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칵’ 세상을 바꾼 폭로들

‘아닌 건 아니다’ 목숨 걸고 말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내부자의 목소리는 세상 밖으로 나오기 어렵지만, 일단 울려 퍼지면 그 파급력은 엄청나다. 실제 내부자의 폭로로 사회 변화가 시작된 사례들도 적지 않다. <일요시사>가 세상을 바꾼 내부고발, 공익제보 사례를 조명해봤다.
 

▲ 서지현 검사 ⓒJTBC

미투, 빚투, 공투. 미투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는 운동, 빚투는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한 채권자들의 외침, 공투는 공무원들의 내부제보를 말한다. 지난해를 뜨겁게 달궜던 미투 운동은 최근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다시 한 번 달궈지는 모양새다. 심 선수의 피해 사실이 공개된 이후 체육계서도 미투 광풍이 불고 있다.

내부 목소리
전방위에서

빚투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던 한 연예인의 과거사가 드러나면서 불거졌다. 해당 연예인의 부모가 20여년 전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린 후 외국으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이후 여러 연예인의 채무 상황이 드러나면서 후폭풍이 불었다. 공투는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등 공무원의 내부 폭로가 잇따라 이어지면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내부 고발, 공익제보의 파급력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열리면서 그동안 감추고 있던 내부 문제를 고발하는 사람이 늘었다.

온 나라를 뒤집었던 국정 농단 사태 역시 내부자의 폭로로 시작됐다. 한 사람의 주장으로 시작된 미투 운동은 각계각층 인사들의 민낯을 들춰냈다. 그 결과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고, 숨죽이고 있던 성폭력 피해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박은정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 위원장은 지난해 125사회의 부조리를 신고해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한 분들의 중요성을 알리고 공식적으로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129일을 공익신고의 날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UN2003129일 멕시코 메리다서 반부패협약 조인식을 열고, 이를 기념하는 뜻에서 129일을 세계 반부패의 날로 지정한 바 있다.
 

▲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권익위는 매년 129일을 전후해 반부패주간을 지정, 청렴을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해왔는데 이날을 공익신고의 날로 선포한 것이다. 그러면서 공익제보자 후원 시민단체인 호루라기 재단과 공동으로 시민이 선정한 한국사회를 변화시킨 10대 공익제보를 발표했다. 여론수렴 소통 창구인 국민생각함을 통해 투표를 진행한 결과다.

전두환 정부 보도지침 폭로= 청암언론문화재단은 송건호언론상 심사위원회가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 겸 전 한국일보 기자를 2018년 올해의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김 전 협회장은 1986년 보도지침 폭로의 주역이다. 보도지침은 제5공화국 시절 정부가 언론통제를 위해 각 언론사에 시달한 지침을 뜻한다. 이를 통해 정부는 언론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당시 정부는 가, 불가, 절대불가 등의 구분을 통해 각종 사건이나 상황, 사태 등의 보도 여부와 보도 방향, 내용, 형식까지 구체적인 보도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은 1986년 해직 언론인들이 만든 단체 민주언론운동협의회(언협)가 잡지 <>을 통해 폭로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자료를 제공한 인물이 바로 김 전 협회장이다. 그는 198510월부터 19868월까지 문화공보부가 각 언론사에 시달한 보도지침 584건을 폭로했다.

12월9일 ‘공익신고의 날’
10대 공익제보 사례 선정

김 전 협회장과 <>의 폭로 역시 보도지침에 의해 보도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의 발행인 김태홍 언협 의장과 신홍범 실행위원, 김 전 협회장이 국가보안법 위반 및 국가모독죄로 구속됐다. 1987년 유죄 선고를 받았던 언론인 3명은 19947월 항소심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199512월 대법원은 3명에게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렸는데 보도지침 폭로 이후 9년 만이었다.

정부·군 상대
힘겨운 나날들


보안사 민간인 불법사찰 폭로= 1990104일 탈영병 윤석양 이병의 입이 열리자 세상이 뒤집혔다. 윤 이병은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가 민간인 1300여명을 불법으로 사찰했다고 밝혔다. 그가 탈영 당시 챙겨 나온 컴퓨터 디스켓에는 개인별 고유번호를 매겨 관리한 민간인 1303명의 개인정보가 기록된 신상카드가 담겨있었다. 인적사항, 가족사항, 경력, 전과관계, 자격면허, 국외여행, 정당 및 사회활동, 개인의 특성 등 9개 항목에 달했다.

