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빼는’ 노소영 미술관 부실경영 해부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7.30 09:54:53
  • 호수 14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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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억 혈세로 돌린 아트센터 나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혼소송 중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때아닌 부실 경영 논란에 휩싸였다. 최근 법원이 아트센터 나비에게 서린동 SK사옥 4층에서 퇴거하고, 1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리면서다. 이후 아트센터 나비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창립 이래 노소영 관장이 상근이사직을 맡으며 운영해 온 아트센터 나비는 최근 5년간 혈세로 운영되면서 실제 예술을 위한 전시 사업은 소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트센터 나비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약 34억원, 연평균 7억원에 달하는 정부보조금을 받아왔다. 아트센터 나비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고 있다. 미술관을 육성하고, 예술 발전에 기여한다는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버티다
나갔다

지난 15일 법원은 노소영 관장 측에게 ‘아트센터 나비’가 SK 본사 건물에서 퇴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노 관장 측은 이날 판결에 대해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노 관장 측 대리인인 이상원 변호사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아트센터 나비 미술관은 SK이노베이션이 제기해 온 미술관 인도 소송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하지 않기로 했다”며 “아트센터 나비 미술관은 민사법상으로는 SK 측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향후 아트센터 나비 미술관은 현재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예술의 감성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계속해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6단독 이재은 부장판사는 지난달 21일 SK이노베이션이 아트센터 나비를 상대로 낸 부동산 인도 등 청구 소송서 “피고(아트센터 나비)는 부동산을 인도(퇴거)하고 손해배상금 10억4560만2810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또 부동산 인도가 완료될 때까지 매달 2400여만원의 관리유지비 등을 내야 한다고 했다.

아트센터 나비는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4층에 자리한 미디어아트 전문 미술관이다. 노 관장이 이끄는 아트센터 나비는 2000년 12월 이곳에 개관했다. SK서린빌딩은 SK그룹의 실질적 본사 역할을 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빌딩 임대차계약이 2019년 9월 종료됐고 리모델링 등을 한다며 지난해 4월, 아트센터 나비 미술관을 상대로 사실상 공간을 비워달라는 부동산 인도 소송을 냈다. 당시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1심 결과(2022년 12월)가 나온 직후였다.

이에 나비 측은 “이혼소송 1심 판결이 나오자, SK 측이 돌연 소송을 제기했다”며 “이혼이라는 사적 감정으로 소를 제기한 것은 계약위반이자 회사 이익에 반하는 배임 행위”라고 주장했다.

퇴거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2심 결과가 나왔고, 2심 재판부는 SK이노베이션이 퇴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노 관장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노 관장 측은 “그 부분(이혼 판결)과 관련해서 저희는 원고 측이 그 취지를 검토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기대한다”고도 했지만, 소송은 계속됐고 법원은 “이 소송은 계약에 따른 해지 통보와 부동산 인도 청구이기 때문에, 이를 계약위반이나 배임으로 볼 증거가 없고, 이혼소송의 결과를 기다려야 할 특수성도 없다”며 퇴거 소송서 SK 측의 손을 들어줬다.

퇴거 통보 후 실체 들여다보니···
5년간 전시 일자 230일에 불과


이 변호사는 이를 지적하며 입장문에 “SK서린빌딩에서 나가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판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 회장 등이 소 취하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혼소송과 관련해선 최 회장 측이 상고하면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재판은 결국 대법원서 최종 결론이 나게 됐다.

아트센터 나비의 서린사옥 4층 전시관 내 전시 일자는 약 230일에 불과했다. 일주일에 하루도 채 안 되는 꼴이다. 아무리 코로나19의 영향을 고려하더라도 실제 예술 진흥에 관심이 있었는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2020년에는 보조금을 7억8000만원 상당 수령하고, 15일간만 전시관을 열었다. 2022년에는 5억5000만원을 받았음에도 2주간만 전시를 진행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도 전시 일수는 53일에 불과했다.

정부보조금을 전액 전시에만 쓴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아트센터 나비가 SK이노베이션과 소송서 ‘퇴거하면 운영이 어렵다’는 취지로 여러 번 말했듯이 전시가 미술관의 사업 핵심으로 볼 수 있다. 전시 하루당 국가세금이 1500여만원이 소요된 셈이다.

