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독박 씌울 민주당 꽃놀이패

양손에 쥐고 있는 9개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특검 정국의 포문을 열었다. 용산을 둘러싼 방패막은 얇기만 하다. 민주당은 각종 특검법과 함께 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22대 국회 개원까지 한 달이 남았지만 벌써 압박 수위를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22대 총선서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민주당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의석수를 포함해 175석을 지켜냈다. 범야권을 합하면 192석까지 늘어난다. 여당 프리미엄을 누리지 못한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를 다 포함해도 108석에 그쳤다. 21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여소야대 국면이 유지될 전망이다.

“정부는
응답하라”

이번 총선은 정권 심판론의 압승이었다. “야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외침이 무색하게 국민은 민주당의 손을 들어줬다.

민주당은 국민의 뜻에 따라 정부·여당이 각종 특검에 응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선이 끝난 이후 민주당은 여러 논평을 통해 “이번 총선이 국민 심판의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국민의 심판은 이제야 시작됐다는 것을 명심하기를 바란다”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그야말로 ‘특검 열차’에 올라탄 듯 질주에 나섰다.


민주당이 첫 번째로 내민 카드는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인 이른바 ‘채 상병 특검’이다.

지난해 7월 해병대 채모 상병이 집중호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 도중 순직했는데, 이를 수사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사건 축소를 위해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규명하는 걸 골자로 한다. 해당 특검법은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돼 지난 3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다.

민주당은 5월29일 21대 국회가 문을 닫기 전 빠르게 법안을 처리하겠단 방침이다.

지난 15일 국회 소통관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이 분주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날 민주당 소속 21대 의원과 22대 당선인 약 50명이 채 상병 특검법을 촉구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당 소속 116명 의원들도 서명서를 제출하면서 머릿수로 정부를 압박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국민께서는 이번 총선으로 윤석열정부와 국민의힘을 매섭게 심판하셨다”며 “그 심판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채 상병 사망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한민국 장병의 억울한 죽음과 수사외압 의혹, 거기에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장관의 주호주대사 임명과 도피성 출국, 이후 25일 만에 사퇴까지, 국민께서는 대한민국의 상식이 무너지는 장면을 똑똑히 목도하셨다”며 국민의힘을 향해 “여야 합의로 특검법을 통과시키자”고 소리 높였다.

벼랑 끝 윤, 보이지 않는 탈출구
22대 국회 문턱서 치열한 기싸움


민주당 주장에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독소조항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현재 진행 중인 수사기관의 수사를 먼저 지켜봐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특검은 전제 조건과 최소한의 공정성이 담보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윤 원내대표는 “특검법을 민주당이 단독으로 처리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22대 국회서도 계속 이런 식으로 민주당이 특검을 발의한다면 소수당 입장에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고려해달라”고 호소했다.

같은 날 민주당은 이태원참사 특별법도 재점화했다. 채 상병 특검법과 마찬가지로 21대 국회가 끝나기 전 이를 매듭짓겠다는 것이다. 이태원참사 특별법은 윤 대통령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던 만큼 두 안건은 21대 국회의 마지막 쟁점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국민의힘이 총선서 참패한 만큼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브레이크가 걸릴 전망이다. 지난 2년 동안 9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던 윤 대통령의 특검법 수용 여부가 ‘총선 민심 수요 여부’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특검을 받아들인다면 정부·여당에 화살이, 반대한다면 민심이 들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채 상병 특검법·이태원참사 특별법 외에도 민주당은 전세 사기 특별법 등 각종 법안을 쏟아내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지난 18일에는 야당이 제2양곡관리법 개정안과 세월호 참사 지원특별법 등 5개의 법안을 본회의에 직회부하면서 단독으로 처리했다.

특히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대장동 50억 클럽 뇌물 의혹 특검법을 담은 이른바 ‘쌍특검’은 민주당이 벼르던 법안인 만큼 재상정 여부가 주목된다. 쌍특검은 지난해 야당의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지만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폐기된 법안이다.

당시 국민의힘에서는 민주당의 행동을 두고 “총선을 겨냥한 악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한 민주당 관계자는 “절반이 넘는 국민이 쌍특검을 원했는데 윤 대통령의 손짓 하나로 법안이 폐기됐다”며 “민심을 거스른다는 것 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민주당 내부서 쌍특검을 22대 국회에 다시 올리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겠다고 한다”며 “추가로 드러난 김 여사의 의혹을 몽땅 집어넣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상치 않은
여당 반란표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 등이 여기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써 민주당이 21대 국회를 거쳐 22대 국회까지 쥘 수 있는 법안은 9개에 달한다.

총선 참패로 민심을 확인한 국민의힘이 지난 국회처럼 쉽게 반대표를 던지지 못할 것이란 게 범야권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미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몇몇 의원들이 채 상병 특검에 찬성해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경기 성남분당갑서 당선된 국민의힘 안철수 당선인은 한 라디오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개인적으로 찬성한다”며 “본회의 표결 시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밝혔다. 조경태 부산 사하을 당선인도 “우리 당이 민주당보다 먼저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국민의힘 김경율 전 비상대책위원을 비롯한 김재섭 서울 도봉갑 당선인과 한지아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당선인도 비슷한 취지로 발언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총선의 결과가 정권 심판인 만큼 쏟아지는 특검법을 정부·여당이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몇몇 특검은 수사 진행에 따라 칼날이 용산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

특히 채상병 사건과 관련해 항명 및 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무죄가 나올 경우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같이 주장하며 “박정훈이라는 제복 군인의 명예를 그냥 대통령 권력으로 짓밟은 것”이라며 “젊은 세대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 여사를 겨냥한 특검법에 대해서도 “현재 수사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당연히 특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집권 여당의 총선 패배에 “민심을 경청하겠다”며 낮은 자세를 취했지만 특검법 수용 여부를 비롯한 야당과의 관계에 대해선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여당이 총선서 참패했음에도 민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역풍이 우려되는 지점이다.


