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국힘 TK 쟁탈전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6.02.09 10:19:19
  • 호수 15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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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산으로’ 종점은 영남 자민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최근 국민의힘에선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출마자들만 넘쳐난다. 언론은 ‘영남 자민련’이나 ‘영남 소수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더 큰 몰락 가능성을 경고한다. 반대로 다른 지역에선 구인난을 겪고 있다. 국민의힘은 영남 자민련을 피할 수 있을까?

6·3 지방선거를 4개월 앞두고 있지만, 정가 안팎에선 국민의힘의 패배 가능성을 심각하게 거론하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달 15일 쌍특검(통일교 금품수수·더불어민주당 공천 헌금 비리 의혹 특검)을 촉구하면서 단식을 시작했다가 대통령실·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무시를 당했다.

이어지는
패배 경고

그러다 지난달 22일 초라하게 단식을 중단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제명에 대해선 강한 의욕을 드러내 친한(친 한동훈)계와 소장파의 반발을 사고 있다.

장 대표는 “일부 극우 유튜버들과 밀착하는 등 강경 보수와의 밀착을 자신의 정치적 공간 조성 전술로 삼는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해선 “자신을 지지하는 ‘목소리 큰 집단’과 공명하면서 장 대표의 정치적 의사 청취 폭이 좁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는 사이 지방선거는 코앞으로 다가왔다.

5선을 노리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서울시 부동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한 후 기자들을 만나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오 시장은 “장동혁 디스카운트가 선거를 덮치지 않을까 싶은 염려가 매우 크다”며 “국민의힘 소속 자치단체장들이 말을 안 해도 속은 숯검댕이”라고 주장했다. 오 시장은 한 전 대표가 제명됐던 지난달 29일에도 “장 대표가 당을 자멸로 몰아넣었다”면서 장 대표 사퇴를 촉구했다.

여론조사 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지난달 24일부터 2일 동안 서울시 거주 18세 이상 남녀 804명 대상 무선 ARS로 진행해 지난달 27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 시장은 서울시장 가상 대결에서 40.3%의 지지를 얻어 50.5%의 지지를 얻은 정원오 성동구청장보다 10.2% 뒤처지는 결과를 얻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대구·경북(이하 TK) 외 지역에선 지방선거 전패를 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분석한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를 보면, 국민의힘의 TK 지지율은 19%로 확인돼 정가에 큰 충격을 줬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지도력의 공백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불안한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당한 이후에도 홍준표 전 대구시장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대표를 맡아 수습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들은 새로운 미래 구상을 제시하지 못한 채 선거 패배 후 물러났다.

국민의힘은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에도 지난해 5월10일 새벽 3시에 김문수 당시 대선후보를 한덕수 전 총리로 기습 교체하려다가 국민적 비판을 받았다. 갈등을 매끄럽게 수습·조율할 지도력 공백의 여파였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두 전직 대통령이 구사했던 정치술이 만든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2인자·미래 권력·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1인 지배 체제를 선호했고, 다른 의견을 제시한 정치인은 퇴출하려고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장 디스카운트…현 시도지사 속은 숯검댕이”
‘북적북적’ 넘치는데 다른 지역은 구인난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5년 국회법 개정안 관련 갈등을 빚었던 당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 심판’을 언급하면서 국무회의 도중 강하게 비판했다. 유 원내대표는 박 전 대통령의 발언 13일 후 원내대표직에서 사임했다.

윤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이준석·김기현 전 대표와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 3명의 여당 수장에게 ‘격노’ 카드를 부여한 후 퇴출하는 정치술을 구사했다.

두 전직 대통령 모두 과도한 당내 권위·권력을 행사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권력 승계에 있어 큰 위기에 봉착했다. 정치학에선 과도한 권위·권력이 갑자기 무너진 후 진행되는 혼란상을 권력 공백이라고 한다.

두 전직 대통령이 추구했던 권력 형태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정의했던 가산관료제와 맞닿는다. 막스 베버는 “근대 관료제가 군주제 국가의 관료제보다 진보적·합리적”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군주제 국가 관료제에 가산관료제란 명칭을 붙였다.

군주제 국가의 각종 행정 기구는 군주의 사유재산을 관리하면서 군주의 개인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군주는 국가의 가부장이고, 관료는 군주의 가신에 가깝다. 군주의 주관적 의지와 자의적 판단이 법적 절차보다 우위에 있고, 군주와의 친소 관계가 관직 임용의 기준이 된다.

