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용서 구하고 떠난 노태우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11.01 14:49:40
  • 호수 13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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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과 같은 길 전두환과 다른 길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제13대 대통령을 역임한 노 전 대통령이 지병 악화로 숨을 거뒀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인 6·29선언, 북방외교, 남북대화 등 업적이 많다. 하지만 12·12쿠데타, 거액의 비자금 은닉 등 과오도 적지 않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병원에서 사망했다. 서울대병원 측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서울대 재택의료팀의 돌봄 아래 자택에서 지냈다. 전날 저산소증과 저혈압 증세를 보였고 다음날 오후 12시45분 응급실로 이송돼 1시간가량 치료를 진행했다. 

오랜 기간
병상 생활

응급실로 이송됐을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의식이 뚜렷하지 않은 상태였으나 통증에 대한 반응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오후 1시46분경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노 전 대통령은 희소병인 다계통위축증과 천식 등으로 오랜 기간 병상 생활을 해왔다. 병원 측은 허약한 전신 상태 등이 노 전 대통령의 사망 원인이라고 정식으로 발표했다.

김연수 서울대 병원장은 “반복적인 폐렴과 봉와직염 등으로 수차례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었다”며 “하루 전부터 저산소증, 저혈압을 보였고 오늘 오후 12시45분경 응급실에 방문해 치료했으나 상태가 악화됐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족은 생전에 작성한 유언장을 공개했다.

그는 유언장을 통해 “위대한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 감사하고 영광스러웠다”며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 및 과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고 기술했다. 아울러 “생애에 이루지 못한 남북 평화통일이 다음 세대에 의해 꼭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남겼다.

유족 측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평소에 남긴 말씀을 전해드린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국가장(國家葬)으로 치렀으며 국립묘지 안장은 하지 않기로 했다. 국가장을 주관하는 비용은 국고에서 부담한다. 다만 조문객의 식사 비용과 노제·삼우제·49재 비용과 국립묘지가 아닌 묘지 설치를 위한 토지 구입·조성 비용 등은 제외된다.

다음 날인 27일, 노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아침 일찍부터 정·관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줄을 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재계 인사 가운데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았다. 상주에도 이름을 올린 최 회장은 “오랫동안 고생하셨는데 이제는 아무쪼록 영면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명예회장도 오후에 빈소를 찾아 고인을 깊이 추모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은 “중국과의 외교 등 여러 업적을 남기셔서 존경하는 분”이라고 언급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빈소 좌우는 문재인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씨가 보낸 근조 화환이 자리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 및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가 보낸 화환도 함께 놓였다.

다른 조문객들도 “과오가 있었지만 선진국의 기반을 닦고 현대사의 이정표를 세웠다”며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88 서울올림픽 유치 깊이 관여 
남북평화 통일 정책 적극 행보

노 전 대통령은 1932년 12월4일 경북 달성군 공산면 신용리에서 면서기를 지낸 아버지 노병수씨와 어머니 김태향씨 사이에 첫째로 태어났다. 밑으로는 동생 노재우씨가 있다.

김씨가 임신했을 때 구렁이가 몸을 휘감는 태몽을 꿨다고 한다. 할아버지 노영수씨는 구렁이를 용이라 여겨 태아 이름을 태룡(泰龍)으로 지으려 했지만, 일제강점기에 시선을 끌까 두려워 ‘어리석을 우(遇)’ 자를 넣어 ‘태우’라고 작명했다.

노 전 대통령이 7세가 되던 해, 부친이 교통사고로 숨졌다. 경제적으로 어렵게 산 노 전 대통령은 대구 공산소학교에 입학해 맨발로 등교하기도 했다.

그는 1946년 2월 숙부의 도움으로 대구공업학교 전기과에 입학했다. 같은 학교 출신인 전씨와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녔지만, 재학 당시엔 서로 모르고 지냈다. 나중에 육군사관학교 동기로 재회한 두 사람은 그제야 동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사이가 더 가까워졌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대구공업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8년 경북중학교(현 경북고) 4학년 편입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5학년 때 성적은 218명 중 68등으로 상위권에 속했으나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장래희망이던 의사가 되길 포기했다.

