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난데없이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21세기 대명천지에 황당하고 기가 찬 일이었다.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나 가능했던 계엄이 실제 일어난 것이다. 계엄군의 군홧발과 총구가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유린하고, 국회의사당 상공에 진입한 무장 헬기가 국회 잔디 광장에 착륙했을 때 국민은 공포에 떨었다.
모든 정치활동과 집회, 파업을 금지하고 언론 출판을 계엄사가 통제한다는 포고령을 어기는 자는 처단한다는 살벌한 협박도 빠지지 않았다. 역사의 유물인 줄 알았던 계엄과 독재의 망령이, 그것도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민주주의 국가수반인 대통령에 의해 되살아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지난 반세기 넘게, 온 국민이 피로 쓴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의 역사적 성취는 물론, 6공화국 헌법정신 자체를 송두리째 파괴하는 반민주, 반역사, 반자유의 폭거였다.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을 겨냥해 “종북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과연 북한의 이념이나 정책에 동조하는 세력인가? 또 그 세력을 지지하는 국민이 종북 세력인가?
어느 누가 자유민주주의를 비판하며 북한의 사회주의를 동조하고 있는가?
또, 윤 대통령이 주장하는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은 어떤 세력인가? 민주당 등 야당이 물리력과 폭력을 동원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반란 행위를 일으켜 현존 체제를 뒤집으려고 시도했었나? 아니면 그들이 국가의 이익에 반한 간첩 활동 등을 한 적 있는가?
비상계엄이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하는데 이는 근거도 없고, 절차도 지키지 않은 위법·위헌이지 않은가?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배경으로 둘러댄 사유 또한 어느 것 하나 헌법이 규정한 계엄 선포 사유가 될 수 없음이 너무나 명백했다. 야당의 예산 삭감은 법 테두리 안에서 예산 편성권을 행사한 것이고 빵 280개를 법인카드로 사 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 등 국무위원 탄핵에 대해서는 그동안 본인이 임명한 인물이 얼마나 제대로 있었길래 탄핵 남발을 운운하는가?
모두 공감하기 힘든 얘기다. 정치적 문제는 정치로 풀어야지, 군 병력을 동원한 계엄 선포로 맞선다면 독재정권과 다를 게 뭔가? 검찰 권위에 사로잡혀 평생을 엮는 법조 기술자로 살아온 윤 대통령은 국회 개원식에 불참했고 시정연설도 하지 않는 등 국민을 대신하는 국회 권위를 추락시키며 국민을 우습게 봤다.
이 땅에서 권력에 의한 비상계엄, 불법 연행, 불법 연금 등 인권유린은 영원히 추방돼야 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국민적 요구다.
1980년대 군부독재에 맞섰던 민주화운동,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던 시절, 자고 일어나면 한 사람씩 분신하고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가 죽어갔던 암흑 같은 시절.
비상식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한 사람 때문에 우리는 또 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나? 역사의 심판은 기다리고 있다.
김명삼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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