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후폭풍> 텅 비는 대통령실

대한민국이 멈췄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책임을 통감하고 대통령실 참모진과 국무위원들이 줄줄이 사의를 표명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을 지척서 보좌한 이들을 들러리로 보고 계엄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계엄에 연루된 내각과 참모가 더 있는지, 여야는 물론 시민단체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의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윤 대통령을 보좌하는 대통령실과 국무위원들도 계엄에 관해 몰랐다며 불을 지피고 있는 형국이다. 참모들과 국무위원들은 책임을 통감하고 줄줄이 사의를 표명했다.

이미 기능
상실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통한 내란 사태의 여파로 국정이 사실상 마비됐다. 지난 4일 수석비서관급 이상의 대통령실 고위 참모들과 국무위원들이 전원 사의를 표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추진과 별개로 윤석열정부는 이미 기능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10시23분께 용산 대통령실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국회는 지난 4일 오전 1시께 본회의를 열고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재석 190명, 찬성 190명으로 만장일치 가결시켰다. 헌법 제77조 5항에 따르면, 국회가 재적 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


이후 윤 대통령은 새벽 국무회의에 앞서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어젯밤 11시를 기해 국가의 본질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자유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붕괴시키려는 반국가 세력에 맞서 결연한 구국의 의지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면서 “그러나 조금 전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가 있어 계엄 사무에 투입된 군을 철수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어 “즉시(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를 소집했지만, 새벽인 관계로 아직 의결정족수가 충족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오전 4시30분 계엄 해제안을 의결하면서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종료됐다.

계엄이 해제된 직후 각종 언론에서는 대통령실 참모들이 계엄 선포에 관해 전혀 몰랐다고 보도했다. 지난 3일 오후 9시 이전까지 일부 대통령실 참모들은 퇴근하고 개인 시간을 보내고 있거나 사무실에 남아 야근을 하기도 했으나 윤 대통령이 심야에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다 이날 9시30분을 지나며 ‘윤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의 감사원장·검사 탄핵, 예산 감액안 단독 처리 등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힐 수 있다’는 설이 돌기 시작하며 기류가 급반전했다.

이 시점부터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일제히 입을 닫았다. 기자들이 사실 확인을 위해 대통령실 측에 계속해서 연락했지만 모두 수신을 거부하거나 “전혀 알지 못한다”는 답만 돌아왔다. 일부 참모는 저녁 식사 중 윤 대통령의 긴급한 호출을 받고 급히 대통령실로 복귀했지만, 계엄 선포 사실은 물론 긴급 담화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일단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옆서 보좌했건만 들러리 신세
참모·국무위원들 줄줄이 사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던 대통령실 참모들은 일괄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성태윤 정책실장·신원식 국가안보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이도운 홍보수석 등 수석비서관 이상의 고위직들이 모두 포함된다. 정 실장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일괄적으로 거취 문제를 고민하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도 대통령실 참모들과 별다를 바 없었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 나서기 약 1시간 전인 오후 9시 즈음 국무회의를 열었다. 한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밤중에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소집됐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고 입을 뗐다. 그러자 한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즉각 반대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이들을 뒤로 하고 고유권한인 비상계엄 선포에 나섰다. 국무위원들을 계엄 선포 형식을 맞추기 위한 들러리로 세운 셈이다.

계엄 선포를 통보받아 정부 부처들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군과 국방부만 기다렸다는 듯 행동에 나섰다. 

우선 국무회의서 의결되지 않고 김 전 장관의 의중을 반영한 계엄사령군이 뽑혔다. 실제로 계엄사령관은 군 서열 1위인 김명수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맡았다. 김 의장은 해군 출신, 박 총장은 김 장관과 같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는 점에서다.

계엄사령관도 계엄법 5조에 따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임명됐는지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정황상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대통령실과 내각을 따돌리고 독단적으로 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게다가 윤 대통령은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 총리가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뒷수습을 했다.

윤 대통령 독단으로 인한 계엄 해프닝을, 정작 계엄 선포를 통보받은 데다 반대까지 했던 내각이 뒷정리하게 된 것이다. 계엄 선포도, 해제도 내각은 결국 들러리로 취급됐다.

혼란에
빠지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를 개최하지도 않았고, 한 총리도 계엄 선포에 대해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헌법 제89조는 계엄 선포를 위해서는 국무회의 의결이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만약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개최하지 않았으면 이는 헌법을 위반한 것이 된다.

하지만 계엄령 선포 1시간 전에 국무회의가 열렸고 회의 이후 계엄령이 선포됐기에 회의에 참석한 총리·장관 등 국무위원들에게도 책임론이 불거졌다. 여야 할 것 없이 회의에 참석한 내각의 총사퇴를 주장했다.

실제로 국무위원 전원은 지난 4일 오전 한 총리와의 간담회서 사의를 표명했다.

한 총리는 “총리로서 작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모든 과정에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이 시간 이후에도 내각은 국가 안위와 국민 일상이 흔들림 없이 유지되도록 모든 부처의 공직자들과 함께 소임을 다해 주시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 총리의 이날 발언은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현시점에 내각이 총사퇴할 경우, 정부가 셧다운 될 수 있는 만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총리실은 설명했다.

우선 국무위원들의 총사퇴 기류는 수습 국면으로 돌아선 듯 보인다. 한 총리는 국무위원들의 사의를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정상 업무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책임성 사퇴보다는 사태 수습에 나선 것이다.

총리실 핵심 관계자는 “내각이 사퇴해 국무회의가 중단되면 정책, 예산, 법률 등 모든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없게 돼 정부가 마비 상태에 빠진다”고 우려했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도 이날 각 부처 차관들과 비공개 차관회의를 열어 “국정이 엄중한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공직사회가 중심을 잡고 차분히 수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총리실 내부에선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뤄졌던 전례들을 조심스럽게 검토 중이다. 