그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징집돼 대구에 있던 헌병학교에 들어갔고 이등병 신분으로 참전했다. 헌병학교 9기를 우등으로 졸업해 교수부로 발령받았는데, 그곳에서 5세 위인 김용희 소령(교수부장)을 만나서 우정을 쌓았다.

노 전 대통령은 1951년 10월 김 소령의 추천으로 육사에 입학한다. 생도 시절 럭비부를 창단해 연승을 거두는 등 운동능력에도 탁월한 소질을 보였다.

1951년 육군사관학교 정규과정 1기생으로 들어가 김복동, 박병하 등을 만났고 ‘오성(伍星) 그룹’을 결성했다.

1955년 육사 11기로 임관한 노 전 대통령은 이듬해 육군 5사단 소대장(소위) 발령을 받아 사단장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처음 대면했다. 그 시절 친구 김복동 중위의 대구 집에 자주 들락거리다 그의 누이 김옥숙을 보고 반해 청혼했고 1959년 5월 부부의 연을 맺었다. 


궁핍했던
유년시절

같은 해 노 전 대통령은 먼저 진급한 전씨와 미국 유학길에 올라 6개월간 함께 생활하면서 급격히 친해졌다. 귀국 후 군 최대 파벌 ‘하나회’의 시작점이 된 육사 11기생 친목 모임 북극성회를 조직했다. 

1961년 5·16군사정변이 발생하자 육군 대위 신분으로 전씨와 함께 후배 장교들을 이끌고 쿠데타를 지지하는 ‘카 퍼레이드’를 벌이기도 했다. 그 이후 노 전 대통령은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중령으로 진급한 1967년 베트남전쟁에 맹호사단 대대장으로 참전했을 때 ‘퀴논 전투’에서 북베트남 군대를 전멸시킨 공로로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1974년 1월 마침내 준장으로 진급해 별을 달았고, 1976년 대통령 경호실 행정차장보로 임명되며 청와대에도 입성했다. 소장으로 진급한 1978년에는 사단장으로 전출된 전 전 대통령을 대신해 경호실 작전차장보로 발탁됐다.

1979년 10·26사태가 터지자 노 전 대통령·전씨를 주축으로 한 신(新)군부는 차근차근 군을 장악해갔다. 상관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을 제거하기 위해 당시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의 명령 없이 병력을 출동시켰다.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있으면서 군사반란 모의와 실행에 적극 참여했다.

1980년 5월 신군부가 국가 권력을 완전히 손아귀에 쥐면서 노 전 대통령은 전씨에 이어 사실상 2인자였다. 불과 1년 남짓한 기간 중장, 대장으로 연거푸 진급했고 이듬해 7월 군복을 벗었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노 전 대통령은 당(민주정의당)과 정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82년 체육부·내무부 장관을 잇달아 맡았다. 서울올림픽 유치에도 깊이 관여해 1984년 대한체육회 회장에 선출되는 등 스포츠 외교에 앞장섰다.

1985년 2월 제1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민정당 전국구(비례대표)로 당선된 후 전씨에 의해 대표 최고위원에 임명되면서 사실상 후계자로 낙점받으며 5공화국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1987년 전씨의 4·13호헌조치에 반발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6월 항쟁’으로 국민적 저항이 분출하자 당시 민정당 대표였던 그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 ▲김대중 사면복권 ▲구속자 석방 등 8개 항목으로 구성된 ‘6·29선언’을 발표했다. 

6·29선언은 절차적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의 확대를 가져왔지만, 국민 저항으로 정권 유지조차 힘든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대증 요법’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신군부 세력 ‘2인자’ 이미지를 벗고 대통령 후보로서 위상을 과시하는 효과를 노렸다.

그러나 이마저도 전씨의 ‘후계자 관리 각본’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보통 사람’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출마해 36.6%의 득표율로 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통일민주당 후보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 평화민주당 후보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분열하면서 얻어낸 승리였다. 

취임 1년 차였던 1988년 7월7일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하며 북방외교에 시동을 걸었다. 분단 후 남북 화해 무드가 싹튼 결정적 계기였다. 

제5공화국
2인자 군림

같은 해 9월 열린 서울올림픽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 상징이 됐고, 1990년 10월 선포한 ‘범죄와의 전쟁’은 이후 민생 치안 확립의 대명사로 통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해인 1988년 치러진 4·26총선에서 집권당이었던 민정당이 참패해 헌정사상 첫 ‘여소야대’ 국면이 조성됐고, ‘5공 청산’을 바라는 국민적 요구가 분출하자 여야는 그해 11월 5공 청문회 개최에 합의했다. 