전시 내용을 봐도 ‘2022년 나비 보드게임 데모데이’(8월31일), ‘나비 보드게임 플레이데이’(10월26일), 2023년 ‘창의적인 게임 창작을 위한 행위성과 유머 창작 커뮤니티’(10월7일) 등 목적을 뚜렷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전시가 많았다.

거액의 정부보조금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간 아트센터 나비의 누적적자는 48억원에 달한다. 2019년 200억원에 달했던 자산은 2023년 말 145억원으로 큰 폭으로 줄었다. 최근 미술관의 수익은 정부보조금 외에 거의 없다. 기부금을 모금하거나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한 수익사업은 전무했다.

그럼에도 관리비용은 한 해 십수억원이 발생해 적자 폭을 키웠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도 크게 줄지 않았다. 2022년에는 금융평가손실 및 외환차손익으로 약 8억원, 2023년에는 6억원을 손해봤다. 인력을 줄이거나 투자만 잘했어도 정부보조금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펑펑 쓴
보조금

국민 혈세 논란, 비서의 26억원 횡령 사건, 적자 심화에도 이사진은 수년째 바뀌지 않았다는 점도 논란이다. 아트센터 나비 공익법인 결산보고에 따르면, 현재 나비의 이사는 총 6명이다. 이 중 노소영 관장을 비롯한 3명은 최소 5년 이상 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2021년 선임된 3명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외부 문제에도 이사진이 경영활동 및 감시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사실상 노 관장의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비서 A씨는 노 관장을 사칭해 ‘상여금’ 5억원을 미술관 공금서 쉽게 이체받아 횡령한 바 있다. 상여금, 보수 등은 이사회를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중요 의사결정인데, 이 같은 과정조차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노 관장은 “비서가 지난 5년간 개인계좌와 공금서 약 26억원을 빼돌렸다”고 나비에 근무하는 직원 A씨를 고소했고, A씨는 지난 5월 구속 기소됐다. 당시 직원의 범행 방식에 관심이 집중됐으나 거액의 현금을 확인 없이 이체하며 수개월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나비의 내부 시스템과 불성실 경영 문제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심지어 ‘노 관장이 공익법인인 아트센터 나비를 사유화했다’는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특히 노 관장을 사칭한 휴대폰 문자메시지만으로 미술관 재무담당자 B씨가 현금 5억원을 개인통장에 입금한 사실에 대해 업계는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경찰 등에 따르면 당시 A씨는 B씨에게 “관장님의 세컨드 폰이라며 번호를 입력해두라”며,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다. 며칠 뒤 A씨는 B씨에게 해당 번호로 노 관장을 사칭해 “빈털터리가 돼서 소송자금이 부족하니 상여금으로 5억원을 송금하라”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B씨는 A씨가 관리하는 통장으로 요청액 전액을 송금했다.

계좌도
털렸다

의혹이 불거진 이유는 비상식적인 B씨의 행동에 있었다. 그는 “관장의 말투를 따라 해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고 진술했으나 별다른 확인 절차 없이 공금 5억원을 개인계좌로 입금했다는 점은 ‘평소에도 유사한 지시가 있었다’는 합리적 의심을 산다는 지적이다.

공익법인은 국가보조금, 기부금 등을 통해 운영되는 만큼 자금의 쓰임에 대해 직원의 ‘교통비’까지 공시자료에 기입할 정도로 꼼꼼하게 관리한다. 하물며 공금 5억원을 개인계좌로 입금하라는 ‘횡령’ 지시를 받았다면 거부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B씨는 7개월간 노 관장에게 사실을 확인하기보다는 상여금을 통해 발생하는 세금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상의하려는 정황을 보였다.


만약 B씨가 송금한 5억원이 노 관장의 개인계좌가 아니라 ‘차명계좌’로 들어갔다면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는 B씨가 평소에도 노 관장의 지시에 따라 공금을 차명계좌를 입금해 비자금을 형성했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무담당자 B씨가 A씨를 노소영 관장이라고 믿고 보너스 5억원을 일시 지급한 사실도 상식에서 너무 벗어났다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비서 A씨는 관계자를 속이기 위해 인건비인 ‘상여금’을 명목 삼아 B씨에게 5억원을 송금을 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도 B씨는 절차를 무시한 행동을 보였다. 공익법인은 공익법 제5조에 따라 상근임직원에게 승인된 보수만 지급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업계획에 연간 인건비 지급 기준을 포함한다.

