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전경련 새 수장 류진 풍산그룹 회장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8.14 14:16:34
  • 호수 14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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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선 키 잡은 ‘동전의 제왕’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제39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전경련은 오는 22일 개최하는 임시총회서 기관명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꾸고, 새 회장으로 류 회장을 추대할 것이라고 지난 7일 밝혔다. 임시총회서 추대안이 가결되면 류 회장은 2년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직을 맡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일본경제단체연합회를 모델로 삼고 다른 대기업을 모아 1962년 8월16일 창립했다. 이후 주요 민간기업체·금융기관·국책회사 등을 대상으로 회원을 확보했다. 민간종합경제단체로서 법적으로 사단법인의 지위를 갖고 있으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전경련 회관을 두고 있다.

글로벌 단체
글로벌 인맥

전경련 회장직은 2년에 한 번씩 선출 방식으로 뽑는다. 이를 위해 400명에 달하는 전경련 회원은 회장 추천 절차를 밟는다.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으로 시작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구자경 LG그룹 회장, 최종현 SK그룹 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 대체로 대기업 총수가 맡았다.

회원은 67개 제조업, 무역, 금융, 건설 등 업종별 단체와 공기업을 제외한 대표적인 대기업 436개로 구성돼있다. 전경련은 지난 5월18일 산하에 있는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 통합해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거듭나고, 기관명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꾼다는 내용의 혁신안을 발표했다. 무려 55년 만의 교체다.

전경련은 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회장직에 내정한 배경으로 “글로벌 무대서의 경험, 지식, 네트워크가 탁월하다. 새롭게 태어날 한국경제인협회가 글로벌 싱크탱크이자 명실상부 글로벌 중추 경제단체로 거듭나는 데 리더십을 발휘해줄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제39대 전경련 회장이 된 류 회장은 어떤 인물일까? 류 회장은 1958년 3월, 경북 안동서 고 류찬우 풍산그룹 창업주의 막내아들로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의 13대손이다. ‘가문을 욕보이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랐던 그는 사업을 하면서도 류성룡의 겸손함을 본받으려 했다.

일본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국제학교에 다닌 그는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다트머스대서 경영학 석사를 수료했다.

일본 유학 때 꿈은 야구선수였고 농구도 열심히 했다. 류 회장은 1982년 풍산 금속공업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은 뒤 부친인 류 창업주가 별세하자 이듬해인 2000년 풍산그룹 회장에 올랐다. 류 창업주는 원래 첫째 아들 류청씨에게 회사를 물려주려고 했으나, 류청씨가 미국서 사업에 실패한 이후 후계 구도서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류 회장이 풍산서 이뤄낸 업적은 많다. 미국 정·재계와 친분이 깊어 미국통으로 평가받는 류 회장의 인맥이 프랑스로 확장되기도 했다.

“글로벌 중추 경제단체로 만들 적임자”
미국 정‧재계 친분에 프랑스 인맥까지

지난 6월22일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풍산을 포함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그룹, SK, LG, 한화, 대한항공, 효성 등 8개 그룹 회장단은 전날인 21일 프랑스 엘리제궁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만났다. 재계 순위가 70위권 안팎인 풍산이 대통령 만남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서 방위산업 분야서 프랑스와의 협력 방안이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유럽은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방산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장이다. 실제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월평균 35만발의 탄약을 소모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의 탄약 생산량은 월 1만4000발에 불과하다.


유럽연합(EU)은 탄약 생산량을 연 100만발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며,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는 한국 정부와 풍산에 현지 탄약공장을 설립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면담으로 풍산이 유럽 내 생산거점 확보와 안정적 방산 수익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류 회장의 마당발 인맥이 풍산의 영업에도 힘을 실어줄 것이란 기대가 높아졌다.

류 회장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인연이 각별하다. 이 인연은 류 회장 부인인 고 노신영 전 국무총리 둘째 딸 노혜경씨 덕이라는 의견이 있다. 

노 전 총리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알고 있었고, 사위인 류 회장에게 소개하면서 부시 가문과 친분을 쌓았다는 후문이다. 이런 인연으로 류 회장은 2018년 타계한 아버지 부시를 ‘대디(아빠)’라고 부를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이 같은 인맥은 그의 업적으로 고스란히 나타났다. 2009년 조지 전 미국 대통령의 최고경영자 하계 포럼 특별강연은 류 회장이 직접 주선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09년 7월31일 제주에 도착해 전경연 회장단과 만찬 회동을 한 뒤 8월1일 CEO 포럼서 특별강연을 하고, 오후에는 재계 인사들과 골프도 쳤다.