당시 전씨는 국회 청문회장에 출석해 “어떤 단죄도 달게 받아야 할 처지임을 깊이 깨우친다”며 사회에 재산을 헌납하겠다고 발표하고 강원도 인제 백담사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5공 청문회와 광주 청문회를 통해 신군부의 광주학살 만행과 일해재단 비자금 모금, 언론 통폐합 등 ‘5공 비리’가 상당 부분 드러나긴 했지만, 5·18 당시 발포 책임자를 밝혀내지 못하는 등 한계도 뚜렷했다. 

노 전 대통령은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사회주의권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수교하는 ‘북방정책’에 집중했다. 1989년 2월 사회주의 국가 가운데 최초로 헝가리와 국교를 텄고 같은 해 폴란드(11월), 유고슬라비아(12월) 등 동유럽 국가와 수교를 넓혀갔다. 

이어 1990년 9월에는 소련과 1992년 8월에는 중국과 각각 수교를 맺었다. 이 같은 활발한 북방정책은 1980년대 중반기 이후 진행된 소련의 개혁·개방과 동유럽의 몰락, 미국의 세계 전략 등 ‘외부환경’에 힘입은 바도 크지만, 그 자체로 상당한 성과로 평가받는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7·7선언(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 ▲1989년 한민족공동체 통일 방안 발표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및 한반도 비핵화 선언 채택 등 통일정책에서도 적극성을 보였다. 

그러나 이 같은 북방·통일정책은 소련 등 북한의 우방과 수교해 북한을 고립시키고 남북관계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의도였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실제로 북방정책을 쓰면서도 남북교류를 주장하는 민간교류단체들을 이적·용공단체로 탄압했다.

국민 의견을 배제하고 ‘6공화국 황태자’로 불린 측근 박철언씨에게 의존하는 비밀 외교였다는 점도 비판받는다.

노 전 대통령은 수도권 5개 새도시(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건설계획을 발표하고 서해안고속도로와 경부고속철도(KTX), 영종도 신국제공항을 기공하는 등 기반시설 구축에도 박차를 가했다. 

비자금 조성…뇌물수수 혐의
일관성 없는 경제 정책 펼쳐

노 전 대통령이 집권한 6공화국에선 부동산 가격과 물가가 폭등하고 정경유착이 심화됐으며, 수서·한보 등 대형 비리 사건도 많았다. 수동적이고 자기중심 없는 행동으로 ‘물태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후계자로 박철언씨를 염두에 뒀으나, 통일민주당 출신 민주계를 이끄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반발과 저항에 갈등을 빚다가 1992년 9월 민자당을 탈당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11년 펴낸 회고록에서 “1992년 대선 때 김영삼 후보에게 3000억원을 지원했다”고 술회했던 그는 1990년 민주정의당, 평화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에 기여했다. 이는 김영삼 문민정부를 탄생시키는 배경이 된 동시에 호남을 배제한 정치적 야합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시는 시위 등 온갖 불만이 표출됐던 시기로 ‘민주화’라는 타협이 불가피했다”며 “노 전 대통령은 ‘용납하지는 않지만 용인할 수밖에 없었던 리더십’으로 완충 역할을 했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3당 합당이 호남 차별주의로 이어지고 지역주의가 더욱 강화돼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3당 합당은 정치적으로는 승리지만 호남 등 지역 간 감정을 심화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경제 분야의 점수도 높게 받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 취임 초기 국내 경제는 3저(저유가, 저금리, 저달러)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전두환정부로부터 무역흑자 기조를 이어받았지만, 일관성 없는 경제정책으로 성장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특히 수서 택지 분양 사업, 율곡사업(차세대 전투기 및 무기도입 사업) 민영방송 사업자 선정,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해 결국 뇌물수수 혐의로 법정에까지 섰다. 이 같은 재벌과의 유착으로 정권 초기 시도했던 토지공개념 도입 등 경제 정의실천을 위한 개혁 추진도 열매를 맺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의 건강은 이전부터 좋지 않았다. 지난 4월 노 전 대통령은 호흡곤란으로 위독해지자 119 구급대가 긴급출동한 바 있다. 당시 딸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SNS에 부친의 상태를 언급하기도 했다.

