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택공급 집중하는 이유

갈 길 달라도 갔던 길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가 집값 안정화를 위한 4번째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지만 오히려 시장가격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많은 공급을 통해 시장 안정화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게다가 쳇바퀴 굴리듯 이명박·박근혜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따라해 시장의 반응이 반대로 나왔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부동산시장의 거래량은 늘어나고 가격은 매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윤석열정부는 부동산가격 급등이 공급부족에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주택공급 대책을 세웠다. 전문가들은 주택공급만으로는 부동산시장을 정상화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가격 급등
부족 때문?

지난 8일 정부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통해 ‘국민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방안에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Greenbelt)을 풀어 오는 2025년까지 8만가구 규모의 주택공급이 포함됐다. 

여기에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신축 매입 11만가구, 3기 신도시 등 공공택지 유보지를 활용한 2만가구 등 신규주택 총 21만가구가 오는 2029년까지 공급된다. 정부는 내년까지 수도권 공공 신축 매입을 11만호 이상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말 기준 LH 신축 매입 신청 접수 물량이 7만7000호 규모라는 점을 고려하면 4만호 가까이 추가 확보한다는 얘기다.


특히 서울은 전세 사기 등으로 침체된 비아파트 시장이 정상화될 때까지 무제한으로 신축 주택을 매입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서울의 비아파트 입주 비율이 전체 입주 물량의 45% 수준까지 회복될 수 있도록 당분간 꾸준히 매입하겠다는 얘기다. 

기축이 아닌 신축 매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로는 1~2년이면 완공 후 입주가 가능하고 신축 매입이 주변 부동산가격을 자극하지 않고 공급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축 주택 무제한 매입 재원에 대해 진현환 국토부 제1차관은 “11만호 이상 매입한다는 방침은 예산당국과 협의를 끝냈으며 정부 지원 단가를 현실화해 올리는 방안에 대해서도 예산당국과 협의 중”이라며 “재원 문제는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매입 속도를 높이기 위해 LH의 매입 약정체결 기간은 7개월서 4개월로 단축하고 민간사업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각종 세제혜택과 자금 지원을 확대하는 ‘신축 매입 활성화 지원 3종 세트’를 시행한다.

최소 6년간 임대 후 분양으로 전환하는 ‘분양전환형 신축 매입 주택’ 제도도 도입한다. 이를 통해 오는 2026년부터 입주 가능한 도심 내 신축 아파트 등 주택을 공급한다.

22만 가구↑ 8·8 부동산 대책
4번의 조치 모두 공급에 집중

분양전환형 임대주택은 매입임대 중 입지와 구조가 좋은 주택을 저렴한 임대료로 최소 6년 후 임차인에게 우선매각하는 제도다. 분양전환을 희망하지 않으면 전세형은 추가로 2년, 월세형은 추가로 4년 더 임대 거주 가능하다. 입주 및 분양 전환 시점에도 주택도시기금서 저리로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다.


국토부는 공공 신축 매입 11만호 중 최소 5만호는 분양전환형 신축 매입으로 공급하고, 실수요자 선호도가 높은 전용면적 60~85㎡의 중형평형 위주로 매입할 방침이다.

침체된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를 위한 각종 세제·청약 지원방안도 내놨다.

비아파트 1호만으로 사업자 등록이 가능한 6년 단기 등록임대 제도도 도입한다. 1주택자가 소형 주택을 구입해 6년 단기 임대로 등록하면 1세대 1주택자로 특례를 적용한다. 공유주택 등 임대형 기숙사도 앞으로는 취득세·재산세 감면 대상에 포함된다.

생애 최초로 다가구, 연립·다세대, 도시형 생활주택 등 소형 주택을 구입한 경우에도 취득세 감면 한도를 200만원서 300만원으로 확대한다. 혜택은 오는 2027년까지 연장될 예정이다. 빌라 등 비아파트를 보유했더라도 청약서 무주택으로 인정하는 비아파트 범위를 85㎡(수도권 5억원·지방 3억원) 이하로 확대한다.

