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 짱박기’ 윤석열 버티는 노림수

특검보다 판사가 낫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권교체에 성공한 새 정부는 특검법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에워싼 상태다. 윤 전 대통령은 내란 특검 수사를 거부하고 있다. 전략적 버티기일까, 막무가내 떼쓰기일까?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시작으로 지난달 3일 조기 대선까지 한국 사회는 6개월 동안 정치 이슈에 매몰됐다. 당선과 동시에 출범한 이재명정부는 민생 회복과 함께 내란 종식을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 꼽았다. 3대 특검법의 국회 통과는 그 시발점이었다.

전략일까

내란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 등 3대 특검법은 정권교체 이후 처음 국회 문턱을 넘은 1호 법안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3대 특검법의 닻이 올랐다. 내란 특검법은 조은석, 김건희 특검법은 민중기, 채상병 특검법은 이명현 특검이 맡아 수사에 돌입한 상태다.

3대 특검법은 광범위하게는 윤석열정부, 좁게 보면 윤 전 대통령을 ‘일점사’하고 있다. 내란 특검법은 비상계엄 선포 전부터 해제, 후속 대처까지 들여다볼 예정이다. 윤 전 대통령을 필두로 당시 국무위원들과 군, 경찰 관계자 등이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김건희 특검법은 윤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내용이다. 윤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통해 김 여사에 대한 수사를 막아왔다. 김 여사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 윤 전 대통령까지 레이더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이미 몇몇 의혹은 윤 전 대통령의 연루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채상병 특검법의 핵심은 ‘수사 외압’ 의혹이다. 채 상병이 사망한 이후 대통령실에서 관련 수사를 막기 위해 개입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구명하려 했다는 의혹에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등장하면서 김 여사의 연루 의혹도 제기됐다. 여기에 윤 전 대통령이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와 관련해 심하게 화를 냈다는 ‘격노설’도 수사 대상이다.

3대 특검 중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건 내란 특검이다. 조은석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의 신병을 확보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재구속됐다. 지난 3월8일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 이후 약 4개월 만이다. 남세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6일 조은석 특검팀이 청구한 구속영장에 대해 “증거인멸 우려”를 이유로 발부했다.

문제는 윤 전 대통령이 특검 수사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고검청사에 나와 조사를 받으라는 특검의 출석 요구에 연달아 불응했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을 특정 장소로 강제 연행하도록 지시하는 인치 지휘를 서울구치소에 전달했지만 진행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이 건강상의 이유 등을 들어 수용실에서 나가길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조은석 특검팀 박지영 특검보는 “윤 전 대통령 측은 1차 인치 지휘(14일) 후 현재까지 특검에 어떠한 의사도 표시하지 않고 있다”며 “특검은 피의자가 조사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내란 혐의로 구속됐을 당시에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3차례 강제구인을 모두 거부한 바 있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 강제구인 실패 책임을 서울구치소에 묻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재구속 후 조사 거부 일관
특검, 지난 19일 구속 기소

박 특검보는 “15일 오전 구치소 교정 담당 공무원에 대해 전날 인치 직무를 이행하지 않은 구체적 경위를 조사했다”며 “형사소송법상 구속영장에 따른 집행은 공무원이 하고 있고 본인 직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공무원으로서 책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구치소 측은 윤 전 대통령의 신분을 감안할 때 물리력 행사가 어렵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조은석 특검팀은 3차 강제구인을 시도했지만 윤 전 대통령 측이 구속적부심 심사를 청구하면서 보류됐다. 구속적부심은 구속된 피의자가 법원에 자신의 구속이 적법한지, 계속 구속할 필요성이 있는지 다시 심사해 달라고 요청하는 절차다.

구속의 실체적·절차적 정당성을 두고 다투겠다는 의도다. 구속적부심이 청구되면 형사합의 재판부에 배당되고 48시간 이내에 피의자 심문과 증거 조사를 해야 한다. 이 기간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중단된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호칭을 ‘피의자 윤석열’로 바꾸는 등 강경 모드를 보이고 있다. 또 기소 때까지 가족과 변호인을 제외한 피의자 접견 금지를 결정했다고도 밝혔다. 일반 피의자에게 적용되는 접근금지 적용 기준에 따라 원칙적으로 처리했다고도 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특검이 윤 전 대통령을 조사 없이 바로 기소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교정당국이 윤 전 대통령에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에 난색을 표하는 만큼 방문 조사 등 다른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러면서도 특검은 직접 윤 전 대통령을 찾아가 조사하는 것은 실효성 문제는 물론 특혜 의혹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박 특검보는 “김건희 여사를 (검찰이) 방문 조사했을 때 사회적 비난 여론이 엄청났다”며 “구속된 피의자에 대한 방문 조사는 그와 다르지 않다”고 브리핑했다. 윤 전 대통령이 묵비권을 행사하면 특검으로선 직접 찾아간 것도 모자라 제대로 된 성과도 내지 못했다는 비판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강제구인 시도에 “전직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망신 주려는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면 조사가 목적이라면 장소는 본질이 아니다”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특검 수사 당시 수사기관이 구치소를 방문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각종 의견이 나오고 있다. 평생 검사로 살았고 검찰총장까지 지낸 ‘율사’인 윤 전 대통령의 조사 거부가 어떤 전략인지를 두고 관심이 집중됐다. 법조계에서는 윤 전 대통령이 특검 조사가 아닌 재판에서 승부를 보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읽힌다고 진단했다.

특검 조사보다는 사법부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내란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강경 지지층에 기대려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 정국, 조기 대선 과정에서 여러 차례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등 여론전을 노리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떼쓰기?


일각에서는 윤 전 대통령의 버티기 전략이 다른 특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은석 특검팀이 수차례에 걸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강제구인을 시도하는 등 강하게 나가는 이유가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는 의견이 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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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