노 관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버지의 인내심’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며 “(아버지의 병명이)소뇌 위축증이라는 희귀병인데 대뇌는 지장이 없어서 의식과 사고는 있다. 이것이 더 큰 고통”이라고 운을 뗐다. 

‘보통 사람’
빛과 그림자

그는 “눈짓으로 의사 표현을 하시지만 정말 하고픈 말이 있을 때 소통이 잘되지 않으면 온 얼굴이 무너지며 울상이 되신다”며 “아버지가 우는 모습이다.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적었다. 이어 “어머니의 영혼과 몸이 나달나달해지도록 아버지를 섬기셨다”는 말로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 여사가 남편을 간호하고 있다는 소식도 알렸다. 아울러 “지상에서 아버지께 허락된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버지는 나에게 확실한 교훈을 주셨다. 인내심”이라고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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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어 산’ 윤석열 한가위 플랜

‘산 넘어 산’ 윤석열 한가위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반가운 얼굴과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추석 명절이 다가왔다. 예민하지만, 또 그만큼 흥미로운 정치 이야기도 한두 마디씩 오간다. 그래서인지 용산은 마냥 웃을 수 없다. 추석을 앞두고 연이어 리스크가 터졌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연휴 내내 야당이 추석 밥상을 독차지할지도 모른다. 물가는 오르는데 국정 지지율은 내림세다. 추석 연휴 동안 의료 대란은 예견된 문제였다. 야당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역풍 맞을 위기에 처한 마당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의 묘한 거리감도 신경이 쓰인다. 꺼야 할 급한 불이 한두 개가 아니다. 지지율 추락 30% 뚫렸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20%대인 29.6%를 기록했다. 지난 2022년 8월 첫 번째 주 29.3%를 기록한 이후 약 2년 만에 다시 20%대 지지율이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달 26∼30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이 같은 수치로 집계됐다. 부정 평가는 66.7%, ‘잘 모름’은 3.6%다. 해당 조사는 무선(97%)·유선(3%)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2.7%였다. 신뢰수준은 95%에 표본오차 ±2.0%p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정치권에서는 의료 대란을 비롯한 물가, 당정 갈등 등이 맞물린 결과라고 해석했다. 특히 추석을 앞두고 야당이 의료 공백 문제를 입 모아 지적하면서 크게 영향을 끼쳤다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의료개혁을 다루는 정부의 태도를 겨냥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서 의료개혁과 관련해 “의대 증원이 마무리된 만큼, 개혁의 본질인 ‘지역, 필수 의료 살리기’에 정책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기존의 뜻을 확고히 했다. 의료진과 대통령의 인식 차이에 대한 질문에는 “의료 현장을 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 “비상진료체제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 등의 말을 했다. 이에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향해 “혼자서만 달나라에 사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3일 국회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 출석해 “중증·난치 환자를 떠나버린 전공의가 제일 먼저 잘못하는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응급실은 중증 환자만 이용할 수 있게 제도화할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정부가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지난 4일 윤 대통령은 심야 응급실을 방문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의료진이 ‘번아웃’되지 않도록 각종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지만 이미 갈등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길어지는 의료 대란, 사면초가 한동훈 영부인 공천 논란까지? 상다리 휘는 야 물가 문제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지난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물가상승률은 작년 동월 대비 2.0%로 집계됐다. 이는 1.9%이던 2021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상승률이다. 정부는 이 점을 강조하며 물가 안정세를 강조했지만 당초 지난달 물가가 높았던 탓에 국민이 체감하긴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난달 정부는 민주당이 발의한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에 대해 거부권을 썼다. ‘현금 살포’ ‘표풀리즘’이란 지적이 나와도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된다는데 싫어할 국민은 없다”며 “추석을 앞두고 (25만원 지원법을)딱 잘라 거절했으니 이에 맞먹을 대응책을 가져와야 한다. 