노후 저층 주거지를 개발하는 ‘뉴:빌리지’ 사업은 오는 2029년까지 주택 5만호 공급이 가능하도록 추진한다. 주차장 등 아파트 수준의 편의시설을 지을 수 있게 지원하고, 공모에 선정된 경우 국비를 5년간 최대 150억원을 지원한다. 든든전세주택 등 비아파트 공공임대주택은 1만6000호를 추가 공급한다.

전세 임대는 임차인이 직접 원하는 주택을 구하는 방식 외에도 임대인 모집공고를 통해 즉시 입주 가능한 주택을 확보해 1만호의 물량을 마련할 계획이다. 수도권 물량은 약 6000호다. 이 경우 중개수수료와 도배·장판 비용 등 재정 지원을 통해 참여를 유도한다. 보증금은 입주자 부담 20% 외에 최대 2억원까지 지원한다.

여기에 더해 현재 서울서 그린벨트로 묶인 지역을 해제해 내년까지 1만가구 이상 들어설 수 있는 신규택지 조성에도 나선다. 해제 지역은 오는 11월 공개될 방침이다. 이외 약 7만여가구는 수도권서 공급될 전망이다.

1차원적인 
발상 지적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에 대해 비정상적인 수요를 막을 생각은 안 하고 오히려 수요에 맞게 공급을 늘리는 1차원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윤정부의 부동산 대책에는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은 정권 초기부터 이어져 왔다. 이는 윤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공급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윤정부는 출범하면서부터 270만호 주택 공급 목표를 제시하며 문재인정부가 조여놓은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현 정권서 나온 4개의 부동산 대책 모두 주택공급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6월 주택 통계에 따르면 오히려 미분양 주택은 전월 대비 1908호(5월 7만2129→6월 7만4037) 늘어났다. 공급이 수요에 못 미쳐 집값이 올라갔다는 정부의 분석과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중 악성이라고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도 늘어났다. 지난 6월 전국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1만4856호로 전월(1만3230호)보다 1626호 늘었다.


이를 두고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는 주택공급에 방점을 찍었지만 공급 부족이 문제가 아니다”라며 “오피스텔 미분양도 넘쳐나는데 세제혜택까지 주면서 건설업자에게 일감을 주는 것은 오진이다. 수요자들이 필요한 주택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는 빌라에 대한 수요가 낮아진 것이 전세 사기란 점을 인지하면서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아 문제가 더 커진 것”이라며 “엉뚱하게 공급을 늘리기 위해 세제혜택을 주게 되면 또다시 무자본 갭투기로 시장에 나쁜 영향만 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표했다.

정택수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팀장도 “문정부 때 2·4 대책과 3기 신도시 대규모 공급 정책을 내놨으나, 실제 공급된 주택은 한 채도 없었다. 그럼에도 지난 2022년 대선 전후로 부동산가격이 어느 정도 하향 안정세를 보였다”며 “공급이 주택가격에 영향을 준다고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속속 푸는
그린벨트

그러면서 “현재 상황도 주택공급 부족 때문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대규모 공급에 나선다면 역으로 주택시장을 더 과열시킬 수 있고, 정부의 정책 의도도 의심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최근 집값 상승은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에 강남 등의 지역 중심으로 매매거래가 증가한 것이 불씨가 됐다”며 “여기에 부동산 정책 금융을 늘리고 대출 규제를 풀어 기름을 부은 것은 정부인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공급을 늘리는 것은 오히려 난개발을 부추기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번 대책 중 가장 화제를 모은 방안 중 하나인 서울 그린벨트 해제로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은 단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규 택지는 후보지 발표 이후 공공주택지구 지정, 지구계획 수립, 토지 보상 등을 거쳐 실제 입주까지 통상 8~10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앞선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그린벨트 해제는 장기적으로 대책 방안이 될 수 있지만 5년 내 공급이 중요한 현재 시장에서는 영향력이 없어 보인다”며 “차라리 수도권 3기 신도시 물량을 대폭 늘리는 것이 오히려 실효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공원 녹지와 자족용지 등을 축소하고, 용적률을 상향하는 방식으로 3기 신도시 규모를 60만가구 수준인 2기 신도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데 이는 그린벨트 해제보다 이른 시점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윤정부가 주택공급에만 집중하는 이유를 윤정부만의 특색이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특히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부터 이명박(MB)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따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차이점은 현재는 집값이 상승하고 있지만 MB정부 당시에는 집값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MB정부는 주택가격 하락 시기에 집권했다. 정부는 집값 하락을 용인하지 않았다. 금융위기로 온 조정 장세 이후 재반등을 꾀했다.