이로 인해 관직은 거래 수단이 되는 등 사유화된다.

두 전직 대통령도 공천권을 사적 충성심의 거래 수단으로 활용했다. 박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 내 친박(친 박근혜) 계열 정치인을 제20대 총선에서 대거 당선시키기 위해 공천에 개입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2018년 징역 2년형을 확정받았다.

윤 전 대통령은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에 개입했단 의심을 받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현대 정당 시스템을 전근대적 가산관료제로 역행시켰다.

권력 공백 상황에서 발생하는 혼란은 민주적 정당성을 토대로 전임자의 권위·권력을 승계받은 후계자가 수습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혼란을 수습할 후계자를 양성할 수 없었다.

국민의힘이 지난해 5월 대선후보였던 김 전 후보를 새벽에 기습 교체하려고 했던 것도 권력 공백 상황에서 발생했던 극단적인 혼란이었다. 한 전 총리가 김 전 후보의 대안으로 선택됐던 이유도 당내 영향력이 미약한 인사·외부인을 옹립해 특정 정치 집단의 이권을 유지하려던 것이었다.

12명 중
5명 출마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을 암시하는 현 상황 중 하나는 당내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출마 선언만 이어지고 있단 것이다.

현재까지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정치인은 ▲주호영 국회부의장(대구 수성갑) ▲추경호 전 원내대표(대구 달성군) ▲윤재옥 전 원내대표(대구 달서을) ▲최은석 의원(대구 동·군위갑) ▲유영하 의원(대구 달서갑) 등이다. 원외 정치인으로는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과 홍석준 전 의원이 출마를 선언했다.

TK 지역신문 <영남일보>는 지난 3일 사설을 통해 “대구 전체 의원이 12명이니, 절반 가까이 대구시장 선거에 뛰어든 셈이고, 사상 유례없는 출마 러시”라며 “추상적인 슬로건을 강조할 뿐, 대구의 미래에 대한 독자적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가 없다”고 비판했다.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 전한길씨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지지하고 있다. 전씨는 지난해 8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전한길을 품는 자가 지방자치단체장이 되고, 향후 국회의원 공천을 받을 수 있으며, 대통령도 될 수 있다”며 “저는 공천 같은 건 안 받지만, 만약 대구시장 후보 공천을 받는다면 이 전 위원장에게 무조건 양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대구 북구 칠성시장을 방문했고, 오는 9일 대구에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면서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지난 2022년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했다가 국민의힘 경선에서 탈락했다.

경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정치인은 ▲이철우 현 경북도지사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김재원 최고위원 ▲이강덕 포항시장 등이 있다. 이 지사는 3선에 도전하는 것이고, 이 시장은 포항시장 3기를 채웠기 때문에 더는 포항시장으로 출마할 수 없다.

최 전 부총리는 구 친박계의 핵심으로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에 연루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가 지난 2022년 특별사면을 받은 후 재기를 꿈꾸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경북도지사 출마로 방향을 틀었다. 김 최고위원의 의원 시절 지역구는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이었다.

반대로 다른 지역에선 구인난을 겪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을 시작했다. 서울시장 후보로는 오 시장에 이어 국민의힘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출마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지사 후보로는 새누리당 원유철 전 원내대표·심재철 전 국회부의장 등 원외 인사들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안팎에선 “과열 양상이 빚어지는 TK와는 다르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 친한계는 “서울 강남·부산의 보수 성향 엘리트들이 모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친한계는 십수명 안팎의 국민의힘 의원들로 구성됐기 때문에 탈당해 신당을 창당하더라도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없다.

사라진
2인자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은 지난달 28일 BBS 라디오 <금태섭의 아침 저널>에 출연해 “신당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 창당설에 선을 그었다.

한 전 대표 제명은 수도권 기반 의원들의 위축을 유발해 국민의힘 전체의 폐쇄적 집단 사고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선 “소장파의 성장 가능성을 완전히 거세할 위험으로 연결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당내 견제 장치가 사라져 언더 찐윤의 확증 편향 중심 의사결정 구조가 굳어질 위험으로 이어진다.

TK·강원을 주된 기반으로 둔 언더 찐윤이 주도권을 장악한 것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이 지난 2016년 총선부터 연이어 참패해 국민의힘의 수도권 기반이 축소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정치 구도에서 수도권 출마자들은 외연 확장의 선봉장 역할을 한다. 외연 확장이 가로막히면서 기존 텃밭을 지역 기반으로 둔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진다. 반대로 외연 확장 실패는 정당의 힘을 약화한다.

