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특검’ 윤석열부터 노린 이유

기선 제압부터 ‘우두머리 몰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내란 특검팀이 피의자들의 신병 확보를 위해 두문분출하고 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추가 기소에 이어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체포를 시도했다. 당초 구속 만료를 앞둔 내란 핵심 피의자들의 신병을 우선적으로 확보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른 행보다. 법조계에서는 이를 두고 특검팀이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기선 제압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등을 수사하는 내란 특검이 경찰에서 윤 전 대통령의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사건을 넘겨받은 즉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윤 전 대통령이 소환 출석 의지를 보이며 체포는 무산됐지만 내란 특검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행보였다.

예상과 다른
파격적 행보

지난 24일 특검팀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으로부터 사건을 인계받은 지 하루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경찰의 3번째 소환 요구에도 불응하면서 출석 의사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박지영 특검보는 이날 오후 6시 20분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윤석열 전 대통령은 여러 피의자 중 한 명에 불과하다”며 “특검은 수사 기간에 제한이 있고 여러 어려움이 예상된다”면서도 “끌려다니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은 조사에 응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며 “형사소송법에 따라 엄정하게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법불아귀(법은 신분이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했다. ‘법불아귀’는 이원석 전 검찰총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내용으로, 지난해 7월20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김건희 여사를 출장 조사한 뒤 이 총장이 국민에게 ‘대리 사과’하면서 다시 한번 인용한 바 있다.

박 특검보는 ‘체포영장 청구 사실을 공개하는 것이 이례적이지 않느냐’는 기자 질문엔 “조사를 위한 청구이기 때문에 말씀드린 것”이라고 답변했다. 추가 영장 청구 등에 대해선 “별도로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체포영장이 집행될 경우 조사할 시설이 마련됐느냐는 질문에 박 특검보는 “특별하게 조사실이 마련돼야 하느냐”며 “조사실 같은 경우는 다 마련돼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특별한 배려를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지난 1월 자신의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라고 지시한 혐의 및 12·3 비상계엄 직후 관련자들의 비화폰 관련 정보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혐의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이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이하 특수단)이 수사해오던 혐의다.

특수단은 이에 대한 조사를 위해 세 차례에 걸쳐 소환 조사를 통보했지만, 윤 전 대통령 측은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 자체가 불법이라는 이유를 들며 조사에 불응했다. 이 과정 중에 특검이 출범했고 경찰에게 사건을 넘겨받은 지 하루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체포영장 청구가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된 위법행위”라며 방어권 침해라는 입장이다. 윤 전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은 지난 25일 입장문을 내고 이 같은 내용의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하면서 “사안의 중대성과 절차적 위법성을 충분히 소명했다”고 밝혔다.

체포 저지·비화폰 정보 삭제 지시 혐의
체포 영장 기각되자 곧바로 출석 요구


변호인단은 “윤 전 대통령은 현재까지 특검으로부터 단 한 차례의 소환 통보도 받은 적이 없다. 특검 사무실의 위치는 물론 조사받을 검사실이나 담당 검사에 대한 정보조차 전혀 전달받지 못했다”면서 “기본적인 절차를 모두 생략한 채 특검이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조치며, 피의자의 방어권과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특검과 경찰은 명백히 별개의 수사기관으로 경찰 단계의 출석 요구를 원용해 특검이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으며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된 위법행위”라면서 “법원이 신중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도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는 무산됐다. 법원이 윤 전 대통령의 출석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지난 25일 저녁 “법원은 어제(24일) 청구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피의자가 특검의 출석요구가 있을 경우 이에 응할 것을 밝히고 있다는 이유로 기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 및 변호인에게 6월28일 오전 9시에 출석을 요구하는 통지했다. 출석 요구에 불응 시 체포영장 청구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검팀의 소환 통보를 받은 윤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이 비공개 출석을 요청하며 특검이 요구한 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조사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지난 26일 입장을 내고 “윤 전 대통령은 추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면서도 “변호인단이 절차상 문제에 대해 추가 입장을 밝힌다”고 말했다.

