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용서받지 못할’ 12·12 쿠데타 철면피 후손들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12.12 16:56:34
  • 호수 15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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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딸 노소영 봐라 다들 떵떵거리고 산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발동한 비상계엄령 사태가 ‘서울의 밤’이라는 수식어로 빗대어졌다. 1979년 12월12일 일어난 군사 반란을 주제로 한 영화 제목인 <서울의 봄>을 인용한 것이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는 배우 황정민의 대사처럼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과 노태우는 후손들과 함께 눈감기 직전까지 호사를 누리다 생을 마감했다.

‘12·12 사태’의 진압군으로 저항한 장태완 소장은 본인뿐 아닌 가족들도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장 소장의 아버지는 아들의 고초를 비관하며 이듬해인 1980년 4월 별세했고, 1982년 서울대학교 자연대학에 입학한 장 소장의 아들은 그해 실종돼 칠곡군 야산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권력의 
잔혹함

장 소장은 생전에 “12·12 군사반란을 막지 못한 국민의 죄인이자 가족 3대를 망친 가문의 죄인”이라고 진상규명을 위해 평생을 싸우다 지난 2011년 숙환으로 사망했다. 장 소장의 부인도 다음 해 자신의 아파트서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 12·12 당시 총격전으로 사망한 김오랑 소령의 부인 백영옥씨는 충격으로 시신경 마비 증세가 심해지면서 결국 앞을 못 보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백씨는 1990년 12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전두환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준비했으나 이듬해 6월, 자신의 봉사단체 건물서 추락해 세상을 떠났다. 연고자가 없어 지난 2009년에서야 무연고자 묘역터에 유골이 뿌려졌다고 전해진다.

197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 특전사의 대부격 인물이었던 정병주 소장은 반란 당일 총상을 입은 채 연행돼 강제 예편됐다. 이후 1988년 집을 나가 139일이 지난 1989년 3월 경기도 양주 송추유원지 부근 야산서 목을 맨 채로 발견됐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12·12 군사 반란에 그치지 않고, 이듬해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광주 학살의 1차 책임은 계엄군이 아닌 최종 결정권자이자 명령권자인 전두환과 신군부에게 있다. 계엄군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시민 학살을 지시한 장본인이다.

당시 지휘계통상 책임자는 이희성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 겸직), 진종채 제2군사령관, 전라남북도 계엄분소장, 그리고 예하 부대 지휘관들로 구성됐다. 지난 2018년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미 국무부 비밀 전문에 따르면, 최종 진압 작전을 결심한 책임자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다.

결정적으로 전두환은 1980년 9월 광주를 방문해 ‘지난번 광주의 시끄러운 일은 역사 흐름의 불가피한 진통이므로 (전남)도민들이 새역사 창조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면 나도 용기를 갖고 국민들께 충성을 다할 것’이라고 말해 5·18 사태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밖에 1980년 9월17일, 전두환은 미국 언론인 로버트 노바크씨와의 인터뷰서 “만약 지난 5월에 발생한 광주의 폭동 사태가 또 다른 2개 도시로 확산됐다면, 북한의 지배자인 김일성은 10만의 병력을 침투시켰을 것”이라며 “사회적 불안 무질서 폭동 사태가 바로 그런 이유로 용납 안 되는 이유”라고 근거 없는 추측성 망언으로 큰 논란을 빚었다.

거꾸로 돌아간 민주주의···45년 전 재조명
전·노 합작 후 잘 먹고 잘 사는 후손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할 당시와 비슷한 맥락이다.

윤 대통령과 전두환 모두 ‘공포 정치’의 정당성과 원인을 종북 세력에 부여한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 피해 유공자와 유족은 800여명으로 추산된다. 최근에는 정부가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지난 1일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달 28일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와 유족 854명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서 국가가 430여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피해자가 연행 또는 구금되거나 수형 생활을 했을 경우 1일당 30만원을, 상해를 입었지만 장해가 남지 않았다면 5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상해를 입고 장해까지 남았을 경우 3000만원을 인정하고, 노동능력 상실률이 5% 증가할 때마다 1500만원이 추가된다.

이번 소송은 지난 2021년 11월 유공자들과 유족이 ‘정식적 피해를 배상하라’는 취지로 제기했다. 5·18 보상법은 국가로부터 피해 보상을 받은 민주화운동 유공자나 유족은 정신적 피해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정해놨지만, 2021년 헌법재판소가 해당 조항을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수차례 소송이 제기됐다.