“언더 찐윤에 해당한다”는 평을 듣는 국민의힘 내 TK 기반 정치인들은 “언론 노출을 꺼리면서 지역구 토호와의 접촉에 열중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외연 확장 실패는 외부와의 경쟁 포기·지역 기반 안주란 결과로 연결된다.

“국민의힘에서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출마 열기만 이어진단 것은 ‘영남 자민련’ 축소를 자처하는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 모든 선거에서 패배한 국민의힘 내 중앙 정치의 패장들이 중앙 정치에 뜻을 잃고 내부 기반의 요새로 도피하는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은 현대 정치학에서 거론하는 정치적 부족주의 개념를 뒷받침한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개인이 이성적 정책·이념보다 인종·지역·종교 등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치적 정체성에 자신을 귀속시키면서 동일시하는 현상을 말한다.

에이미 추아 미국 예일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지난 2018년 저서 <정치적 부족주의>를 출간했다. 추아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대해 “특정 집단의 이익만 대변하는 정체성 정치가 활개를 치면서 증오·대립이 극대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씨가 이 전 위원장의 대구 출마를 촉구·지지하는 상황은 정치적 부족주의를 넘어 계파적 부족주의로까지 축소되는 양상으로 이어진다.

연이은 수도권 참패 후유증…부족주의 강화
눈앞 아른거리는 자민련·자유선진당 뒤안길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들에 대해선 “연이은 선거 패배 때문에 이어진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지 못한 채 과거 성공했던 지역 기반 승리에 집착하는 경로의존성에 따라 보신주의를 추구한다”는 평이 나온다. 두 전직 대통령은 1인 지배 체제를 선호해 후계자 양성에 소홀했다.

이는 위기를 타개할 정치적 상상력을 가지고 미래 권력이 돼야 할 2인자가 사라졌다는 후유증으로 연결됐다.

이들은 소속 정당이 중앙 정치에서 힘을 잃더라도 지역 기반만 유지할 수 있다면,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새로운 모험을 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정치적 성공을 안겨준 지역 기반에서의 승리 공식을 토대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경로의존성에 의지한다.

그 결과, 국민의힘의 대구 지역 의원 12명 중 5명이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현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 현상에 대해선 당이 “불확실한 중앙 정치를 감당할 역량마저 고갈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될 수도 있다.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일부 지식인은 거듭되는 난세를 정치적·정신적으로 감당하지 못했다. 이들 사이에선 대나무숲에서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면서 노장사상을 토대로 구성된 청담을 말하는 풍조가 유행했다. 이들 중 특히 유명했던 선비 7명을 묶어 죽림칠현이라고 한다.

죽림칠현은 모친상 도중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연주하거나, 친구의 모친상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 등 기행을 저질렀다. 그런데 이들은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아 말년엔 고위 관직을 지내거나, 위나라 황실 사위가 되는 등 부귀영화를 누렸다.

이들에게 대나무숲은 정치적 실패를 잊기 위한 도피처였다. 사회 전반적로는 5가지 광물을 섞어 제조하는 마약 오석산이 유행했다. 죽림칠현도 술에 오석산을 섞어 마시면서 청담을 논했다. 오석산 복용자들은 환각 상태에서 기행을 저질렀다.

독성 때문에 피부가 약해지기 때문에 새 옷의 반듯함을 감당하지 못해 낡고 헐렁한 옷을 입어야 했다. 그래서 위나라 곳곳엔 낡고 헐렁한 옷을 입고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국민의힘에서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출마만 이어지는 현상은 “텃밭으로 돌아가 연이은 선거 패배와 정권 상실이란 현실을 잊고 자아를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언론이 국민의힘을 일컬어 ‘영남 자민련’이나 ‘영남 소수당’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더 큰 몰락을 경고하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연립 정권의 한 축이었던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은 정치적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연이어 선거에 패배한 후 2006년 한나라당에 흡수됐다. 자유선진당은 충청권에서조차 자민련만큼의 지지세를 확보하지 못해 2012년 총선 참패 후 새누리당과 합당해 소멸했다.