지지율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법안이든 지원금이든 국민이 피부로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윤 대통령은 “기초생활수급자 167만명에게 지급하는 생계급여를 추석 전 조기 지급하라”고 지시하면서 민생경제 분야서 승부수를 띄웠다. 같은 날 민주당은 당론으로 추진하던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법(역화폐법 개정안)을 국회서 의결하면서 마찬가지로 이슈 선점에 나섰다. 이에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추진하던 25만원 지원법과 다를 바가 없다며 “내 세금 살포법”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대표적인 민생 법안을 정쟁 법안으로 활용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고 유감”이라며 맞불을 놨다. 용산을 향한 야당의 공세가 날로 거칠어지고 있다. 이에 맞서 검찰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야권 인사를 겨냥해 수사 속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공격 대상이 됐다. 김 여사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권오수 전 회장 등의 2심 선고기일이 오는 12일 예정된 만큼 이를 덮기 위한 ‘급발진 수사’를 진행한 게 아니냐는 점에서다. 검찰은 오는 9일 신 전 청와대 행정관에 대한 공판기일 전 이뤄지는 증인신문에 “문 전 대통령도 참석하라”고 통보했다. 법적으로 따졌을 때 출석 의무는 없지만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보고 있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진다. 다시 쥔 총자루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는 문 전 대통령과 딸 문다혜씨에 대한 수사를 두고 “추석 명절 밥상에 윤석열, 김건희 대신 다른 이름을 올리기 위한 국면 전환용 기획수사”라고 비판했다. 대통령 부부에 대한 혐의는 덮어주는 검찰이 전직 대통령과 가족에 대해서는 도의를 무시하는 수사를 전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받는 김혜경 여사도 소환했다. 지난 5일 김 여사가 수원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 것을 두고 민주당은 “야당 대표로 모자라 배우자까지 추석 밥상머리에 제물로 올리려는 정치검찰의 막장 행태”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윤정부는 집권 후 추석 밥상마다 이 대표를 올리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며 “검찰은 이번에도 반성은커녕 야당 대표의 배우자마저 검찰 포토라인에 세우겠다고 한다. 야당 대표에 대한 정치 탄압 수사가 검찰의 추석 기념행사냐”고 직격했다. 야당의 사법 리스크가 추석 밥상에 올라오나 싶더니 김건희 여사에 대한 새로운 의혹이 나오면서 순식간에 분위기가 뒤집혔다. 김 여사가 지난 4·10 총선을 앞두고 당시 5선이었던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에게 ‘지역구를 옮겨 출마하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야당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김 여사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추석 밥상에 올리면서 명품가방 수수 의혹부터 공천 개입 논란까지 전 방향으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대통령실은 김 전 의원이 당초 컷오프된 점을 들며 반박했지만 논란이 쉽게 가라앉진 않을 전망이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소문이 무성하던 김 여사의 당무 개입과 선거 개입, 국정 농단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 되기 때문에 경악할 수밖에 없다”며 “‘김건희 특검법’에 이를 포함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엄포를 놨다. 혁신당 김보협 수석대변인도 “당시 총선을 진두지휘했던 한 대표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며 “두 사람 모두 대답하지 않을 경우 김건희씨의 국정 농단 의혹의 진상규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야당의 발목을 잡나 싶었지만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이 등장하면서 한순간에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 형국이다. 용산이 코너에 몰린 상황서 여당이 난관을 헤치고 새로운 의제로 판을 엎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끝까지 시끌벅적 하지만 ‘N번째 윤-한 갈등’이 불거진 시점서 당에 큰 기대를 하기엔 어렵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여당이 합심해 추석 밥상을 차리고 싶어도 자꾸만 손발이 엇나가니 오히려 민주당만 득을 본다는 설명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국민의힘과 한 대표가 윤 대통령을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한 대표가 제3자 특검법을 입 밖으로 내뱉은 순간 야당에 꽃놀이패를 직접 쥐어준 것과 다름없다. 한 대표가 용산과 언제 또 충돌할까 지켜보는 당 입장에서는 조마조마하다”고 토로했다. 다음 달 재보궐선거가 치러질 부산 금정구서 만에 하나 국민의힘이 패배한다면 한 대표 사퇴 요구로 이어질 것이란 구설이 여의도 정가를 떠돈다. 