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대담> 정세현이 보는 커지는 한국 역할론

“미·중·러 삼극 시대
미들 파워 역할해야”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박형준 기자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보다 길다”며 “협의·협상을 요구해 시간을 끌면서 관세 등 미국의 위협에 맞서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한중·한러 관계를 잘 발전시키면, 한일 양국이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나란히 가져도 문제 될 건 없다”고 전망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국민의정부·참여정부 등 2회에 걸쳐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1970년대부터 북한 관계자와 만나는 등 대표적인 협상주의 성향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일요시사>는 설을 앞두고 동북아 국제 정세·북한 문제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들었다. 다음은 정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미국은 9·11 테러 발생과 테러와의 전쟁 이후 군비 감축을 추진했다. 현재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 이해와 관련이 있는가?

▲그렇다. 중국은 지난 2010년 G2로 올라섰다. 능력은 상대적인 것이다. 중국이 미국과 멱살잡이 할 수 있을 정도로 따라왔다. 미국도 더는 군사력으로 중국을 누르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관세 문제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오래 못 간다고 본다. 영국·독일도 중국과 가까워지려고 한다.

미국 일극 체제가 30여년 만에 무너지고 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러시아도 아직은 일정한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즉, 미국·중국·러시아 삼극 체제로 가고 있다. 대한민국 외교가 올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삼극 체제가 행사하는 슈퍼 파워가 될 순 없어도 바로 밑 미들 파워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중국·러시아의 밑에 들어가는 미들 파워가 아니다. 우리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외교가 자국 중심 성격을 갖고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운 좋게 다가오고 있다.

-관세·그린란드 등에 대응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선 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한다는 평이 많은데….

▲우리에게 대미 투자 조기 집행을 요구하는 등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김용범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쉽게 항복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들도 이 대통령의 지시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오는 2029년 1월까지고, 이 대통령의 임기는 오는 2030년 6월까지다. 미국이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면, 협의·협상을 요구해 시간을 끌어야 한다. 이어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한 후 미국의 압력을 상쇄하는 외교를 적극적으로 구사해야 한다.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하 원잠) 보유가 주한미군 감축 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동안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유력한 경고 카드로 사용했다. 이젠 주한미군 감축 시도가 미국이 우리를 통제하는 수단이란 사실이 많이 알려졌다.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대로라면, 미군이 주한미군을 운용하는 데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

이 상황은 우리가 전시 작전 통제권을 찾아오기 위해 빅딜을 시도할 기회로 연결될 수 있다.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 이 대통령도 관세·투자 문제로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킨 후 북한 핑계를 대면서 미국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취지로 원자력 추진 잠수함 보유 승인을 받아왔다.

-일본도 원잠 보유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도 일본이 군대를 가진 보통 국가가 되는 것을 지지하는데….

▲일본이 원잠을 갖게 될 가능성은 있다. 평화헌법을 개정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얼마든지 허용해 줄 수 있다. 물론 일본이 원잠을 가진다고 해서 우리가 가질 원잠의 위력이 약해지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일본에선 군대 보유·헌법 개정 반대 여론이 강하다. 이 때문에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정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최근 중일 관계는 대단히 안 좋고, 러시아도 일본과 가까워지기 어렵다. 우리가 이를 잘 활용해서 한중·한러 관계를 잘 발전시키면, 한일 양국이 원잠을 나란히 가져도 문제가 될 거라고 보진 않는다.

-한국·일본이 원잠을 보유하면, 북한·중국·러시아는 어떻게 대비할 것으로 보이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는 북한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전사자 기념관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의 희생을 잊지 말고,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우리에 대한 원조를 끊으면 안 된다는 신호를 러시아에 보내는 것이다.

일각에선 북한이 러시아에 잠수함 저소음 기술·원자로 소형화 기술 등을 요구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러시아가 그렇게 쉽게 내줄 것 같지 않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전작권 반환 빅딜 기회”
“북·중·러 뭉친다? 한·미·일 동맹 추진 윤 정부 주장”

북·중 관계도 마찬가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 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연하장도 주고받았다. 그런데 최근엔 한중 관계가 가까워지니까 북한은 이를 불편해하면서 <로동신문>에 시 주석이 보낸 연하장을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은 1950~1960년대 중국·소련 분쟁 당시 양국 사이를 오가면서 이익을 얻었다. 주체사상은 당시 북한 상황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만들었던 논리였다. 북·중·러는 한 덩어리가 못 된다. 중국·러시아는 여전히 자존심 경쟁을 하고 있다. 북·중 관계와 북·러 관계가 동시에 성립될 순 있어도, 중·러 관계는 성립되기 어렵다.