다가오는
몰락의 길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는 등 ‘중도 보수’ 선언을 현실 정치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과연 TK만 북적거리는 국민의힘은 자민련·자유선진당의 뒤안길을 걷지 않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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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민주당 당권 경쟁

미리 보는 민주당 당권 경쟁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8월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열린다. 6월 지방선거라는 빅 이벤트가 걸쳐져 있지만 당의 시선은 벌써 8월을 향했다. 재보궐선거를 통해 당에 입성한 사람, 공천에서 밀린 사람, 경선에서 탈락한 사람 등 변수도 수십 가지다. 당권을 쥐기 위한 ‘비공식’ 후보들의 경쟁이 벌써부터 뜨겁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6·3 지방선거 직후 곧바로 8월 전당대회 국면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번 지방선거가 이재명정부 1년을 평가할 시험대인 동시에 민주당 권력 재편의 시작점인 셈이다. 그 누구도 출사표를 던지지 않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미 하마평이 돌고 있다. 현직인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김민석 국무총리 ▲송영길 전 대표 ▲김용민 의원 ▲우원식 전 국회의장 ▲이광재 전 사무총장 등이 거론된다. 지방선거를 무대로 물밑에선 각자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차기 당권 경쟁이 점화하는 분위기다. 안갯속 연임 가도 이정부 1대 지도부를 이끈 정청래 대표는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박찬대 후보와의 2파전 대결 끝에 61.74%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대의원 누적 투표 결과에선 정 후보가 46.91%로, 53.09%를 얻은 박 후보에게 약 7%p 뒤처진 만큼 압도적인 당심으로 선발됐다는 평이 나왔다. 그동안 정 대표는 연임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다. 1인1표제 등 당권 강화를 위한 작업이 한창이던 당시 정 대표가 자신의 대표 연임을 위해 이를 무리해 추진하는 것이라는 논란이 제기됐고, 이에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당원에 대한 모독이다” “연임의 이응(ㅇ)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6·3 지방선거를 돕기 위해 전국을 무대로 행보를 가속하는 모습이 마치 전당대회 전초전을 연상시킨다는 평이 나온다. 정 대표는 부산, 울산, 경남을 비롯해 전체 권리당원의 30%가 분포된 호남 지역을 순회했다. 지방선거 후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당원과의 접촉을 늘렸고, 자연스럽게 얼굴 도장을 찍는 효과를 얻었다. 당내에서는 이변이 없는 한 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승하면서 정 대표가 정치적 위상을 굳히고 대표 연임 역시 무리 없이 진행될 것으로 봤다. 특히 후보 경선 과정에서 친청(친 정청래)계가 잇따라 공천을 받은 만큼 세 늘리기에 주력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우선 민주당 수석대변인으로 정 대표와 호흡을 맞췄던 박수현 전 의원은 충남도지사 후보로 선거를 치렀다. 평소 정 대표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이원택·민형배 의원도 각각 전북도지사 후보와 전남·광주 통합특별시장 후보로 공천됐다. 지방선거 덕을 톡톡히 봤으나 과거 행적에 발목이 잡힐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번 선거서 ‘클린 공천’을 자신했으나 일부 지역에서 잡음이 나오면서 그를 향한 원성이 높아지는 모양새다. 먼저 서울 강북구청장 후보를 기존 이승훈 변호사에서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으로 교체한 사건이다. 이 변호사가 과거 성범죄자를 변호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국민 여론을 의식해 후보를 교체했는데, 자신과 유사한 변호 이력을 지닌 다른 후보가 다른 지역에 공천되자 ‘이중 잣대’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 변호사는 단식 농성에 돌입했고 친명(친 이재명) 강득구 최고위원은 농성장을 찾아 “정말 4무 공천이 맞나”라며 정 대표를 직격하기도 했다. 1년 사이 늘어난 적수 정청래 연임 가능성은? 재선에 도전하는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현금 살포’ 의혹으로 제명 처리됐다. 윤리 감찰을 지시한 정 대표에게 분노를 느낀 김 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전북도지사 선거는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와 관련된 친청과 친명의 대결 구도가 있다”며 “제가 작년 전당대회 때부터 정 대표와 다른 노선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저를 제명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초 진행한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좌초도 악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당시 정 대표는 ‘청와대와 조율을 거쳤다’는 취지로 수습에 나섰지만 오히려 이재명 대통령을 끌어들였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친명계를 적으로 돌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앞장서서 합당에 반대했다. 