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보이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이면

결국 이재명 무죄 만들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공직선거법 허위사실공표죄 개정안의 후폭풍이 심하다. 정치권에서는 각 당의 대선후보까지 날선 비판을 이어가고 있으며 법조계서도 절차상 문제가 많다고 우려 중이다. 윤석열정부 내내 지속된 야권의 독단적인 법안 통과에 새로운 정권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권이 발의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의 요건에서 ‘행위’를 삭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결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었다. ‘이재명 살리기’라는 정치권과 법조계 비판에도 강행한 것이다.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법사위는 지난 14일 전체회의를 열고 현행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1항의 요건 중 ‘행위’를 삭제하는 개정안을 가결했다. 개정안은 국민의힘의 반대 속에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찬성 표결로 통과됐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1항은 선거 당선을 목적으로 연설·방송·통신 등의 방법으로 출생지·가족관계·직업·경력·재산·행위 등에 관한 허위사실 공표를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요건이라 기소 남용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어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해당 개정안을 꺼낸 이유는 대법원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지난 1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전원합의체는 “2심이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차장과 관련한 ‘골프 발언’과 백현동 발언 부분을 무죄로 판단한 것은 공직선거법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끼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전원합의체는 이 후보가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 골프를 쳤다는 의혹에 관해 ‘사진이 조작됐다’는 취지로 발언한 부분은 허위 사실 공표가 맞다고 판단했다. 백현동 용도변경과 관련해서도 “국토부가 성남시에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한 사실이 전혀 없는데도 피고인이 허위 발언을 했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1심은 이 후보에게 공직선거법상 피선거권 박탈형인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후보가 관련 의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의로 기억과 다른 발언을 했다며 ‘김 전 처장과 골프를 한 적이 없다’ ‘국토부 압박으로 백현동 부지 용도를 변경했다’는 취지의 이 후보 발언을 모두 허위 발언으로 인정했다.

반면 항소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김 전 처장 관련 발언들이 ‘인식’에 관한 것으로, 허위 사실 공표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백현동 발언에 대해서도 “단순 의견을 표명한 것이므로 처벌할 수 없다”며 원심을 깼다.

파기환송 후 법사위까지
이전과 다른 대법원 입장

하지만 대법원은 대법관 12명 중 10명의 다수 의견으로 2심 판단을 뒤집고 두 발언 모두 허위 사실 공표로 판단해야 한다며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이흥구·오경미 대법관 두 명만 반대 의견을 냈다.


대법원은 그간 정치적 표현의 자유 보장을 이유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의 처벌 범위를 점점 좁게 해석해 왔다. 그러나 이번 판결서 선거인의 알권리와 그를 바탕으로 한 선거권 등 국민의 기본권을 더 강조하며 그간의 판례 경향과 다른 판단을 내놨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이 나오자 즉각 개정안을 발의했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다.

대법원은 그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를 적용해 처벌하는 것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 같은 입장을 드러낸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역설적이게도 경기도지사 시절의 이 후보 사건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020년 ‘친형 강제 입원’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말한 혐의로 기소된 이 후보의 사건을 무죄 취지 파기환송했다.

이 후보는 2018년 경기도지사 후보자 TV 토론회서 김영환 당시 바른미래당 후보가 ‘형님을 보건소장 통해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죠’라고 묻자 “그런 일 없다”고 부인했다.

원심(2심)은 유죄로 판단해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으나, 당시 대법원은 적극적으로 나서 허위 사실을 알린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질문에 반론하는 과정서 부정확하게 답변한 것이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는 답변 또는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표현을 곧바로 허위라고 평가하는 것은, 형벌 법규에 따른 책임의 명확성, 예측 가능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
뭐길래…

그러면서 토론회서의 발언이 다소 왜곡될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치나 선거를 통해 단죄돼야지, 법의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면서 무죄 판단을 내렸다.

이후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공직 후보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허용 범위는 계속 넓어졌다. 이 후보의 과거 판결은 최근 무죄가 확정된 이학수 정읍시장 사건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시장은 2022년 지방선거서 상대 후보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가 기소돼 1·2심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후보의 2020년 판례를 인용해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며 파기환송했다. 이 시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지난 3월, 이 후보의 ‘김문기·백현동’ 발언 관련 선거법 위반 2심 무죄 판결에 다시 인용됐다.

대법원의 이 같은 입장은 정치인이 허위사실 공표로 처벌된 사례가 적다는 것에도 드러난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유죄가 확정된 대표적 사례는 국가혁명당 허경영씨다. 그는 2022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TV 방송 연설서 “나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양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선 정책보좌관이었다”고 주장했다가 대법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10년간 피선거권도 박탈됐으나,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함으로써 징역살이는 면했다.