제자리 쳇바퀴 굴리듯
이·MB정부 따라하기?

그 대응책의 하나가 바로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였다. MB정부는 지난 2009~2012년에 걸쳐 서울 서초구 내곡동, 강남구 세곡동을 포함해 서울권 ‘금싸라기’ 땅의 개발제한을 풀었다. 해제 면적은 총 34㎢였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당시 급등하는 집값을 잡기 위해 ‘뒤늦게’ 나온 각종 규제 대책을 대대적으로 풀었는데 이마저도 비슷하다. 윤정부는 문정부부터 이어진 부동산가격 급등을 잡기 위해 각종 규제를 해제하고 있다.

MB정부는 집권 초기에 곧바로 강남3구를 제외한 서울 전 지역의 투기지역 해제를 포함해 양도세 감면, 분양권 전매제한 규제 완화, 종합부동산세 완화, 재건축 규제 완화 등에 나섰다. 

윤정부도 서울 강남3구와 대통령실이 들어간 용산을 제외한 서울 전 지역 주택 규제를 전부 풀었다. 분양가 상한제 역시 강남3구와 용산을 제외한 전 지역 규제를 해제했다.

윤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주택공급 속도 조절로 부동산시장을 살리려 했던 박근혜정부와도 비슷한 결로 분석되기도 한다. 특히 대출 규제와 관련해서다.

윤정부는 대출 규제를 대거 풀었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 가구에만 주택담보대출비율을 최대 80%까지 끌어 올리고 1주택자도 주택담보대출비율을 70%까지, 다주택자도 주택 수에 따라 30~40%까지 대출을 완화했다. 또 이에 더해 특례보금자리론, 신생아 특례대출 등을 만들었다. 신혼부부 지원과 출산 독려 등이 담긴 정책이다.

박정부는 당시 주택담보대출비율을 80%까지 모든 주택 소유자에게 일괄 적용했으며, 주택 구입 자금 지원 규모 확대, 소득요건 상향 등으로 주택자금 마련을 지원한 바 있다.

문제는 집값 안정화를 노리는 윤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부동산시장 회복을 노리는 MB·박정부와 결을 같이 하면서 시장은 오히려 투기하듯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침체된 건설업계 분위기 회복과 집값 안정화를 동시에 꾀하려 하기 때문에 시장에 잘못된 해석이 형성된 것”이라며 “또 정비사업에 무분별한 규제 완화는 오히려 대상지들의 집값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정비사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공급 효과와 이런 것을 따져봐야 하지만 그저 전 정부의 정책을 따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부동산 대책 가운데 18개의 추진과제는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이 필요하다. 여소야대 국면서 야권의 협조가 원활히 이뤄질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도 실효성이 없다고 보는 부분이다. 

재건축·재개발 촉진 관련 9개 과제는 재건축·재개발 촉진특례법(가칭)의 제정, 도시정비법·지방세특례제한법·소규모주택정비법 개정이 요구된다. 비아파트 시장 부양 과제 6개의 실행에는 민간임대주택법·지방세특례제한법·주택도시기금법·소규모주택정비법 개정이 필요하다.

입법 과정
매우 험난

이 밖에 주택공급 여건 개선과제 3개를 이행하기 위해 부동산개발사업관리법을 제정, 소규모주택정비법·조세특례제한법·지방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야 한다. 

지난 1월 부동산 대책 발표 당시에도 정부가 협의 없이 대책을 발표하자 더불어민주당은 “막무가내식 규제 완화는 집값을 띄울 뿐 아니라, 안전성을 최우선하는 도시정비법의 취지에도 위배된다. 법 개정 사항임에도 즉흥적 정책을 발표한다면, 국회가 왜 있느냐”고 비판한 바 있어 이번에도 입법 과정은 매우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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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