이 역시 법인세법에 따라 이사회 결의 등 근거가 필요하다.

하지만 B씨가 5억원을 ‘상여금’ 명목으로 지급한 5월은 통상 공익법인이 사업계획을 신고하는 1월과 시차가 크다. 특히, 아트센터 나비의 ‘2022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그해 16명의 직원에게 지출한 고정성 인건비는 7억7000만원 수준이었다. 이 중 상여금 5억원은 65%에 달했다. B씨의 행동에서 평소 아트센터 나비의 운영 실태가 보인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공익법인인 아트센터 나비가 어떻게 거액의 현금을 마련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재무제표에 따르면, 이 미술관은 90억원에 가까운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금 마련 자체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20년간 축적한 보조금, 기부금 등을 쓰지 않고 쌓아 놓은 탓이다.

연간 적자 23억···26억 빼돌린 비서
관리 부실 및 사유화 “감시 없었다”

다만, 공익법인의 존재 이유인 ‘공익목적사업’에 지출은 한 해 5억원 정도(예술 진흥, 교육 등)에 불과한데, 현금을 100억원 가까이 비축해둔 이유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불과 몇 해 전에는 아트센터 나비가 보유한 현금만 2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혀지기도 했다.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부실 운영에 대한 정황이 돋보인다. 나비는 2022년 약 23억원, 지난해 약 17억원 등 최근 2년간 약 40억원의 막대한 손실을 냈다. 한 해 소액의 목적 사업만 진행하는 이 미술관이 거액의 적자를 낸 이유에 대해 업계에서는 ‘투기성 투자’에 집착한 것 아니냐는 구설수가 나오기도 했다.

적자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예술사업과 무관한 ‘투자’ 부분에서 발생한 막대한 부실이다. 아트센터 나비는 2022년 ‘금융상품 손실’과 환율 변동에 따른 ‘외환차손’으로 약 10억원 상당의 ‘사업비용’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굴리는 자금도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아트센터 나비가 평가액 등락이 큰 고위험 투기상품에 투자한 것 아니냐는 논란도 제기됐다. 공시 내용상 미술관이 보유한 주식이 없고, 일반적인 현금성 자산 상품(예·적금, 채권)으로는 큰 폭의 손실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외환 변동에 따른 손해도 수억원에 달해 금융당국의 시선을 피해 해외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는 의혹까지 나왔다.

A씨의 횡령사건에 대해 노소영 관장이 ‘피해자’라고 단순히 볼 수 없는 이유는 아트센터 나비가 매년 5~10억원가량의 국민 세금을 받고 있다는 점에 있다. 재무제표상 아트센터 나비의 수익 95%가 ‘정부 보조금’이다. 2022년 총 수익이 5.8억원이었는데, 이 중 보조금이 5.5억원이었고, 기타 매출은 3000만원에 불과했다.

더욱이 정부 보조금 집행내역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아 어디에 지출되고 있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더 큰 문제다. 아트센터 나비는 정부 보조금을 ‘기타 인력비용’으로 약 3억원, ‘기타(잡비 성격)’로 8000만원을 썼다고 신고했다.

구체적인 항목 확인이 어려운 ‘운영 잡비’로 2021부터 22년까지 2년 동안 5.4억원을 지출했다. 직전 2년에는 2100만원 지출에 불과했던 항목이다. ‘꼬리’를 알 수 없는 비용이 25배나 증가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아트센터 나비가 ‘공익법인 사유화’라는 논란을 비켜가기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한다. 비서 A씨는 ‘관장’의 일정관리 등 보조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A씨가 노 관장의 인감도장과 신분증 등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일반인 노소영씨’의 개인 업무도 처리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그래도
당당하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개인간 사기가 아닌 일부 공익법인의 관리 부실과 사유화라는 사회적 측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특히 한 개인이 수십년간 외부의 감시와 견제 없이 공익법인을 장악했을 때 부작용을 파악해 제도 개선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아트센터 나비는 이번 횡령 금액을 회계에 반영해 결산보고, 감사보고서 등에 반영해야 한다. 지난 4월 마지막 주에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분을 공개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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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