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범죄자 놔두는 한국 법무부 필리핀 전 법무수석의 일침

“마약왕? 보내달라고 해야 보내주지”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성민 기자 = 국내 마약은 대부분 동남아로부터 유통된다. 중국과 한국 범죄자들이 감옥서 마약을 유통하고 있을 정도로 관리·감독이 허술하다. 법무부는 필리핀 감옥에 있는 1급 범죄자 송환과 관련해 원론적인 입장만 밝혀왔다. 사실상 그들의 범죄 행위를 방치해온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정부(법무부)의 대처가 미온적이었습니다. 한국 범죄자와 관련해 적극적인 송환 요청은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살바도르 파넬로 전 필리핀 대통령실 법무수석 겸 대변인이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한 말이다. 그는 한국 법무부가 마약 범죄를 해결할 의지가 있냐고 되묻기도 했다. 법무부의 소극 행정이 마약 범죄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법 넘어선
강경 집행

파넬로 전 수석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오른팔’로 알려져 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2016년 7월부터 마약 범죄 소탕 작전의 판을 함께 계획했다고 알려졌다.

최근 필리핀 마닐라 모처서 <일요시사>와 만난 파넬로 전 수석은 “각 정부 기관서 비리 의심 대상자 리스트를 만들었었다. 명단에는 일반 공무원을 포함해 시장, 읍장, 법원 직원, 검사까지 포함됐다. 마약 연루 공무원만 1만명에 달해 국가 위기 문제였다. 가만히 놔두면 사회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고 판단됐다”고 말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필리핀 정부는 같은 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집권 초부터 걸었던 강력한 드라이브는 역풍을 맞았다. 민간인을 포함한 필리핀 인구 수천명이 사망했다. ‘인권 문제’가 언급되기 시작했고 국제형사재판소(ICC) 판사들은 성명을 통해 “필리핀 정부의 행동이 합법적 법 집행이라고 볼 수 없다. 국가 정책에 따라 민간인을 향한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공격이 일어났다”고 발표했다.

필리핀 공식 자료에는 2016년 7월 이후 20만건 이상 마약 단속 작전서 최소 6200여명이 사망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ICC는 사망자 수를 1만2000~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파넬로 전 수석은 “ICC 수사관들의 정보와 증거 수집을 거부했고 입국까지 금지하며 갈등을 빚었다”고 주장했다.

6년간 이어진 마약과의 전쟁은 국제사회의 지탄으로 이어졌다. 법 절차를 무시한 강경 진압, 체포보다 사살에 방점이 찍힌 검거 작전, 아동 등의 애꿎은 희생과 평생 완치되기 어려운 후유증 등은 인권단체의 표적이 됐다.

수백명의 무고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은 여전히 마약 범죄가 판을 치고 있다. 필리핀 인권단체 관계자는 “두테르테 정권이 실질적이고 영향력 있는 마약 조직을 상대로 법을 집행하지 않은 까닭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마약 범죄와 필리핀 정치권은 끊을 수 없는 돈과 인맥으로 이어져왔다”고 말했다.

파넬로 전 수석은 이에 관해 “무고한 죽음이 있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마약 범죄를 청산하고 싶었고 성과가 없었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필리핀서 마약을 소지한 사람과 불법총기를 소지한 사람 중에 누가 더 위험하냐고 물었을 때 필리핀 사람 대부분은 마약이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필리핀에서는 마약 5g 이상 소지한 경우 20년에서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살인죄와 형량이 같은 수준이다.

‘두테르테 오른팔’ 마약과의 전쟁 기획
한국 상황 심각···강도 높은 대처 필요”


마약 5g 소지인 경우 12년~20년의 징역형과 30만~40만페소의 벌금이 부과된다. 마약 5g 이상 10g 미만 소지인 경우 20년~무기징역과 40만~50만페소의 벌금이 부과되며 보석도 금지된다. 마약 10g 이상 소지하다 적발되면 무기징역 처벌을 받게 된다.

처벌 수위가 세지만 마약과 정치권의 연결고리가 끊기지 않는 이유는 뒷돈과 비자금에 있다. 인권단체 관계자는 “필리핀서 굉장히 쉽게 돈을 버는 방법으로 마약 유통과 묵인을 위한 뇌물공여가 손꼽힌다. 실제 법무부 장관이 마약 사건에도 연루됐을 만큼 흔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윤석열정부가 지난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을 당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심심찮게 언급되곤 했다. 마약청정국 지위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서울중앙지검은 특별수사팀까지 꾸렸다. 검찰 안팎에서는 마약 범죄를 청산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는 해석이 나왔다.

대검 관계자는 “수사도 좋지만 법무부가 유관기관과 협조해 피해자를 위한 정책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수사기관에 근무하는 이라면 누구나 한국에 마약이 일상화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내 마약 수요는 폭증하는 추세다. 올해 상반기 마약 밀수 적발량은 신기록이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325건, 329㎏ 상당의 마약류가 국경 반입 단계서 걸렸다. 적발 건수는 하루 평균 2건에 가깝다. 특히 마약 밀수 적발량은 1년 전보다 39% 늘어났다.

골든타임
놓치면 끝

이는 상반기 기준 최대치로 505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건수는 줄고, 중량은 늘어나면서 건당 적발량(1015g)은 1㎏을 넘어섰다. 한국이 ‘유통 경유지’가 아닌 고수익 판매처로 전락했다는 게 사정기관의 판단이다. 해외보다 훨씬 높은 마약 가격, 지속해서 증가하는 마약 수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필로폰 1g당 거래가격(지난해 기준)은 한국이 450달러로 미국(44달러), 태국(13달러)보다 훨씬 비쌌다.

