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VS 노소영 ‘치명적 오류’ 잘못된 재판 막전막후

산수 틀린 희대의 판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세기의 이혼소송의 대법원 판결에 관심이 주목된다. 항소심 재판부가 산정한 주가가치의 오류를 최 회장 측에서 지적하며 재판부와 반박에 재반박이 계속 나왔다. 1조3000억원이라는 희대의 이혼소송 위자료에 이어 판결문 수정까지 나온 결과는 결국 최 회장이 상고하면서 대법원 손으로 넘어갔다.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세기의 이혼소송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SK㈜로 합병된 SK C&C의 과거 주식가치 산정에 오류가 발견되면서다. 서울고법 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는 지난달 30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선고를 열고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위자료로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1700만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유례없는
세기의 이혼

재판부는 “최 회장은 노 관장과 별거한 이후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액이 산정되는 부분만 해도 219억원 이상 지출했고 여러 가액 산정이 불가능한 이익도 제공했다”며 “부부 공동생활과 혼인 파탄에 대한 노 관장의 정신적 손해를 전부 전보하는 수준으로 증액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 회장에 대해 “혼인 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신용카드 사용을 일방적으로 정지시키고 1심 판결 이후 현금 생활비 지원도 중단하는 등 부양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노 관장의 부친인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금 300억원 상당이 지난 1991년경 최 회장의 부친이자 사돈인 고 최종현 전 선대회장에게 전달돼 SK 측에 유입됐다고 판단, 1심과 달리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이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된다고 봤다.


이에 대해 “최 전 회장이 태평양증권을 인수할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사돈관계를 SK 경영의 보호막과 방패막이로 인식하고 지극히 모험적이고 위험적인 행동을 감행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며 노 관장 측에서 SK 성장에 관여했다고 봤다.

이어 “혼인 기간과 생성 시점, 형성 과정 등에 비춰볼 때 SK㈜ 주식 등에 대한 노 관장 측의 기여가 인정되므로 부부 공동재산에 해당해 재산분할 대상이 된다”고 해석했다.

다만 양측 의사에 따라 최 회장이 돈으로 정산하는 방식으로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을 지급하라고 했다. 노 관장은 SK㈜ 주식에 대해 주위적으로 현물분할을 원하고 예비적으로 재판부 판단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또 최 회장은 주식을 합한 재산분할 방법으로 현금 정산을 선호한다는 입장을 냈다.

재판부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각 상속재산을 포함한 고유 추정 재산총액을 4조115억원가량으로 산정한 뒤 재산분할 비율을 최 회장 65%, 노 관장 35%로 정했다.

위자료에 대해서도 “1심서 인정된 1억원은 지나치게 낮다”며 “혼인 관계 파탄 사유 및 기간, 노 관장의 정신적 고통, 최 회장의 그간 태도 등을 고려해 액수를 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1심은 지난 2022년 12월 노 관장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면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 재산분할로 665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주식가치 1000원을 100원으로 판단
기자회견 3시간 뒤 판결문 급 수정


당시 1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은 최 전 선대회장에게 물려받은 것으로 최 회장의 특유재산에 해당한다며 재산분할 대상서 제외했다. 특유재산은 부부 일방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말하며 원칙적으로 재산분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

2심 판결 후 노 관장 측은 상고 여부에 대해 “판결문을 분석한 후 대처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반면, SK 그룹 측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약 3주가 지난 후 상황은 급변했다.

최 회장의 법률 대리인과 SK 그룹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 위원장은 지난 17일 최 회장과 노 관장 사이 이혼소송 항소심 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 시작에 앞서 입장을 밝힌 최 회장은 “무엇보다 먼저 개인적인 일로 국민들께 걱정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 사과드린다”며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면서도 상고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재산분할에 관해 객관적이고 명백한 오류가 발견됐다”며 “(재산 분할 관련)오류는 주식이 분할 대상이 되는지, 얼마나 돼야 하는지에 대한 전제에 속하는 아주 치명적이고 큰 오류라고 들었다”며 조 단위 재산분할 판단에 영향을 미친 주식가치 산정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1994~1998년 고 최종현 회장 별세까지와 이후부터 2009년 SK C&C 상장까지의 SK C&C 가치 증가분을 비교하면서 회사 성장에 대한 최종현 회장의 기여 부분을 12배로, 최 회장의 기여 부분을 355배로 판단했다.