지난해 강서구청장 선거서 국민의힘이 패배하자 김기현 전 대표가 책임을 지고 사퇴한 것처럼 한 대표 책임론이 불거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아직은 친한(친 한동훈)계 보다 친윤(친 윤석열)계 비중이 큰 만큼 당이 갈라지진 않겠지만 60%가 넘는 당원이 선택한 당 대표를 쫓아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적잖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정 갈등마저도 야당의 반찬으로 내어줬다. 용산이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 이 대표와의 영수회담 카드를 제시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용산은 이 대표와의 영수회담을 반기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국정 브리핑서도 이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에 대해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니라 제가 살아오면서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라며 국회 정상화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사실상 이 대표와의 만남을 거절한 셈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첫 영수회담은 지난 4월29일이었다. 윤정부 출범 이후 720일, 4·10 총선이 끝난 지 18일 만이었다. 당시 총선서 국민의힘이 참패하자 국정 전환용으로 ‘소통하는 정부’를 내세웠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지금처럼 민주당이 온갖 리스크를 꺼내 들고 국정 지지율이 하락하는 시점서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영수회담에 응하지 않겠냐는 설명이 나오는 이유다. 꽉 막힌 국회 탄핵 거부권만 도돌이표 분위기 반전시킬 영수회담 카드 꺼낼까 이 대표는 지난 8·18 전당대회서 재임에 성공한 직후부터 줄곧 대화를 요청해 왔다. 윤 대통령 입장서도 제1야당 대표와의 만남을 무기한으로 미룰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첫 번째 영수회담처럼 ‘안 만나느니만 못하다’는 지적이 나올 경우, 오히려 용산의 실책으로 이어질 우려가 제시된다. 지난 1일 여야 대표 회담이 빈손으로 끝난 만큼 대통령조차 야당 대표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면 민주당이 “불통” “꽉 막힌 소통” 등 공격적인 논평을 쏟아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영수회담이 이뤄져도 꽁꽁 얼어붙은 정국이 풀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지난 5일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가 제22대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여야정 민생협의체’를 제안했다. 하지만 연설 후반부에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조준하자 야당 측 의석서 반발이 터져 나왔고 민생협의체 논의는 뒷순위로 밀렸다. 야당 의원들 사이서 윤 대통령이 보내온 추석 선물을 거부하는 ‘선물 보이콧’도 일어났다. 민주당 이성윤 의원은 자신의 SNS에 추석 선물 사진과 함께 “용산 대통령로부터 배달이 왔다”며 “받기 싫은데 왜 또다시 스토커처럼 일방적으로 (선물을)보내시나”라고 글을 게시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스토커 수사’나 중단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혁신당 김준형 의원도 “‘선물 보내지 마시라’고 분명히 말했지만 외교도, 장관 임명도 마음대로”라며 “(국회)개원식 불참까지 제멋대로 하더니 안 받겠다는 선물을 기어이 보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은 “당장 눈앞에 택배기사님 고충을 생각하시는 것부터 시작하시라. 참고로 대통령실 명절선물은 지역주민들의 피땀으로 만든 특산품”이라고 말하는 등 국회 곳곳서 잡음이 일기도 했다. 한 차례 고비를 넘겨도 용산의 앞날이 순탄치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당장 눈앞에 놓인 국정감사와 예산 심사가 끝나면 수능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4대 개혁(연금·의료·교육·노동) 중 교육개혁이 다시 한번 주목받는 때이기도 하다. 이제 곧 수능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석에 의료개혁이 문제가 됐다면 그다음으로는 교육개혁이 화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교육개혁이든 의료개혁이든 취지는 좋은데 문제는 이 개혁안을 벌여놓고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니 사방서 문제가 동시에 터지는 것”이라며 “의대 증원으로 인해 올해 수능은 ‘초긴장 모드’다. 지난해 ‘킬러 문항’으로 사교육계가 크게 반발한 만큼 정부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의협 당직 병원 반발 “추석에 아프면 대통령실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정부의 추석 연휴 당직병원 운영 방침에 크게 반발했다. 앞서 정부가 추석 연휴 기간에 약 4000곳을 대상으로 당직 병·의원을 운영할 계획을 밝히자 “민간 의료기관에 부당한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고 반박한 것이다. 아울러 의협은 의사 회원을 대상으로 “대통령은 비상진료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며 “추석 연휴 응급진료 이용은 정부 기관이나 대통령실로 연락하시기 바란다”는 공지를 전송했다. 공지 말미에는 ‘02-800-7070’라는 연락처를 덧붙였다. 이는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이 제기되던 당시 논란이 됐던 대통령실 번호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