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죄부 받아든 문제적 회장님

황제 보석하더니 족쇄도 풀어줬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윤석열정부가 광복절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기업인이 다수 포함된 사면 대상자는 현 정부가 경제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황제 보석’ 논란으로 파장을 일으켰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복권을 계기로 경영 복귀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지난 14일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사면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정한 광복절 특별사면 명단을 심의·의결했다. 서민생계형 형사범, 특별 배려 수형자, 경제인, 정치인, 기업 임직원 등 2176명이 대상이다. 정부는 민생경제의 활력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규모
사면 결정

사면 대상자 명단을 보면 이번 사면의 키워드는 단연 ‘경제 살리기’다. 사면 및 복권이 결정된 기업인은 총 12명에 달한다. 정부에서는 사면 대상자에 이름을 올린 기업인들이 경제 전반에 활력소가 돼주길 기대하는 눈치다.

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경제위기 극복 및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경제인들의 진취적인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주요 경제인들에 관한 사면을 통해 대한민국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사면 및 복권이 결정된 기업인들의 면면은 꽤나 화려하다. 100억원대 배임 혐의로 2018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명예회장은 복권됐다. 2019년 10월 배임수재 등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도 복권이 이뤄졌다.


2020년 횡령 등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은 이중근 전 부영그룹 회장, 운전기사에 대한 갑질로 2019년 11월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던 이장한 종근당 회장도 복권됐다. 강정석 전 동아쏘시오홀딩스 회장,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 등 만기출소 후 취업제한 처분 적용 대상이었던 기업인들은 경영 일선 복귀를 점칠 수 있게 됐다.

다만 기업인이 포함된 광복절 특사에 대중이 마냥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는 건 아니다. 특정경제범죄법을 위반해 유죄를 선고받은 기업인이 특사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대한 부정적 인식이 부각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봐주기 수순
부정적 인식

이호진 전 회장은 1990년대 후반 미디어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는 등 그룹의 사세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이호진 체제에서 그룹은 섬유, 금융업 등에 쏠렸던 사업구조를 다변화했고, 이를 통해 손꼽히는 대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이호진 전 회장은 그룹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핵심 계열사인 태광산업의 지분 29.48%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고, 친인척을 포함한 우호 지분을 더하면 지분율은 50%를 넘긴다. 흥국생명에서도 이호진 전 회장은 지분율 56.30%로 최대주주에 올라 있다.

다만 이호진 전 회장은 주요 계열사의 최대주주로 군림하는 것과 별개로, 표면상 경영 일선에서 10년 넘게 배제돼있다. 2012년 이래 회장직은 물론이고, 경영상 모든 보직에서 물러난 상태다.

앞서 이호진 전 회장은 2011년 1월 횡령·배임 혐의로 전격 구속된 전례가 있다. 이후 두 차례 대법원 파기환송을 거쳐 2020년 6월이 돼서야 형이 확정됐다. 이후 검찰의 보석 취소 요청이 법원을 통해 받아들여졌고, 이호진 전 회장은 7년9개월여 만인 2020년 12월 재수감돼 2021년 10월 만기 출소했다.


이호진 전 회장은 만기 출소했음에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년간의 취업제한을 받아 경영에 나서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광복절 특별 복권 기업인 명단에 포함되면서 경영 보폭을 넓힐 수 있게 됐다. 

복권 대상자가 됐다는 건 족쇄로 작용했던 취업제한 규칙이 풀렸음을 뜻한다. 이 경우 사실상 총수 없는 10년을 겪어야 했던 태광그룹은 한시름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태광그룹은 이호진 전 회장이 물러나기 직전인 2011년에 30위권이었던 재계 순위가 올해 49위까지 추락했다.

광복절 특사 명단 포함
경영 복귀 수순 밟나

이번 사면 조치를 계기로 태광그룹의 하반기 경영 행보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당장은 이호진 전 회장의 복귀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되도록 빨리 경영 안정화에 나설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태광그룹의 지주사격인 티알엔은 이호진 전 회장의 지분이 51.83%, 장남 이현준씨가 39.36%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승계 작업과 함께 현준씨의 본격적인 경영 참여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이호진 전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 그룹 차원에서 발표한 중장기 투자계획을 완성시켜야 할 숙제가 뒤따른다. ‘총수 사면을 노린 보여주기식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는 세간의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수순이다.

태광그룹은 지난해 12월 장래사업·경영계획 공시를 통해 향후 10년간 총 10조원 규모의 투자를 감행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기업 가치와 주주가치 제고, 대규모 고용 창출 등을 이끌어낸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이호진 전 회장의 복권이 합당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계속되고 있다. 그를 둘러싼 크고 작은 논란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준 게 컸다. ‘황제 보석’ 논란이 대표적이다.

고용 창출?
약속 지킬까

이호진 전 회장은 2018년 10월 간암 환자임에도 음주와 흡연을 하는 모습이 포착됐고, 거주지와 병원을 이탈한 모습이 공개되면서 이른바 ‘황제 보석’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이호진 전 회장은 간암 수술 등을 사유로 재판부로부터 보석을 허가받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했기에 그를 향한 비난의 화살이 거셌다.

최근 연이어 터진 태광그룹 관련 이슈 상당 부분이 이호진 전 회장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됐다는 점도 부각되고 있다. 지난 3월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이호진 전 회장과 그룹 계열사들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취소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공정위는 2019년 태광그룹 경영기획실 지시로 계열회사들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총수 일가 소유인 티시스와 메르뱅으로부터 김치와 와인을 일반 거래가격보다 비싸게 매수한 사실을 적발했다. 공정위는 해당 거래가 공정거래법에 위반된다며 계열회사들에 과징금 20억원을 부과하고 이호진 전 회장에게도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후 이호진 전 회장과 계열사들은 공정위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서울고법에 취소소송을 냈고 지난해 2월 서울고법은 공정위가 계열사들에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 전 회장이 김치·와인 거래에 관여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므로 이 회장에게 내린 시정명령은 위법하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다르게 판단했다. 대법 재판부는 “공정거래법은 특수 관계인이 기업집단에 가지는 영향력을 고려해 특수 관계인의 이익 제공행위에 대한 지시뿐 아니라 관여까지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에는 태광그룹이 2015년경부터 경영기획실을 통해 전체 계열사의 하청·협력사에 거래계약 조건으로 이호진 전 회장의 개인회사인 휘슬링락CC 골프장 회원권 매입을 강요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당시 경제민주화시민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호진 전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이들이 밝힌 배임 혐의 금액은 1011억원이었다.

이호진 전 회장의 특사 명단 포함 가능성이 제기된 시점부터 시민단체들의 반대 목소리는 한층 더 커졌다. 실제로 광복절 특별사면 심사위원회를 앞둔 지난 9일 금융정의연대, 민주노총, 태광그룹혁신연대, 태광그룹바로잡기공동투쟁본부 등 5개 사회단체는 이 전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복권을 반대한다며 공동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원칙은
어디에…

시민단체 관계자는 “특별사면이 있을 때마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재벌 총수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태는 유전무죄와 정경유착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며 “의혹과 논란이 끊이지 않던 이호진 전 회장을 굳이 특별사면 대상자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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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