하지만 최 회장 변호인단은 “실제로는 최종현 회장 시기 증가분이 125배이고, 최 회장 시기 증가분은 35배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3주 후
대망신

그러면서 “항소심 재판부는 잘못된 결과치에 근거해 최 회장이 승계상속한 부분을 과소평가하면서 최 회장을 사실상 창업을 한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단정했다”며 “이에 근거해 SK㈜ 지분을 분할대상 재산으로 결정하고 분할비율 산정 시에도 이를 고려했기에 앞선 치명적 오류를 정정한 후 결론을 다시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당 오류는 SK㈜의 모태인 대한텔레콤 주가 가치 산정 과정서 불거졌다. 대한텔레콤 주가 가치가 1000원인데 100원으로 잘못 계산한 것이다.

1998년 5월13일 기준 대한텔레콤 1주당 가액을 5만원으로 잡고, 여기서 2007년 3월 1대 20 비율의 액면분할과 2009년 4월 1대 2.5 비율의 액면분할을 감안해 각각 20과 2.5로 나눴다. 1만원을 각각 이렇게 나눈다면 1000원이 나와야 하는데 재판부는 이를 100원으로 잘못 산출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대한텔레콤 주가 가치 산정 오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이 최초 주식을 취득한 1994년, 최종현 선대회장 별세 무렵인 1998년, 이후 대한텔레콤이 SK C&C로 흡수합병돼 상장한 2009년 등 각각의 시점을 기준으로 가치 증가분을 비교하면서 최종현 선대회장과 최 회장의 기여도를 산출했다. 

잘못된 수치를 바탕으로 이혼 재산분할의 핵심인 최종현 선대회장과 최 회장의 기여도를 수치화한 것이다. 재판부는 틀린 숫자를 바탕으로 최종현 선대회장의 기여도는 1994년 주당 8원서 1998년 100원으로 12.5배 상승, 최 회장의 기여도는 1998년 100원서 2009년 3만5650원으로 355배 뛰었다고 봤다.

그러나 잘못된 가치인 100원이 아니라 정확한 가치인 1000원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최종현 선대회장의 기여도는 8원서 1000원으로 125배 상승하고, 최 회장의 기여도는 1000원서 3만5650원으로 35.5배 늘어난 것으로 뒤바뀐다.

노태우정부의 특혜를 받았다는 항소심 재판부 판단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반박에
재반박

최 회장은 “‘SK 성장이 불법적인 비자금을 통해 이뤄졌다’, SK 역사가 전부 부정당하고 ‘6공화국 후광으로 사업을 키웠다’는 판결 내용이 존재하고 있다”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이 위원장도 “비자금 300억원에 대해서는 그 어느 누구도 현존하는 사람은 보고 듣고 한 바가 전혀 없다”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전달한 쪽에서 입증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SK는 6공화국 특혜로 성장한 기업이 아니다. 6공화국 특혜설의 경우 해묵은 가짜 뉴스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기자회견을 마치며 “저뿐 아니라 SK 구성원 모두의 명예와 긍지가 실추되고 훼손됐다고 생각해 이를 바로잡고자 상고를 하려 한다”며 “부디 대법원의 정당한 판단이 있길 바란다. 바로잡아주길 바라는 간곡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3시간이 지나자 법원서도 주식가치 산정에 오류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재판부는 지난 17일 판결문 내용을 일부 수정해 최 회장과 노 관장 양쪽에 송달했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가사2부는 대한텔레콤의 1998년 가치를 주당 100원으로 계산한 판결문 오류를 바로잡는 ‘경정(更正·법원이 판결 이후 계산이나 표현의 오류를 고치는 일)’ 처리해 당시 주당을 1000원으로 바꿨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1조3000억원대 재산분할의 근거 중 하나인)대한텔레콤(SK C&C의 전신) 주식가격은 1998년 주당 1000원서 재산분할 기준 시점인 올해 4월 주당 16만원인 SK 주식으로 변모했다”면서 “최태원 SK 회장의 재임 기간인 26년 동안 160배 가치 상승이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재산 분할비율 등엔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법원의 이 같은 경정은 단순 계산 실수며 전체 판결의 취지는 변함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재산분할 비율 실질적인 영향 없어”
“주식 가치 산정과 기여도 모두 달라”