적발된 마약의 산지는 미국·태국이 24%(중량 기준), 라오스가 12%, 베트남이 10%를 차지했다. 특히 동남아 국가(아세안 10개국)서의 밀수 적발량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상반기 78㎏서 올해 상반기 169㎏으로 115% 급증했다. 전체 적발량 대비 비중도 51%로 절반을 넘겼다.

이는 태국과의 합동 단속 작전이 이뤄진 데다 동남아서의 필로폰(야바)·케타민·합성대마 등 마약 공급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파넬로 전 수석은 “통계와 언론 보도를 통해서 한국의 상황을 접했지만 위험하다”며 “골든타임을 놓치면 걷잡을 수 없이 마약이 판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부 한국인 범죄자들은 감옥서 자유롭게 핸드폰을 쓰고 있다. 필리핀 문틴루파에 위치한 뉴빌리비드(NBP) 교도소가 대표적이다. 뒷돈과 뇌물이 판치는 구조상 옥중 마약 유통은 일상이 됐다.


파넬로 전 수석은 감옥서 마약을 유통할 수 있는 곳이 NBP만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비쿠탄과 마닐라시티 감옥뿐 아니라 필리핀의 어느 감옥도 옥중 마약 유통서 자유롭지 않다”며 “마피아와 중국 흑사회의 마약 범죄 행위는 필리핀의 오랜 고질적 문제”라고 말했다.

파넬로 전 수석은 “옥중서 마약을 유통하는 이들을 한국으로 송환해야 제2의 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필리핀은 형사사법공조조약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했다. 필리핀서 장기간 수용 생활을 하는 한국인을 한국으로 이송하면 좋으나 현재 수용자 이송조약은 체결돼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는 “송환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인물에 한해 이송 요청을 지속하고 있다”며 “필리핀 이민국과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라고 밝혔다. 법무부의 이 같은 입장은 2년 전과 같다. 시간이 가는 동안 이송조약조차 체결하지 못한 점은 한국 정부의 소극 행정 탓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법무부는 일부 한국인 범죄자들에 관해 송환신청서도 보내지 않은 바 있다.

여전히 감옥서 국내 들어오는 마약 컨트롤?
송환 안 하나 못 하나 “한국 정부 소극적”


파넬로 전 수석은 “한국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진즉에 송환됐을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는 것과는 대조된다. 해결 의지가 있는 게 맞나. 소극적인 대처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범죄인 인도는 국제형사사법 공조 활동 가운데 가장 고전적 수단이다. 이는 관할권으로부터 도주한 범죄인은 범죄인 소재지국보다는 범죄 행위지국서 유효·적절하게 재판 또는 처벌할 수 있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다만 범죄인 인도는 국제법상 확립된 제도가 아니다.

국제법상 의무가 아니므로 조약상 의무가 없는 한 타국의 인도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도 국제법 위반은 아니기에 각국은 인도 여부를 재량으로 결정할 수 있다.

한국 범죄인 인도법은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와도 상호주의를 적용해 인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도 대상이 되는 범죄는 원칙적으로 청구국 영역서 발생한 범죄다. 영해나 영공서 저지른 범죄는 물론 공해상 청구국의 선박이나 항공기서 벌인 범죄도 포함한다.

범죄인은 수사 또는 재판을 받고 있거나 유죄 판결을 받고 피청구국으로 도주한 자를 말한다. 인도 대상 범죄인은 주로 청구국 국민과 제3국인이다. 인도가 허용되는 범죄는 청구국과 피청구국의 법률로 모두 처벌 가능한 범죄여야 한다.

인도 요청을 거절하는 사유는 의무적 거절 사유와 재량적 거절 사유로 나눌 수 있다. 피청구국서 청구 범죄에 대해 이미 확정 판결을 받은 경우도 의무적 거절 사유다.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은 이미 확정 판결을 받았기에 의무적 거절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법무부가 살인이 아닌 마약 유통 혐의로 송환을 적극적으로 요청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필리핀 정부가 ‘재량’을 근거로 거절할 가능성도 있으나 법무부는 이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국제형사과서 몸담았던 한 변호사는 “이민법 위반(체류기한 위반, 밀입국 등)을 적용해 강제 추방시키는 방안이 있지만 위반 사항이 없다면, 국내서 범죄 혐의가 있다는 것만으로 추방 결정은 어렵다. 통상 경찰이 요청하면 강제 추방을 해주는데, 결정은 필리핀 이민국 재량에 달려 있다”며 “박왕열 케이스 같은 경우 경찰이 요청한 이후 수년간 변한 게 없으면 방법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범죄인 인도를 담당했던 한 검사도 “100% 상대국의 판단에 따르기에 한국 정부가 설득을 해야 한다. 고소와 고발 사건 등 자잘한 내용이 아니면 공조 요청을 해서 데려오는 경우도 많다”며 “상대국서 범죄인에게 뒷돈을 받고 풀어준다 해도 강제하거나, 이의제기할 수는 없기에 외교적으로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말로만 송환
립서비스

이어 “범죄인 인도조약은 10년이 걸려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결국 한국 법무부와 외교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압박을 넣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예시로 A씨가 너희 나라에도 피해를 주고 있는 거 아니냐는 식의 설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파넬로 전 수석은 “재량이라고 하지만 한국인 범죄자들이 필리핀에 피해를 주고 있는 정도가 심각하다면 안 보낼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필리핀 마닐라 = 오혁진 기자 <hounder@ilyosisa.co.kr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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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