부시 전 대통령은 같은 달 3일 풍산의 초청으로 안동시를 방문했고, 풍산고등학교서 특강을 하고 병산서원과 하회마을을 돌아봤다. 

이런 인맥을 이용해서 류 회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 정부와 미국 간 가교 역할을 했다. 역대 대통령 방미에 단골로 수행하는 경제인 중 한 사람이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일정에도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하며, 한미재계회의 7대 한국 측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재계에선 ‘동전의 제왕’으로 불리며 활발한 동전 외교를 펼치고 있다.

소탈한 성격
다양한 경험

이는 유년 시절 유학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게 도움이 됐다. 류 회장은 일본서 자랐고, 미국서 대학원을 다녔던 덕분에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하다. 일년 중 절반을 미국 출장을 다닐 정도로 해외 비즈니스에 주력했다. 가족들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서 45일 정도로 나눠 한국과 미국서 지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노 전 총리가 외무부 장관과 총리를 지내서 외교 인맥이 탄탄하다. 다만 집안 인맥을 이어받더라도 본인의 노력 없이는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 류 회장이 해외 사정에 밝고 활달한 성격이다 보니 미 정·재계 인사들과 깊은 교류가 가능했던 것이다. 해외 출장에 비서를 대동하지 않고 혼자 짐을 들고 다닐 정도로 소탈한 성격”이라고 말했다.

풍산그룹은 혼맥으로 인해 정계 쪽 인사들과 인연이 깊다. 류 회장의 형인 류청씨는 198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딸 박근령씨와 결혼해 대통령 집안의 사위가 됐다. 하지만 6개월 만에 파경을 맞게 돼, 류청씨는 일찌감치 사업서 손을 떼 현재 그룹과는 교류가 없다.


이런 상황에 더해 풍산그룹은 특혜를 누리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최첨단 무기보다 재래식 무기를 기반으로 전개되면서 탄약‧포탄 수요가 세계적으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EU가 우크라이나에 1년 넘게 무기 지원을 지속해 자국 방어용 탄약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우방국인 한국에 포탄을 대여해 국내 유일의 탄약·포탄 제조기업인 풍산이 수혜를 누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5월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풍산은 올 1분기 매출 7711억원에 영업이익 590억원을 올렸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0.4%, 영업이익은 19.5% 증가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풍산이 방산 부문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종현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풍산이 기존에 주력으로 탄약을 수출하던 미국과 중동 외에 유럽 지역까지 시장이 확대되고 있어 올해 방산 매출액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방산 수익성은 내수보다 수출이 월등히 높아 이익구조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는 류 회장이지만, 구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류 회장의 아들이 징집 대상에 속하는 나이라는 점을 들어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미국 국적을 취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류 회장의 부인과 아들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앞서 풍산그룹의 지주사 격인 풍산홀딩스는 2014년 5월9일 류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8만6000주를 가족인 헬렌 노, 류성왜, 로이스 류에게 증여한다고 공시했다. 헬렌 노는 류 회장의 부인 노혜경씨며, 류성왜와 로이스 류는 그의 딸과 아들이다.


방산 부문
최대 실적

눈에 띄는 것은 노혜경씨와 류성곤씨가 미국인으로 돼있다는 점이었는데, 두 사람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한 것이다. 반면, 류성왜씨의 국적은 대한민국으로 표시돼있었다.

물론 미국 국적을 취득한 것은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풍산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와 류 회장 가문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다르다. 풍산그룹은 1970년 4월부터 한국조폐공사로부터 소전(무늬 또는 글자를 새겨 넣기 직전의 동전) 생산업체로 지정되면서 우리나라, 미국, 호주 등에도 납품할 만큼 급성장했다.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방위산업에 진출해 소구경 총탄부터 포탄까지 대한민국 국군이 쓰는 탄약의 국산화를 시작했고, 지능화와 정밀화 등을 통한 첨단 탄약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국내 대표적인 방위산업체로 성장했다.

류 창업주가 ‘방위산업의 대부’로 불리는 동시에, 풍산그룹이 대표적인 방위산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외에도 류 회장은 선조 때부터 각별하게 나라를 사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 류 회장은 “선조에 누가 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류 창업주의 확고한 인생관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으며, 류 창업주 역시 창업이념을 ‘사업보국(사업을 통해 나라에 보답한다)’으로 내걸었을 정도로 애국심이 남다르다.