경정은 판결문에 수치 등 사소한 오류나 단순 오기 등이 있을 경우 이를 수정하는 절차다. 재판부가 직권으로 할 수 있고, 당사자 요청을 받아들여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산분할 액수 등 판결의 핵심적인 내용을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상급심이나 재심 등을 통해 다퉈야 한다. 항소심 재판부가 판결문의 일부 수치를 경정했지만, 재산분할 액수를 수정하지 않은 것은 해당 대목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봤기 때문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판결문 수정을 하면서도 전체 결론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최 회장 측은  “숫자만 고쳐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며 반발했다. 당초 재판부가 해당 주식이 최 선대회장 시절 12.5배 오르고, 이후 최 회장 재임 기간 중 355배 올랐기 때문에 최 회장은 ‘자수성가형 사업가’에 해당하고, 노 관장도 ‘자수성가’에 기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 회장 측은 이 같은 판결문 수정에 따라 최 선대회장과 최 회장의 주식가치 상승 기여가 각각 125배(8원→1000원)와 35.6배(1000원→3만5650원)로 수정돼야 하고, 결국 1조3000억원대라는 재산분할 판결도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재판부는 재차 설명문을 내고 “(대한텔레콤 주가에 대한 판결문 수정은)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혼인한 1988년부터 2024년 4월까지 최종현 선대 회장에서 최 회장에게로 계속 이어지는 중간 단계의 사실관계에 대한 계산 착오를 수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는 최종적인 재산분할 기준 시점인 올해 4월 기준 SK 주식가격인 16만원이나 최 회장, 노 과장의 구체적 재산분할 비율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며 “2009년 11월, 3만5650원은 중간 단계의 가치로 최종적인 비교 대상이나 기준 가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최 선대회장의 경영 활동에 따른 주식가치의 상승과 현 최 회장의 경영활동에 따른 주식가치의 상승을 비교하는 경우에도 125배(최 선대회장)와 160배(최 회장·1000원→16만원)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판결문 수정에도 노태우 전 대통령 등 노 관장 측이 SK그룹의 성장에 무형적 기여를 했다는 판단은 그대로 유지되며, 이를 토대로 한 재산분할 비율 65(최 회장):35(노 관장) 등의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고 밝혔다.

시선 쏠리는
대법원 결과

이에 대해 최 회장 측은 “항소심 재판부가 이런 논리를 견지하려면, 판결문을 2024년까지 비교 기간을 늘리도록 추가 경정을 할 것인지 궁금하며 이에 대한 해명 필요하다”고 재반박하며 “재판부는 실질적 혼인 관계는 2019년에 파탄 났다고 설시한 바 있는데, 올해까지 연장해서 기여도를 재산정한 이유도 궁금하다”고 밝혔다.

결국 최 회장과 주식가치 산정 오류로 인한 판결은 대법원서 이뤄지게 됐다. 최 회장은 지난 20일 항소심 판단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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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처럼’ 한덕수<br> 막가는 진짜 노림수

