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후폭풍> ‘트리거’ 명태균이 당겼나

황금폰 겁먹고 질렀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뜬금 계엄령’을 선포했다. 여야 모두 위법이자 위헌이라고 비판한다. 일각에서는 공천 개입·여론조작 혐의를 받는 명태균씨를 수사하는 검찰이 정권을 겨눌 핵심 물증을 찾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사실상 명씨가 ‘계엄 트리거’ 역할을 했다는 추측이다.

계엄령이 선포된 건 45년 만이었으며, 국회에 통고도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부 국무위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최측근과 군 수뇌부 대부분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 준비되지 않은 도박적 판단은 ‘6시간 천하’로 끝났다. 공천 개입 의혹의 중심에 선 명태균씨는 윤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 구속되면 나라 뒤집힌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화가 돼버렸다.

우연?

윤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감이 느껴질 때마다 야권을 겨냥하듯 ‘반국가 세력’을 자주 언급했다. 일례로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 당시 “종북 주사파와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할 수 없다”고 밝혔고,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로 친일 역사관 논란이 일었을 때는 “반국가 세력이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아니면 ‘적’으로 규정하고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는 전체주의자의 모습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태원 참사 이후 채 상병 특검, 김건희 특검, 명씨 공천 개입·여론조작 의혹 등으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10%대까지 떨어졌다. 여권 내에서도 윤 대통령의 국정기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으나 그는 변하지 않았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육성이 담긴 녹취를 공개하면서 사면초가에 몰렸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명씨가 이른바 황금폰이 있다면 야권에 제공하겠던 언급에 윤 대통령이 ‘뜬금 계엄령’을 선포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지난 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서 “윤석열 대통령이 무슨 의도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 같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대해 “특수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 아니냐는 말을 의원들끼리 많이 했다”며 “예를 들어 전날엔 명태균씨가 기소된 것이 주요 이슈였다. 명씨가 특검을 받겠다고 했는데 사실상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제공하겠다는 의사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구속되면 정권 한 달 안에 무너져”
명 장담한 대로 발칵 뒤집힌 나라

최근 창원지검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명씨를 구속 기소했다. 앞선 2일 명씨의 변호를 맡은 남상권 변호사는 “만일 명씨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면, 검찰이 아닌 국민 앞에 언론을 통해 제출하거나 재판부 또는 정권 획득을 노리는 민주당에 제출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 “휴대전화 관련 명씨의 여러 발언, 구속 기소 당일 특검 요구 발언, 그리고 검찰의 ‘증거은닉교사’ 혐의 적용 등이 윤석열 대통령을 압박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부부와 2021년부터 전화 통화 등 교류를 했던 명씨는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휴대폰이 내 변호사”라며, 대통령 부부와 통화할 때 사용했던 휴대전화에 자신을 지켜줄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고 주장했다. 또 구속이 임박해서는 “내가 구속되면 정권이 한 달 안에 무너진다”고 강조했던 바 있다.

이 의원은 “이미 검찰 등에 (명씨 사태 관련)주체자가 (자료를)제공했고, 윤 대통령이 이를 미리 입수하고 도저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버티지 못할 거라고 인식하는 의원들이 있었다”며 “야당은 수사 과정서 뭔가 나온 게 아닌가라는 의심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윤 대통령)본인이 법률가 출신인데, (계엄령은)헌법에도 위배된다. 또 포고령을 보면 의대 문제가 나오는데 두서없는 시도였다”며 “내란에 준하는 행동을 일으킨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국회의원들 사이서 윤 대통령이 2차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고 말했다. 그는 “의원 다수는 윤 대통령을 ‘이제 무엇을 할지 모르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당장 이번 주부터 지지율이 한 자릿수 찍을 게 자명한데, 궁지에 몰리면 뭐라도 해야겠다는 심리가 있다. 평소 같으면 상상도 안 하는 얘기들이 많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지금 분위기에서는 바로 (윤 대통령에 대한)탄핵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며 “또 범야권서 모든 절차를 밟기 전에, 예를 들면 시간을 두고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최후 통첩을 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핵심 물증 야권에 제공?
위기감 증폭되자 자폭?

명씨는 최근 자신의 법률 대리인을 통해 윤 대통령에게 국정운영과 관련한 충고의 글을 남겼다. 비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인데, 기소 후 두 번째 메시지다.

명씨의 변호사 남상권·여태형 변호사는 지난 5일 오후 1시30분쯤 창원지검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께 올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명씨가 남긴 말을 취재진에게 공개했다.

여 변호사가 대독한 글에서 명씨는 “단단한 콘크리트는 질 좋은 시멘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모난 자갈과 거친 모래를 각종 상황에 따라 비율대로 잘 섞어야 만들어진다”면서 “그게 바로 국정운영”이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명씨는 끝으로 자신을 ‘대역죄인’이라고 썼다.

평소 수사적·상징적인 표현을 많이 쓰는 명씨는 이 글에 담긴 의미도 변호사에게 남겼다고 한다. ‘질 좋은 시멘트’는 윤 대통령을 지지하고 좋은 소리만 하는 사람들이다. ‘모난 자갈과 거친 모래’는 야당 정치인과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세력, 그리고 윤정부를 비판하는 언론 등을 의미한다고 한다.

결국 국정운영을 잘하기 위해서는 지지하는 사람들의 의견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을 향한 비판과 충고도 귀담아들으라는 취지라고 한다. ‘대역죄인’의 의미는 윤 대통령 부부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최근 자신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한 국민에게 죄송한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전해졌다.

현실화

명씨는 직접적인 언급을 하진 않았지만, 최근 비상계엄 사태를 보고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여 변호사는 “명씨는 지난 4일 오전에서야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이뤄진 비상계엄 선포·해제 상황을 알게 됐다”면서 “이후 생각을 정리해 오늘 오전 조사 때 이 같은 내용을 불러줬고 제가 옮겨왔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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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