그는 “조기 합당은 민주당의 주류 교체 시도이자 이재명의 민주당을 정청래나 조국의 민주당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라고 보인다”고 말했다.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이번 합당 제한은 최고위를 패싱한 정 대표의 개인적 제안”이라며 “지금도 심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각종 진보 진영 온라인 커뮤니티 역시 정 대표를 향한 원성과 혁신당을 배척하려는 의도를 가진 게시글이 줄을 이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지금 선거판은 민주당 내부 권력 투쟁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정청래 연임파와 반청(반 정청래)파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며 “서로를 방해하려고 하다 보니 잡음이 생기는 것”이라고 봤다. 김민석 국무총리의 거취도 관심의 대상이다. 김 총리는 “당 대표직에 로망이 있다”고 말해 당권 도전 가능성을 시사했으나 직접적인 물음에는 선을 그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런 김 총리는 최근 여당 인사들과 접점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북 군산시 새만금개발청에서 새만금·전북 대혁신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진행한 데 이어 지난 19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단과 만나 국정과제 필수 입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당부하기도 했다. 이날 회동에는 한병도 원내대표를 비롯한 ▲천준호 원내운영수석부대표 ▲김한규 원내정책수석부대표 ▲이주희 원내대변인 및 원내부대표 등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이주희 원내대변인은 “총리께선 123개 국정과제를 뒷받침할 필수 입법안 신속 처리에 대한 당부와 함께 이재명정부 2년차를 맞아 정부와 여당의 원내대표단이 함께 심기일전해 국정 운영의 강력한 원군이 되어줄 것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개혁 끝 관리 시작? 김 총리가 정 대표의 맞수로 떠오른 이유는 그가 이 대통령의 복심이자 ‘섬세한 관리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가 청와대와 엇나가는 모습을 보여준 탓에 당정 갈등설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당원들의 불안감으로 이어지면서 차기 대표는 정부와 합이 잘 맞는 사람으로 뽑아야 한다는 여론에 힘이 실렸다. 선거 기여도가 낮은 탓에 등판 시기는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전국을 누비며 솔선수범한 정 대표와 달리 김 총리는 선거 승리 공을 가져갈 명분을 얻지 못했다. 그런 그가 지방선거 이후 전당대회에 출사표를 던진다면 “승리를 위해 어떤 기여를 했느냐”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놓기 어려울뿐더러 오히려 반감만 생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만일 김 총리가 전당대회에 출마할 경우 정 대표를 지지하는 당원들에 의해 과거사가 ‘파묘’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작년 6월 공직자 청문회 당시 김 총리는 재산 형성과 학위 취득, 군 복무 및 금전 거래 의혹 등으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청문회가 진행되는 시기는 이정부 출범 극초기 단계로 민주당 의원들이 적극 엄호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된 방패막이 되어줄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민주당의 원조 터줏대감인 송영길 전 대표도 변수다. 인천 연수갑 보궐선거에 출마한 그는 최근 대표 도전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어 이목이 쏠린다. 선거를 불과 일주일 남겨둔 시점에서 송 후보는 정 대표를 향한 견제구를 날렸다. 연수갑 보궐선거 후보 공천에 대해 “정 대표가 줬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고 말하는 등 차기 행보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YTN 라디오에 출연해 ‘공천 받기 전 정 대표에게 연락을 받았나’라는 질문에 송 후보는 “직접 전혀 전화 받은 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정 대표께서 당원이 주인된 당을 만들겠다고 1인1표제까지 만들지 않았나. (따라서) 정 대표가 (공천을) 줬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자신의 출마가 정 대표의 배려 덕분이 아닌 당원들의 호응에 응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송 후보는 국회 복귀가 우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당권 도전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 않았다. 그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는 “당선되면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여러 가지로 무엇이 필요할지 상의하겠다”며 “당의 역할이든 정부에서의 역할이든 (이 대통령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다. 제 개인의 정치 프로그램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재명 정부 성공을 위해서 어떤 역할이라도 하겠다는 자세”라고 밝혔다. 사방에서 “혹시 나도?” 송 후보가 민주당의 지방선거와 재보선 후보로 지원하는 것이 ‘만약 당 대표가 된다면 해야 할 일을 미리 준비하는 단계’인지를 묻는 말에는 “그것보다는 정 대표나 저나 마찬가지로 전체 승리가 중요하다”며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으면 도와주려고 뛰고 있다”고 답했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는 김용민 의원의 존재감도 급부상했다. 