‘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월권 논란’ 등이 불거졌다. 이에 한 권한대행이 남은 임기 동안 취할 행보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해 논란이 일고 잇다. 또 한 권한대행이 특임공관장도 임명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며 논란에 더 불을 지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한 권한대행이 새로운 정부가 가질 임명권에 초를 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스로 지피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4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윤석열 파면에 따른 차기 대통령 선거일을 6월3일로 확정하고, 이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날 국무회의서 한 권한대행은 “정부는 선거관리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선거관리에 필요한 법정 사무의 원활한 수행과 각 정당의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오는 6월3일을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일로 지정하고자 하고 선거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언급하며 “지난 4개월간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걱정을 끼쳐 드리고, 대통령이 궐위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선거관리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관련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당부드린다”고 언급했다. 이날 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통해 이제껏 임명을 미뤄온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고, 마용주 대법관도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4월18일에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지명했다. 그는 담화문을 통해 “임기 종료 재판관에 대한 후임자 지명 결정은,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또 경찰청장 탄핵 심판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각각 검찰과 법원서 요직을 거치며 긴 경력을 쌓으셨고,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며 “두 분이야말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동시에 나라 전체를 위한 판결을 해주실 적임자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보류했었다. 당시 한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이라고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바 있다. 갑작스레 헌법재판관 지명 황교안도 하지 않은 일을? 그랬던 그가 100일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사례는 헌정사상 전무한 일이다. 앞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법원장 몫인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한 반면, 대통령 몫이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 후임자는 지명하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월권’이라며 거세게 반발 중이다.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 권한을 대행하는 직일 뿐이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행할 수 없는 권한인데, 한 권한대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헌만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완규 법제처장에 대해 “내란 직후 대통령 안가 회동에 참석한 사람이다. 내란의 아주 직접적인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 법체처장을)지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란의 불씨가 안 꺼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민주당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완규 법제처장은 가장 대표적인 친윤석열 검사다. 법제처장을 하며 완전히 윤 전 대통령 개인의 로펌 역할을 해왔다”며 “이것은 파면된 윤석열의 의중이 작용된 지명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 권한대행이 갑작스레 재판관을 임명한 이유로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헌재 구성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을 미리 앉혀두려 했을 가능성이 우선 거론된다. 6·3 대선 전 이·함 후보자가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차기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수 없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를 차지하고, 헌법재판관 2명까지 임명하면 헌재까지 진보 성향 재판관이 다수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알면서 선택 왜? 한 헌법학자는 이번 임명은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이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민주당과 이 전 대표의 위험을 처리할 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 권한대행이 그 전에 선수 친 것으로 보인다”며 “어차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권한대행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박수”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 권한대행이 혼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서 얻을 실익이 하나도 없다”며 “지금 관저서 아직도 나가지 않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김과 그 다음에 어떤 부탁이 있지 않고서는 굳이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남동 관저서 서울 서초동으로 이주를 완료했다). 이어 “아마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 미리 후임자들을 미리 검증했지만 파면이 돼 한 권한대행에게 지명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파면 전에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파면 이후 해당 결정 사안은 중지돼야 하는데 한 권한대행이 이어서 권한 행사를 한 것”이라며 “이는 진짜 사장이 있는데 사장이 잠깐 유고나 궐위 상태라서 권한대행 사장이 왔고, 그는 단순한 결제를 통해서 회사가 돌아가게 해야 되는데 갑자기 사장이 해결해야 할 보유 주식을 본인이 알아서 처분을 하고 심지어는 오버를 해서 사장 딸이나 아들의 어떤 사위나 뭐 이런 며느리 될 사람까지 본인이 다 결정을 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남은 두 가지 다음 수는?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외에 시도할 법한 일은 ▲특임공관장 임명 ▲미국 관세 허용 등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한 권한대행이 재외공관의 특임공관장도 임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17년 황 권한대행이 당시 특임공관장으로 분류됐던 국가정보원 출신의 변영태 전 주미국공사참사관을 주상하이총영사로 임명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임 공관장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직업 외교관이 아닌 인물에게 공관장 임무를 맡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통 대통령의 국정기조 이행을 명분으로 주로 정무직 인사가 임명된다.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주중국,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임명이 진행될 수 있냐는 질문에 “공관장 인사가 필요에 따라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해당 국가의 공관장 인사에 대해서는 “현재 공유드릴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로, 윤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대기 전 실장은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로 내정된 바 있다. 특임공관장이 정무적 판단이 반영되는 인사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과 무관하게 임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탄핵 결과에 따라서는 임명 강행이 상대국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작용해 이들은 임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이후 지난 4일 탄핵에 이르는 과정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월31일 재외공관장 임명을 실시한 바 있으나, 이 때도 두 명의 특임공관장을 제외한 11개국 대사가 대상이었다. 다만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권한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특임공관장을 비롯해 다른 인사 임명을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임공관장·관세 등 무기 남아 트럼프와 통화 때 대선 이야기도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며 무역 문제와 조선 산업 협력, 북핵 공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 무역수지 개선 의지를 강조하며 상호관세 문제 해결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대행은 이날 오후 9시(미국 오전 8시)가 넘어 약 28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이 같은 입장을 공유했다. 한 권한대행은 전화 통화에서 “미국 신정부 하에서도 우리 외교안보 근간인 한미 동맹관계가 더욱 확대·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면서 특히 조선, LNG 및 무역 균형 등 3대 분야서 미국 측과 한 차원 높은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삼아 상호관세를 부과한 만큼,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을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해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권한대행의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드러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국과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면서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문제는 이 같은 한 권한대행의 행보로 새로운 정부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과 상호 관세는 앞으로 90일 동안 미뤄졌기 때문에 조기 대선이 끝난 후 차기 정부가 다시 미국과 협상할 시기가 아직 남은 셈이다. 한 권한대행의 이런 행보에 ‘한 권한대행이 차기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외교 분야서 5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거친 정통 관료라는 점, 개헌 변수를 고려한 ‘관리형 대통령’으로 적격이라는 얘기가 보수 진영 일각서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대선주자 직접 뛰나 한 권한대행의 배경에 더해 보수 진영 잠재 대선후보군의 지지율이 이 전 대표에게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맞물려 출마론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 권한대행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8일 통화하면서 한 권한대행에게 대선에 나갈 것인지 묻자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 고민 중이다. 결정한 것은 없다”는 취지로 말하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 권한대행의 대선출마설에 더욱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