우선 변호인단은 “특검은 검찰사건 사무 규칙에 따라 피의자와 조사의 일시·장소에 관해 협의해야 하고, 변호인이 있는 경우에는 변호인과도 협의해야 한다”며 “특검은 이를 전혀 지키지 않고 일방적으로 언론을 통해 조사 일정을 고지했다”고 지적했다.

또 “출석 시간만 오전 10시로 조정해줄 것을 요청드렸으나 특검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단 1시간의 시간 조정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일방적인 명령과 경직된 태도는 위 사무 규칙에 정면으로 반하고 임의 수사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특검의 소환 요구에 대해 “‘망신주기 수사’이자 ‘체포 목적으로 출석 자체를 어렵게 만들 의도’라고 반발했다. 이들은 “이번 소환 요구는 정식 통지서가 발송돼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특검은 신속한 절차를 밟기는커녕, 선제적으로 언론에만 소환 여부를 알렸다”며 “적법 절차의 기본을 망각했다”고 지적했다.

변호인단과
힘겨루기

변호인단은 “윤 전 대통령은 28일 오전 10시쯤 특검에 출석해 조사에 응할 것”이라면서, “비공개 출석을 기본으로 요청한다. 검찰의 인권보호 수사 규칙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변호인단은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의 사례를 들며 “검찰은 비공개 출석을 허용한 바 있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할 인권보호의 기본 원칙”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울러 “경찰 수사 단계에서 윤 전 대통령은 단 한 번도 출석을 거부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 경찰 소환 통지는 기한이 지난 후 송달됐고, 두 번째 요청에 대해 서면조사 또는 대면조사를 제안했으나 일방적으로 묵살됐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3차 소환 통보에 불응한 것에 대해선 “사건이 특검에 이첩될 상황이어서 윤 전 대통령은 특검과 출석일정을 조율할 예정이었다”고 설명했다.

변호인단은 “윤 전 대통령은 앞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른 수사에는 성실히 임할 것”이라며 “수사기관 역시 법이 정한 절차와 피의자의 권리를 존중하며 수사에 임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26일, 윤 전 대통령 측의 비공개 출석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박지영 특검보는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출석 장소나 시간이 다 공개된 이상 비공개 소환 요청이 뭘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윤 전 대통령 측이) 저희에게 요구한 건 지하주차장으로 출입하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노무현 전 대통령 어느 누구도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온 적이 없다”며 “출입 방식 변경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는 취지로 (대리인단에) 말했다”고 전했다.

박 특검보는 “윤 전 대통령 측에서 지하주차장 출입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특검의 출석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면서 “출석 조사를 사실상 거부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이런 경우라면 누구라도 형사소송법 절차를 검토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언급했다. 이는 앞서 경찰에 이어 특검 수사에도 제대로 응하지 않는 출석 거부로 보고 체포영장 재청구 등을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박 특검보는 오는 28일 조사가 예정대로 이뤄질 지에 대해서는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는 윤 전 대통령 측 결정”이라며 “조사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여러 차례
불러 조사

한편, 특검은 조사 시각을 28일 오전 9시가 아닌 오전 10시로 1시간 미뤄 달라는 윤 전 대통령 측 요구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특검팀 일부는 윤 전 대통령에 출석을 요청한 25일 오후 11시를 훌쩍 넘겨 퇴근하는 등 대면 조사를 위한 준비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조사실에 투입될 담당 검사를 이미 확정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조사엔 일부 특검보가 합류하게 될 전망이다.

계엄 선포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을 정리한 질문지도 정리 중이다. 특검 관계자는 “(조사 전까지) 질문지가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며 “일반 조사이기 때문에 범위가 광범위해질 것 같다”고 설명했다.

