. 정권의 눈치를 보며 우리의 독립영웅가 폄훼에 앞장서는 육군사관학교는 지금 당장 역사 앞에 죄를 짓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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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