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VS 노소영 ‘치명적 오류’ 잘못된 재판 막전막후

산수 틀린 희대의 판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세기의 이혼소송의 대법원 판결에 관심이 주목된다. 항소심 재판부가 산정한 주가가치의 오류를 최 회장 측에서 지적하며 재판부와 반박에 재반박이 계속 나왔다. 1조3000억원이라는 희대의 이혼소송 위자료에 이어 판결문 수정까지 나온 결과는 결국 최 회장이 상고하면서 대법원 손으로 넘어갔다.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세기의 이혼소송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SK㈜로 합병된 SK C&C의 과거 주식가치 산정에 오류가 발견되면서다. 서울고법 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는 지난달 30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선고를 열고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위자료로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1700만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유례없는
세기의 이혼

재판부는 “최 회장은 노 관장과 별거한 이후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액이 산정되는 부분만 해도 219억원 이상 지출했고 여러 가액 산정이 불가능한 이익도 제공했다”며 “부부 공동생활과 혼인 파탄에 대한 노 관장의 정신적 손해를 전부 전보하는 수준으로 증액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 회장에 대해 “혼인 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신용카드 사용을 일방적으로 정지시키고 1심 판결 이후 현금 생활비 지원도 중단하는 등 부양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노 관장의 부친인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금 300억원 상당이 지난 1991년경 최 회장의 부친이자 사돈인 고 최종현 전 선대회장에게 전달돼 SK 측에 유입됐다고 판단, 1심과 달리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이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된다고 봤다.


이에 대해 “최 전 회장이 태평양증권을 인수할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사돈관계를 SK 경영의 보호막과 방패막이로 인식하고 지극히 모험적이고 위험적인 행동을 감행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며 노 관장 측에서 SK 성장에 관여했다고 봤다.

이어 “혼인 기간과 생성 시점, 형성 과정 등에 비춰볼 때 SK㈜ 주식 등에 대한 노 관장 측의 기여가 인정되므로 부부 공동재산에 해당해 재산분할 대상이 된다”고 해석했다.

다만 양측 의사에 따라 최 회장이 돈으로 정산하는 방식으로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을 지급하라고 했다. 노 관장은 SK㈜ 주식에 대해 주위적으로 현물분할을 원하고 예비적으로 재판부 판단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또 최 회장은 주식을 합한 재산분할 방법으로 현금 정산을 선호한다는 입장을 냈다.

재판부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각 상속재산을 포함한 고유 추정 재산총액을 4조115억원가량으로 산정한 뒤 재산분할 비율을 최 회장 65%, 노 관장 35%로 정했다.

위자료에 대해서도 “1심서 인정된 1억원은 지나치게 낮다”며 “혼인 관계 파탄 사유 및 기간, 노 관장의 정신적 고통, 최 회장의 그간 태도 등을 고려해 액수를 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1심은 지난 2022년 12월 노 관장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면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 재산분할로 665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주식가치 1000원을 100원으로 판단
기자회견 3시간 뒤 판결문 급 수정


당시 1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은 최 전 선대회장에게 물려받은 것으로 최 회장의 특유재산에 해당한다며 재산분할 대상서 제외했다. 특유재산은 부부 일방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말하며 원칙적으로 재산분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

2심 판결 후 노 관장 측은 상고 여부에 대해 “판결문을 분석한 후 대처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반면, SK 그룹 측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약 3주가 지난 후 상황은 급변했다.

최 회장의 법률 대리인과 SK 그룹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 위원장은 지난 17일 최 회장과 노 관장 사이 이혼소송 항소심 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 시작에 앞서 입장을 밝힌 최 회장은 “무엇보다 먼저 개인적인 일로 국민들께 걱정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 사과드린다”며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면서도 상고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재산분할에 관해 객관적이고 명백한 오류가 발견됐다”며 “(재산 분할 관련)오류는 주식이 분할 대상이 되는지, 얼마나 돼야 하는지에 대한 전제에 속하는 아주 치명적이고 큰 오류라고 들었다”며 조 단위 재산분할 판단에 영향을 미친 주식가치 산정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1994~1998년 고 최종현 회장 별세까지와 이후부터 2009년 SK C&C 상장까지의 SK C&C 가치 증가분을 비교하면서 회사 성장에 대한 최종현 회장의 기여 부분을 12배로, 최 회장의 기여 부분을 355배로 판단했다.

하지만 최 회장 변호인단은 “실제로는 최종현 회장 시기 증가분이 125배이고, 최 회장 시기 증가분은 35배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3주 후
대망신

그러면서 “항소심 재판부는 잘못된 결과치에 근거해 최 회장이 승계상속한 부분을 과소평가하면서 최 회장을 사실상 창업을 한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단정했다”며 “이에 근거해 SK㈜ 지분을 분할대상 재산으로 결정하고 분할비율 산정 시에도 이를 고려했기에 앞선 치명적 오류를 정정한 후 결론을 다시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당 오류는 SK㈜의 모태인 대한텔레콤 주가 가치 산정 과정서 불거졌다. 대한텔레콤 주가 가치가 1000원인데 100원으로 잘못 계산한 것이다.

1998년 5월13일 기준 대한텔레콤 1주당 가액을 5만원으로 잡고, 여기서 2007년 3월 1대 20 비율의 액면분할과 2009년 4월 1대 2.5 비율의 액면분할을 감안해 각각 20과 2.5로 나눴다. 1만원을 각각 이렇게 나눈다면 1000원이 나와야 하는데 재판부는 이를 100원으로 잘못 산출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대한텔레콤 주가 가치 산정 오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이 최초 주식을 취득한 1994년, 최종현 선대회장 별세 무렵인 1998년, 이후 대한텔레콤이 SK C&C로 흡수합병돼 상장한 2009년 등 각각의 시점을 기준으로 가치 증가분을 비교하면서 최종현 선대회장과 최 회장의 기여도를 산출했다. 

