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경·언 유착 의혹 가평 게이트 대해부

불법 얼룩진 ‘권성문 캠프통 사업’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의정부지검 남양주지청이 가평군청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신설된 지 1년도 되지 않은 검찰청의 검사와 수사관 수십명이 자그마한 군청을 압수수색하는 일은 흔치 않다. 최소한 확실한 증거나 검사장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하다. 가평 지역에 밝은 인사들은 이번 검찰 수사가 캠프통 사건과 관련 있다고 입을 모은다. 캠프통의 실소유주인 권성문 전 KTB투자증권 회장의 불법행위가 사건의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불법적인 일을 해도 로비하면 그만이에요. 어느 지역이나 똑같습니다. 언론사와 정치인, 돈 많은 업자나 기업인은 서로 불법을 은폐해주는 공생관계입니다. 선거개입과 뇌물 사건은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문제죠.” 가평 지역에 밝은 한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가평 게이트의 시작이 캠프통 사건과 권성문 전 KTB투자증권 회장의 불법행위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권 전 회장은 여전히 ‘가평 실세’라고 불리고 있다.

빠지 스캔들

의정부지검 남양주지청은 지난 3월 신설됐다. 2개 형사부와 사무과·집행과·수사과 등으로 구성된다. 검사 23명, 일반직 87명 등 정원 110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처럼 작은 검찰청 소속 검사와 수사관 수십명은 지난 13일 가평군청을 10시간 가까이 압수수색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2층에 조사실을 꾸리고 직원들을 부르는 형식으로 조사를 진행한 검찰은 캠프통 사건에 대해 들여다본 것으로 알려졌다. 캠프통은 가평군의 허가를 받지 않고 사업을 벌여 하천법, 국토계획법, 개발행위법, 도로법 등 10개가 넘는 법을 수차례 위반한 혐의를 받는다.

캠프통 실소유주인 권 전 회장에 대한 압수수색은 진행되지 않았으나 출국금지 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자신의 부하에게 인허가와 관련해 가평군청 공무원들을 협박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가평군청은 캠프통에 2019년 10월13일 수상레저사업등록증을 교부했다. 그러나 캠프통은 같은 해 6월28일 자로 등록증을 갖고 있었다. 해당 등록증은 타 수상레저업체의 번호였다. 약 4개월의 여름 성수기 동안 불법영업을 강행하면서 보험사, 온라인 티켓사 등에 위조한 등록증을 제시한 것이다.

캠프통이 수상레저사업등록증을 위조한 것은 공문서 위조에 해당한다. 형법 제225조(공문서 등의 위조, 변조)에 따르면 공문서 또는 도화를 위조하거나 변조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당시 17만여명의 여행객이 캠프통에 다녀갔다. 매출액 규모는 약 100억원. 아일랜드와 프레스트를 합친 금액이다. 가평군이 징수한 과징금 규모는 4000여만원에 불과하다. 1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데 4000여만원 벌금은 한마디로 껌값이다.

가평군청은 이외에도 2020년 5월 현장조사를 통해 캠프통이 유선장(수상시설)을 허가 없이 불법으로 증축 공사한 사실을 적발했다. 조사를 마친 가평군청은 캠프통을 하천법, 건축법, 도로법, 산지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기북부경찰청에 고발했다.

남양주지청 검사·수사관 군청 10시간 압수수색
권, 바지사장으로 법망 피해…지역 정치권 개입?