김 의원은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간사로 검찰·사법개혁 논의 등을 주도해 온 검찰개혁 강경파로 꼽힌다. 6월 지방선거 종료와 동시에 보완수사권을 띄워 다시 한번 승부수를 던지지 않겠냐는 해석이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검찰개혁이 다시 화두가 된다면, 강경 성향인 정 대표에 이어 본인도 겨뤄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깔린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김 의원은 ‘당권 도전설’을 부인했으나 검찰개혁 공을 앞세워 ‘개혁 당 대표’ 기류를 이어간다면 전당대회 역시 하나의 선택권이 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다만 김 의원을 향한 여권 내 평가 역시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김 의원이 추미애 의원과 함께 중수청법 입법을 앞두고 당·정 협의를 거쳐 내놓은 안을 엎는 등 여권 내 갈등을 촉발시켰기 때문이다. 당시 한 정치권 관계자는 “김 의원이 고집스러운 면모를 보이면서까지 의견을 굽히지 않은 건 당원들에게 무언가를 어필하려는 마음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고도 해석했다. 국회의장직에서 퇴임한 우원식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다. 그동안 우 의원은 여권 의원들과 친밀한 행보를 보이며 유독 평판 관리에 힘 써온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를 두고 우 의원의 다음 스텝이 당 대표가 되지 않겠냐는 해석이 나왔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퇴임을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에서 우 의원은 “후반기 국회에서 개헌하지 못하면 제 인생에 굉장히 큰 후회가 올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투표법을 개정해서 절차적 걸림돌을 해소했고, 단계적 개헌에 국민적 공감대도 넓어졌다”며 “후반기 국회에서 반드시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결실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우 의원은 향후 역할론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저 “당원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사회적 약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지내겠다”고 언급했다. ‘친명 주도권’ 다시 쥐고 싶어도… 전대 판 가를 최종 종착지 ‘전북’ 하남갑에 출마한 이광재 전 의원도 후보군에 올랐지만 최근 한 인터뷰에서 ‘전당대회 등 다른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지역에 헌신할 생각”이라며 선을 그었다. 재차 이어진 질문에도 “지금은 중앙 정치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건 하남을 확실하게 모델 도시로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 이 후보를 둘러싸고 계속해서 출마설이 나오는 이유는 당원은 물론 민주당 의원까지 그의 선당후사 정신을 높게 봤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각종 선거 때마다 당의 요구에 따라 험지에 몸을 던졌다. 2022년 지방선거에선 보수세가 강한 강원도지사에 출마해 김진태 지사에게 패배했고, 2년 뒤 22대 총선에선 20년 넘게 살아 온 종로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의원에게 양보했다. 이번 지방선거 역시 평택 출마를 희망했지만 당의 뜻에 따라 하남으로 향했다. 선당후사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당원들 사이에서는 ‘적재적소 어디든 잘 어울리는 인재’라는 평을 받았다. 이번 전당대회를 가를 변수는 전북이다. 전북은 정 대표의 판단하에 후보가 교체된 곳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서울 등 주요 격전지에서 선전하더라도 전북에서 성과를 못 낼 경우 정 대표의 책임론은 불가피하다고 봤다. 정 대표의 연임 가도에 빨간불이 들어온다면 그의 대척점에 선 이들이 유리해지는 만큼, 전북이 ‘민주당의 격전지’가 된 셈이다.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진 김관영 후보는 연일 정 대표를 향한 공개 비판을 이어가며 전북 선거를 당권 문제로 확장했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정청래 지도부는 만약 이번 선거에서 김관영이 이기면 사퇴한다”며 “(내가 당선된 뒤) 사퇴를 안 한다 해도 8월 전당대회에서 다른 분이 될 가능성이 아주 커진다”고 말했다. 이어 “정 대표를 사퇴시키고 싶으면, 당 대표로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으면 이번에 김관영을 선택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묘연한 텃밭 민심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이미 민주당 전당대회는 시작됐다. 비공식 후보와 비공식 일정만 있을 뿐,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낙관론으로 보일 수 있어 지방선거 기간에는 전당대회의 ‘전’자도 못 꺼냈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선거 승리를 두고 저마다 공을 가져가려고 할 텐데 정 대표는 본인의 것으로, 나머지 주자들은 이 대통령의 것으로 나누려고 할 것”이라며 “국정 안정 기조와 내란 청산 기조 두 개를 적절히 조율할 수 있는 후보가 유리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