북·중·러가 뭉칠 수도 있단 논리는 한·미·일 삼국 동맹 결성에 참여하길 원했던 윤석열정부가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북·중·러가 뭉쳐 우리의 대북 억지력을 약화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스 메이커가 돼 달라면서 스스로 페이스 메이커를 자처했다. 남·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개최될 가능성이 있는 건가?

▲아직은 남·북·미 정상회담까지 생각하긴 어렵다. 이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먼저 성사시킨 후 그 틀 안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틈새를 열어나가려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한 뒷바라지를 자처한 것이다. 북미 관계를 개선해 동북아를 작은 평화의 마당으로 만든 후 그 평화의 아스팔트 위에서 남북 관계를 풀어나가겠단 구상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먼저 진행한 후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조율했다. 이 대통령은 이를 뒤집어 진행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을 직접 설득할 수 없으니, 페이스 메이커로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UN 제재 해제 등 보따리를 들고 김 위원장과 만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END 구상은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측면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핵 개방 3000과 비슷해 보이는데….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입구를 이야기하지 않은 채 출구에서 거둘 수 있는 목표들을 연결했다. 그래서 이를 지적했더니, 위 실장은 이 목표들이 상호 작용을 하게 돼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가 지난해 9월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 특임교수는 자신의 유럽 출장 경험을 소개했다. 문 교수는 우리 대통령이 직접 UN 총회에 참석해 END 구상을 소개했기 때문에 이를 우호적으로 설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유럽 전문가들은 이를 북한 종말론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우리가 END는 한반도 냉전 종식을 의미한다고 얘기해도, 북한·제3국은 북한 체제 종말 시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축사에서 9·19 군사 분야 합의의 선제적·단계적 복원을 얘기했고, 곧 있으면 6개월이 돼가는데 실행이 되지 않고 있다.

국방부는 실행을 위해선 준비할 게 많고, 미국이 안 좋아한다고 주장한다. 미적거리는 장성들을 강하게 지적해야 한다. 민주당도 지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 때문에 정신없다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선 대통령을 뒷받침하면서 분위기 조성을 해야 한다.

-개성공단이 설치됐던 이유는 뭔가?

▲개성공단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마산 수출 자유 공단을 토대로 설치됐다. 우리가 인건비를 보태주는 식으로 노동 집약적 산업부터 시작해 북한의 수출 능력과 자생력을 키우려는 취지로 설치됐다. 아울러 현대의 금강산 관광을 시작으로 북한의 관광 산업 성장을 도우려고 했다. 우리가 그렇게 경제를 발전시켰으니 북한에도 적용하자는 취지였다. 북한의 국민 소득을 높여야 이들이 우리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북한이 지난 2020년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이하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이유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2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지시했다. 연락사무소는 지난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후속 조치로 설치됐다. 북한은 문재인정부가 각종 합의 조치를 이행하지 못하자 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미국은 남북 간 수많은 합의 조치를 접한 후 매우 놀랐다.

한미 워킹그룹도 족쇄가 됐다. 한미 워킹그룹은 남·북·미의 모든 일이 결국 북핵 문제와 연결되고, 북미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면서 남북 관계 개선을 시도할 땐 한미 간 긴밀한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취지에서 설치됐다. KTX 부설 등 각종 합의 이행 조치들이 한미 워킹그룹에서 나온 미국의 반대 때문에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자 북한에선 남한과의 합의는 아무 소용이 없으니 연락사무소도 필요 없다면서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이다.

-북한이 지난 2023년 주장한 적대적 두 국가론과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 2024년 주장한 두 국가론의 공통점·차이점은?

