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소영 자충수 ‘노태우 비자금’ 수사로 번지나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9.23 09:49:40
  • 호수 14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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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자료 더 받으려다 집안 쑥대밭 만들라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녀 노소영의 이혼소송 과정서 나온 이른바 ‘김옥숙 메모’와 관련해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가족이 스스로 범죄 행위로 축적한 것으로 추정되는 재산의 증거를 법원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노 전 대통령의 은닉 비자금 환수 필요성을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상고심을 언급하며 “결국 범죄로 은닉한 비자금이 계속 형성돼있던 것이고, 검찰이 추징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 폭발

정 위원장은 지난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서 열린 심우정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서 이같이 말했다. 최근 최 회장과 노 관장 이혼소송 항소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아내 김옥숙 여사가 지난 1998년경 작성한 해당 메모를 증거로 인정해 ‘300억원이 SK 성장에 쓰였다’고 보고, 1조3808억원 상당의 재산분할을 선고한 바 있다.

정 위원장은 “(은닉에)성공한 비자금은 환수할 수 없는가”라며 “법적 개념으로 보면 소급 적용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있지만, 정의를 세우는 문제와도 충돌한다. 불법 비자금은 환수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변호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동아시아문화센터로 유입된 150억원도 비자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현행법에 의해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심 후보자는 “취임하면 정확히 확인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도 비자금에 대한 재수사 및 환수 필요성을 촉구했다.

송 의원은 “2018년 문재인정부서 (노 전 대통령 일가의)해외 은닉재산 환수를 위한 합동조사단을 구성했고, 2020년에는 검찰서 노 전 대통령 일가의 탈세 혐의 (조사)에 대한 움직임이 있었다”며 “검찰총장이 된다면 이런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국민 의혹을 해소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심 후보자는 “검찰총장이 되면 판단하겠다”며 조사 가능성을 열어뒀다.

앞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도 비자금 세금포탈에 대해 조만간 법무부 입장을 밝히겠다고 예고했다. 지난 6일 국회에 따르면 전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서 박 장관은 ‘노태우 비자금 논란’과 관련해 형사 처벌 가능성을 언급했다.

박성재 장관, 수사·처벌 가능성 언급 
여야 막론 정치권 쿠데타 검은돈 비판

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이날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중 법원에 증거로 채택된 ‘김옥숙 메모’를 제시했다. 메모에는 구체적인 실명과 904억원의 자금 흐름이 적혀 있다.

박 장관은 ‘904억원이 노동소득을 통해서 만들어졌을지, 상식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김 의원의 질문에 관해 “메모를 지금 처음 보는 것이라서 평가할 입장에 있지 않다”면서도 “세금포탈이 되는지부터 정확하게 알아야겠지만, 포탈이 되면 수사·처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김옥숙 메모’에 이어, 김 여사가 아들 노재헌이 운영하는 동아시아문화센터에 지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147억원을 출연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노 전 대통령 비자금 논란이 증폭됐다. 김 여사는 경북대 사범대를 중퇴하고 노 전 대통령과 혼인한 이후, 전업주부로서 딱히 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다.

‘김옥숙 메모’의 904억5000만원이 ‘노동소득’을 통해 만들어졌겠느냐는 질의는 이를 겨냥한 것이다.

김 의원은 지난달 27일 ‘김옥숙 메모’ 등을 근거로 국세청에 탈세 제보서를 제출하고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탈세 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앞서 강민수 국세청장 또한 후보자 시절인 지난 7월16일 국회 인사청문회서 “불법 정치자금 시효가 남아 있고 또 확인된다면 당연히 과세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김 의원은 박 장관에게 5·18민주화운동 특별법과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몰수에 관해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가 있다면 소급 적용이 가능하다는 헌법재판소 판례를 제시했다.

전두환씨 및 노 전 대통령 비자금 등은 당사자들의 사망과 시효 만료로 현행법으로 환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를 몰수하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장경태 의원은 지난 2일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헌정질서 파괴 범죄’가 사망해 공소제기가 어려운 경우에도 범죄 수익을 모두 몰수하고 추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장 의원은 “노태우씨의 추가 비자금 904억원이 기재된 메모가 공개됐다”며 “전두환과 마찬가지로 노태우 또한 비자금이 더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전두환씨에 대해 법원이 선고한 추징금 2205억원 중 867억원은 여전히 환수되지 못하고 있다”며 “손자 전우원씨는 비자금이 더 남아 있을 것이라고 폭로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불법 비자금 모두 환수해야”
시효 만료로 환수 어렵다고?

그는 “과거 법원은 전두환, 노태우씨에게 유죄를 내리며 추징을 선고했으나 그들이 축적한 막대한 금액의 비자금 중 일부는 여전히 파악도, 환수도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혼소송 2심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노 관장 측이 제시한 모친의 비자금 메모가 결과적으로 노씨 일가의 비리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됐다는 분위기다. 앞서 법원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했다.

그간 노 전 대통령 측은 이 추징금을 모두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추가 은닉자산이 더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SK에 건넨 돈이 아니라, 노 전 대통령 측이 SK에 요구한 돈으로 판단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현재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은 최 회장 측이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함에 따라 대법원 상고심을 앞두고 있다.


실제로 비자금 300억원을 놓고 “노 전 대통령 측이 SK에 요구한 노후자금”이라는 증언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이 취재해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비자금 300억원이 노 전 대통령의 ‘노후자금’이라고 밝혔다.

‘SK 2인자’ 손길승 명예회장도 앞서 진술서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심부름을 하던 이원조 경제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지낼 거처와 생활비 등을 요구해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전달했다”고 말한 바 있다.

김 여사의 메모가 ‘받았다’는 의미가 아닌 ‘주겠다’로 재해석이 되더라도 노씨 일가를 향한 질타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추가 은닉자산 의혹 자체는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선경 300억’ 외에도 여러 실명이 적혀 있는 등 김 여사의 메모는 그간 출처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도 과거 비자금 수사서 자신이 약 46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진술했다.

한편, 최근 노 관장은 횡령 등의 범죄를 저질러 구속 수감된 전 비서 이모씨에 대해 선처나 합의 없이 엄벌에 처해줄 것을 재판부에 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노 전 대통령이 부정 축적한 은닉재산을 챙기려는 노 관장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칼 빼들다

지난달 30일 검찰은 노 관장의 비서로 일하며 21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씨에게 징역 8년을 구형했다. 이씨는 2019년 아트센터 나비에 입사해 노 관장 명의로 4억3800만원 상당을 대출받고, 노 관장 명의 계좌에 입금돼있던 예금 11억9400만원 상당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해 사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노 관장을 사칭하며 아트센터 직원을 속여 소송 자금 명목으로 5억원을 송금하도록 하는 등 총 21억3200만원을 빼돌렸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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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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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