더욱이 류 회장의 부인 노혜경씨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차녀로, 한국의 명문가 집안이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은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무엇보다 세간에서는 류 회장의 아들인 류성곤씨의 당시 나이가 22살(1993년생)에 미국 국적을 취득한 것은 병역기피를 위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강했다.

이에 대해 풍산그룹 측은 “개인적인 사안”이라는 입장을 냈다. 풍산그룹 홍보실 관계자는 “국적 변경은 개인적인 판단에 의해서 이뤄진 지극히 개인적인 사안으로 (회사 입장서)특별히 언급할 것은 없다”고 말했다.

류 회장의 발목을 잡는 일이 또 있었다. 부산 센텀2지구 개발사업 관련 특혜 의혹을 받고 있던 풍산그룹이 과거 국방부로부터 헐값에 해당 부지를 매입했다는 공식 문서가 공개됐다. 개발이 진행될 경우 토지보상금이 5000억원에 육박한다.

재계 순위 70위권인데 왜?
아들 군대, 국유지 논란도

2018년 10월1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중당 김종훈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매매계약서와 합의서에 따르면, 1981년 당시 27만평 규모의 조병찬(현 풍산 부지) 부지였던 이 땅은 3년 거치 후 7년 균등 분할상환 조건으로 풍산이 259억원에 매각했다.

이 과정서 국유지를 비롯한 부동산, 각종 장비 및 운영자재 등의 동산, 사업권이 수의계약을 통해 풍산에 매도된 것이다. 해당 부지는 국방부가 헐값에 국유지를 매각했다는 특혜 의혹이 제기돼왔다. 방위산업 목적의 국유지인 이 땅은 풍산의 공장 부지와 건물 30여개를 제외하면 절반 이상이 개발제한에 묶여있다. 

해당 부지는 2015년 부산시와 풍산이 맺은 센텀2지구 첨단산업단지 양해각서(MOU)에 따라 현재 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어 파장을 낳고 있다. 이날 공개된 매매계약서 8조7항에는 매매계약 이후 지정된 군수산업 목적을 폐기했을 경우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특약사항도 있었지만 1999년 4월9일 이유 없이 삭제됐다.

일각서 “방산기업인 풍산그룹이 기업 특성상 국방부와 밀착한 관계를 맺고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고 꼬집는 이유도 이 부분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 몰아주기 제재 대상을 대기업서 중견기업으로까지 확대하면서, 풍산그룹도 조사 대상서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풍산그룹은 이미 지난해 국세청 세무조사를 한 차례 받기도 했다.

풍산 부지 특혜 논란은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부산시가 ‘대체 부지’로의 이전을 추진하지만 수천억원에 달하는 매각 차익 특혜 논란을 해소할 공공 회수 방안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풍산은 센텀2지구 사업으로 8000억원이 넘는 매각 차익을 기록할 전망이다.

류 회장이 전경련 회장으로 선임 전이지만 이미 외교부 출신 인사의 부회장 영입 논란이 이어지면서 시끄러운 상황이다. 최근 재계에 따르면 류 회장은 전경련 사무국의 상근 부회장으로 외무 관료 출신을 영입하고 본인은 전경련 부회장 당시 직책으로 해오던 대미 정계 네트워크 구축과 관리에 힘쓰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관료 출신 영입을 두고 전경련이 환골탈태를 통해 정경유착의 이미지를 벗겠다는 혁신안을 냈지만 실상은 예전 모습을 답습하는 꼴이라는 우려 목소리도 제기된다. 또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이 오는 22일 임시총회를 기점으로 직무대행서 내려오는 대신 상근 고문으로 남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져 논란을 키우고 있다.

정경유착
환골탈태?

김 직무대행은 그간 차기 회장이 나타나더라도 고문이든, 자문이든 전경련에 남아 필요한 역할을 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친 바 있다. 이를 두고 전경련 안팎으로 혁신을 위해 이름까지 고치는 마당에 김 직무대행이 상근 고문 자리에 남으면 정경유착의 전형적인 모양새로 비칠 수 있다며 볼멘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전경련 관계자는 “아직 부회장과 상근 고문 등에 대해서는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 이번 임시총회 안건으로 올라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우선 회장님을 선임한 이후 문제”라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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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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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