허씨는 2007년 대선 때도 “대통령이 되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결혼하기로 했다”고 주장해 그때도 피선거권 10년 박탈에 해당하는 중형이 선고됐다.

이 밖에도 허위사실 유포로 처벌받은 사례는 2023년 벌금 80만원이 선고된 조국혁신당 최강욱 전 의원과, 2008년 벌금 300만원이 선고돼 의원직을 잃고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 이무영 전 의원이 있다.

이번 개정안으로 정치권에선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다른 당 대선후보인 김문수·이준석 후보 모두 이 후보를 겨냥해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허경영도
유죄 확정

국민의힘 김 후보는 지난 15일 “세계 역사상 이런 독재자가 있었느냐. 법을 바꿔서 살겠다고 하는, 전 세계 오직 한 사람은 이재명”이라며 “이런 사람을 응징하지 않는다면 정치가 왜 필요하고 왜 민주주의를 외치나. 이건 국기문란 행위”라고 지적했다.

개혁신당 이 후보 역시 같은 날 “이재명 후보가 만약 대통령이 돼서 행정권을 장악한다면, 이제 사법부만 장악하면 본인이 실질적으로 모든 헌법적 권한을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래서 사법부를 장악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고, 결국 권력장악에 대한 욕심”이라고 일갈했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강하게 반발했다. 검사 출신의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선거에 유리하도록 만드는 법안이자, 이재명 후보 한 명을 위해 선거제도를 완전히 망치겠다는 것”이라며 “(구성 요건상)‘행위’를 없애면 자신의 과거 실적을 막 떠들고 다녔어도 없던 일로 해버리면 처벌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김혜지 중앙선대위 상근부대변인은 논평서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해당 법 조항을 손봐서 면소로 만들겠다는 의도 아니냐”라며 “차라리 ‘이재명 무죄법’을 만들라”고 꼬집었다.

김 상근부대변인은 “선거서 허위 사실을 퍼뜨리고도 처벌받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고, 결국 선거판 전체를 거짓과 왜곡으로 오염시키겠다는 것”이라며 “법이 더 이상 국민을 위한 기준이 아니라 특정 정치인을 위한 맞춤형 방패가 됐다”고 비판했다.

지난 1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서도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내놨다. 김용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선거의 공정성을 해하는 부분에 국한해서 ‘행위’의 개념을 정립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반면, 판사 출신인 민주당 박희승 의원은 “저도 선거법 재판을 많이 해봤지만, 허위사실 공표죄는 정치의 사법화를 이끄는 가장 대표적 독소조항”이라며 “정치적으로 많이 악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과 법조계 우려
“야권 독단…입법 과속”

법조계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법부가 형해화돼 삼권분립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충분한 논의와 국민 의견수렴 절차 등을 거치지 않은 채 법안이 통과됐다는 점에서 절차상 문제가 많다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 출신 안영림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인증 형사법 전문)는 “대법원서 사회의 변화를 고려해 처벌 여부를 결정하면서 판례가 바뀌며 처벌 규정이 없어지는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한 명분이 없는 상황서 이재명 후보를 위해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고도의 법 논리자들만이 할 수 있는 입법을 추진한 셈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을 뽑을 때 어떤 것을 보고 뽑아야 하는지 기준을 잃게 될 것”이라며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선거에 유리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준범 법률사무소 번화 대표 변호사는 “법원은 존재하는 법을 해석하는 기관이기에 입법부에서 공직선거법 처리를 강행하더라도 특별히 할 수 있는 조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개정안 통과 후 가장 우선 적용될 것으로 점쳐지는 인물이 이재명 후보다 보니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같은 입법이 계속 만들어지면, 사회 정의가 무너지게 될 수밖에 없다”며 “일각에선 허위사실 공표죄가 정치 사법화를 이끄는 독소 조항이라고 하는데, ‘공직선거 후보자가 거짓말을 해도 되느냐’는 반론에 답하는 게 우선”이라고 부연했다.

한국부패방지법학회 상임이사인 김소연 변호사는 “허위사실 공표죄서 행위를 없애는 것은 법 자체를 없애는 것과 같다. 선출직 공무원들에게 일반 국민들보다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며 “소급 적용돼서 오래전부터 피선거권이 박탈돼 선거를 치르지 못한 사람들 입장에선 매우 억울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민 의견
수렴 패싱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입법 과속’을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패싱’한 채 대권 시계만을 의식해 법 개정을 무리하게 추진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지난 6일 “법이 문제였다면 진즉 (개정안을) 만들었어야지 (이 후보가) 걸리니까 법이 문제라고 한다”며 “지금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법은 보편적 적용을 위한 것이지 자기들의 특수한 이익에 따라 이리 만들고, 저리 만들고 하는 게 아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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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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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