잘못된 수치를 바탕으로 이혼 재산분할의 핵심인 최종현 선대회장과 최 회장의 기여도를 수치화한 것이다. 재판부는 틀린 숫자를 바탕으로 최종현 선대회장의 기여도는 1994년 주당 8원서 1998년 100원으로 12.5배 상승, 최 회장의 기여도는 1998년 100원서 2009년 3만5650원으로 355배 뛰었다고 봤다.

그러나 잘못된 가치인 100원이 아니라 정확한 가치인 1000원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최종현 선대회장의 기여도는 8원서 1000원으로 125배 상승하고, 최 회장의 기여도는 1000원서 3만5650원으로 35.5배 늘어난 것으로 뒤바뀐다.

노태우정부의 특혜를 받았다는 항소심 재판부 판단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반박에
재반박

최 회장은 “‘SK 성장이 불법적인 비자금을 통해 이뤄졌다’, SK 역사가 전부 부정당하고 ‘6공화국 후광으로 사업을 키웠다’는 판결 내용이 존재하고 있다”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이 위원장도 “비자금 300억원에 대해서는 그 어느 누구도 현존하는 사람은 보고 듣고 한 바가 전혀 없다”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전달한 쪽에서 입증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SK는 6공화국 특혜로 성장한 기업이 아니다. 6공화국 특혜설의 경우 해묵은 가짜 뉴스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기자회견을 마치며 “저뿐 아니라 SK 구성원 모두의 명예와 긍지가 실추되고 훼손됐다고 생각해 이를 바로잡고자 상고를 하려 한다”며 “부디 대법원의 정당한 판단이 있길 바란다. 바로잡아주길 바라는 간곡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3시간이 지나자 법원서도 주식가치 산정에 오류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재판부는 지난 17일 판결문 내용을 일부 수정해 최 회장과 노 관장 양쪽에 송달했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가사2부는 대한텔레콤의 1998년 가치를 주당 100원으로 계산한 판결문 오류를 바로잡는 ‘경정(更正·법원이 판결 이후 계산이나 표현의 오류를 고치는 일)’ 처리해 당시 주당을 1000원으로 바꿨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1조3000억원대 재산분할의 근거 중 하나인)대한텔레콤(SK C&C의 전신) 주식가격은 1998년 주당 1000원서 재산분할 기준 시점인 올해 4월 주당 16만원인 SK 주식으로 변모했다”면서 “최태원 SK 회장의 재임 기간인 26년 동안 160배 가치 상승이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재산 분할비율 등엔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법원의 이 같은 경정은 단순 계산 실수며 전체 판결의 취지는 변함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재산분할 비율 실질적인 영향 없어”
“주식 가치 산정과 기여도 모두 달라”

경정은 판결문에 수치 등 사소한 오류나 단순 오기 등이 있을 경우 이를 수정하는 절차다. 재판부가 직권으로 할 수 있고, 당사자 요청을 받아들여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산분할 액수 등 판결의 핵심적인 내용을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상급심이나 재심 등을 통해 다퉈야 한다. 항소심 재판부가 판결문의 일부 수치를 경정했지만, 재산분할 액수를 수정하지 않은 것은 해당 대목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봤기 때문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판결문 수정을 하면서도 전체 결론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최 회장 측은  “숫자만 고쳐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며 반발했다. 당초 재판부가 해당 주식이 최 선대회장 시절 12.5배 오르고, 이후 최 회장 재임 기간 중 355배 올랐기 때문에 최 회장은 ‘자수성가형 사업가’에 해당하고, 노 관장도 ‘자수성가’에 기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 회장 측은 이 같은 판결문 수정에 따라 최 선대회장과 최 회장의 주식가치 상승 기여가 각각 125배(8원→1000원)와 35.6배(1000원→3만5650원)로 수정돼야 하고, 결국 1조3000억원대라는 재산분할 판결도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재판부는 재차 설명문을 내고 “(대한텔레콤 주가에 대한 판결문 수정은)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혼인한 1988년부터 2024년 4월까지 최종현 선대 회장에서 최 회장에게로 계속 이어지는 중간 단계의 사실관계에 대한 계산 착오를 수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는 최종적인 재산분할 기준 시점인 올해 4월 기준 SK 주식가격인 16만원이나 최 회장, 노 과장의 구체적 재산분할 비율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며 “2009년 11월, 3만5650원은 중간 단계의 가치로 최종적인 비교 대상이나 기준 가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최 선대회장의 경영 활동에 따른 주식가치의 상승과 현 최 회장의 경영활동에 따른 주식가치의 상승을 비교하는 경우에도 125배(최 선대회장)와 160배(최 회장·1000원→16만원)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판결문 수정에도 노태우 전 대통령 등 노 관장 측이 SK그룹의 성장에 무형적 기여를 했다는 판단은 그대로 유지되며, 이를 토대로 한 재산분할 비율 65(최 회장):35(노 관장) 등의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고 밝혔다.

시선 쏠리는
대법원 결과

이에 대해 최 회장 측은 “항소심 재판부가 이런 논리를 견지하려면, 판결문을 2024년까지 비교 기간을 늘리도록 추가 경정을 할 것인지 궁금하며 이에 대한 해명 필요하다”고 재반박하며 “재판부는 실질적 혼인 관계는 2019년에 파탄 났다고 설시한 바 있는데, 올해까지 연장해서 기여도를 재산정한 이유도 궁금하다”고 밝혔다.

결국 최 회장과 주식가치 산정 오류로 인한 판결은 대법원서 이뤄지게 됐다. 최 회장은 지난 20일 항소심 판단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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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