총리실 한 관계자는 “2004년 노무현정부(고건 총리)와 2016년 박근혜정부(황교안 총리)서 있었던 두 차례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와 관련된 기록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한대행 
기록 검토


국무위원들이 모두 사의를 표명한 것과 별개로 계엄 관련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이 누군지 점차 드러나고 있다. 국무회의엔 윤 대통령과 한 총리,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태열(외교)·김영호(통일)·박성재(법무)·김용현(국방)·이상민(행안)·송미령(농축산부)·조규홍(보건)·오영주 (중기) 장관의 참석이 확인됐다.

다만 당초 대부분의 국무위원들이 계엄령에 반대했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 듯했다.

우선 국무회의 개최 약 1시간 전인 8시쯤 대통령실에 도착한 한 총리가 계엄 소식에 “경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취지로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환율이 들썩이고 대외 신뢰도가 추락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을 설득하지 못했고, “절차는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모이며 윤 대통령은 국무위원을 대통령실로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한 총리 외에 최 부총리와 조 장관 등이 국무회의서 “경제와 외교가 어려워진다”며 계엄령에 강하게 반대 목소리를 냈다고 한다. 특히 조 장관이 계엄 선포 시 발생할 대내외적 파장 등을 근거로 들며 가장 먼저 반대 의견을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수차례 윤 대통령의 마음을 바꾸려 노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른 장관 중에도 직접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비치진 않았지만 선뜻 동의하는 이는 없었다고 한다. 

이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계엄에 두어 명의 장관이 반대했다는 주장과도 맞아떨어진다. 이 장관은 지난 5일 윤 대통령의 ‘비상 계엄’ 논의 국무회의 당시 상황과 관련해 “반대를 표명한 장관은 두어 명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해 “계엄령 논의 당시 반대를 표명한 장관은 몇명이었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 장관은 “행정안전부 장관은 계엄령에 찬성을 표했느냐, 반대를 했느냐”는 이 의원 질의에 “그것은 말씀드리기 어렵다”면서도 “국무회의는 찬반을 명확히 가리는 자리가 아니며, 대부분의 장관들이 우려를 표명한 것은 사실”이라고 답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국무위원 개개인이 느끼는 상황 인식과 책임감과 국가의 통수권자인 대통령 스스로 느끼는 책임감은 다르다고 말했다”고 이 장관은 전했다.

이 의원은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에게 계엄령 선포 논의를 직접 제안했는가”라고 묻자, 이 장관은 “대통령께서 장관들이 모인 자리서 상황에 대해 설명하며 계엄 선포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계엄령 논의는 장관들 사이서도 매우 민감한 사안으로, 회의 당시 여러 의견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회의에 늦게 참석하면서도 반대 의견을 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출석해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반대 의견을 냈다”면서 “국무위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한다”고 밝혔다.

“직전까지 전혀 몰랐다”
국정 사실상 마비 상태

조 장관은 “3일 저녁 9시14분, 대통령실로부터 ‘용산 회의실로 빨리 오라’는 연락을 받고, 10시17분에 도착했으나 회의는 이미 진행 중이었다”며 “계엄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10시23분 곧바로 비상계엄령 선포가 이뤄져 자신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복지위 야당 의원들이 그가 지난 4일 새벽,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에 불참한 데 대해 질타하자 “2시6분 국무조정실서 연락이 왔는데 2시간 정도 인지를 하지 못했다. 4시에 확인하고 놀라서 연락하니 이미 회의가 끝났다더라”면서 “국무위원으로서 제 소임을 다 하지 못한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조 장관은 포고령 1호에 ‘전공의 처단’ 내용이 들어간 데 대해 자신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정부 방침과 배치되는 내용이라 저희도 놀랐고, 동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대통령에게 하야를 권하고, 장관도 사퇴하라’는 야당 의원에게 “사퇴 의사를 밝혔으나 대통령 재가가 필요하다”며 “국정 공백이 있으면 안 되니 최종 사퇴까지는 맡은 바 소임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한 여권 고위 관계자도 “국무회의는 상당히 심각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일부 장관의 반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계엄에 반대한 국무위원들이 누군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자칫 내란죄에 연루될 수 있는 상황에 각 부처와 장관들은 쉬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전 국회서 윤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장관, 이상민 행안부 장관 등을 내란죄로 고발하고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도 이날 오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윤 대통령 등에 동조했던 국무위원을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 시민단체는 국무회의 속기록 확보에 나서기도 했다. 정보공개센터는 지난 4일 대통령비서실과 행정안전부에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관한 국무회의 회의록과 속기록, 녹음기록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센터는 “대한민국헌법 제89조에 따르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해제 시 반드시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며 “국무회의 회의록 일체는 반헌법적 범죄의 진상을 밝힐 수 있는 증거의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가기록원에 이번 계엄과 관련된 모든 기록의 처분을 즉각 동결하고 이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보존할 수 있는 신속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국무위원들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한 총리는 다시 한번 국정을 안정화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지난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 현안 관계 장관회의를 주재하고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서, 민생 안정을 위해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내각의 의무”라며 “내각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는 맡은 바 직무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빈자리
어떻게?

그러면서 “특히, 금융·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대응체계를 지속 가동해 신속히 대처하고, 치안 유지와 각종 재난 대비에도 만전을 기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날 국정 현안 관계 장관회의에서는 ‘경쟁 제한적 규제 개선 방안’ ‘방위산업 분야 수출 규제 개선 방안’ ‘수산·양식 분야 기후변화 대응 종합계획’ ‘어린이 식생활 안전관리 종합계획’ 등 정부가 비상계엄 사태 전부터 해오던 정책 방안에 대한 심의가 진행됐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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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