윤 이병은 19908월 과거 학생운동권에 함께 몸담았던 동지들의 동태를 파악하는 프락치 역할을 강요받고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그는 민간인 사찰자료가 담긴 디스켓 30장과 서류를 들고 탈영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 사무국장 김동원 목사의 도움으로 기독교회관서 기자회견을 갖기에 이른다. 윤 이병의 폭로가 나오자 국민들의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보안사는 관련 장성들이 퇴진하고 이름도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로 바꿨다. 보안사는 197912·12쿠데타 당시 주축 역할을 한 곳이다. 윤 이병은 절대 권력을 가진 정보기관의 민낯을 폭로한 대가로 2년 동안의 수배생활 끝에 1992년 기무사 및 헌병대에 체포돼 군무이탈죄로 2년형을 살았다. 국방부는 윤 이병이 내부고발 후 2년 동안 도피생활을 한 점을 문제 삼았다.
 

▲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

재벌 부동산 투기 상부지시 중단 폭로= 윤 이병의 보안사 민간사찰 폭로에 앞서 19905월 이문옥 감사원 감사관이 구속됐다. 이 감사관은 재벌 소유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현황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재벌의 로비로 인해 중단됐고, 대기업이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비율도 은행감독원(현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1.2%보다 월등히 높은 43.3%에 달한다고 언론에 제보했다. 이 감사관 사건은 권력 내 비리와 정경유착을 최초로 폭로한 내부고발로 불린다.

이 감사관의 폭로로 재벌의 땅 투기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노태우정부는 그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구속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감사관은 구속적부심 심리서 ‘198713대 대선과 199813대 총선서 서울시 예산 88억원이 선거자금으로 전용된 사실을 추가로 폭로하면서 감사원에 압력을 가하는 외부 권력기관은 대부분 청와대라고 일갈했다. 검찰이 그를 기소하자 시민단체를 주축으로 석방운동이 진행해 결국 19906월 석방 조치됐다.

군 부재자투표 부정 선거 폭로= 1992년까지 군대에는 투표의 자유가 없었다. 육군 제9보병사단 소대장 이지문 육군 보병중위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ROTC로 임관해 군에 근무 중이었다. 당시 나이는 24. 전역 후 대기업 취직 등 안정적 미래가 예정돼있던 그는 1992314대 총선을 앞두고 군 부재자투표 과정서 일어난 선거 부정을 폭로하기에 이른다.

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도록 정신교육할 것부재자투표에서 무조건 기호 1번을 찍을 것을 주문했다는 주장이었다.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공선협) 전국본부 사무실서 이 사실을 폭로한 직후 이 중위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헌병들에게 연행됐고 결국 파면됐다. 하지만 이 여파로 같은 해 12월 실시된 대선서 군 부재자투표가 일반 부재자와 같은 투표소서 진행됐다.

기업 비자금
상품 결함 고발

삼성그룹 비자금 폭로= 200710월 삼성그룹의 전직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기자회견을 가졌다. 삼성그룹 50억여원의 비자금을 자신이 관리해왔다는 내용이었다.

삼성이 계열사 사장단과 임직원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정치·사법·행정부 등 사회지도층에 전방위적 불법 로비 행각을 벌여왔다고도 털어놨다. 또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세금을 내지 않고 부를 세습하기 위해 편법과 불법을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의 고백으로 사회적 파장이 일면서 특별검사팀이 구성됐다. 당시 조준웅 특검은 이 회장이 삼성계열의 비상장회사인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실제 가치보다 낮은 저가로 발행, 이 부회장 남매가 지배권을 갖도록 인수하도록 해 이득을 취득하고 에버랜드에 손해를 끼쳤다고 파악했다. 이 회장은 두 차례에 걸쳐 조사를 받았지만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 특검서 관련자 대부분이 불구속되면서 면죄부 특검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해군 군납비리 폭로= 2009년 김영수 전 소령의 신고로 계룡대 근무지원단의 9억원대 납품비리가 드러났다. 비리를 알게 된 김 전 소령은 내부절차에 따라 육군 헌병, 해군 헌병, 국방부 감찰단 등을 통해 수차례 고발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근무평점 최하위라는 결과만 돌아왔다. 결국 해당 사건은 200910MBC <PD수첩>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국방부는 그제야 수사를 개시, 관련자를 처벌했다.
 