특검 정국을 예고한 민주당은 다른 한쪽서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하는 중임제 개헌 논의를 띄우면서 용산을 압박하고 있다.

개헌 카드
만지작∼

총선 직후 개헌 논의를 띄운 건 범보수로 꼽히는 개혁신당이다. 개혁신당 천하람 비례대표 당선인은 개헌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개혁신당은 총선 공약으로 ‘대통령 4년 중임제’ ‘결선투표제’를 포함하는 헌법 개정을 발표한 바 있다.

민주당의 쇄빙선을 자처한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검찰 독재 조기종식’을 강조하고 있다. “3년은 너무 길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국회에 입성한 만큼 선명성을 유지하겠단 뜻으로 풀이된다.

범보수인 개혁신당과 비례정당인 조국당과 달리 민주당은 탄핵과 관련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제1야당으로서 중도층을 포섭해야 하는 입장인 만큼 현 정권의 조기종식은 정치적 부담이 된다는 우려에서다. 범야권을 등에 업은 민주당이 22대 국회 중반에 접어들 때 즈음 개헌을 주장할 것이란 의견에 힘이 실린다.

총선 이전부터 개헌을 요구한 이들도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을서 재선에 성공한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이다.

민 당선인은 지난달 31일 공약으로 ‘광주·전남 에너지 메가시티 추진’과 더불어 윤 대통령 임기 단축을 포함한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중앙 공약으로 내세웠다. 민 당선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윤 대통령의 임기가 2027년 5월까지인데 이를 1년 단축해 2026년 지방선거와 조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민 당선인에 따르면 중임제는 2007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원포인트 개헌’으로 제안했지만 무산됐다.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개헌안을 발의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자동 폐기됐다. 번번이 실패를 거듭한 만큼 22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개헌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재명 대표도 기자회견 등을 통해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꿔 책임정치의 실현과 국정의 연속성을 높여야 한다”며 개헌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다만 민주당 박지원 당선인은 개헌에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도 “윤 대통령이 임기를 단축하는 일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번 총선서 해남·진도·완도에 당선된 박 당선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윤 대통령이 5년 임기를 4년으로 단축하고 중임제 개헌을 한다는 의미서 ‘내 임기 1년을 포기하겠다’는 건 본인이 결정할 문제지만 국민에겐 ‘헌정 중단’으로 들릴 소지가 있다”며 “헌정 중단이라는 불행은 없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탄핵 대신 개헌 띄운다?
법사위 뜨거운 쟁탈전

민주당 안팎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대통령 임기 단축과 관련해서는 여러 의견이 오가고 있지만 개헌에 관해서는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권력구조 개편과 임기 단축 등의 합의를 마친 순차적인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개헌 저지선인 100석 이상을 지켜낸 만큼 개헌이 논의 수준에 그칠 것이란 시각도 존재한다. 개헌과 대통령 탄핵은 재적 의원 과반수 발의에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통과된다. 국회를 통과해도 국민투표 절차가 필요한 만큼 야권의 의석수만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회의 고삐를 꽉 쥐고 있는 민주당이 특검으로 승부수를 띄우고, 다른 한쪽서 개헌으로 압박하는 것만으로도 용산의 힘을 뺄 수 있다. 이른바 ‘심리적 탄핵’에 처하게 된 정부가 스스로 레임덕을 자초할 것이란 주장이 앞다퉈 나오는 이유다.

윤 대통령은 총선을 9일 앞둔 지난 1일 의료개혁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했지만 여론을 뒤집는 데 실패했다.

지난 16일에는 국무회의서 총선 패배에 대해 “더 낮은 자세로 민심을 경청하겠다”고 밝혔지만 막상 국민에 대한사과를 비공개로 진행하면서 오히려 상황은 악화됐다. 여기에 대통령실 인사 과정에 혼선이 빚어지면서 그야말로 용산이 고립되는 상황에 처했다.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의 인적 쇄신 과정을 두고 “‘레임덕이 여기서부터 시작되는구나’ 저는 그게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 자리를 사수하겠다며 벌써 포석을 깔고 있다.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잇따라 특검을 발의할 예정인 만큼 법사위원장의 자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엎치락
뒤치락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22대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과 관련해 “법사위와 운영위는 이번에는 꼭 민주당이 갖는 게 맞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 21대 국회서 여당이 법적 절차나 입법 과정을 지연시키는 등 방해 공작을 펼쳐 국회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국민의힘 김기현 전 대표는 “민주당이 앞에서는 점잖은 척 협치 운운하더니, 뒤로는 힘자랑하느냐”며 “여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오만한 발상이자, 입법 폭주를 위한 모든 걸림돌을 제거하겠다는 무소불위의 독재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술 더 뜨는 조국혁신당

총선의 열기가 채 사그라들기도 전에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데드덕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조국당 조국 대표는 지난 15일 SNS를 통해 “차기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놓고 대통령실과 검찰 내부서 긴장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조계와 정치권 일각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김건희 여사의 명품 수수 사건 등을 들여다보고 있는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의 경질설이 제기되자 이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 대표는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한 번에 겨냥해 “데드덕이 될 운명”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뻔뻔한 방패 역할을 하고, 정적에 대해서는 더 무자비한 칼을 휘두를 사람을 찾고 있다”며 “국정운영 능력이 ‘0’에 가까운 윤 대통령의 관심은 이제 온통 자신과 배우자의 신변 안전뿐”이라고 지적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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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