정부는 재판서 다른 사례에 비해 위자료가 지나치게 많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2심 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정부가 재차 불복했지만, 대법원은 상고 이유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에 관한 사유’ 등이 포함돼있지 않다는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는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다만, 위자료 지급 기준과 구체적 액수는 1~2심의 판단 영역이기 때문에 다른 소송서 재판부에 따라 배상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 전두환, 노태우 본인은 물론 후손들은 피해자들과 대비되는 삶을 살았다. 남은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음에도 대규모 사업을 펼치거나 언론을 통해 떳떳하다는 듯 인터뷰하기도 했다.

또 두 사람은 나란히 대통령을 이어가며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고 특권을 누렸다. 이들은 각각 1997년, 1996년 징역형과 추징금 2205억원, 추징금 약 2629억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반성은 부족했다.

왜곡된
민주화

특별사면 이후 전두환은 지난 2003년 인터뷰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 “계엄군이 진압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라고 발언하는 등 논란에 불을 지폈다.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씨는 지난 2019년 남편을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씨는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누구예요. 저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민주주의라는 게 뭐예요. 국민들이 원치 않으면 (대통령을)바꿀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며 “전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단임제를 시행하지 않았나. 이 때문에 지금 대통령은 5년만 되면 더 있으려고 생각을 못한다. 그래서 남편이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의 폭로가 광주 시민의 애환을 일부 달래기도 했다. 전씨는 지난해 3월 광주를 방문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과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전씨는 “‘5·18은 폭동이었고, 우리 가족이 피해자’라고 교육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어 “그러다가 이 비극을 겪으신 분들의 진실된 이야기·증언을 듣고 깨달았다”며 “제 가족의 죄가 너무나 컸고, 가족들이 그 사실을 저에게 숨겼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이기적이고 나약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진실을 외면하고 도망치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사죄를 하고, 제대로 된 회개를 하고 싶다”고 사죄를 구했다.

그는 앞서 마약 복용 때문에 발언의 신빙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는 질문엔 “이해한다.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나는 마약을 하지 않은 전 국민이 아는 사실을 말했고, 용기가 부족해 마약의 힘을 빌려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씨는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가 자신의 마약 투약 혐의를 내사 중인 데 대해 “조사를 받을 것”이라며 “사죄를 할 수 있는 기회조차 혜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귀국하자마자 광주에 가겠다는 자신의 계획이 경찰 조사로 무산될 가능성에 대해선 “정말 광주에 가고 싶지만 못하게 된다면 그것도 제 운명이기 때문에 따르겠다”고 언급했다.

전씨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자신의 SNS를 통해 자신의 집안에 대한 폭로성 주장을 해왔다. 그는 지난해 3월17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 도중 각종 마약을 언급하며 투약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군사정권이 
민주 투사?

전두환정권의 바통을 이어받은 노태우는 1995년 경북고 동창회서 “(중국)문화혁명 때 수천만명이 희생당하고 엄청난 걸로 말하자면 광주 사태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망언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노태우의 장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지난 2016년 총선 당시 김문수(대구 수성갑) 후보 지지를 호소하며 지원 유세 등을 통해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민주화”라고 발언한 바 있다.

노 관장은 제5공화국 집권세력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불가피하게 발표한 ‘6·29 민주화선언’을 두고 부친의 결단과 시혜의 결과인 것처럼 표현해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노 관장이 깜짝 유세에 나선 때가 하필 남동생 노재헌의 조세 회피 의혹이 제기된 시점이라 의도가 다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 노 관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혼소송 중이다. 지난 5월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8억원을 재산분할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항소심서 노 관장은 ‘아버지의 비자금 300억’이 SK의 종잣돈이 됐다고 주장해 판결을 이끈 것으로 알려졌다.


항소심 판결은 ‘12·12를 성공한 쿠데타’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판결대로라면 사실상 군사반란을 통해 집권한 노태우가 불법으로 취득한 돈을 상속·증여세 한 푼 없이 노 관장에게 46배 증식해 ‘비자금 대물림’한 셈이다.

추징금을 내느라 돈이 없다던 노태우 일가는 노재헌의 재단에 152억원을 기부하거나 210억원에 달하는 보험에 가입한 사실이 탄로나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은닉하고 있었다는 의혹도 받았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를 두고 지난 10월 본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정치인의 불법 자금이 30년 후 1조원으로 불어났다고 해서 그 돈이 국가에 환수되지 않고 후손에 귀속되는 게 정의에 맞는가?”라며 “마치 이완용 후손 재산 환수 소송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무고한 희생으로 세운 ‘아버지의 민주화’
“성공한 쿠데타였나?” 6공 비자금 요구

노 관장은 현재 연간 임대료가 연 8억원에 달하는 초호화 빌라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조성된 노태우 묘지는 1810㎡(약 550평)으로, 전직 대통령 5명의 묘역을 다 합친 것보다 크다. 피라미드 형태의 묘역을 조성하기 위해 수십억원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쿠데타 전범의 왕릉을 지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한편, 12·12 당시 전두환의 비서실장이었던 허화평 전 의원은 제5공화국 때부터 이어진 ‘미래한국재단’을 사유화하면서 수천억원의 재산을 은닉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미래한국재단의 전신인 현대사회연구소는 지난 1981년 국무총리 소속 기관이던 사회정화위원회 산하 정부 출연기관으로 설립됐다.