▲노태우정부에서 통일원 장관을 지낸 이홍구 전 총리는 지난 1989년 한민족공동체 통일 방안 수립을 주도하면서 1단계 남북 연합 체제를 제안했다. 2개의 국가가 연합해 공존하자는 주장이었다. 남북은 지난 1991년 9월 UN에 동시 가입했다. 그로부터 석 달 후엔 남북 기본합의가 당시 정원식 총리와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 명의로 체결됐다. 남북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면서 한반도 내 두 국가가 됐다.

“END 구상? 입구 없이 출구서 거둘 목표만 제시”
“남북은 이미 UN 동시 가입…1991년부터 두 국가”

임 전 실장은 남북이 30여년 넘게 두 국가로 살아왔단 것을 인정하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보수 언론에서 이를 두고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인정한 것처럼 보도했다. 임 전 실장은 ‘적대적’이란 단어를 빼고, 두 국가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북한 정권을 공식 대화 상대로 인정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적당히 구슬려 흡수통일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당 기간 두 국가로 살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후계자들이 결정하도록 하자는 이야기였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지난해 12월 평화적 두 국가론을 주장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추진된 후 남북 대화가 바늘구멍만큼의 가능성을 뚫고 성사되면, 적대적 두 국가란 말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출 것이다. 남한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지 않겠다고 확실하게 보장해 두 국가 관계를 유지하면, 남북 연합으로 못 갈 것도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화해·협력 → 남북 연합 → 통일 국가 완성이란 3단계 통일론을 주장했다. 임 전 실장의 두 국가론도 김 전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과 연계되는 건가?

▲이 전 총리가 이미 당시 3단계 통일론을 초기 구상했다. 이 전 총리가 김대중 당시 평화민주당 총재를 만나 3단계란 개념을 받아들여 3단계 통일론이 완성됐다. 사실상 여야가 합의한 통일 방안이었다. 문민정부가 주장했던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도 결국 같은 주장이었다. 이를 다시 실현해 남북 연합으로 가자는 게 평화적 두 국가론의 철학적 뿌리라고 본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6·15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평양 주둔을 제안한 이유는?

▲김 위원장은 김 전 대통령에게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토적 야욕이 있어 믿을 수가 없다면서 이를 막으려면 남북이 손을 잡은 후 미군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군이 한반도에 있어야 중국이 함부로 우리 강토를 넘보지 못한다면서 미군을 이용해 중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야욕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들은 김 전 대통령은 매우 놀랐다고 한다. 황원탁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김 전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 김 위원장에게 <로동신문>은 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인민이 아직 그걸 알면 안 된다’면서 ‘공개적으로 표명된 정책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외교의 세계는 원래 그렇다.

-비무장지대 안엔 태봉국 철원성이 있다. 남북은 지난 2018년 공동 조사·발굴을 합의했다. 진행되지 않은 이유는?

▲북한은 이를 남한의 대북 공격 시도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아무리 평화를 지향하는 역사 복원이라고 하더라도, 북한은 남한이 장난칠 것으로 의심할 수도 있다. 남한 사람들이 마음대로 비무장지대를 들락거리면서 무슨 짓을 할지 안심하기 어렵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구상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사상을 추종하는 사람들이나 얘기하는 거다. 실제로 정책을 집행하는 정치인·공무원에겐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북한 무인기 침투 사건에 대해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평양에 무인기를 띄워 12·3 내란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내란 잔당이 아직도 뿌리 뽑히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내란 잔당을 법적으로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인사 조처만 하면 되는데 그걸 못하고 있다. 탈북자 단체도 처음부터 삐라를 뿌렸던 게 아니다. NED(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는 냉전 시대에 CIA의 비밀 지원을 받던 반공 활동의 대안으로 설립됐다.

NED는 지금도 미국 의회의 승인·국무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강경 탈북자 단체를 지원한다. 그래서 삐라를 묶은 풍선 안에 미화 1달러 화폐를 넣어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정보사령부·미국 내 반 북한 세력과 연결돼있었다. 내란 잔당은 매우 넓고 깊게 분포돼 있다. 빨리 처리해야 한다.

-설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들에게 덕담 한마디를 건넨다면?

▲<일요시사>는 정치·경제 등 우리 국민의 일상과 연결된 중요한 문제를 놓고 정확한 보도를 해왔다. <일요시사>의 사세가 커질 수 있도록 많이 구독해 주시고 후원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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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