▲ ‘삼성 비자금’ 폭로 기자회견 갖는 김용철 변호사

권익위는 김 전 소령에게 부패방지 부문 훈장을 수여했다. 하지만 그는 2017년까지도 검찰 수사를 받는 등 후폭풍에 시달렸다. 일부 예비역 해군 장교들이 김 전 소령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것.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는 명예훼손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됐던 김 전 소령에 대해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불기소 처분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김 전 소령은 언론과의 인터뷰서 벌써 3번째 검찰 수사라 많이 힘들다. 지치기도 한다”며 저는 사실관계에 대해서 제대로 짚었다는 소신이 있었는데 이제 많이 약해진다고 말했다.

부재자투표 바뀌고 대통령 구속
폭로 이후 대부분 후폭풍 휘말려

현대차 품질 결함 은폐 폭로= 20159월 미국서 쏘나타 47만대를 리콜한 현대차는 지난 2017년에도 그랜저 등 국내 5개 차종 171348대를 리콜한다고 밝혔다. 세부원인은 다르지만 두 건 모두 세타2 엔진 결함이 이유였다. 현대차의 이 같은 리콜 사태는 김광호 전 부장의 제보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2016년 국토교통부에 32건의 결함 의심 사례를 제보했다. 또 쏘나타 47만대를 2015년 미국서만 리콜하고 한국에는 결함을 숨겼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했다.

현대차는 김 전 부장이 201510월부터 201610월까지 회사기밀이 담긴 내부 문건을 유출했다면서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권익위는 김 전 부장의 기밀 유출이 공익제보에 해당한다며 현대차에 복직을 요구했다.

김 전 부장은 20174월 복직했지만 한 달 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회사를 떠났다. 그가 사직하자 현대차 역시 고소를 취하했지만 업무상 배임죄는 반의사 불벌죄(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수사는 계속됐다. 검찰은 김 전 부장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국정 농단 사태 폭로= 2017년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됐다. 1300만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고 적폐 청산과 진실 규명을 외쳤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른바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다. 이 사태가 불거지는 과정서도 내부고발이 큰 역할을 했다.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의 최초 고발을 시작으로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 등이 내놓은 자료와 진술이 국정농단 사태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일조했다. 그 결과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 등이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다스 실소유주 폭로= 그동안 법망을 잘 피해왔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각종 비리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 실소유주 의혹, BBK, 도곡동 땅 등 각종 의혹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수사망에 제대로 걸리지 않았다.
 

▲ 국정 농단의 핵심 인물로 알려진 최순실씨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한 사람의 제보가 이 전 대통령을 결국 구속시켰다. 이 전 대통령의 운전기사 겸 개인비서, 다스 직원으로 18년간 이 전 대통령의 지근거리서 일했던 김종백씨다. 김씨는 오랫동안 의혹에 휩싸였던 다스 실소유주 논란과 관련, 결정적인 제보를 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 수사 역시 궤도에 올랐다.

성폭행 피해 사실 폭로= 지난해 1월 현역 검사가 방송에 나와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했다. 앞서 미국서 일어난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국내에 상륙한 순간이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각계각층서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이전까지 감춰야만 했던 성폭력 피해 사실에 대해 피해자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문화예술계는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고 정치권은 물론 방송 연예계가 미투 운동의 폭풍에 휩싸였다. 최근엔 체육계서 미투 운동이 불거지면서 그동안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체육계 성폭력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개인주장 넘어
사회현상으로

대부분의 공익제보자들은 폭로 후 후폭풍에 휘말렸다. 공익신고 후 신분이 드러나면서 불이익을 겪은 이들도 상당하다. 20113월 공익신고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그들에게는 배신자와 같은 낙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조직의 곪은 부분이나 본인이 직접 겪은 불합리한 사례에 대해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이유다.

박은정 권익위 위원장은 공익제보자들은 권력형 비리부터 우리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생활밀착 부패까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길목에 불을 켜주신 분들이라며 앞으로 공익신고의 가치가 널리 인정받는 사회문화가 조성돼 공익제보가 더욱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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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