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후폭풍> 국회가 막지 못했다면…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4.12.09 15:13:10
  • 호수 15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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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잡혀갔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국회에 모였던 의원들은 ‘정치활동 금지’ 포고령 위반으로 연행됐을 것이다. 언론 검열에 걸려든 언론사 소속 기자들도 공범으로 인정되면, ‘거대한 파렴치 종북 반국가 세력’이 된다. 모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군사재판을 받았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오후 10시27분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58분이 지난 11시25분 박안수 육군참모총장(대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됐다. 용산 국방부에 설치된 계엄사령부는 11시30분 포고령 1호를 발표했다. 

언론통제

이에 따르면, ▲국회·지방의회·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집회·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 ▲자유 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 금지 ▲가짜 뉴스·여론조작·허위 선동 금지 ▲모든 언론과 출판에 대한 계엄사의 통제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파업·태업·집회 행위 금지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의료인의 48시간 내 본업 복귀 ▲포고령 위반자에 대한 영장 없는 체포·구금·압수수색 및 처단 등 조치가 예고됐다. 

이는 계엄법 제9조 제1항에 근거했다. 하지만 약 6시간 후인 지난 4일 오전 4시26분경 윤 대통령이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를 수용하면서, 이날 조치들이 실제로 실행되지는 않았다.

만약 포고령 1호가 실행됐다면, 지난 4일 새벽 확인할 수 있었듯이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 조치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가 충돌한다. 제4공화국과 제5공화국 헌법은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을 부여했기 때문에, 군을 동원해 국회를 해산하고 주요 정치인들을 잡아 가두면서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난 1972년 10월17일 단행한 유신 쿠데타의 위헌 소지가 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제3공화국 헌법은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군을 동원해 국회를 해산한 후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다음 유신헌법을 발표했다.

지난 3일 밤부터 4일 오전까지 진행된 ‘계엄 활극’서도, 3일 오후 11시40분 이후부터 국회 경내서 계엄군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계엄군은 ▲제1공수특전여단 ▲707특수임무단 ▲수방사 35특수임무대대 및 군사경찰 특임대 ▲제9보병사단 등으로 구성됐다.

이날 계엄군은 본청 진입을 시도했다. 그 순간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중립 성향 의원 및 야당 의원 190명은 오전 1시경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발의해 1분 후 가결했다. 계엄군은 가결 후 10분이 지난 오전 1시11분부터 국회 경내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일부 의원들은 계엄군의 본회의장 진입 가능성을 의식해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빨리 계엄을 해제하자”고 독촉했다. 하지만 우 의장은 절차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안건이 정식으로 상정될 때까지 12분 동안 기다렸다. 그 동안 특전사는 국회에 투입하는 헬기와 병력을 늘리고 있었다.

계엄 해제 늦었더라면
포고령 위반으로 연행

계엄사는 이미 설치됐고, 박 참모총장도 계엄사령관으로서 포고문을 발표했던 상황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 12분 동안 본회의장에 병력 진입이 성공했다면, 당시 본회의장에 있던 의원들은 포고령 위반으로 전원 체포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계엄법 제13조는 “계엄 시행 중 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국회에 모여 비상계엄을 해제하려는 행위가 ‘정치활동 금지’라는 포고령 위반으로 해석돼 ‘현행범인’으로 연결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게 만든 ‘눈엣가시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더욱 놓치기 어려운 순간이었을 개연성이 있다. 반면 우 의장은 합법적인 계엄 해제를 중요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12분을 기다려 절차적 정당성을 유지하면서 계엄을 해제하기까지, 본회의장 바깥에선 국회 직원들과 보좌진이 바리케이드를 설치한 후 계엄군을 막고 있었다.

의원들이 비상계엄을 합법적으로 해제하지 못한 채 전원 연행됐다면, 위헌·위법 여부를 떠나 일체의 정치적 활동이 금지된다. 따라서 국회 밖에서 윤 대통령 항의 시위를 하던 시민들도 곧바로 포고령 위반자가 돼 체포됐을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계엄사령부엔 보도처가 설치될 예정이었다. 보도처는 제5공화국 수립 전 보안사가 주도했던 언론 검열 활동과 똑같이 언론통제와 검열을 맡는다.

박 전 대통령 사망 후 구성된 계엄사령부 보도검열단은 지난 1979년 10월27일부터 계엄이 해제된 지난 1981년 1월24일까지 456일 동안 언론 보도 27만7906건을 검열했다. 이 중 1만1033건은 전면 삭제됐고, 1만6025건은 부분 삭제됐다. 아울러 933명의 기자가 해직됐고, 언론사 통폐합이 진행됐다.

이 흐름이 재현됐더라면, 윤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했던 언론사들은 통폐합 혹은 폐간 절차를 밟았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포고령 위반·국가보안법·군사재판
3종 세트로 정적 일망타진 가능성도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근거를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로 제시했다. 포고령 위반자로 체포되는 야권 및 국민의힘 내 친한 의원들은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이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을 가능성도 있다.

윤 대통령에게 비판적이었던 언론사들과 기자들도 공범으로 인정되면, ‘거대한 파렴치 종북 반국가 세력’이 완성된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가 사법사무를 관장한다. 군사법원의 관할도 ▲국가안보 관련 범죄 ▲공무 방해 ▲방화 ▲살인 ▲강도 ▲국가보안법 위반 등 재판으로 확대된다. 계엄군이 연행한 ‘거대한 파렴치 종북 반국가 세력’은 군사법원서 재판을 받는다.

계엄군이 좀 더 빠르게 국회에 진입해 계엄 해제를 막았다면, 윤 대통령은 한순간에 정적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 전두환씨는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로 ‘3김’이라는 정적을 ▲강제 연행 후 내란음모 혐의 기소 ▲가택 연금 ▲권력형 부정 축재자 분류 후 정계 추방 등 수단을 동원해 한순간에 숙청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박 전 대통령 시해 사건을 수사했던 백동림 전 보안사 수사국장은 김 전 부장의 사건 당시 행적을 일컬어 “계획적으로 보기엔 너무 엉터리고, 우발적으로 보기엔 치밀하다”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도 그렇게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대국민 담화가 사전 녹화됐고, 계엄사가 빠르게 구성돼 국회에 군까지 출동시킨 것에 대해선 “우발적으로 보기엔 치밀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반대로 국회 진입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의원들이 비상계엄을 해제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선 “계획적으로 보기엔 너무 엉터리”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일각에선 이미 내란죄 성립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야권은 윤 대통령을 내란죄로 고발했다.

형법 제87조에 따르면,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는 처벌된다. ‘국가권력 배제’와 ‘국헌 문란 목적’ 모두 성립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대법원은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 기능을 상당 기간 영구히 폐지하는 경우만이 아닌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포함한다”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내란죄가 인정되면, 우두머리는 사형 혹은 무기징역이나 무기금고에 처해진다. 대통령 불소추특권도 적용되지 않는다. 시민단체들의 고발도 빗발치고 있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시·사변에 준하는 비상계엄 요건에 도저히 성립하지 않는다”며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성립하고, 계엄 선포 자체가 내란 행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의원들의 국회 출입을 막거나 회의 소집을 막으면 그 자체가 내란범죄 성립”이라고 강조했다. 

국민들은?

윤 대통령이 너무 이해가 안 된 나머지,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따라 한 것 아니냐”는 조롱 섞인 추측도 있다. 윤 대통령의 무리수가 흐지부지 마무리되자, 야권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했다. 때로는 한순간의 선택이 모든 것을 무너트린다. 윤 대통령의 선택은 과연 어떤 결말을 낳을까?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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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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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