지난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허화평 이사장을 연구소장에 임명하고, 93억원의 일해재단(전두환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 전두환의 호를 따서 만든 조직으로 현 세종연구소) 자금과 3억원의 정부 자금을 연구소에 지원했다. 허 전 의원은 지난 2005년 연구소를 ‘재단법인 미래한국재단’으로 개명하면서 사유화 의혹이 제기됐다.

전두환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호용 전 의원은 12·12 이후 하나회의 입김으로 육군특수전사령관에 임명됐다. 1984년 육군참모총장 시절, 경기도 양주의 30만㎡에 달하는 군사시설 보호구역 땅을 매입했다. 이후 땅은 군사시설 보호구역서 해제돼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고 알려진다. 

노태우정부서 정무 장관을 지낸 박철언은 과거 “부인 현경자씨가 660억원대 차명계좌를 소유하고 있다”며 개인비서에게 고발당하기도 했다. 박 전 장관은 1972년 검사로 임관 후 이른바 ‘체육관 대통령선거’로 유명한 5공화국 헌법의 기초 작업에 참여했다.

노태우의 부인 김옥숙 여사의 고종사촌 동생(김 여사 고모의 차남)으로 ‘6공 황태자’로 유명하다. 그러다 1993년 홍준표 당시 검사가 주도한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이 터지면서, 도박사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박 전 장관은 이 사건으로 법정 구속되면서 정치권서 물러났다.

박 전 장관의 딸 박지영은 노 관장의 이혼소송 법률대리인인 이상원 변호사의 아내다. 박지영은 노 관장이 1999년 설립한 사단법인 미래회의 현 대표다. 미래회가 사실상 노태우의 하나회처럼 ‘노 관장의 사조직’이란 말이 도는 이유다. 박 대표는 노 관장과 미래회 초기부터 활동해 왔고, 지난해부터 노 관장에 이어 미래회를 이끌고 있다.

재단 사유화
수천억 은닉?

이 변호사는 SK 최 회장의 허위 사실을 퍼뜨린 댓글부대를 조직한 미래회 전 회장 김흥남을 변호하기도 했다. 노 관장과 절친한 관계로 알려진 김 회장은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회원을 모집하는 방식으로 수년간 악의적 여론을 형성한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유죄를 확정받아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과 1억원이 넘는 배상금을 선고받았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4·3 사건, 폭동으로 간주한 윤석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사전 모의한 정황이 나타난 문건서 ‘제주 4·3 사건’을 법적 근거도 없이 ‘폭동’이라고 명시해 제주 지역사회서 반발이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국방위원회·하남시갑)에 따르면 12·3 계엄사령부의 ‘계엄사-합수본부 운영 참고 자료’에는 비상계엄 선포 사례로 ‘제주 폭동’과 ‘여수·순천 반란(여수·순천)’, ‘부산 소요 사태’, ‘10·26 사태(전국)’ 등을 들었다.

추 의원은 이 문건이 지난 11월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의 지시로 방첩사 비서실서 작성돼 정부와 군이 계엄 선포를 사전에 모의한 정황이라고 폭로했다.

이 문건서 지칭한 제주폭동은 제주 4·3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제주에만 내려졌던 비상계엄은 제주 4·3 사건 당시인 1948년 발효된 국내 최초의 계엄뿐이기 때문이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전두환 신군부 시절 작성한 문건인가? 이 문서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군부가 제주 4·3을 비롯해 한국 현대사를 얼마나 왜곡 편향되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제주 4·3 사건 당시 가족을 잃은 한 유족은 “계엄령을 죽음과 체념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는데 이번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생존 피해자와 유족들이 당시 상처가 떠올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4·3특별법에는 제주 4·3 사건을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진압 과정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했다.

이 문건의 예시인 1948년 제주 계엄령은 계엄령 자체의 불법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정부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는 1948년 11월7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제주에 내려진 비상 계엄령은 ‘계엄법 제정 전 이뤄진 계엄령’으로 불법성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더불어 학계와 정치권서도 당시 계엄령이 불법이라는 연구와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사법기관 역시 계엄령에 의한 군사재판을 불법으로 보고 당시 수형인들에 대한 재심서 잇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또 2001년 대법원은 불법성 논란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불법성을 제기한 언론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았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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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