특검은 체포영장 청구 당시 적용한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와 대통령경호법상 직권남용교사 혐의 외에도 내란·외환 혐의 등을 이번 조사 과정에서 다룰지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윤 전 대통령을 여러 차례 불러 조사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당초 특검 출범 당시만 하더라도 김용현 전 장관 등 구속 만료를 앞둔 내란 핵심 피의자들에 대한 신병 확보가 우선순위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특검팀은 김 전 장관에 대한 추가 기소 이후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윤 전 대통령의 신병 확보에 나섰다.

법조계에서는 이에 대해 윤 전 대통령과 신경전을 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윤 전 대통령은 재판 도중 특검의 정당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을 한 바 있다”며 “이에 특검으로서는 피의자가 공개적으로 비판하니 강하게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견고히 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앞서 윤 전 대통령 측은 지난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지귀연) 심리로 열린 내란 우두머리·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사건 8차 공판에 출석해 내란 특검이 재판을 넘겨받아 공소 유지하는 것에 이의제기를 했다.

변호인은 “특정 정치세력이 주도해 특검을 주도하고 같은 당에 소속된 대통령이 특검을 임명하고 수사권을 재차 행사하게 하는 건 전례가 없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시간·비공개 여부 두고 신경전
“다 계획에 있던 일이라 덤덤해”

한 특검 출신 변호사는 “특검이 갖고 있는 수가 더 많은데, 경찰로부터 사건 기록을 넘겨받자 바로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이 그 반증”이라며 “체포는 단 48시간밖에 못하는데 이어질 구속영장까지 갈 증거가 없다면 특검이 굳이 위험 부담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특검은 법원에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기각될 당시에도 침착했다고 한다.

또 다른 특검 관계자는 “윤 전 대통령이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할 때부터 특검팀은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었다”며 “소환에 응할 의지가 있다는 의견서를 제출한 만큼 기각되면 바로 날짜를 정해 출석 요구를 준비 중이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법원에서 출석 의지가 있다고 판단하며 기각한 것도 계획 중 일부”라며 “적용된 혐의에 대한 기각이 나오지 않아 소환 조사 이후 바로 신병 확보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이번 조사에서도 입을 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그는 지난 1월15일, 공수처 조사에서 10시간 넘게 묵비권을 행사했다. 조사 시작과 함께 이름과 주소를 묻는 인정 신문에서도 대답하지 않았고, 녹화마저도 거부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이 특검 조사에 대해선 “응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우리도 변소할 것을 변소해야 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재판에서 ‘경고성 계엄’ 등을 주장하는 만큼 협조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8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에 출석해 오전 10시14분부터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점심 식사 뒤인 오후 1시30분 조사를 재개하려 하자 윤 전 대통령이 조사를 받지 않겠다며 버티기 시작했다고 한다.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에서 윤 전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 저지(특수공무집행방해 및 직권남용)와 비화폰 정보 삭제 지시 혐의(대통령경호법의 직권남용 교사)를 수사했던 박창환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장(총경)이 오전에 피의자 신문을 시작했는데, 오후 들어 그의 자격을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지난 1월 경찰의 ‘불법적인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현장에 박 총경이 있었고, 현장의 경찰관들을 자신들이 고발했으므로 피고발인인 박 총경이 윤 전 대통령을 조사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 집행을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저지한 건 범죄가 아니라는 그간의 궤변과 비슷한 논리였다.

이번도
묵비권

특검팀은 박 총경이 1차 체포영장 집행 현장에 없었고 2차 집행 때 김성훈 전 대통령경호처 차장 체포를 위해 현장에 있었을 뿐이라고 반박했지만, 윤 전 대통령은 3시간 동안 대기실에서 머무르며 조사를 거부했다. 결국 특검팀은 체포영장 집행 저지 혐의 조사를 중단하고, 검사들을 투입해 국무회의 의결과 외환죄 관련 조사로 넘어가야 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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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