가평군청 관계자는 “도면 분석 결과 캠프통이 건축허가를 받지 않고 천막과 컨테이너를 불법 설치했던 것으로 안다”며 “아일랜드는 도로 접도구역 내에 바위산을 불법으로 계단을 만들어 전망대로 활용했고 접도 내 침범 건축물을 불법으로 건축해 편의점으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권 전 회장은 이 같은 불법행위를 자행했음에도 바지사장을 내세워 법망을 빠져나갔다. 실제 권 전 회장의 바지사장으로 알려진 A씨는 이 사건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KTB투자증권 경영권 분쟁에서 이병철 회장에게 패배한 데 이어 사업에도 제동이 걸린 권 전 회장은 공무원 살해 지시 논란으로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녹취록에는 권 전 회장이 캠프통 직원들에게 “(담당 공무원) 죽이고 같이 몽둥이 들고 가서 경찰한테 가서 기물 파손이나 이런 걸로 해도 되잖아. 하여튼 간에 박살내든지 해야지 그건. 입원시키면 다른 사람이 (영업허가)결재할 거 아니야. 그 사람 출근 못 하면…”이라며 “화염병이라도 들고 가서라도 같이 죽자라고 하든가. 아니 진짜로 화염병 일부 가지고 가서 집 일부 태우면 되잖아. 나중에 뭐 경찰이 나오면 간단한 그 처벌 받으면 되는 거고”라고 했다.

또 “옛날 (당신이)어떤 식으로 해결했는지 모르겠지만 상대가 진짜 공포심을 느끼게 해야 해. 적어도 불안감이 있어야지”라고도 강조했다.

실제 일부 캠프통 직원은 가평군청 공무원을 찾아가 영업허가를 내달라며 욕설을 하기도 했다. 권 전 회장은 해당 행위를 한 직원에게 “좋아. 괜찮고. 오늘로서 (담당 공무원은)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30분 정도 들었을 것 같고, 근데 이 정도론 약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경기도지사 시절 캠프통에 대한 철거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캠프통은 여전히 살아있다. 행정대집행법에 따르면 경기도청이 지시한 업체 철거는 시·군 지자체가 이행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가평군청은 도청과 다르게 업체 철거에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이 때문에 가평군청과 권 전 회장 간 뇌물이 오간 것이 아니냐는 정경유착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녹취록 “군수 등 움직이게끔 지시해라”
금품 오간 정황 확인…선거개입·뇌물도 수사

<일요시사> 입수한 녹취록을 들어보면 해당 의혹에 무게가 실린다. 권 전 회장은 캠프통 한 직원에게 “(담당 공무원)돈 주면 받을 눈치지? 그렇지?” “둘 중 하나야. 우리 밑으로 들여오든지, 확실하게 월요일에 같이 죽든지”라고 했다.

권 전 회장의 지시를 받은 한 직원은 가평군청 공무원에게 “내가 김성기 군수가 무슨 잘못을 했고…. 여태 군청에서 했던 업무들 내가 다 자료 드렸죠? 그거 갖고 변호사 데리고 들어올까요?” “과장님 공무원 생활 30년 동안 깨끗했다 했죠? 왜 깨끗이 했다고 거짓말하셨어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세요. 정말 깨끗한지. 내가 힌트 드렸죠. (내가)여기 18년 있었다고 18년” “과장님, 혼자 안 죽습니다. 월요일에 변경 허가 내주세요. 월요일에 (허가 안 나면)나 죽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 전 회장이 ‘가평 실세’로 보일만한 녹취도 존재한다. 권 전 회장은 캠프통 직원에게 “정××는 확실하게 이야기를 해서 조치를 해, 정××가 군수 움직여 가지고”라며 “군수가 부군수한테 전화해 가지고 그거 문제없는 건이니까 바로 결재해주라고 그렇게 지시를 하게끔 해. 지금 그거 정××가 그거 안 하면은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그래, 차용증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검찰도 해당 녹취록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캠프통 사건과 관련해 지역 언론사 기자가 뇌물을 주고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가평군청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그 이유다. 특히 검찰수사 대상 30여명 중 피의자 신분인 공무원이 4명이라는 점도 권 전 회장과 가평군청 간의 유착 의혹을 짙게 한다. 특히 남양주지청에는 가평군청 전·현직 군수들에 대한 고발장이 접수된 상태다.

정치권 로비?


가평의 한 인사는 “당시 권 전 회장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경찰이 봐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다”며 “검찰의 타깃은 권 전 회장뿐만 아니라 전·현직 군수, 가평군청 공무원, 수사 담당 경찰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직권남용·직무유기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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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